新JLPT 한권으로 합격하기 N1 新JLPT 한권으로 합격하기
신JLPT연구모임 지음 / 시사일본어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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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새롭게 개정된 JLPT 시험 방식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400점 만점에서 180점 만점으로 바뀌고, 청해의 비중이 1/3으로 늘어났으며 레벨도 N1~N5로 더욱 세분화되었다. 또한 새로운 방식의 문제들도 출제되기 시작하여 JLPT를 준비하기 위한 교재 역시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 오래 전에 1급을 취득했지만 새로운 유형과 방식도 궁금하고 해서 2010년 상반기에 N1에 응시해 봤는데, 오히려 기존의 시험보다 더 쉬운듯 해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시험이 개정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기 때문에, 신유형을 대비하기 위한 교재도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있는 것들도 일본 책을 그대로 번역해 놓은 것들이었다(그 중에 얇은 책 하나를 사서 문제 유형들을 참고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JLPT가 개정된지 대략 1년이 지나고, 이제는 시중에도 신JLPT를 대비하기 위한 교재들이 제법 많이 나와 있다. 시사일본어사 신JLPT 연구모임의 <新 JLPT 한권으로 합격하기 N1> 역시 그 중 하나이다(호기심이 많은 나로써는 신JLPT 연구모임의 정체가 괜히 궁금해진다). 묘한 것은 이 책의 초판이 2010년 11월에 출간되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표지 디자인도 많이 바뀌었다. 초판을 보지 못해서 내용이 어떻게, 어느 정도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2010년 하반기 시험 이후 새롭게 발견된 점들을 넣어서 업그레이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은 꽤 묵직하고 두꺼운데, 갖고 다니기 편하도록 언어지식(문자어휘/문법), 독해, 청해가 따로 분책이 되어 있다. 실전 모의테스트 1회 역시 같이 들어 있다. 청해 부분의 MP3 CD가 부록으로 들어 있고, 이 청해 MP3와 해설 음성강의는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도 있다. 우선 문제 유형을 설명하고, 한자읽기, 어휘 고르기, 단어 조합하기 등의 각 문제들이 몇 문제씩 나오는지까지 자세히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문제 요령과 포인트가 나와 있고 STEP 1(기초부터 튼튼히), STEP 2(익히기문제), STEP 3(실전문제), 종합문제의 순으로 한 파트가 끝난다. 꽤 괜찮은 점이, 문제 요령과 포인트 부분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JLPT N1을 처음 접하는 경우 혹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경우에 도움이 많이 될 듯 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책 한권으로 모든 파트를 다루고 있다 보니 페이지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파트별로 한 권씩 따로 나온 책보다는 문제 수가 적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 한권만 보는 것보다는, 한 권씩 따로 나온 책 역시 함께 구입해서 보는 편이 도움이 될 듯 하다. 특히 합격뿐만이 아니라 고득점을 노리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미 N1을 만점에 가깝게 취득하고 구1급도 가지고 있으므로 N1을 또 볼 일은 없을 듯 하지만, 일본어를 가르칠 때를 대비해서 교재연구 차원에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최근의 출제 트렌드 같은 것을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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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ping 쇼핑
에이프릴 레인 벤슨 지음, 홍선영 옮김 / 부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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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구입하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 대상에는 꼭 있어야 하는, 의식주와 같은 필수적인 것들도 있지만 사실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포함되곤 한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소비지향적인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어떤 것을 소비하라고 여기저기서 외쳐대고 있으니 참 난감할 때가 많다. 사실 누구에게나 최신형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따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잘 분별해서 소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신의 소비를,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다면 이미 쇼핑 중독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쇼핑 중독은 어떤 사람들이 주로 빠져들며,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심리학자인 에이프릴 레인 벤슨의 <Stopping 쇼핑(원제 : To buy or not to buy)>은 이러한 쇼핑 중독에서 벗어날 방법들을 제시하고 자신의 쇼핑 습관을 통제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있다.  

