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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를 읽고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재일조선인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연구를 해 나간 것은, 그들의 디아스포라적 입장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1세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고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 그 후손들은 일본 내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내가 그 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내게 일종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일조선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 서준식 선생의 동생으로, 결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온 그의 글은 의외로 담담했다. 무지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을 그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서경식 선생의 다른 책들을 하나씩 구입해 나갔고, 지금은 대부분의 책들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돌베개에서 번역 출간된 <언어의 감옥에서(원제 植民地主義の暴力-「言語の檻」から)> 역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한국에서 출간한 첫 번째 평론집인 <난민과 국민 사이>에서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민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는 <난민과 국민 사이>의 의도를 계승하고 있지만, 추가되고 심화된 내용들이 있다. 1부에서는 2006년부터 2년간 한국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저자의 강렬한 체험을 윤동주의 <서시>, 재일작가 이양지의 단편 <유희(由熙)>, 파울 첼란과 프리모 레비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나로써는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었던 부분이다. 재일조선인으로써 일본어를 모어로 하여 일본 사회에서 사는 재일조선인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마저 일본어로 형성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식민지의 민중이 지적 자원을 가지고 싶어도 종주국의 지적 제도를 통해 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知)의 식민주의적 지배구조로 연결된다. 또한 나 역시 느꼈던 이양지 작품들의 몇몇 부자연스러웠던 점들을 저자가 지적하고 비판하는 부분들이, 약간 혹독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명쾌하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발버둥치며 괴롭게 살아갔던, 이양지의 짧은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2부에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해 잔혹한 정치폭력의 시대를 증언한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형들이 간첩으로 몰려 한국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저자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커다란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살아 돌아와 증언한다'라는 의지의 역할이 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7년, 프리모 레비는 자살했다. 그는 '증언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자살로써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기억의 투쟁' 역시, 아직 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재일조선인 1세였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식민지 지배와 민족분단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頹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리버럴 세력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점을 잘 이해하는 것은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많은 사람들이 일본 우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한 인식은 부정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우경화의 길을 걸어왔다. 리버럴 세력이 힘을 모았다면 식민주의 극복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호기였으나,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시종 양비론에 서서 방관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그 결과 우파가 득세하게 되었다. 우파와 싸워야 할 국면이었음에도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오히려 '국민주의'로 퇴락해간 것이다. 국민주의는 사람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가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일본 지식인들의 온정주의적 레토릭과 자기중심적 욕망, 그리고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의 단절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국민으로써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또한 박유하의 책 <화해를 위해서>를 통해 저자는 식민지 문제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화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들에게 타협이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의 해결을 멀어지게 만들며 가해자가 진상규명, 책임 승인, 사죄, 보상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원한과 분노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그는 반문한다.
4부는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통일에 대한 인터뷰와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과 북이 단순히 민족통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혈통주의를 타파하고 내부적으로 디아스포라를 많이 포용해야 하며, 이중국적이 허용된다면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에서의 참정권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상당히 희박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그래서 자신을 반쯤 디아스포라로 규정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순혈주의와 국민주의의 타파가 참 반가운 느낌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일본의 차별 문제로만 보는 경향을 지적하며,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해외동포들이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외동포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재외동포들이 대부분 귀국하지 않는 이유는, 돌아오더라도 국적 정비, 호적, 생활, 직업 등의 기반이 불확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선족(재중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도 대부분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서경식 선생의 치밀한 논리의 구사와 글의 날카로움, 명료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와 대담을 가졌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진땀 꽤나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모든 조선 민족이- 처해있는 상황이 가혹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으로 그러하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숙명은 언제나 일종의 멍에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식민지 지배라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또한 이 책의 표지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글자들이 뒤섞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그가 느낀 모어와 모국어의 괴리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서경식 선생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