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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물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참 조심스러워진다.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쓰려고 하다가는 자칫 선을 넘어 스포일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추리물이나 스릴러물, 특히 반전이 중요한 요소인 작품들은 아직 읽지 않은 입장에서 스포일을 당해 버리면 김이 새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껏 글을 써놓고 스포일러가 될 만한 문장을 삭제하거나, 심지어는 문단 하나를 통째로 덜어버리기도 한다. 어디까지 밝혀도 되고, 어디를 감춰야 되는 건지, 고민을 많이 한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알렉스 Alex>가 딱 그런 책이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ître)는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55세의 나이로 뒤늦게 문단에 등단한 후 연이어 발표한 작품들이 전 유럽 추리문학상을 휩쓴, 사회파 스릴러의 거장이다. 이 책 <알렉스>는 그의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 중 아직 번역출간되지 않은 <세밀한 작업>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스릴러의 전통을 단숨에 뒤집는 대담한 발상과 연이은 반전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한 아름다운 여성이 파리 한복판에서 괴한에게 납치된 후 알몸으로 허공 위의 새장에 갇히게 된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녀를 납치한 사람은 누구이며, 납치해서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고 새장에 가둔 목적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초에 불과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는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은 참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저명한 화가였던 모친의 과도한 흡연으로 인해 그의 키는 성인이 된 뒤에도 고작 145cm에 불과하다. 또한 몇 년 전 아내 이렌이 납치되어 죽은 트라우마로 일선에서 물러서 있던 그는, 이 납치사건을 수사하면서 과거의 일들이 겹쳐 지나가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한편 사건은 경찰과 대치하던 납치범이 자살하고 감금장소에서 생사를 오가던 그녀가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소설의 주목할만한 특징은, 두 주인공의 시점이 마치 영화의 교차편집처럼 번갈아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비극적인 과거와 강박관념,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슬픈 소망, 자기 파괴의 충동 등 두 주인공 각자의 내면적 상흔을 낱낱이 파헤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서사에 깊은 감정이입을 하게 한다. '그녀가 소망하는 것, 원하는 것은 자신의 피를 모조리 비우고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중략) 그녀는 자기 죽음을 본다.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과도 같다.'(p.109 중 발췌)

 

초반부에서는 사건의 희생자로 등장했던 그녀는, 곧이어 모습을 바꾼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던 형사반장 카미유는 그녀가 수많은 이름과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건의 키를 쥔 그녀는 감금되었던 장소에서 사라져 버린 후 종적을 알 수 없다. 카미유는 자살한 납치범 트라리외가 그녀와 연관이 있는 파스칼의 아버지이며, 파스칼은 한참 전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수사에 착수하여 그녀가 한때 살았던 집 정원에 매장되어 있던, 아황산으로 머리통의 절반이 녹아 버린 그의 시신을 발견한다. 한편 그녀가 지나가는 곳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연쇄적인 살인사건들이 일어나는데, 농축 아황산을 입 안에 부어 내장이 녹아내리는 참으로 잔혹한 살해 수법 외에 사건의 피해자들 간의 공통점이나 접점 등은 없어 보인다.

 

