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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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특별히 남들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누구의 삶이든 참 힘들고 고달픈 것 투성이로 느껴질 때가 많다.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발버둥치며 고단하고 괴로운 일상을 감내하고 있는 것일까. 김이설의 <환영>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하나의 가혹한 삶을 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그의 단편집을 언젠가 읽었는데, 어린 나이에 노숙 생활을 하며 노숙자들과 성행위를 해야 했던 소녀, 생활고로 인해 대리모가 되어야 했던 여대생, 남편과 아이가 죽고 남편의 형이었던 남자와 살게 된 여자, 가족들에게 버려지고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성적 노리개와 딸이라는 두 가지의 역할을 갖게 된 어린 여자의 이야기 등, 참으로 고통스러운 현실들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이러한 지독한 삶의 이야기는 <환영>에서도 이어진다.  

<환영>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젖먹이 아이를 떼어놓고 고군분투하지만 결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 윤영의 이야기다.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치 못했다. 가난에 찌든 집에서, 간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의 병원비와 민영, 준영 두 동생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윤영은 대학도 가지 못한 채 돈을 벌기 위해 분투한다. 여동생 민영은 꽤 명석하고 똑똑한 편이라 가족들의 기대가 컸지만 항상 어떤 일을 벌려놓고 망하는 것을 반복해서,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 집 전세금까지 빼들고 도망간다. 결국 있을 곳이 없어서 들어간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덜컥 아이를 갖게 되어 옥탑방에 살림을 차린다. 고시원 방에서의 그들의 성행위를 묘사한 부분은, 이 지독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명이 눕기에도 비좁은 방이었으므로 둘이 뒤엉키기란 쉽지 않았다. 허리가 꺾이고, 고개가 벽에 눌렸다. 그래도 나는 남편과 함께라면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p.47 중 발췌)'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서야, 남편이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고 심지어는 일을 해 본 적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윤영은 젖조차 떼지 못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왕백숙집에서 일하게 된다. 하루에 열네 시간씩 일을 하고 받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생활은 항상 위태로웠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빚은 계속 늘어나고 당장의 생활비조차 없는 비참한 생활의 연속에서 결국 윤영은 돈을 위하여 별채를 찾은 손님들에게 몸까지 팔게 된다.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 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 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따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릇을 나르다가 삶은 닭고기의 살을 찢고, 닭고기를 먹여주다가 가슴을 허락하고, 가슴을 보여주다 보면 다리를 벌리는 일도 어려운 일이 못 되었다.(p.58~59 중 발췌)' 이러한 지극히 건조한 문체와 무덤덤한 묘사는, 지독한 현실을 참혹하고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그 와중에도 엄마, 민영 등의 친정 식구들은 그녀에게 전화하여 시도때도 없이 돈을 달라고 한다. 윤영이 어떻게 번 돈인지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이 정도면 거의 흡혈귀 수준이다. 또한 남편은 공부도 거의 안 하고, 윤영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이 지나도 아이가 걸을 기미가 안 보이고 병원에서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평생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결국 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왕백숙집을 그만두고, 다른 식당에 취업하게 된다. 이미 몇 번을 시험에 떨어진 남편은 공무원 시험 책을 버리고 일을 하러 나가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고 다리에 철심을 박게 된다. 그야말로 불행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던 엄마는 그 남자와 헤어지고 집도 철거되어 오갈 곳이 없어져서 윤영 부부의 옥탑방에 얹혀 살게 되고, 계속 사고만 치던 민영은 인생 역전을 노리며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돈도 몸도 다 잃고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어쩌면 이렇게 불행한 일들만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지만 윤영은 가장 나쁜 상황만을 지속적으로 생각해보게 되고, 자신은 아직 가장 나쁜 상황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며 살기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남편과 아이의 치료비로 또 돈이 필요했기에, 그녀는 다시 왕백숙집에서 일하게 된다.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그렇다. 윤영은 정말 강하다. 그 강함을 나는 갖지 못했다. 저런 지독한 현실을 마주치면 분명 나는 도망치게 될 것이다. 주인공처럼 가족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몇십 년 전, 부모님의 치료비,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 등을 위해 어린 나이에 상경해 식모로, 평화시장 시다로, 마침내는 호스티스로 일해야 했던 가난한 집의 딸들과 주인공의 삶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낭만적 반성도 윤리적 각성도 할 틈 없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하지만 아무 데로도 도망치지 않고 벼랑 끝에서 가혹한 이 삶을 살아내는 주인공을 보며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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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2-11-2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코구도님 ^^ 전 안 풀리는 글을 어찌됐든 기를 쓰며 써서 알라딘 서재에 나왔어요. ㅋ 네이버 블로그랑 여기는 좀 틀린군요. ^^
여전히 글은 잘 안 써지시나요? 전 한 걸음 나왔습니다. ㅋㅋ 교코쿠도님도 힘 내요!!
 
