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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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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년 전,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를 읽고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재일조선인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연구를 해 나간 것은, 그들의 디아스포라적 입장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1세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고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 그 후손들은 일본 내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내가 그 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내게 일종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일조선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 서준식 선생의 동생으로, 결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온 그의 글은 의외로 담담했다. 무지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을 그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서경식 선생의 다른 책들을 하나씩 구입해 나갔고, 지금은 대부분의 책들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돌베개에서 번역 출간된 <언어의 감옥에서(원제 植民地主義の暴力-「言語の檻」から)> 역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한국에서 출간한 첫 번째 평론집인 <난민과 국민 사이>에서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민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는 <난민과 국민 사이>의 의도를 계승하고 있지만, 추가되고 심화된 내용들이 있다. 1부에서는 2006년부터 2년간 한국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저자의 강렬한 체험을 윤동주의 <서시>, 재일작가 이양지의 단편 <유희(由熙)>, 파울 첼란과 프리모 레비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나로써는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었던 부분이다. 재일조선인으로써 일본어를 모어로 하여 일본 사회에서 사는 재일조선인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마저 일본어로 형성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식민지의 민중이 지적 자원을 가지고 싶어도 종주국의 지적 제도를 통해 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知)의 식민주의적 지배구조로 연결된다. 또한 나 역시 느꼈던 이양지 작품들의 몇몇 부자연스러웠던 점들을 저자가 지적하고 비판하는 부분들이, 약간 혹독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명쾌하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발버둥치며 괴롭게 살아갔던, 이양지의 짧은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2부에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해 잔혹한 정치폭력의 시대를 증언한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형들이 간첩으로 몰려 한국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저자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커다란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살아 돌아와 증언한다'라는 의지의 역할이 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7년, 프리모 레비는 자살했다. 그는 '증언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자살로써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기억의 투쟁' 역시, 아직 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재일조선인 1세였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식민지 지배와 민족분단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頹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리버럴 세력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점을 잘 이해하는 것은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많은 사람들이 일본 우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한 인식은 부정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우경화의 길을 걸어왔다. 리버럴 세력이 힘을 모았다면 식민주의 극복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호기였으나,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시종 양비론에 서서 방관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그 결과 우파가 득세하게 되었다. 우파와 싸워야 할 국면이었음에도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오히려 '국민주의'로 퇴락해간 것이다. 국민주의는 사람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가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일본 지식인들의 온정주의적 레토릭과 자기중심적 욕망, 그리고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의 단절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국민으로써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또한 박유하의 책 <화해를 위해서>를 통해 저자는 식민지 문제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화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들에게 타협이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의 해결을 멀어지게 만들며 가해자가 진상규명, 책임 승인, 사죄, 보상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원한과 분노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그는 반문한다.  

4부는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통일에 대한 인터뷰와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과 북이 단순히 민족통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혈통주의를 타파하고 내부적으로 디아스포라를 많이 포용해야 하며, 이중국적이 허용된다면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에서의 참정권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상당히 희박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그래서 자신을 반쯤 디아스포라로 규정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순혈주의와 국민주의의 타파가 참 반가운 느낌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일본의 차별 문제로만 보는 경향을 지적하며,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해외동포들이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외동포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재외동포들이 대부분 귀국하지 않는 이유는, 돌아오더라도 국적 정비, 호적, 생활, 직업 등의 기반이 불확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선족(재중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도 대부분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서경식 선생의 치밀한 논리의 구사와 글의 날카로움, 명료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와 대담을 가졌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진땀 꽤나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모든 조선 민족이- 처해있는 상황이 가혹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으로 그러하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숙명은 언제나 일종의 멍에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식민지 지배라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또한 이 책의 표지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글자들이 뒤섞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그가 느낀 모어와 모국어의 괴리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서경식 선생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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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경식 교수님의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이 책도 구입하고 서평이 없는지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쿄고구도님의 서재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저도 재일조선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서경식 교수님을 통해 프리모 레비도 알게 되고 특히나 서경식 교수님의 서릿발 같이 서 있는 날카로운 문체를 좋아하는 개인입니다. ^^

근데 이 서재에 들어와 보니 재일조선인에 대한 내용이 한가득이어서 너무나 좋네요. 전 재일조선인과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 그리고 미국의 인종차별에 괴로움을 겪은 흑인들에 대해 관심이 좀 많거든요. ^^ 앞으로 자주 들려 열심히 읽고 가겠습니다.