10년 전의 두 건의 고농축 아황산 살인사건과 그녀와의 연관성을 간파한 카미유는, 연이어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을 수사하며 그녀를 추격한다. 한편 그녀는 한 호텔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카미유는 신분증을 보고 나서야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알렉스 프레보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실은 이 책의 3부, 곧 알렉스가 죽은 후의 전개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알렉스가 과거에 어떤 일들을 겪은 것인지, 어떠한 계기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녀의 죽음에 얽힌 사정은 무엇인지, 그 외에도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이 등장하는 부분으로, 사건들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참혹한 진실과 엄청난 반전(그리고 약간의 속시원함)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앞부분에서 아주 간단히 언급되고 지나갔던 것들이 이 소설의 결말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일종의 복선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언급하면 사건의 전말과 충격적인 반전으로 인한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서, 굳이 여기에 적고 싶지는 않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의 내용을 언급하려니, 참 많은 부분이 생략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미덕은 진실이 아니라 바로 정의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 않은가요?"(p.528 중 발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진 문장이다. 이것이야말로,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으며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최근 몇 년간 많은 추리물들이 번역출간 되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일본 추리물이 전성기였다가 요즘 들어서는 유럽 쪽의 작품들이 제법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일본 추리물을 참 좋아하지만, 영미권이나 유럽쪽의 추리물은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언어로 설명하기가 힘들지만, 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혹은 문장이 머릿속에 안착이 잘 안되는 느낌이라 하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번역본인 이상, 일본어를 국어로 번역했을 때의 문장과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을 국어로 번역했을 때의 문장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하지만 이 책 <알렉스>는 그러한 느낌을 거의 받지 않고, 5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는 작가의 명쾌한 문장과 역자의 탁월한 번역 덕분이리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작(秀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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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고쿠도입니다. 이번 11기는 주로 영미소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요. 저의 정서나 취향이 일본문학, 혹은 한국문학에 더 가까워서인지 영미소설은 뭐랄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익숙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꿋꿋이! 일본 추리물과 한국 순문학들을 추천해 봅니다. ^^

 

편혜영 <서쪽 숲에 갔다> : 제가 좋아하는 순문학 작가들 중 한 명인 편혜영의 신작 장편소설입니다.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단편집인 <아오이가든>을 읽고 저는 그녀의 팬이 되었지요. ^^그 뒤로 나온 <사육장 쪽으로>, <재와 빨강>도 재미있었지만, 역시 제게는 <아오이가든>의 강렬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 중 <서쪽 숲>이라는 몽환적인, 혹은 기괴한 분위기의 단편이 있었는데, <서쪽 숲에 갔다>는 제목만으로는 아무래도 그 단편의 확장판(?)인듯 합니다. 사라져버린 형제를 찾으러 서쪽 숲으로 간 주인공은 과연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요. 편혜영, 그 이름만으로도 저는 추천하는 바입니다.

 

 

 

미나토 가나에 < N을 위하여>: 지난달 꽤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아쉽게 좌절된 <왕복서간>, 그리고 6월에도 또 신작이 나왔네요.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왕복서간>은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들 중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결말의 단편들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는데, 이 < N을 위하여>는 어떨까요. '궁극의 사랑은 죄를 공유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가슴에 확 와닿습니다.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러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입니다.

 

 

 

 

 

미치오 슈스케 <물의 관> : <달과 게>, <구체의 뱀>등으로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꽤 깊은 내공을 보여주는 미치오 슈스케의 신작입니다. 신작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고 싶은 작가들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랄까요. 이번은 제목에 동물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걸로 봐서, 12간지 시리즈는 아닌 것 같고, 표지의 수색(水色) 배경과 하얀 옷의 여인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매력적입니다.

 

 

 

 

 

 

렌조 미키히코 <조화의 꿀> : <회귀천 정사>, <저녁싸리 정사>를 통해 알게 된 렌조 미키히코의 장편입니다. <백광>도 곧 읽으려고 생각중인데, <조화의 꿀> 역시 너무 읽고 싶네요. 전대미문의 유괴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누쿠이 도쿠로의 <유괴증후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잘 잡아내는 작가 같아서, 저로써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누쿠이 도쿠로 <후회와 진실의 빛> : 사회파 미스터리로 유명한 누쿠이 도쿠로의 신작입니다. 지난 기수에 그의 또다른 작품인 <난반사>가 꽤 많은 득표를 했지만 아쉽게도 선정되지 않았는데, 저는 그 뒤로 <난반사>를 읽고 그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수많은 우연 혹은 사소한 일들이 일제히 짜맞춰져서 비극적인 사건 하나를 이끌어내는 것이...이번 신작 <후회와 진실의 빛>역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그로테스크함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p.s

사실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잠복>을 추천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7월 출간이네요. 다음달의 추천페이퍼에 꼭 넣을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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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5월 도서도 다 안읽었는데(2권짜리 <개의 힘>의 압박!), 벌써 6월의 추천페이퍼를 작성하고 있는 교고쿠도입니다. ^^5월에 출간된 소설분야 도서들을 훑어봤는데, 저의 관심분야들 중 한국 순문학은 마땅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고 의외로 일본 추리물이 흥해서 좋았습니다.