독식 비판 - 지식 경제 시대의 부와 분배
가 알페로비츠 & 루 데일리 지음, 원용찬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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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명의 천재가 수십만, 수백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 같은 부자들의 성공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그들을 칭송한다. 하지만 그러한 천재론은 점점 심해져만 가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들의 비참한 삶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은연중에 길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예를 들자면, 모 대기업 회장은 그 정도의 부와 재화를 누려도 된다고, 그가 한국 경제와 근로자들을 먹여살리고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하지만 그것이 그의 탈세와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 그리고 근로자들의 위험한 작업환경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면 과연 사회가 부를 이루는 과정에서 최상위의 부자들과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경제적 상황에 처해야 마땅한 것인가. 가 알페로비츠와 루 데일리는 <독식 비판(원제 Unjust Deserts)>을 통해 소득 분배와 공정한 사회 질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지식 경제 사회에서는 장기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기술, 즉 사회의 공동 자산이 개인의 생산 활동보다 훨씬 크게 부의 창출에 기여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한마디로 일종의 인프라(infra)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예전에 개발도상국이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사회 전반의 기초적인 인프라의 부족을 꼽았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한 단락이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저자들은, 지금의 거부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기반이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나 제3세계의 최빈국에 있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부를 거머쥘 수 있었을지 의문을 던진다. 물론 그들의 재능을 활용해서 평균적인 동시대인들보다는 잘 살수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엄청난 수준의 부를 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굳이 경제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 등의 새로운 발견과 그로 인한 기술적 진보 역시 단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들이 채택되고 재결합되는 일종의 진화적인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고 경제사가 어셔는 설명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개인적 노력으로 기여하여 이룩했다고 보이는 것조차도, 상당 부분은 각 개인이 받은 일종의 유산, 사회적 영향, 행운이 낳은 생산물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는 물질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인 것 역시 포함된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이 유산과 행운보다 의미가 적거나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혜택을 받은 개인은 상속을 받은 만큼 사회를 뒷받침하여 어느 정도 기여할 도덕적 책무(noblesse oblige)를 지닌다. 위에 언급한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같은 막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거액을 기부하고 있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성공한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공동 자산의 혜택을 어떻게 사회의 정당한 몫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까. 저자들은 결코 그들의 정당한 몫을 몰수해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다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압제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해결책으로써 저자들은 상위 1~2퍼센트에 대한 소득 과세 증가, 법인세 증액, 대규모 자본의 사적인 상속에 대한 세금 인상, 종업원 소유 기업에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사회적인 제도들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의 안정성 측면에서 봐도 이 편이 훨씬 낫다. 통계학의 지니 계수(Gini's coefficient)는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진다.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다는 것을 뜻하고, 수치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어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부자들이 부를 누리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로자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착취다. 첫째 문단에 예로 든, 모 대기업 회장 한 사람이 그 기업의 수많은 근로자들을 먹여살린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기업이 많은 이익을 내고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것은, 규정 외의 노동 시간에 시달리고,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중병에 걸리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받아야 할 마땅한 몫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이며 아버지, 어머니인 수많은 근로자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이 사회에 여러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고 이제는 그들에게, 그리고 모든 근로자들에게, 나아가서 최소한의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그들의 몫을 분배해야 한다. 