저도 일본을 참 좋아해요. 가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구요.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교고쿠 2011-05-14 10: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으음, 저는 제가 재일조선인과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어로 말할 때, 약간의 괴리감을 갖고 있어요...재일조선인들이 한국어로 말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항상 약자,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정말 반갑습니다. ^^

루쉰P 2011-05-15 08: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일본어로 말씀하실 줄 안다니 대단하신데요. ^^

재일조선인의 감수성은 차별 받은 자들의 감수성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약자, 소수자,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에서 이탈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거든요. 정말 정말 여기 서재에 있는 리뷰들만 봐도 굉장히 감사해요. ^^

관심 있는 분야를 한 번에 이렇게 읽을 수 있는 일은 쉽지가 않으니까요 헤헤

교고쿠 2011-05-15 19:01   좋아요 0 | URL
실은 제 본진(?)이 네이버 블로그라, 거기 더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이양지, 현월, 양석일 등의 책에 대한...)
http://blog.naver.com/satsukinovel 입니다.

루쉰P 2011-05-19 23:01   좋아요 0 | URL
아! 본진이 거기시군요. ^^ 예비군 훈련을 2박3일 동안 다녀오느라 이제 정신차리고 사회인으로 복귀했습니다. 본진으로 곧 놀러 가겠습니다. 좋은 정보 왕 감솨!!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평화 발자국 7
임소희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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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민족의식이 희박한 편이다. 내 자신이 한국인의 특성들 중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지 못해서일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오히려 겉모습이나 식성, 취향, 사고방식 등은 일본인에 더 가까운 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재일동포적인 특성을 꽤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일동포들 역시 혈통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편하고 사고방식 역시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자연히 재일동포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재일동포문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수많은 재일동포 작가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온 이 책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를 읽고 내심 놀랐다. 책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리정애는 오사카 출신 재일동포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총련 계열이다. 그는 굉장히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다.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일본학교에 다녔지만 대학은 조총련이 세운 조선대학교에 편입해서 다녔으며 한국어도 꽤 능숙하다. 이상형의 남성도 바지저고리와 수염, 상투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마치 사극에서 나올듯한!) 그리고 그의 국적은 '조선적'이다. 일본 내의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한국 국적과 일본 국적, 그리고 조선적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일본은 북조선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조선적은 북한 국적이 아니라, 분단되기 전의 '조선'국적이다. 그들은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여권도 없고 외국에 갈 때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잠재적인 테러집단으로 여겨져서 직업을 선택할 때도, 일상 생활에서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수의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는 추세이고, 조선적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총련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재일동포들은 항상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소수집단으로서의 차별을 받는가 하면, 한국으로 가도 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재미교포 등과 달리, 재일동포라는 집단은 자신이 원해서 도일한 것이 아닌 일제 강점기 때의 징용이나 생활고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본행을 택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리정애도 한국의 어학당에서, 하숙집에서, 여기저기에서 그러한 '내부로부터의 차별'을 경험하곤 했다. "'우리나라'에 태어나 우리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 마치 나만 빼고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아 너무나 부럽다. (중략) 하지만 우리 재일동포들은 어려서부터 꿈을 포기하는 것을 배워 왔다." 라고 그는 슬프게 말한다. 나같이 민족의식이 희박한 사람도 외국에 나갈 때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나가며, 한국에서 제공하는 교육, 의료, 그 외의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하고 있으며 모국어는 당연히 한국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리정애는 일본 남성보다는 한국 남성과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데, 조선 국적을 가지고는 한국 국적의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국적을 바꾸라는 것은 양가 조부모들을 버리라는 것이고 자신을 참다운 조선 사람으로 키워준 조국을 버리라는 것이니, 내 존재를 버리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그는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조국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연모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은 아닐지 추측한다.  