 

츠네카와 코타로 <초제 草祭> :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츠네카와 코타로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듯 합니다. 몇 년 전 <야시>, <가을의 감옥>, <천둥의 계절>등을 읽으며 특유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푹 빠졌는데,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나오지 않다가 지난달 출간된 <초제>를 보고 저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단편집이라니, 환상적인 분위기의 이야기 여러 편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벌써부터 설레이네요. '비오쿠'라는 가상의 땅을 배경으로 한 신비로운 이야기...

 

 

 

 

 

미나토 가나에 <왕복서간> : <고백>, <속죄>, <야행관람차> 등을 모두 재미나게 읽었기 때문에(특히 <고백>은 참 소름돋더군요. 독백을 사용한 서술방법이 이렇게 무서운줄 몰랐어요. 일종의 광기 같은게 더 잘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번의 신작 <왕복서간>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이번에는 서간문 형태의 서술방법이 사용되는 것 같은데, 역시 그 특유의 무서움이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 굉장히 기대되는 책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의 검은 안개> : 미야베 미유키가 스스로 그의 장녀를 자처할 정도로, 일본 추리문학계의 전설적인 존재인 마스모토 세이초의 작품입니다. 특이하게 이 작품은 '미스테리 논픽션'인데, 그 동안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중 해결되지 않은, 일종의 미제사건들에 대해 조사하고 쓴 일종의 르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염려되는 것은 상,하권으로 나눠진 책이라 선정될 가능성이 낮을 것 같네요. 6월에 출간될 세이초의 단편집 <잠복> 역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

 

 

 

 

 

 

모리스 르블랑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Le Dernier Amour d'Arsene Lupin)> :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르블랑의 마지막 뤼팽 소설입니다. 예전에 까치글방에서 나온 20권짜리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그것도 프랑스어 번역의 일인자 성귀수 선생님 번역으로!) 갖고 있었는데, 어느새인가 공간의 부족 등으로 인해 처분해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혜성처럼 나타난 이 마지막 작품 때문에, 다시 20권짜리 전집을 한두권씩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저는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중에 어떤 쪽도 고르기 힘들 정도로, 그 둘을 다 좋아합니다. 지극히 영국적인 캐릭터 홈즈, 그리고 프랑스적인 캐릭터 뤼팽!

 

 

메도루마 슌 <물방울> : 지난달의 추천페이퍼에도 올렸으나, 5월에 출간된 책이라 눈물을 머금고 다음달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던, 메도루마 슌의 <물방울>입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일본 본토 출신이 아닌, 오키나와 출신의 작가입니다. 이 작품에도, 그러한 오키나와 특유의 정서가 많이 묻어 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과 별개의 나라인 '류쿠'였는데,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어 버리고 지금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역시 별개의 나라였는데 병합되어 버렸지요...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종의 소수자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항상 마이너리티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꼭 읽고 싶습니다. ^^

 

 

 

마감일 전까지, 어쩌면 추천 리스트에 약간의 변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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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고쿠도입니다. 11기 소설분야에서 활동했었는데(그리고 그 전 기수 인문사회분야에서도...^^)항상 경쟁률 높은 소설분야에, 또 뽑힐줄은 전혀 기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12기로 선정된 기쁨이 더 크네요. 소설 중에서도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분야는 한국 순문학, 그리고 일본 추리물입니다.