"난 몰랐어."
경애가 말했다.
"그게 너의 죄야."
윤호가 말했다.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야. 너희 할아버지는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둘렀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일한 적이 이때까지 없었어. 너의 할아버지는 모든 법조항을 무시했어. 강제 근로, 정신·신체 자유의 구속, 상여금과 급여, 해고, 퇴직금, 최저 임금, 근로 시간, 야간 및 휴일 근로, 유급 휴가, 연소자 사용 등, 이들 조항을 어긴 부당 노동 행위 외에도 노조 활동 억압, 직장 폐쇄 협박 등 위법 사례를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야. 난장이 아저씨의 딸이 읽던 책을 보았어. 너희 할아버지가 한 말이 거기 쓰여 있었다구. 지금은 분배할 때가 아니라 축적할 때라고 쓰여 있었어. 그리고, 너의 할아버지는 돌아갔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나누어주지? 너의 할아버지가 죽은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다 주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걸 몰랐지? (중간 생략) 이제 네 죄에서 네가 스스로 벗어나야 돼. 지금까진 너희를 위해서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의 어린 동료들이 희생을 당해왔어. 지금부터는 그들을 위해 너희가 희생할 차례야. 알겠니? 집에 돌아가면 어른들에게 말해."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의 단편 '궤도 회전' p.152~153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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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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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참 조심스러워진다.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쓰려고 하다가는 자칫 선을 넘어 스포일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추리물이나 스릴러물, 특히 반전이 중요한 요소인 작품들은 아직 읽지 않은 입장에서 스포일을 당해 버리면 김이 새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껏 글을 써놓고 스포일러가 될 만한 문장을 삭제하거나, 심지어는 문단 하나를 통째로 덜어버리기도 한다. 어디까지 밝혀도 되고, 어디를 감춰야 되는 건지, 고민을 많이 한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알렉스 Alex>가 딱 그런 책이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ître)는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55세의 나이로 뒤늦게 문단에 등단한 후 연이어 발표한 작품들이 전 유럽 추리문학상을 휩쓴, 사회파 스릴러의 거장이다. 이 책 <알렉스>는 그의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 중 아직 번역출간되지 않은 <세밀한 작업>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스릴러의 전통을 단숨에 뒤집는 대담한 발상과 연이은 반전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한 아름다운 여성이 파리 한복판에서 괴한에게 납치된 후 알몸으로 허공 위의 새장에 갇히게 된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녀를 납치한 사람은 누구이며, 납치해서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고 새장에 가둔 목적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초에 불과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는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은 참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저명한 화가였던 모친의 과도한 흡연으로 인해 그의 키는 성인이 된 뒤에도 고작 145cm에 불과하다. 또한 몇 년 전 아내 이렌이 납치되어 죽은 트라우마로 일선에서 물러서 있던 그는, 이 납치사건을 수사하면서 과거의 일들이 겹쳐 지나가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한편 사건은 경찰과 대치하던 납치범이 자살하고 감금장소에서 생사를 오가던 그녀가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소설의 주목할만한 특징은, 두 주인공의 시점이 마치 영화의 교차편집처럼 번갈아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비극적인 과거와 강박관념,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슬픈 소망, 자기 파괴의 충동 등 두 주인공 각자의 내면적 상흔을 낱낱이 파헤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서사에 깊은 감정이입을 하게 한다. '그녀가 소망하는 것, 원하는 것은 자신의 피를 모조리 비우고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중략) 그녀는 자기 죽음을 본다.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과도 같다.'(p.109 중 발췌)

 

초반부에서는 사건의 희생자로 등장했던 그녀는, 곧이어 모습을 바꾼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던 형사반장 카미유는 그녀가 수많은 이름과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건의 키를 쥔 그녀는 감금되었던 장소에서 사라져 버린 후 종적을 알 수 없다. 카미유는 자살한 납치범 트라리외가 그녀와 연관이 있는 파스칼의 아버지이며, 파스칼은 한참 전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수사에 착수하여 그녀가 한때 살았던 집 정원에 매장되어 있던, 아황산으로 머리통의 절반이 녹아 버린 그의 시신을 발견한다. 한편 그녀가 지나가는 곳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연쇄적인 살인사건들이 일어나는데, 농축 아황산을 입 안에 부어 내장이 녹아내리는 참으로 잔혹한 살해 수법 외에 사건의 피해자들 간의 공통점이나 접점 등은 없어 보인다.

