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에서 시작되어 뉴턴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되는 '과학'의 특징은, '왜'에 치중하던 이전의 자연철학자들과 달리 '왜'라는 질문은 잊어버리고 '어떻게'에 집중했다는 것에 있다. '어떻게'를 위해서는 자연의 관찰과 실험에 의존했다. 특히, '어떻게'를 기술하기 위해 수학을 도구로 사용했다. 이러한 전환은 '과학'을 매우 실용적으로 만들어서, 결국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을 낳았다.


... In old style philosophy, what counted was knowing the innermost structure of a material--brick or brass or oak. Only then could you hope to understand how it behaved. Science turned that kind of thinking around. The susceptibility of a given material to bending could be characterized by a number that described the empirical nature of that material. Why brass bent more easily than stiff oak was a problem for another day. What mattered was that an engineer or architect could select brass or wood or some other material on account of its known properties, and could reliably calculate how it would perform in one kind of construction or another. (p.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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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4-09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의 책 읽었습니다.
갈릴레이가 최초 왜를 버리고 어떻게를 추구했다고 하던데요, 바로 그 순간이 과학과 철학이 분리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blueyonder 2021-04-09 22:57   좋아요 2 | URL
네 바로 그 순간 과학과 철학이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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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과 그들이 이룬 문명 이야기. 시간을 따라가지만 단순한 역사서라기보다는 주제별로 정리하여 논하는 평론식이다. 1권은 그리스 땅에 도달했을 때 원주민보다 더 미개했던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시민 민주주의를 일구어 나가는지, 감탄과 비평을 함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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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4-0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 글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제도는 한계라는 인용이 기억납니다. ^^ 공감합니다. ^^

blueyonder 2021-04-03 22:00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노예제도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한계다. 물론 그리스에만 노예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사회치고 노예 없는 사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유형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지독한 것이다. 그래서 중세에 와서는 노예제 대신 농노제가 생겨났고, 현대에 와서는 식민지와 임금 노동이라는 새로운 착취 구조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인간은 약육강식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그러나 투쟁의 성과가 금세 나타나지는 않았다. (208 페이지)

  노예제도는 발전의 장애물이다. 과학자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어쩌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과학은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과학이다. 최소한 그것이 과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만약 과학적인 연구와 발견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 과학은 의미가 없고, 곧 소멸하고 만다.

  바로 그리스의 과학이 그랬다. 노예제도에 물든 나머지 기계를 발명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과학은 무력해졌으며, 심지어 죽어갔다. 인간을 발전시키지 못한 그리스의 과학은 스스로의 울타리 안에 갇혔고, 사변적인 과학으로 전락했다. 발전이 있을 수 없었다. (222 페이지)

  고대 사회에 노예제도가 미친 영향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었다. 한 사회에서 빈둥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게 되면, 그 사회는 내부적으로 분열될 것이며, 외부의 침략에 올곧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소위 이민족의 침입 이전에 그리스 사회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고, 몰락하고 있었다. 그 원인이 바로 노예제였다. 

  그런데 왜 당시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문제삼지 않았을까?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위대한 철학자들이 많았음에도 노예제도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놓고 노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민들의 사회가 건강하게 존속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노예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예는 시민사회의 필수품이며, 심지어 인간들 중 일부를 노예로 만드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천성적으로 노예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으며, 그들을 골라내는 것이 전쟁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 전쟁은 복종하기로 되어 있는 자가 복종하지 않을 때 그들을 굴복시키는 수단이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우리가 위대한 철학자라고 추앙해 마지않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자기가 처한 조건과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23 페이지)


위의 글에서 특히 3가지를 곱씹게 된다: 1) 임금 노동이 노예제의 발전된 형태라는 부분, 2) 과학의 유용성이 사회에서 인정 받아야 된다는 주장, 3) 노예제로 인해 그리스 과학이 사변적 과학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노예제 등 부의 집중이 그리스 사회에 끼쳤던 악영향에 대해 오늘의 상황을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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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5월 27일의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러일 양국은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주선으로 미국 뉴햄프셔 주의 포츠머스에서 강화협상을 벌였다. 일본은 인구는 3배, 영토는 50배 큰 러시아를 상대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국고는 바닥나고 국민은 전쟁 부담으로 신음하는 상황이었다. 지리한 협상 끝에 1905년 9월 5일 서명된 포츠머스 조약에서, 일본은 뤼순 항에 대한 러시아의 권리, 사할린 섬의 절반 할양, 만주로부터 러시아 군대의 철수, 일본의 한반도 강점에 대한 러시아의 양해를 얻어냈지만, 간절히 바라던 전쟁 배상금은 받지 못했다. 이 소식이 일본 국내에 전해지자 일본 여론은 폭발했다. 폭동이 일어나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 국민의 여론이 폭발한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큼을 이 책은 지적한다. 국제정세와 현실에 대한 솔직하고도 냉철한 보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언론은 어떤가? 언론의 선정주의는 진정 극복할 수 없는 과제인가?


... The Japanese people received little candid or useful information about the world beyond their shores... Nowhere in the Tokyo newspapers was it reported that Russia was moving reinforcements into Manchuria and was evidently willing to fight on rather than meet the term demanded, or that Japan was tottering on the verge of national bankruptcy. Truthful appraisals of Japan's limitations were rarely aired in public, and that was another part of the tragic pattern that would lead to the Second World War. (p. xx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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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 9
생 텍쥐페리 지음, 윌리엄 리스 해설,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사실 아무것도, 결코, 죽은 동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랜 친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공유했던 그 많은 추억, 함께 힘겨워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 그 많은 불화와 화해, 그 많은 마음의 동요라는 보배만큼 값지지 않다. 이러한 우정은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떡갈나무를 심고 그 그늘 아래서 쉬어보려 하지만 헛된 일이다.
그렇게 인생이 흘러간다. 우리는 우선 우리 자신을 충실하게 다지며 여러 해에 걸쳐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시간이 이러한 작업을 망치고 그 나무들을 베어버리는 세월이 온다. 동료들이 하나둘 우리에게서 자신들의 그림자를 빼내어 간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우리의 슬픔에 ‘늙어가는구나.‘라는 남모를 회한이 뒤섞인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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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2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5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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