우선 쇼핑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 중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쇼핑 습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연령, 성별, 사회경제적 지위, 소비 유형, 쇼핑의 숨은 동기 등이 제각각이다. 기분 전환을 위해, 자신감을 얻기 위해, 부와 권력의 이미지를 갖기 위해, 분노를 드러내기 위해, 스트레스나 상실감, 과거의 정신적 충격을 덮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등 꽤 다양한 원인에서 사람들은 쇼핑에 빠진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신용카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거나 돈을 빌린 후 상환하지 못하고, 쇼핑 문제로 배우자 혹은 가족과 싸우게 되고, 미래를 대비한 저축도 거의 하지 못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쇼핑 중독 역시 도박이나 알콜 문제와 같이 치료받아야 할 일종의 질병이지만, 여타의 중독들과 달리 그렇게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쇼핑 중독으로 인해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수는 많지 않다. 거의 파산하기 일보직전이 되어서야 전문가와 상의를 하게 되는 듯 하다.  

이 책에는 쇼핑 중독을 자가진단하고 자신이 중독적인 쇼핑을 하는 이유, 갖고 있는 소비 유형,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잃어버리는 잠재적인 비용과 그 비용의 절감,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쇼핑 대신에 하면 좋은 것 등 일종의 쇼핑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제시되어 있다. 자신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에 체크할 수 있는 리스트도 있고, 표를 그려서 파악하는 방식도 있으며, 0부터 10까지의 척도로 평가하기, 시각화 기법, 가계부 적기, 빈칸 채우기 등 참으로 다양한 활동들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왜곡된 생각 바로잡기, 광고나 마케팅, 인터넷, 지인들의 권유 등의 '소비 압력'에 맞서기, 쇼핑 중독에서 벗어나는 중에 다가올 위험 상황(일명 지름신의 강림)에 대비한 계획 세우기 등 전반적으로 굳이 쇼핑중독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실용적인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등장하는 일본어 단어나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들 중 하나로 제시하는 명상(선(禪)의 느낌이 든다), 몸의 각 부분에 의식 집중하기 등 오리엔탈리즘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아직도 서양인들은 동양에 대한 신비로움을 갖고 있는 것일까? 또한 이 책이 미국인 저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그런지 한국의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고(예를 들자면 최저 상환 제도라던지...)추천 사이트들 역시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서 마음 편하게 이용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번역본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자신의 의지로 소비를 제어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꽤 도움이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쇼핑 중독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종종 충동구매를 하고 후회했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인데도 인기가 있거나 다른 사람들의 후기가 좋으면 사고 싶어져서 결국 구입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신부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이 굉장히 와닿았다. 그 신부님은 수도원에 들어간 후 항상 어떤 것이 자기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 어떤 것을 구입하거나 소비하기 전, 이것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이것을 구입함으로써 나는 후회하지 않고 이것을 잘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그것은 꽤 효과가 있었고, 지금은 아무리 저렴한 것이라도 이것이 정말로 필요한지 잘 생각해서, 필요하지 않다면 아무리 좋고 저렴해도 구입하지 않는다. 물건을 구입하는 취미도 꽤 실용적으로 변해서, 실용적인 용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구입하지 않는다. 생활방식 자체가 '자발적인 검소함'으로 돌아선 느낌도 든다. 그렇다. 이제 지름신에 휘둘려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구입하고 후회하는 것은 그만둘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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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안그림자 2011-03-17 0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있게 나는 "쇼핑중독자"가 아니예요..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정신 병리학에서는 모든 일에는 인과 법칙이 적용되어진다고, 사회적 이슈로 문제를 일으켜야만 키워드를 만들어서는 논하고 분석한고 강조를 해 되지만, 쇼핑중독자로 걸음을 한 걸음씩 내 딛게 되는 심리를 본다면 방법이 틀려 보일 뿐 외로움, 공허감, 열등감, 자존감 회복을 위해 밖으로 분출해 보려는 행동의 결과 같아 보입니다^^ 올 2월 말인지, 3월 초인지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한 여대생이 빛 1억을 갚지 못해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증세들 중의 하나로 쇼핑 중독 때문이라고 합니다. 쇼핑중독자들이 주로 눈과 손에서 놓으려고 하지 않는 품목이 무엇이건, 결과가 혼자 힘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기에 사회문제는 확실히 맞는 것 같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의 쇼핑중독이라면 그것이 스트레스 해소의 분출 수단이라면 조금은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보니까요^^ 엄마들이 실제로 사용도 거의 해 보지 않는 그릇들을 사재기 하거나. 아가씨들이 공허한 시간을 보내고자 서점을 배회하며 책 사재기를 하거나, 운동기구를 꼭 사용할 것 구입해놓고선 한달을 가지 못하는 것 등 그런대로, 괜찮은 쇼핑중독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교고쿠도 2011-03-17 11:09   좋아요 0 | URL
결국 쇼핑에 몰두하는 현상 역시 심리적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저는 좀 별난 인간이라, 거의 수도승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면 사라져버릴 물건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마리오 사비누 지음, 임두빈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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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를 죽인 날은 그늘 한 점, 음영 하나 드리워지지 않은 어느 밝은 날이었다. 아니, 잿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라질의 작가 마리오 사비누의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원제 O Dia em que Matei Meu Pai)>의 가장 첫 문장이다. 순간 이것을 보면서 나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라는 지극히 건조한 프랑스어 문장으로 시작하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L'Etranger)>을 떠올렸다. 꽤 담담한 주인공의 서술에서, 보통의 살인 사건과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인 주인공이 심리상담가와 만나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설정으로, 이 책은 과감하고 치밀하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나간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3부는 주인공이 말하는 부분이고 2부는 주인공이 쓴 소설이다.  