하지만 8.15 민족대회에 참가해서 북조선 동포들을 배웅하며 통일기를 흔들고, 무려 '공화국 기념 배지'를 달기도 하며, 북조선 깃발을 방 안에다 걸어두는 모습은 솔직히 꽤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북조선은 독재국가인데다가 비인간적이고 낙후된 나라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좌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북조선에 대한 것은 예외인 듯 하다. 확실히 리정애는 총련계 재일동포로서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참 의아했던 것이 그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도 북조선 출신이 아닌 제주도 출신이고(재일동포 중에 제주도 출신이 참 많다. 이는 한국의 아픈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면 북조선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것인데 왜 그는 북조선을 조국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북조선에서 그에게 보여준 환대와 같은 민족으로서의 포용에 근거한다. 일본에서 조대에 다닐 때, 선후배들이 따뜻하게 자신을 맞아 주었으며 한국어를 배우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금강산에 방문했을 때도 북조선의 안내원들이 재일동포인 것을 알고 굉장히 반가운 반응을 보여서 눈물이 핑 돌아서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북조선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포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화내며 함께 슬퍼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재일동포라는 것을 밝히면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각해서 일본어로 말을 걸거나 해서,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이다. 나 또한 상대가 일본인이든 재일동포든, 무조건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들에게 일본어가 더 편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일본어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재일동포 중에서도 소수자의 입장에 놓인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괴로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 내에서 북조선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더 심했을 것이다. 북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북조선 사랑'에 크게 공감은 할 수 없지만, 그의 용기 있는 모습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신념의 자유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더 이상 수많은 '리정애'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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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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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재일교포 관련 서적들을 일독하다가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어둠을 삼키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등을 쓴 재일교포 작가 고사명의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에서의 자신의 어린시절과 여러가지 에피소드, 그러한 과정을 통한 성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난과 차별, 소외를 겪으며 어려서부터 외롭고 힘겨운 인생길을 걸어야 했던 소년, 그 삶의 끝에서 소년을 지켜준 것은 바로 인간의 상냥함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형과 함께 서로를 아끼며 살았다. 가난해서 허름한 나가야(일본식 공동주택)의 쪽방에 살았지만 주변에 사는 일본인들도 다 가난했기에,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차별받는 조선인이라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소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자신이 가난한 것과 반에서 자기만 조선인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을 감싸줄 어머니가 없다는 것으로 인해 그는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방황하게 된다.  싸움을 하며 울분을 터뜨리고, 그럴수록 주변엔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도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매일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해서 마찰을 빚는다. 하지만 그는 4학년때 만난 사카이 선생님에게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조선 이름을 불러줬던 선생님 덕분에 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을 되찾게 되었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굉장히 마음속에 남는 구절들이 많이 있었다. 

