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일부러 찾아 듣지 않아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들이 있다. 비발디 선생의 '사계' 는 거의 계절마다 들려오는 듯 하고, 위대한 베토벤 선생의 교향곡 9번은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또한  '시월의 마지막 밤'은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 대중 가요 중 하나 일 것이다. 이런 곡들의 수명은 대부분 길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특정 시기가 되면, 또 계절이 바뀌면 누군가는 사적 호감도가 높은 노래들을 찾아 듣기도 한다. 내게 '가을 편지'는 그런 노래 중 하나이다.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듣는 노래, '가을 편지'. 그러므로 적어도 내게 이 노래의 수명은 나의 그것과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애정하는 '가을 편지'는 심히 유감스럽게도 마음을 편치못하게 하는, 나의 내적 부정합을 일으키는 곡이기도 하다.

甲돌씨를 사랑한다면서도 정작 시집은 乙돌씨에게 가버리는 여인이 있다면 이는 내적 부정합의 경우에 해당한다. 언(言)과 행(行)이 서로를 이탈해 따로 존재하는 이 모순된 시추에이션! 이는 정녕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겠는가.


'가을 편지'를 기억하는 한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쓴 사람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글에 곡을 입힌 훌륭한 작곡가의 이름을, 이 노래를 정말 잘 부른 멋진 가수의 이름을 또한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 가을 편지는 최양숙 선생이 부른 버전이 특히나 돗보인다. 쉽게 만날 수 없는, 특유의 매력적인 바이브레이션을 가진 가수 최양숙 선생, 가을 편지는 오직 최양숙 선생을 위해 태어난 노래이지 싶다. 최양숙 선생이 힘을 빼고 전달하는 이 곡은 정말로 유려하고 근사하다. ! 최양숙 선생은 힘뺀 예술에 레가토(Legato - 음과 음사이를 끊어지지 않게 연결하는 주법)를 덧 붙이는데.....내게는 중독성이 강하다 ! 아... 이 노래는 정녕 최양숙 선생의 것이로다, 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주인을 제대로 찾은 '가을편지'는 최양숙 선생을 통해 그 퀄러티를 한층 더 드높인다.


최초 레코딩은 LP를 썼다. 사적인 견해이지만 LP는 음을 허공으로 산란시키는, 음의 공중 부양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탁월하다. 반면 CD는 음을 공중으로 산란시킨다. 심지어 금속성 음을 내기도 한다. CD의 시대를 맞이하여 적응이 어려웠던 이유이다. ]]]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 노래는 나에게 내적 부정합을 일으키게 한다. 내게 무척이나 아름다운 노래이면서 동시에 무척이나 아름답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하는 이 노래, 애정하면서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좋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군가는, 안들으면 그만이지!! 누가 들으래? 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귀에 착착 붙는 최고의 노래인데, 듣지 않고 어찌 배겨낼 수 있겠는가! 하고 답할 듯 하다. 이런걸 자가당착이라고 하는 것이겠다.


결국 "노래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라며 스스로 합리화해본다.



言(언)과 行(행)의 정합은 중요한 것인가? 

영향력이라고는 1도 없는 나와 같은 하찮은 필부라 할지라도 언과 행의 정합은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면 정치(政治)와 정합(整合)은 피해 갈 방법이 없다. 정치와 정합은 상호 관계의 기점인 동시에 관계의 종점이기 때문이다. 한 순간 삐끗하면 관계가 불안해지고 관계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원치않는 환경의 지배를 받게한다.



하물며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지는 인물의 언행은 파급 효과가 그만큼 더 클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말이다. 심지어 특정 인풀루언서가 스스로 선택한 극단의 결과 조차도 모방이라는 현상을 가져올 정도로 영향력이 크지 않던가.

그리하여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자의 사회적 책임은 그만큼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자신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회적 현상은 본인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것이라도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갑작스런 글의 전환 이지만, 2017년 견디다못한 시인 최영미 선생은 결국 아래와 같은 시를 발표하기에 이르른다.



괴물 ㅡ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ㅡ 2017 ㅡ




최영미 선생은 "너무 늦게써서 미안하다"고, 

"10년 전에 썼어야할 시",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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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10-02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영미 시인의 용기에 박수를!!!
En, 요 벼락 맞을 늙은이에게 벼락을!!!

차트랑 2026-10-03 10:04   좋아요 0 | URL
제우스 신에게 부탁 한 번 잘 해보겠습니다.
저의 부탁을 들어 줄지는 모르겠지만요.

좋은 하루 되세요 잉크냄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