화자는 심리상담가와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것은 순간적인 살의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망가뜨린 한 인간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대와 폭력을 경험했으며, 어머니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둘이 살게 되면서 그 학대는 더욱 심해졌고 심지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계속 지배해왔다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도 아버지가 돈을 많이 부쳐줄수록 자신이 증오스러운 아버지에게 생계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분노의 근원이 되어 왔다고, 자신은 아버지가 돈을 지불하던 수많은 창녀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그는 회상한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와 밀통하고 임신까지 시켰다고 말한다. 또한 주인공에게 마치 젤리와 같은 색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어떤 선생님의 말 역시 꽤 의미심장하다. '젤리 색'은 마치 주인공처럼, 꽤 초현실적인 색상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주인공의 미완성 소설 <미래>는 꽤나 기괴하다. 이 '소설 속의 소설'에는, 주인공의 분신으로 보이는 안토니무, 바베큐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그의 친구 에미스티키오, 그리고 파르파렐로 신부가 등장한다. 에미스티키오의 레스토랑은 '이성에 대한 본능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로서, 만찬의 참석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게 된다. 에미스티키오의 철학적 장광설은 지루하다기보다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하며, 전 부인인 베르나데치가 당신도 이반 카라마조프처럼 얼른 끝을 내라고 말하는 부분은 참 의미심장하다. 이방인에 이어, 이제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전자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드러냈다면, 후자는 결국 주인공이 저지를 행위를 나타낸다.  

또한 에미스티키오와 파르파렐로를 통해 나타난 선과 악의 이야기는, 이 책의 주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악의 화신인 그들을 두고, 아마도 그들은 '정신의 인간'들이며, 또 다른 길의 창시자들일지도 모른다고 안토니무는 생각한다. 악은 선과 평행선으로 달리는 또 하나의 길이며, 이 둘은 무한대에서 서로 만나게 되고 이 무한대는 바로 신을 뜻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그리고 그들이 의식을 벌이는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안토니무를 유인한 것은, 안토니무 그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그를 '정신의 인간'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설적 도구들은, 곧 이 소설을 쓴 주인공의 살해 동기가 신적인 행위, 곧 초월자로서의 행위임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참 흥미로운 것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주인공의 말은 종종 번복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심리상담가를 대하는 태도 역시 지극히 기만적이고 자기도취적이며, 심리상담가가 자신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봐주기를 원하는 나르시시즘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그를 악마성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그럼으로써 한 명의 아버지로 축복받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사랑에서 비롯된 행위였다는 주인공의 궤변 역시 인간의 심리 속에 자리잡은 나르시시즘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거의 반전과도 같은 부분이 등장하는데, 그가 아버지를 죽인 직후 미리 짜 놓은 시나리오대로 그가 고용한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눈에 염산을 뿌린다. 그리고 나서 그는 경찰에 전화를 해서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에 대한 오마쥬가 아닌가!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하는 행위는 보고 싶지 않은 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 또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를 의미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자살하는 것은 모순이죠. 그런 류의 모든 자살은 벌 받기를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는 약한 자들의 것이죠. 반면 나는 참회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그 죄를 대면하면서 지내고 있는 겁니다.(p.187~188)' 