 

10년 전의 두 건의 고농축 아황산 살인사건과 그녀와의 연관성을 간파한 카미유는, 연이어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을 수사하며 그녀를 추격한다. 한편 그녀는 한 호텔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카미유는 신분증을 보고 나서야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알렉스 프레보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실은 이 책의 3부, 곧 알렉스가 죽은 후의 전개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알렉스가 과거에 어떤 일들을 겪은 것인지, 어떠한 계기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녀의 죽음에 얽힌 사정은 무엇인지, 그 외에도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이 등장하는 부분으로, 사건들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참혹한 진실과 엄청난 반전(그리고 약간의 속시원함)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앞부분에서 아주 간단히 언급되고 지나갔던 것들이 이 소설의 결말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일종의 복선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언급하면 사건의 전말과 충격적인 반전으로 인한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서, 굳이 여기에 적고 싶지는 않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의 내용을 언급하려니, 참 많은 부분이 생략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미덕은 진실이 아니라 바로 정의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 않은가요?"(p.528 중 발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진 문장이다. 이것이야말로,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으며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최근 몇 년간 많은 추리물들이 번역출간 되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일본 추리물이 전성기였다가 요즘 들어서는 유럽 쪽의 작품들이 제법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일본 추리물을 참 좋아하지만, 영미권이나 유럽쪽의 추리물은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언어로 설명하기가 힘들지만, 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혹은 문장이 머릿속에 안착이 잘 안되는 느낌이라 하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번역본인 이상, 일본어를 국어로 번역했을 때의 문장과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을 국어로 번역했을 때의 문장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하지만 이 책 <알렉스>는 그러한 느낌을 거의 받지 않고, 5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는 작가의 명쾌한 문장과 역자의 탁월한 번역 덕분이리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작(秀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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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가면의 룰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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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는 밝고 경쾌한 내용보다 어둡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더 자주 읽는 듯 하다. 묘하게도 밝고 경쾌한 내용의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과 내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어두움이 대비가 되면서 주인공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자신을 혐오하게 되지만, 어둡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읽으면 이 지독한 상황들이 실제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래도 내 삶이 이보다는 낫지 않은가 정도의 생각을 하며, 일종의 안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악과 가면의 룰(원제 悪と仮面のルール)> 역시, 표지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느낌부터가 어둡고 깊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일종의 심연(Abyss)을 생각하게 한다.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노마문예상, 아쿠타가와상, 오에 겐자부로상 등 일본 문단에서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 젊은 작가로, <흙 속의 아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쓰리> 등의 작품을 썼다. 

한국 문단도 슬슬 그런 경향이 보이고 있지만, 일본 문단은 이미 한참 전부터 순문학과 대중문학(혹은 장르문학)의 경계가 사라져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 작가가 순문학적인 소설과 장르문학적인 소설을 모두 쓰기도 하고, 한 작품 안에 순문학적 특성과 장르문학적 특성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보기도 한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얼마 전 출간된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원제 月と蟹)가 후자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악과 가면의 룰>역시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요소들이 얽혀 있고, 이 책에서 꽤 큰 전환점이 되었던 주인공의 친부 살해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혹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비롯된 모티브로 볼 수 있지만, 군수산업이나 컬트 교단 등의 등장과 정체불명의 테러 집단, 주인공이 어떤 사건의 범인이라 의심하며 집요하게 쫓는 형사 등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꽤 많이 도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이것은 순문학이다, 이것은 장르문학이다 하고 칼로 자르듯이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두 세계를 모아 작품 안에 녹여낸 작가의 역량이 훌륭하게 생각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군수산업으로 재벌이 된 가문에서 태어난 주인공 '구키 후미히로'는 여러 가지로 일반 가정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그가 11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인 '사(邪)'의 계보를 잇기 위해 계획적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그에게 14살이 되면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고, 그 도구로 아동보호시설의 여자아이 한 명을 선택해 양녀로 들이고 '구키 가오리'라는 이름을 준다. 아마 그것은 '사(邪)'가 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13살이 된 후미히로는 점점 가오리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생각하게 되고, 14살이 되기 몇 달 전, 아버지가 가오리를 겁탈하려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신이 아버지가 미리 예비해 둔 지옥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절망한다. 이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사랑하는 가오리를 지키기 위해 그 지독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 아버지를 죽인다.  