「아버지는 조선어로 얘기했고, 우리는 일본어로만 얘기했습니다. 부자간에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가 서로 다르다니 기막힌 일입니다. (p.74)」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일본 사람은 조선인을 괴롭혔다. 조선인이 어려울 때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뒤집혀 일본 사람들이 어려워졌다. 그럼 조선인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일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짓밟고 괴롭혀야겠느냐?  남에게 원한을 사면 그 원한이 나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는 서로 돕는게 사람의 도리다. 사람의 도리를 짓밟으면 해방도 머잖아 끝이다. 일본 사람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용서해 줘야 그게 진짜 해방이다. 앞으로 좀 살만해졌다고 일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또 다시 조선을 망하게 할 게 뻔하다." (p.234)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상냥함(優しさ)입니다. 상냥함이란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지녀야 할 마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훌륭한 것은 다른 사람을 걱정해 주는 마음입니다. (중략) 지금가지 살아오면서 인간의 상냥함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힘이라는 것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산다는 것의 의미를 게속 탐구해 나갈 것입니다. (p.235~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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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 발전과 재일 한국 기업인
나가노 신이치로 지음 / 말글빛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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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재일교포문학 뿐만이 아니라, 재일교포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에 관심을 갖고 여러 자료와 책을 읽고 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출간된 이 책 <한국의 경제 발전과 재일 한국 기업인>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재일교포 기업인들의 한국 경제에의 기여와 그들의 삶에 대한 것이다. 예전부터 알기로, 6~70년대에 한국 경제가 꽤 어려울때 재일교포들이 본국에 많이 투자를 해서 경제 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기업들인 소프트뱅크, 신한은행, 마루한 등이 재일교포가 세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크게 성공하기까지는 엄청난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그 당시 민족차별이 횡행했고, 또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성공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룩해낸 결과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웬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막상 그 당시 한국에서는 재일교포들에 대해서 같은 민족으로 생각해주지도 않았으면서(당시에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재일교포에 대한 편견, 멸시, 차별 등이 사회에 잠재해 있었다), 아무것도 해 준것이 없으면서 국가 경제가 어려우니까 어려운 조국을 위해 투자하라고 한 것이다. 그들의 애국심을 이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군사정권 시대에 권력자들의 요청을 받아 조국에 투자를 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의 발생과 그에 대한 지원을 하나도 받지 못하게 되면서 투자한 재산을 모두 날려 버린 케이스도 꽤 있다. 이와 같이 재일 기업가의 입장은 조국에서 비참할 정도로 약소했다. 필요할 때는 불러들여 이용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법적 보호 조치가 없는 이들을 단번에 희생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한 내용들을 읽으며, 예전에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는 알지 못했던 재일교포의 본국투자의 이면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같은 한국인으로 생각도 해주지 않으면서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돈 많이 벌고 호강하고 산다고 질시에 찬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던가? 굉장히 씁쓸하고 또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 기업인들은 조국을 위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출신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후학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탁하고, 국가에서 하는 행사나 큰 일에 아낌없이 거액을 기부하는 등 굉장히 훌륭한 일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부 문화도 재일교포 3,4세로 갈수록 희박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2세는 그래도 한국과 연관이 꽤 있었으나, 3,4세로 갈수록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는 연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일교포들의 조국과 후손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읽으면서, 이 책을 단순히 재일교포 기업인들의 업적에 대한 찬사로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훌륭한 마음들을 갖고 있던 재일교포들을 같은 한국인들이 차별하고 질시했던 것은 아닌가, 나 역시 재일교포들에 대한 일종의 굴절된 생각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닌지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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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가슴 속
신숙옥 지음, 배지원 옮김 / 십년후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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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절판된 책이고 인터넷서점 데이터베이스에도 없어서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 떡하니 이 책이 꽂혀 있어서 데려왔다.  <자이니치, 당신은 어떤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 <악인예찬> 등을 쓴, 재일동포 인권운동가 신숙옥의 책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초판만 나오고 절판된 듯 하다. 정말로 운이 좋게 구한 것이다.

<자이니치...>에서와 같이, 재일동포의 현실에 대해 다룬 책인데 읽으면서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나만 해도 어릴 때에는 재일동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굳이 변명을 하자면 학교에서도 부모님도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에도 재일동포라면 일본에서 온, 돈 많은 깍쟁이의 이미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마주친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소더스>를 읽고 재일동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언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인이나 한국인으로부터 받는, 황당하거나 화나는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이, 재일동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질문에 재일동포들은 착잡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일본어 잘 한다는 말도, 국적에 대한 질문도, 재일동포는 돈이 많다는 편견도...전부 그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이다. 나의 무지가 그들을 슬프게 했다...

辛淑玉先生,
신숙옥 선생님,
小さい頃, 在日韓国人たちがアメリカやヨーロッパの海外同胞たちのように自分が願って日本に渡った人々だと分かったこと
어린 시절, 재일동포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교포들처럼 자신이 원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인줄 알았던 것
日本と韓国の物価差のため在日韓国人は韓国人より金持ちだと思ったこと
일본과 한국의 물가 차이 때문에 재일동포는 한국인보다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 것
何年前ある喫茶店でバイトした在日の青年に日本語が上手だと誉めながら羨んだこと
몇년 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자이니치 청년에게 일본어 잘한다고 칭찬하며 부러워한 것
その外,自分なりの先入観を持って在日韓国人を思ったこと
그 외에 나름의 선입견을 갖고 재일동포를 생각한 것
私の無知さが在日韓国人たちを悲しくしたこと,本当に申し訳ございません...
저의 무지가 재일동포들을 슬프게 한 것, 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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