처음에는 이 책이 자극적인 소재의 추리소설인 줄 알았지만, 읽어나갈수록 종교와 철학, 문학 등의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인간의 내면에 대해 탐구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까뮈의 <이방인>으로 시작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거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로 끝나는 느낌이랄까. 특히 2부의 안토니무와 에미스티키오의 대화, 그리고 베르나데치와의 대화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철학적인 장광설을 꽤나 좋아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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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안그림자 2011-03-1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 평론가 쪽으로 솜씨가 많이 엿보입니다^^ 해마다 신문사에서 공모해서 당선된 문학 평론작을 읽어 볼 때의 느김 같았습니다^^ 글도 잘 쓰시고, 책도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즐겨 찾기 서재로 등록시켜 놓고는 자주 들어 오 보지 못하지만, 시간이 생기는 대로 들어 오 볼려고 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을 보다가 무슨 내용인지 한 번 사서 읽어 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실천에 옮기지를 못했는데 책을 한권 사서 읽어 본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텔레비젼에서 두번인가 방영해 준 적이 있었던 외화 Cell의 장면들이 떠 올랐습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 버린 범죄자 주인공의 내면심리도 잘 들었고요, 결과를 더 정당화 시키는 법이 인정해 줄 수 없는 범죄자가 되어 버린 주인공이 열어 놓는 정신 이상 증세 같은 말들을 듣고 있으니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이런 범죄자한테 조금 적용되어지는 말인 것 같아... 세상이란?? 를 메달아 보게 만듭니다.이 소설의 작가도 어쩜,이런 사회의 모순적인 단면을 메아리라도 쳐 보고 싶어서 집필하지 않았나 추측을 조금 해 봅니다. 타인도 아닌 친부 아버지가 남도 아닌 자식한테 가혹행위를 오랜 시간동안 해 왔는지... 우리나라에서도 간간히, 부모님으로 부터 받아 왔던 가혹행위나 억눌린 분노의 한계로 부모님을 죽이는 살인적 행위들이 뉴스에나 신문에 업데이트 되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남의 일이라 살인자라고만 매도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허구라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살인의 길을 선택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한은 피해자의 몫이라고들 합니다^^ 일본인이 당한 어처구니 없는 지진의 피해적 현실을 보면 하늘만 올려다 보면서 느껴야만 할 고통과 눈물이 어떨할지... 생각하면서도 일본이 우리나라 조선에 가한 행동들을 되돌아 본다면... 피해자가 되어쟈야만 했던 조선의 백성들의 한과 슬픔은 이번 쓰나미가 몰고 온 바다 깊이보다 더 깊어 보일 뿐입니다^^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갇혀서 사행 집행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어느 여죄수의 말이 문득 떠 오릅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이제야 안식을 찾는 것 같다고....김각적이고 깊이있는 글 자주 들어와서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기후 이상이 봄을 들락 날락 변덕스럽게 만들고 있네요^^ 또다시 꽃샘추위라고 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교고쿠도 2011-03-16 09:44   좋아요 0 | URL
앗, 과찬이십니다. ^^

책을 꽤나 좋아합니다. 글 실력이 잘 늘지 않아서 항상 초조해하고는 있지만, 한때는 작가 지망생이었던 적도 있습니다.(그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글들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의안그림자 2011-03-17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그 꿈을 향해 달려 갈 수 있다는 현실이 그래도 사람을 살아 가게 만들어 주는 에너지가 되어 주는 것 같애요^^ 어제 저녘 7번 채널에서 방송해주었던 뉴스 추적 60분을 보았습니다. 일본인들이 안고 가야만 될 지진의 현실을 보니 한국에 태어났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고 때 아니기에 운명과 고통의 현실에 처한 일본인들을 보고 있으니까... 똑 같은 사람이란 심정에서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습니다^^ 좋든, 싫든, 의지를 벗어나서 선택받아야 하고, 선택 당해져야 되는 것이 운명인가 싶습니다^^ 오늘 하루 나한테는 즐거움과 행복의 시간이 되어 주고 있는 그 타이밍이 또 어느 누구한테는 불행과 생사의 갈림 길을 오고 가는 시간이 되어 주고 있을 테니까요^^ 꿈 이루길 화이팅 해 드립니다^^