그렇게 아버지를 죽인 후, 스스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후미히로는 몇 년 후,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기 위해 타인의 얼굴로 성형하고 그의 신분을 얻어 인생의 방관자처럼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면서 사설탐정을 고용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가오리의 조사를 의뢰한다. 한편 그가 얼굴과 신분을 얻어 변신한 '신타니 고이치'라는 사람이 어떤 교통사고 사망사건에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형사가 있고, 설상가상으로 구키 가의 방계 자손 중 역시 '사(邪)'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종의 테러집단을 만들면서 후미히로에게도 합류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더 이상 그런 음습하고 어두운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얼굴과 신분까지 바꿨는데, 삶은 전혀 평온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앞으로는 더욱 가혹해져 갈 뿐이다. 한편 탐정의 조사 결과 가오리에게 마치 과거의 반복인 듯 거대한 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미히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가오리는 후미히코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는 가오리의 주변에는, 사기꾼 같은 남자들만 득실거리고 있다. 구키 가의 양녀였기 때문에 상당한 금액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그것을 전혀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어디서 새어 나왔는지도 모르는 소문 때문이다. 이런 사기꾼 같은 자들은 마약 같은 것을 사용해서 중독자가 되게 하고 그 뒤로 계속해서 돈을 뜯어낸다는 것을 알고, 후미히코는 가오리에게 자꾸 접근하려고 하는 사기꾼 야지마를, 각성제에 청산가리를 섞어서 살해한다. 게다가,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의 배후에 있는, 구키 가의 방계 자손들의 테러조직 JL에서는 활동자금을 변통하기 위해 계속 그의 돈을 요구한다. 당신들 대체 뭐냐는 후미히로의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다양한 가치를 뒤흔드는 거야. 권위나 상하 관계, 공통 인식 따위를. 사회구조 같은 건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혁명이니 뭐니, 촌스럽지. 우리의 목표는 인간의 집단의식이야. 그 속에 차례차례 경박한 농담을 던져줄 거야."(p.210 중 발췌)  

한편 탐정은 가오리를 조사하던 사람의 정체를 밝혀낸다. 군수 산업의 거물이며 구키 쇼조의 둘째 아들인 구키 미키히코, 즉 후미히로의 둘째 형이었다. 구키 가 주변에 맴도는 이 어두운 분위기...직계, 방계, 심지어는 혈연이 섞여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가계에 내려져오는 '사(邪)', 곧 세계에 어둠과 혼란, 파괴를 몰고 올 운명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구키 미키히코가 보낸 차를 타고 간 빌딩에서, 그는 둘째 형을 만나고 구키 가의 배경, 사(邪)의 유래, 왜 그가 가오리의 뒷조사를 하는지 등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은 구키 가오리를 마약중독자가 되게 하여 망가뜨리고 소유하고 싶다고, 그렇지 않으려면 네 자신이 가오리를 마약중독자로 만들어서 데려오라고 미키히코는 말한다. 가오리에게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그 여자를 손상시키고 싶지? 그 여자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너는 구키 가 사람이야. 나는 알아. (중략) 너의 무의식은 최대의 악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어. 그건 네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야. 바로 가오리지. (중략) 모든 건 그 한 순간을 위한 것이지. 욕망과 비통과 절망이 한꺼번에 겹쳐진, 평범한 인생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그 섬광 같은 암흑의 폭발을, 너는 온몸을 던져 애타게 기다리는 거야. 그때 너는 압도적인 쾌락으로 부르르 떨겠지. 이 세계와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모멸한 환희와 함께."(p.247~8 중 발췌) 이 책에서 가장 압도적인 악과 어둠이 응축(凝縮)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후미히로는 가오리가 일하는 클럽에 손님으로 가장하고 가서, 가오리를 만나지만 그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가오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테러집단 JL에서 며칠간 맡아달라고 한 시한폭탄장치를 들고, 후미히로는 다시 미키히로를 만나러 가고, 어서 그 여자를 손상시키고 이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엉망진창으로 더럽혀서, 내 영역으로 건너오라고 미키히로는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 영역'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邪)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서, 나 같은 거대한 악을 소멸시킨 것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흥분에 휩싸인 미키히로는 그에게 나이프를 쥐어 준다. 후미히로는 거절하고,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녹음한 것과 미키히로가 지금까지 저지른 살인, 부정한 거래, 밀담 등에 대한 증거들을 꺼낸다. 그리고 나서 JL에서 맡아달라고 했던 폭탄의 스위치를 켜고, 당신이 살고 싶다면 이 스위치의 버튼을 삼십 분 안에 꺼버리면 된다고 말한다. 목숨을 아까워하는 감각을 느끼라고,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난다. 