 

신간 추천 페이퍼를 작성하려고 4월 출간된 소설들을 열심히 훑어봤는데(신간평가단의 규칙상 전달에 출간된 책을 추천하게 되어 있음), 아쉽게도 왜 5월에 출간된, 혹은 출간 예정인 책들에 더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은 것일까요? 순문학, 장르문학 통틀어 4월에는 그다지 많은 책들이 출간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추천페이퍼를 작성하는데 이번에는 애로점이 좀 있었습니다. ^^

 

조이스 캐롤 오츠 <좀비> : 호러 분야로 분류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호러물과 추리물을 아주 좋아해서(특히 일본 작가들을 좋아하지만, 영미권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출간된 러브크래프트 전집 3권에 환호하고야 말았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좀비>이지만 실제로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그러한 좀비가 등장한다기보다는, 사이코패스의 범행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강제로 뇌수술을 시행하여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노예로 만드는, 아주 지능적인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입니다. (저는 왠지 그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생각나네요. 천재 사이코패스!)

 

 

 

온다 리쿠 <달의 뒷면> : 교고쿠 나츠히코 등과 더불어, 제가 꽤 좋아하는 일본 작가 온다 리쿠의 신작입니다. 항상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온다 리쿠 작품들의 특징인데, 이 책도 예외는 아닐 것 같습니다. SF와 판타지, 호러의 크로스오버라고 하니 더욱 기대되네요. 제목인 <달의 뒷면>은,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익숙한 것의 이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항상 보는 달의 모습은, 특정한 부분뿐이니까요...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 헤밍웨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거장입니다. (여담이지만 프랑스인들은 '헤밍웨이'라는 단어를, 참 특이하게 발음하더라구요. 청해 스크립트를 보고서야 그 단어가 '헤밍웨이'였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노인과 바다>라던지,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정말 걸작들이 많지요. 위의 작품들이 모두 장편인데 반해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킬리만자로의 눈>은 단편집입니다. 사실 단편을 꽤나 좋아하는 저로써는, 끌리지 않을 수 없네요. ^^

 

 

 

 

김선영 <시간을 파는 상점> : 제 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나온 작품이라 하면 그다지 끌리지 않았는데(아무래도 제가 더이상 풋풋한 나이는 아니다 보니...으핫) 언젠가 우연히, 어떤 북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위저드 베이커리>를 보고, 청소년 문학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뒤로 <완득이>도 읽고, <아가미>도 읽고...여튼, 이 <시간을 파는 상점>은 약간의 환상성이 가미된, 그리고 마음을 따뜻히 위로해주는 내용입니다. 저도 때로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거나 시간을 사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왕이면 한 15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후후.

 

 

 

메도루마 슌 <물방울> : 문학동네의 세계문학 전집 중에는, 참 신선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5월 출간이라 참 가슴아프지만(다음 달에도 또 추천때릴겁니다, 으핫) 이 책을 보는 순간 추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 출신입니다. 이 작품에도, 그러한 오키나와 특유의 정서가 많이 묻어 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니까요...원래는 일본과 별개의 나라인 '류쿠'였는데, 년도는 기억 안나지만 언젠가 일본에 병합되어 버린 것입니다.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역시 마찬가지구요...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소수자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항상 마이너리티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당연히 읽을 생각입니다. ^^

 

이번달의 신간추천 페이퍼를 작성하며 아쉬웠던 것은, 한국 순문학쪽에 이렇다할 작품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박민규, 배수아, 천운영, 편혜영, 김숨 등의 신작이 보인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추천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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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2013-01-1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네요. 저희 아들은 상위 5﹪가 되는 수학만화책을 사줬더니 잘 읽더라구요 그래서 또 다른 책을 사줄려고 했는데 이게 좋겠네요!
 
악과 가면의 룰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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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는 밝고 경쾌한 내용보다 어둡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더 자주 읽는 듯 하다. 묘하게도 밝고 경쾌한 내용의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과 내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어두움이 대비가 되면서 주인공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자신을 혐오하게 되지만, 어둡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읽으면 이 지독한 상황들이 실제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래도 내 삶이 이보다는 낫지 않은가 정도의 생각을 하며, 일종의 안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악과 가면의 룰(원제 悪と仮面のルール)> 역시, 표지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느낌부터가 어둡고 깊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일종의 심연(Abyss)을 생각하게 한다.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노마문예상, 아쿠타가와상, 오에 겐자부로상 등 일본 문단에서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 젊은 작가로, <흙 속의 아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쓰리> 등의 작품을 썼다. 