교고쿠도 2011-03-17 11:1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일본에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고향같은...
어제 일본 이재민들에게 식수, 담요 등의 키트를 제공하는 모 구호단체에 작게나마 후원을 했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꼭 신춘문예 등으로 등단하지 않더라도,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리영희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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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의 저서로 이 땅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사상의 은사가 되었던 리영희 선생이 작년 12월 지병으로 타계했다. 그 후 며칠 되지 않아 그의 평전이 나온 것을 보고, 법정스님 타계 후 나왔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이라는 수준 이하의 책처럼 고인의 명성에 기대는 책이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하지만 김삼웅의 <리영희 평전>은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수백 편의 글들을 아우르며 자료를 준비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정리하고 평한 최초의 책으로, 결코 급조된 질낮은 책이 아니다. 사실 나는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리영희 선생의 삶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유명한 책들을 통해 약간씩 접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현대사와 잔혹한 군사독재 시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리영희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소학교와 경성공립학교를 졸업했다. 일제 치하에서 가난과 억압을 겪으며 암울한 시절을 보냈지만, 학교와 하숙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일본어로 번역된 서양의 명저들을 읽었다. 1945년 해방을 맞은 후, 어려운 생활에 남대문시장에서 담배장사 등을 하며 간신히 삶을 이어 나가다가 학교의 교재를 살 돈도 없어서 서점에서 영어 교재를 훔치고 이를 오랫동안 괴로워하기도 한다. 보통 자서전이나 평전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은 슬그머니 감추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빼지 않았다는 점에서 리영희 선생의 강직한 성품과 이 평전의 객관성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생활고 때문에 학비가 전액 면제되는 국립해양대학 항해과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한 그는 3개월도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터지고 군에 연락장교로 자원입대하게 된다.  

전투에 참여 중 동생 명희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에게 이 사건은 군대에서 겪은 갖가지 부패상과 함께 그의 마음가짐에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다. '국가제도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회의하고 반문하고, 허위와 가식으로 가려진 이면의 진실을 밝혀내어, 진실 이외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충성을 거부하려는 종교 같은 신념이 굳어가고 있었다고 한다.(p.115)' 이 고달픈 군인생활은 장장 7년이나 이어진다. 절대 부정이득을 취하지 않고 청렴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아버지의 회갑조차 치르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하고 얼마 안있어 예편하게 되었지만, 합동통신 입사시험에 합격하여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가 언론사에 입문할 무렵은, 이승만이 영구 집권을 위해 온갖 음모와 만행을 저지르고 있을 때였다. 언론계에 그가 발을 들여놓은 것은 가히 운명이라 할 만하다. 영어와 일본어, 불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외신부로 발령을 받은 리영희는 베트남의 민족해방 투쟁과 중국공산당의 혁명전쟁,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투쟁 등의 외신 기사들을 접하며  전 인류를 투쟁으로 이끌어내는 변혁의 시대정신에 열정적으로 공감한다. 기자 생활 때도 역시 심한 궁핍을 겪으면서도 결코 기자정신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제는 부양해야 할 가족들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번역 등의 부업을 항상 손에서 놓지 못했다. 정식으로 기자수업을 받은 적이 없지만 치열한 노력으로 극복해낸 그는, 이승만 정권의 포악상을 지켜보면서 국내 언론을 통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외신을 통해 하기 위하여 워싱턴포스트에 익명의 통신원으로서 기고하기도 한다.  