구키 미키히로가 죽음 쪽을 선택했고, JL의 도주 중인 멤버도 사체로 발견되었고, 이제 더 이상 가오리에게 위험할 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인 가오리를 그의 가혹한 운명 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기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슬프고 괴롭지만 아주 먼 데서 그녀의 행복만을 바라고 살기로 한 것이다. 어딘가로 멀리 떠날 것을 계획한 후미히로는 예전에 종종 만나서 친밀해진 여자친구 교코와 함께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은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좋을까...하며 그의 지극히 어둡고 또 가혹했던 지난 날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상승하며 보이는 창 밑의 도시들을 바라보며, 저곳에도 무수한 인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간 후 강렬한 햇빛과 마주치게 된 것은 작중 화자 후미히로의 '재생'을 암시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가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의 간극에 무한히 매달려 있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내려진 벌이라고 한다면 이는 충분히 무서운 책이라는, 아사히(朝日) 신문의 서평이 굉장히 와닿는다.  

결국 후미히로 그는, 머나먼 곳에서 그가 바라던 행복과 평온함을 찾을 수 있을까. 구키 가, '사(邪)' 등과 완전하게 모든 인연을 끊고 관련된 사실을 모두 잊어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평생을 그러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을 끌어안은 채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지는 암시적 표현처럼, 나는 그가 그렇게도 원했을 행복과 사랑, 평온함을 얻게 되기를, 시간이 그를 치유해 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또는 얼마 전에 읽었던 마리오 사비누의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와도 어쩌면 능히 비견할만한 압도적인 서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등장 인물들의 대화 부분에서 그런 것들이 많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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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의 도시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신규호 지음 / 청어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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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에 홀로 남는 상황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그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핀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깊은 적막과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공허 그 자체의 공간이다. 시들어 버린 나무와 풀들,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 폐허가 된 수많은 건물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시간. 그러한 지옥과도 같은 곳에 혼자 살아남은 것보다, 차라리 먼저 사라져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리라. 황금펜클럽에서 얼마 전에 출간된 신규호의 <적막의 도시>는 소개글부터가 매우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혼자 남아버린 주인공, 그리고 그는 왜 혼자 남겨진 것일까. 그는 어떻게 이 난국을 해결할 것인지, 궁금함을 잔뜩 끌어안고 책을 읽었다.

 

주인공 '나'는 여자친구 사라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반지와 이벤트를 준비하고 그녀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든다. 일어나 보니 벌써 아침이 되어 있어서 사라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지만 들려오는 것은 전화의 컬러링뿐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걱정이 되어, 급히 차를 몰아 사라의 집으로 향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던 찰나, 주인공은 중대한 사실을 인식한다. 항상 사람들과 차들이 오가던 거리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도시의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 보고 소리를 질러 봐도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 부모님 집으로 향했지만, 가는 길에도 차 한대 보이지 않고 부모님 역시 안 계시는 것을 발견한다. 철저히 홀로 남겨져 버린 그의 모습은, 건조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서 물과 음식을 가져와서 먹으며,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 자고 일어나면 또 아무도 없는 하루가 반복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라의 미니홈피에 글을 남겨 보지만, 답은 없다.

 

그러던 중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다시 편의점에 갔을 때, 전에 먹을 것을 가져오면서 계산대에 올려놓았던 돈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고민하던 중 저 멀리 건물의 창에서 점멸하는 불빛을 발견하고, 더 이상 숨어서 무서워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확인을 하러 간다. 오래되어 버려둔 건물 안에서 발견한 것은,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뿐이다. 일말의 희망만 남겨둔 채 사라진 그의 정체는 누구일까. 또 며칠인가가 지나고, 문 밖에서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주인공은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을 추격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사람과 마주치다니, 상당히 오싹했으리라.  