한국 문단도 슬슬 그런 경향이 보이고 있지만, 일본 문단은 이미 한참 전부터 순문학과 대중문학(혹은 장르문학)의 경계가 사라져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 작가가 순문학적인 소설과 장르문학적인 소설을 모두 쓰기도 하고, 한 작품 안에 순문학적 특성과 장르문학적 특성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보기도 한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얼마 전 출간된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원제 月と蟹)가 후자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악과 가면의 룰>역시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요소들이 얽혀 있고, 이 책에서 꽤 큰 전환점이 되었던 주인공의 친부 살해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혹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비롯된 모티브로 볼 수 있지만, 군수산업이나 컬트 교단 등의 등장과 정체불명의 테러 집단, 주인공이 어떤 사건의 범인이라 의심하며 집요하게 쫓는 형사 등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꽤 많이 도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이것은 순문학이다, 이것은 장르문학이다 하고 칼로 자르듯이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두 세계를 모아 작품 안에 녹여낸 작가의 역량이 훌륭하게 생각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군수산업으로 재벌이 된 가문에서 태어난 주인공 '구키 후미히로'는 여러 가지로 일반 가정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그가 11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인 '사(邪)'의 계보를 잇기 위해 계획적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그에게 14살이 되면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고, 그 도구로 아동보호시설의 여자아이 한 명을 선택해 양녀로 들이고 '구키 가오리'라는 이름을 준다. 아마 그것은 '사(邪)'가 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13살이 된 후미히로는 점점 가오리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생각하게 되고, 14살이 되기 몇 달 전, 아버지가 가오리를 겁탈하려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신이 아버지가 미리 예비해 둔 지옥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절망한다. 이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사랑하는 가오리를 지키기 위해 그 지독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 아버지를 죽인다.  

그렇게 아버지를 죽인 후, 스스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후미히로는 몇 년 후,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기 위해 타인의 얼굴로 성형하고 그의 신분을 얻어 인생의 방관자처럼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면서 사설탐정을 고용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가오리의 조사를 의뢰한다. 한편 그가 얼굴과 신분을 얻어 변신한 '신타니 고이치'라는 사람이 어떤 교통사고 사망사건에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형사가 있고, 설상가상으로 구키 가의 방계 자손 중 역시 '사(邪)'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종의 테러집단을 만들면서 후미히로에게도 합류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더 이상 그런 음습하고 어두운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얼굴과 신분까지 바꿨는데, 삶은 전혀 평온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앞으로는 더욱 가혹해져 갈 뿐이다. 한편 탐정의 조사 결과 가오리에게 마치 과거의 반복인 듯 거대한 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미히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가오리는 후미히코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는 가오리의 주변에는, 사기꾼 같은 남자들만 득실거리고 있다. 구키 가의 양녀였기 때문에 상당한 금액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그것을 전혀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어디서 새어 나왔는지도 모르는 소문 때문이다. 이런 사기꾼 같은 자들은 마약 같은 것을 사용해서 중독자가 되게 하고 그 뒤로 계속해서 돈을 뜯어낸다는 것을 알고, 후미히코는 가오리에게 자꾸 접근하려고 하는 사기꾼 야지마를, 각성제에 청산가리를 섞어서 살해한다. 게다가,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의 배후에 있는, 구키 가의 방계 자손들의 테러조직 JL에서는 활동자금을 변통하기 위해 계속 그의 돈을 요구한다. 당신들 대체 뭐냐는 후미히로의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다양한 가치를 뒤흔드는 거야. 권위나 상하 관계, 공통 인식 따위를. 사회구조 같은 건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혁명이니 뭐니, 촌스럽지. 우리의 목표는 인간의 집단의식이야. 그 속에 차례차례 경박한 농담을 던져줄 거야."(p.210 중 발췌)  