4.19 혁명이 터지자 리영희는 펜을 놓고 서슴없이 시위대열에 몸을 던진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또는 시민으로서 4.19 혁명의 중심에 서서 '진리에 복무' 하였다. 결국 사태는 민중의 승리로 기울어 이승만이 하야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비겁한 지식인들과 기회주의적인 언론인들을 향한 추상같은 질타를 잊지 않는다. 이는 마치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는 '비판언론'이라는 미명으로 시퍼렇게 날을 세우다가 이명박 정권 들어 다시 용비어천가 합창단으로 변신한 수구보수언론의 행태를 내다본 것같이 느껴진다. 그 후 5.16 쿠데타가 발발하자 의기 넘치는 언론인 리영희는 군부독재와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언론계 역시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였지만 그는 진실을 밝히는 일이 언론의 본분이라고 굳게 믿었다. 살벌한 박정희 치하에서도 리영희는 계속하여 큰 특종들을 터뜨린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박정희 정권에 유착되지 않은 조선일보 외신부로 옮긴 그는 곧 필화사건에 휘말린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를 기사로 썼다는 이유로 반공법을 적용하여 구속한 것이다. 리영희는 박정희 때 두 번, 전두환, 노태우 때 각 한번씩, 군사독재 30년 동안 네 차례의 옥고를 치렀는데, 그때가 그의 첫번째 시련이었다.  

그 뒤로 베트남 파병부대 시찰 거부를 빌미삼아 조선일보에서 퇴사를 종용당하고 리영희는 외판원으로 생계를 꾸리게 된다. 그는 한국인에게 한번도 피해를 끼친 적 없는 베트남인들을 죽이기 위해 왜 한국에서 수십만의 군대를 파병해야 하는지, 그 배경에 대해 묻는다. 미국이 베트남 폭격의 배경으로 삼은 통킹만사건 역시 미국 전쟁세력이 날조한 것임이 폭로되었고, 결국 베트남에서는 외세를 등에 업은 정권세력이 자주적인 민족주의세력에 패배하게 된다. 나 역시 왜 한국이 이해관계도 없는 베트남에 수많은 병력을 파병해서 살상행위를 해야 했는지, 왜 미국이 멋대로 벌인 전쟁에 다른 나라 국민들의 피를 흘려야 했는지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다. 6개월간의 외판원 생활은 그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텔리가 노동자가 되는 것은 혁명가적 신념과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230)' 이 부분을 읽으며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안락한 길을 버린 채 노동자의 편에 섰던 시몬느 베이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는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복귀하여, 논객으로서 글을 쓰고 대사회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리영희의 삶은 잠시도 평온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논문들을 발표하고 탄탄한 논리와 예리한 투시력으로 국제정세를 분석하여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국내정세는 거꾸로 회전하고 있었다. 박정희의 3선 이후,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여한 리영희는 동아일보 주필 천관우와 함께 언론계에서 또 추방되고 만다. 그는 일련의 논문들을 1974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펴냈는데, 그 유명한 <전환시대의 논리>로 그의 첫 번째 평론집이다. 이 책은 불온서적으로 지목되어 유통과 읽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노동자와 학생들은 몰래 구해다 읽곤 했다. 그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아 현대사를 연구하게 된 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폭압과 야만이 판치고 '유신귀신'과 '우상'이 우글거리는 '동굴' 앞에 서게 되었다. 그에게는 한 자루의 펜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p.257)' 리영희는 1972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로 강단에 서게 된다. 그는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평론활동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교수가 된 후에도 대학에서 강의만 하고 있지 않고, 집필과 사회참여를 계속한다. 그는 지식인이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린 채 사회로부터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거은 올바른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믿었다. 

독재체제가 강고해질수록 리영희의 저항도 따라서 더욱 치열해졌다. 앰네스티인터네셔널(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하고, 연달아 선포된 긴급조치로 유신독재의 광기가 사납게 몰아칠 때 각계의 인사 71명이 결성한 국민회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한양대에서 파면되었다. 하지만 많은 연구와 평론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두 번째 평론집 <우상과 이성>을 펴낸다. <우상과 이성>은 <전환시대의 논리>와 더불어 수많은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에게 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 신념체계와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의식화의 교과서가 되어 우상 타파의 강고한 전선을 형성시켰다. 그로 인해 결국 리영희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고,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당한다. 이때 신문을 맡은 D검사와의 대화는 아주 속이 시원할 정도다. 서울법대 출신의 검사를 통쾌하게 이겨 버리는 모습에 그의 내공(!)이 느껴진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일본 지식인들이 '문제를 삼은 글의 내용을 학문적 검토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것'을 요청할 만큼, 박정희 정권은 '비학문적'인 이유로 지식인들을 투옥한 것이다. 그는 겨울이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감방에서 2년을 지낸다. 수감 중에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들은 그는, 감방 안에서 주어진 식사로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만기 출소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우상' 박정희의 사망소식을 듣게 된다. 