 

그리고 나서 그는 집에 들어와 손전등을 주운 곳으로 오라고 쓰인 쪽지를 발견하고, 그 폐건물에서 그 동안 자신을 도우려고 애썼던 어떤 남자를 만난다. 그는 중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미안하지만 사람들이 사라진 게 아니에요." "네?" "당신이 사라진 거죠."(p.152) 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이 곳에 혼자 남겨진 이유를 직접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을 생각하자, 온 세상이 혼돈에 휩싸이고 흔들리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세상과 그들이 모두 자기와 같은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끝이 아닌 것이다.

 

과연 그는 '진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는 그 세상에 혼자 남겨졌던 것일까? 모든 전말은 2부에서 밝혀진다. 하지만 1부에서 이끌어왔던 실존적인 물음과 서사가, 2부에서는 '아니, 고작 이런 이야기였어?' 하고 실망할 정도로, 용두사미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원래 작가는 초고에서 이 책을 1부까지만 쓰고, 1부의 내용을 해설하는 '현실의 세계 이야기'만이 있었다고 하는데 출판사에서 권유를 받고 2부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1부만으로는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에 분량이 너무 적었던 것일까. 요즘에는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경장편이나 중편의 단독 출간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1부와 그 해설로 이루어진, 한 권의 경장편으로 나왔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세어나가다가 하도 많아서 세기를 포기한, 여기저기 보이는 비문과 오탈자 역시 잔뜩 기대했던 내게는 꽤 실망스러웠다. 설마 교정을 보지 않은 것일까? 물론 나도 글을 그렇게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류의 말을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묘사나 표현에서도 반복적으로 쓰이는 단어 등에서 마치 작가 지망생의 습작과도 같은 미숙함이 느껴진다. 책으로 내기에는 아직 미흡한 느낌이 많이 든다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서사 등의 면에서 일반적으로 장편이 요구하는 내공이 더욱 크기 때문에 처음부터 장편을 쓰기보다, 단편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아직 젊으니까,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간극을 얼른 뛰어넘어 앞으로 더욱 훌륭한 작품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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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2-01-0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도 오랜만이죠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쿄고쿠도님 ^^ '적막의 도시'라 왠지 제 인생과 맞다는 느낌이 팍 드네요. 여전히 쿄고쿠도님은 제가 땡기는 책만 보고 계시네요. 새해인데 새로운 계획과 새로운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 전 나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세상을 새롭게 보고 승부할 결심이랍니다.
쿄교쿠도님 저에겐 삶이란 항상 항상 슬픔과 고뇌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근데요. 전 거기에 지지 않으려구요. 절 비웃고 있는 절망과 우울과 슬픔, 그 녀석들을 제가 되려 비웃어 줄려구요. 전 근성이 있거든요. 새해에는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더 이 서재에 들어와 댓글 이빠이 써 드릴께요. ㅋㅋㅋ 새해 다짐입니다!!! 아자!!

교고쿠도 2012-01-03 03:54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루쉰님 ^^
세상을 새롭게 보고 승부...너무 멋진 말씀입니다. 저는 여전히 새해를 무기력한 모습으로 맞이한 채,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 두달 반 동안, 프랑스어를 이빠이 공부해야 할 필요가 생겼어요. DELF B1에 응시하기로 했는데, 이제 갓 A2를 패스한 저에게는 아직 너무 어렵네요. 시험 접수비용도 비싸서, 떨어지면 피눈물날테니 반드시 패스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역시 삶이란 괴로움의 연속이라는 생각에 백만퍼센트 동의하는 바입니다. 2011년은 제게도, 저희 가족에게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가혹한 한 해였거든요...온갖 악재란 악재는 다 만난 느낌이랄까요. 올해에는 제가 전보다 강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

루쉰님의 강함을, 반이라도 닮고 싶습니다. ^^항상 저의 보잘것없는 서재에 와주셔서 감사할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