한편 탐정은 가오리를 조사하던 사람의 정체를 밝혀낸다. 군수 산업의 거물이며 구키 쇼조의 둘째 아들인 구키 미키히코, 즉 후미히로의 둘째 형이었다. 구키 가 주변에 맴도는 이 어두운 분위기...직계, 방계, 심지어는 혈연이 섞여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가계에 내려져오는 '사(邪)', 곧 세계에 어둠과 혼란, 파괴를 몰고 올 운명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구키 미키히코가 보낸 차를 타고 간 빌딩에서, 그는 둘째 형을 만나고 구키 가의 배경, 사(邪)의 유래, 왜 그가 가오리의 뒷조사를 하는지 등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은 구키 가오리를 마약중독자가 되게 하여 망가뜨리고 소유하고 싶다고, 그렇지 않으려면 네 자신이 가오리를 마약중독자로 만들어서 데려오라고 미키히코는 말한다. 가오리에게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그 여자를 손상시키고 싶지? 그 여자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너는 구키 가 사람이야. 나는 알아. (중략) 너의 무의식은 최대의 악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어. 그건 네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야. 바로 가오리지. (중략) 모든 건 그 한 순간을 위한 것이지. 욕망과 비통과 절망이 한꺼번에 겹쳐진, 평범한 인생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그 섬광 같은 암흑의 폭발을, 너는 온몸을 던져 애타게 기다리는 거야. 그때 너는 압도적인 쾌락으로 부르르 떨겠지. 이 세계와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모멸한 환희와 함께."(p.247~8 중 발췌) 이 책에서 가장 압도적인 악과 어둠이 응축(凝縮)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후미히로는 가오리가 일하는 클럽에 손님으로 가장하고 가서, 가오리를 만나지만 그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가오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테러집단 JL에서 며칠간 맡아달라고 한 시한폭탄장치를 들고, 후미히로는 다시 미키히로를 만나러 가고, 어서 그 여자를 손상시키고 이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엉망진창으로 더럽혀서, 내 영역으로 건너오라고 미키히로는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 영역'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邪)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서, 나 같은 거대한 악을 소멸시킨 것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흥분에 휩싸인 미키히로는 그에게 나이프를 쥐어 준다. 후미히로는 거절하고,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녹음한 것과 미키히로가 지금까지 저지른 살인, 부정한 거래, 밀담 등에 대한 증거들을 꺼낸다. 그리고 나서 JL에서 맡아달라고 했던 폭탄의 스위치를 켜고, 당신이 살고 싶다면 이 스위치의 버튼을 삼십 분 안에 꺼버리면 된다고 말한다. 목숨을 아까워하는 감각을 느끼라고,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난다. 

구키 미키히로가 죽음 쪽을 선택했고, JL의 도주 중인 멤버도 사체로 발견되었고, 이제 더 이상 가오리에게 위험할 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인 가오리를 그의 가혹한 운명 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기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슬프고 괴롭지만 아주 먼 데서 그녀의 행복만을 바라고 살기로 한 것이다. 어딘가로 멀리 떠날 것을 계획한 후미히로는 예전에 종종 만나서 친밀해진 여자친구 교코와 함께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은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좋을까...하며 그의 지극히 어둡고 또 가혹했던 지난 날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상승하며 보이는 창 밑의 도시들을 바라보며, 저곳에도 무수한 인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간 후 강렬한 햇빛과 마주치게 된 것은 작중 화자 후미히로의 '재생'을 암시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가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의 간극에 무한히 매달려 있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내려진 벌이라고 한다면 이는 충분히 무서운 책이라는, 아사히(朝日) 신문의 서평이 굉장히 와닿는다.  

결국 후미히로 그는, 머나먼 곳에서 그가 바라던 행복과 평온함을 찾을 수 있을까. 구키 가, '사(邪)' 등과 완전하게 모든 인연을 끊고 관련된 사실을 모두 잊어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평생을 그러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을 끌어안은 채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지는 암시적 표현처럼, 나는 그가 그렇게도 원했을 행복과 사랑, 평온함을 얻게 되기를, 시간이 그를 치유해 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또는 얼마 전에 읽었던 마리오 사비누의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와도 어쩌면 능히 비견할만한 압도적인 서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등장 인물들의 대화 부분에서 그런 것들이 많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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