출소한 후 리영희는 4년여 만에 다시 한양대학교로 복직하여 강단에 서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평소 거의 교제가 없었던 김대중과 엮이는 날조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다시 구속된다. 신군부가 5.17 쿠데타를 자행하면서 김대중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고, 그는 일종의 '제물'로서 엮여 들어간 것이다. 강제로 한양대 교수 사직서를 쓰게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광주폭동 배후조종 주모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갇혀 있을 무렵 광주에서는 '20세기의 마지막 비극'인, 광주항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의 잔인성을 목격한 시민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침내 궐기한 것이다. 털어도 나오는 것이 없으니 두 달만에 그는 석방되었지만, 한양대 교수직에서 두번째로 해직되고 저술활동과 번역 등으로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일제 말기의 친일군상과 일본 교과서 왜곡의 본질에 대해서도 쓰고, 한 시대를 지탱하고 지켜낸 양심적인 사람들과도 교감하며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혹독한 군부독재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자서전 집필 작업 중 '북괴 찬양선동죄'라는 황당무계한 죄목으로 또 끌려가게 되지만, 아무리 검토를 해봐도 기소할 빌미가 없으니 2개월 정도 수사 끝에 기소보류로 석방했다.  

1984년 우여곡절 끝에 한양대에 복직한 리영희는, 크게 달라진 대학 풍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많은 글을 쓰고 책을 펴낸다. 일본의 문화침투를 경계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과 베트남전에서의 미국의 부당한 역할을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 지식인들에게 초청을 받아 도쿄의 아시아문제연구소에서 공동연구와 강의를 하고, 독일의 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아내와 함께 독일을 방문하기도 한다. 다시 타오르는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거센 불길이 타오르고, 수많은 학생, 노동자들이 투옥, 고문 등으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는 리영희의 글을 읽고 '의식화'된 청년학도들의 힘이 컸다. 6월 항쟁으로 인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지만, 군부세력과 수구언론, 재벌기업, 관료층의 협력으로 전두환과 더불어 군부쿠데타를 주도했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국민의 실망 속에서 대안언론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고 그때 태어난 신문이 한겨레신문이다. 리영희는 한겨레의 논설고문과 이사직을 맡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쓴 연구논문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로 그는 북한의 남침위기론이라는, 또 하나의 우상을 깨게 된다. 하지만 방북취재단 사건을 말미암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안기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 수많은 단체가 항의 성명을 내고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곳곳에서 전개되고 결국 6개월만에 석방되었지만 3대 정권에서 연이어 고초를 겪는 일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정의와 진리를 추구했던 리영희와 그의 가족은 몇십 년 동안 결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 뒤로 독재체제가 끝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그는 수많은 연구와 집필을 계속하고, 기회주의적 지식인과 언론인을 통렬히 비판한다. 결혼 40년 만인 1994년이 되어서야 온수가 나오는 집에서 살 정도로, 그는 극히 청빈한 삶을 살았다. 1997년 내 시대는 끝났다며 '퇴장선언'을 했지만, 그는 펜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수구세력의 전쟁 부추기기, 국가 부도의 경제위기 등에 시대의 이성이 절필을 선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숱한 옥고로 인하여 나빠진 건강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성은 녹슬지 않았다. 평론집 <반세기의 신화>를 펴내고 많은 집필활동을 하던 중 그는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지고야 만다. 오른손이 마비되었지만 불편한 몸으로 계속 글을 썼고, 정성스러운 아내의 간호로 건강이 점점 호전되었다. 2005년에는 대담을 통한 자서전인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랑>을 펴냈고, 많은 매체와 기관으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령의 리영희 부부에게는 앙코르와트에 가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건강 악화로 인해 그 꿈을 접게 되었고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이 책의 저자가 2010년 8월 마지막으로 리영희와 인터뷰할 때도 꼭 쾌차하셔서 앙코르와트에 다녀오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결국 가보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뜬 것이 가슴아플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리영희의 평생 동안 지속된 우상과의 싸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부독재 시절 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팔순이 넘어서도 수구세력이 판을 치고 미국의 노예나 다름없어진 이명박 정권을 규탄했던 그는 한시도 정의와 진리를 잊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많은 우상들을 격파하는 전사의 역할을 평생 동안 계속한 것이다. 기회주의자와 변절자들이 득실거리는 사회에서도 끝까지 청렴한 자세로 살아온 것 역시 존경해 마지않을 점이며, 그의 저서들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결코 시효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고 있고 이어져야 할 정신적, 학문적 자산인 것이다. 아마 지금의 대학생들은 리영희 선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책들이,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마침내 행동하게 하기를 나는 강하게 바라고 있다. 그는 타계하였지만, 그의 이성은 영원히 살 것이다. Veritas liberabit vos(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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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쟁교본> : 역사 카테고리에도 해당되는 책이라 용기를 갖고 추천해 봅니다. 저는 대학 시절, 희곡론 시간에 브레히트를 처음 접했습니다. <사천의 선인>과 같은 작품들을 보며, 부조리에 저항하는 극작가였던 브레히트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고, 그래서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브레히트 희곡선집도 구입했습니다. 이 책은 희곡에 대한 책은 아니고, 사진과 시를 통해 '진실을 보는 법'을 배우기를 희망하는 브레히트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 역자도 배수아 작가님이라, 더 읽고 싶어지네요.

 

  

 우석훈 <디버블링> : <88만원 세대>에서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외쳤던, 우석훈의 책입니다. 토건 경제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이러한 토건경제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끝없는 빈곤과의 싸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소수자, 빈곤문제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반드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 

 

 

 

 

 토니 주트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거의 악마의 발명품이라 할만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온갖 불평등과 빈부 격차에 격렬한 분노와 슬픔을 터뜨리는 저자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먼저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루게릭병으로 인해 몸이 마비되어가는 중에 저자는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이 지독한 세상에 대한 그의 마지막 일갈입니다.  

 

 

  

마르셀 로젠바흐, 홀거 슈타르크 <위키리크스> : 사실 동명의 책이 또 있습니다. 그 책은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가 쓴 책입니다. 위키리스크와 같은 폭로는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또 비밀리에 진행시켜 왔는지... 물론 음모론들 중에서는 황당무계한 것도 있지만, 근거가 있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들도 있습니다. 은색 머리카락의,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어샌지...그는 어떤 계기로 위키리스크를 만든 것일까요. 이 책을 읽고 위키리스크에 대해 잘 알고 싶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 <전중과 전후 사이> : 2차 세계대전 중과 그 후, 일본은 참으로 격동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물론 일본뿐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그랬지만...그런 의미에서 <쇼와사>라는 책과 함께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2월 출간도서 중에 하워드 진 <라과디아>, 에이프릴 레인 벤슨 <Stopping 쇼핑>, 마크 베코프 <동물 권리선언>,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이 책들은 제가 이미 갖고 있어서 절대 뽑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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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3-1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이지만 이번 선정도서는 <위키리크스>가 많이 선정될거 같은 예감이 드네요.
마지막 선정이니만큼 실물과 그 내용을 먼저 자세히 보고난 뒤 선정해야겠습니다. ^^;;

교고쿠도 2011-03-11 19:17   좋아요 0 | URL
호오, 근데 지금까지 올라온 다른분들의 추천도서들 중 위키리스크는 없네요 ㅜ.ㅜ

9기때도 지원하고 싶은데, 인문사회에 지원해야 할지 소설분야에 지원해야 할지 고민중입니다. 수학책같은게 앞으로도 뽑힌다면 그냥 문학으로 갈래요, 흑.(9기에도 선정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수학은 저에게 있어서 일종의 고문입니다 ㅋㅋ

굿바이 2011-03-1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쟁교본>이 출간되었군요. 저도 저자의 희곡만 읽어봤었는데, 어떤 내용으로 풀었을지 궁금합니다. 좋은 책 소개 잘 읽었습니다.

교고쿠도 2011-03-15 10:52   좋아요 0 | URL
브레히트와 하이너 뮐러를 접할 수 있었던, 희곡론 시간이 제게 있어서는 일종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저는 브레히트도 뮐러도 모른채 살아갔을지도 몰라요. ㅋ<전쟁교본> 매우 기대되지만, 서평단 도서로 뽑힐 가능성은 미미한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