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에 있었던 미드웨이 해전에 관련된 책 2권이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첫 번째는 파셜과 털리의 <미드웨이 해전Shattered Sword>이다. 미국에서는 2005년에 출간되었는데, 일본측 자료를 참고하여 새롭게 미드웨이 해전을 구성했다고 당시 칭찬이 자자했다. 특히 잘못 알려진 여러 사실들을 바로 잡아 미드웨이 해전에 얽힌 '신화'를 깨는 데 일조했다. 특히, 미드웨이에서 미국 해군의 승전이 역경을 이긴 값진 승리이긴 했지만, 종종 언급되듯이 '기적'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작전 당시 제1기동부대(항모 4척을 포함한 20척의 함정)에 248대의 항공기를 보유했는데, 이는 26척(항모 3척 포함)으로 구성된 미국 항모 기동부대의 항공기 보유 숫자인 233대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더욱이 미드웨이 섬에 주둔하고 있던 115대를 포함하면 오히려 일본군이 열세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데에는 야마모토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대표되는 일본해군 수뇌부의 작전 실패와 니미츠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대표되는 미국해군 수뇌부의 냉철한 계산이 큰 몫을 했다. 근원을 들어가 보면 이러한 작전을 세우고 수행하는 데에서도 뭔가 문화의 차이가 보이는 것 같다. 압도적 전력을 구축할 수 있음에도 이를 분산하여 막상 일선의 전투부대가 열세에 처하도록 한 데에는 지속적 승전으로 인한 상황 판단의 안이함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가정--미국 해군은 미드웨이 환초가 공격을 당한 후에야 움직일 것임--이 잘못될 수 있음을 믿지 않은 완고함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가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그에 따라 재빨리 계획을 수정해야 했지만 일본 해군은 그렇지 못했다. 여기에는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권위와 체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숨이 오가는 자리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물었을 때 누구나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니미츠 제독으로 대표되는 미국 함대는 철저히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 방법을 취했다. 니미츠는 소중한 항모 3척으로 도박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정보를 바탕으로 면밀히 계산해 본 후, 해볼만 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출항 명령을 내린 것이다. 


파셜과 털리의 책은 무척이나 상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자그마치 848페이지). 일본 해군이 계획을 잘못 세웠다고 해서 미국 해군이 승리를 거저 얻은 것은 아니다. 승리를 얻기 위해 미국 해군은 엄청난 피를 흘렸다. 운도 따랐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미드웨이>는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영화라서 극화가 좀 됐다고 생각).


가장 많이 손실을 입은 이들은 뇌격기 조종사 및 함께 탑승했던 항공병들이다. 출격했던 뇌격기는 사실 거의 돌아오지 못했다. 이는 뇌격-어뢰를 이용한 공격-을 위해서는 항공기가 수면 가까이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전투기 호위가 없는 뇌격은 함대 상공을 방어하는 적 전투기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 해군은 협력된 공격을 펼치지 못하고 허둥댔다. 그래서 전투기 호위 없이 공격한 수많은 뇌격기들이 공격을 하다가 격추됐다. 















<미드웨이 - 어느 조종사가 겪은 태평양 함대항공전(원제: Carrier Combat)>은 이러한 뇌격기 조종사의 경험담이다. 저자인 프레데릭 미어스Frederick Mears III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모를 상대로 출격하지는 못했다(호넷 함의 제8 뇌격비행대대VT-8 소속 신참이었으며, 출격했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후 솔로몬 제도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다가 1943년 6월 전사했다. 원서는 1944년에 출간됐다. 현재 미국에서도 절판인 상태인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모 4척을 격침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으로 국내에 출간된 것은 내가 알기로 없다. 미국에서는 엔터프라이즈 함 소속 돈틀리스 조종사였던 노먼 클리스Norman Jack "Dusty" Kleiss의 회고록 <Never Call Me a Hero>가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참고하시길. 마지막으로, 얇지만 좋은, Osprey 출판사에서 나온 <Midway 1942>를 다시 한 번 리스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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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prey 출판사에서 나온 Campaign 시리즈 <Midway 1942>에는 마크 스틸이 쓴 위의 책(2010.9 출간)과 더 오래 전에 나온 마크 힐리가 쓴 책(1994.1 출간)이 있다. 플래닛미디어에서 번역 출간된 <미드웨이 1942>는 더 오래된, 마크 힐리가 쓴 책이다. 1994년 책은 예전의 "신화"적 분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오류도 보인다.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가 공격을 시작했을 때 일본 항모 비행갑판에는 출격을 기다리는 공격기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예로 들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는 호넷 함에서 출격한 공격기들의 침로이다. 마크 힐리의 책은 엔터프라이즈 함과 호넷 함에서 출격한 공격기들이 동일한 방향으로 날았다고 지도에 표시했지만(<미드웨이 1942> 140~141 페이지), 호넷 함에서 발진한 공격기들은 엔터프라이즈 공격기들보다 좀 더 북쪽 경로로 날았다(마크 스틸의 책 51페이지 지도). 엔터프라이즈 공격기들은 올바른 방향인 침로 240도로 날아갔지만 호넷의 공격기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265도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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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2020-01-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Shattered Sword의 번역자 입니다. 소개해 주신 책 외에 Pacific Payback(, S.Moore, Penguin, 2014)도 추천할 만 합니다. 진주만부터 미드웨이까지 미 해군 폭격비행대의 SBD탑승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blueyonder 2020-01-05 16:05   좋아요 0 | URL
좋은 책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해 주신 책도 참고하겠습니다~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 위대한 방정식에 담긴 영감과 통찰 이언 스튜어트 3부작 3
이언 스튜어트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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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정식은 수학과 과학, 그리고 기술의 혈맥이다. 방정식이 없었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습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방정식을 보면 더럭 겁부터 낸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를 쓸 때, 출판사에서는 방정식 하나가 더 들어갈 때마다 책의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E = mc^2을 싣게 해 주었지만, 그 방정식이 없었다면 아마 1000만 부는 더 팔렸을 것이라고 투덜댔다고 한다. 나는 호킹 편이다. 방정식은 뒤편으로 밀어 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그렇지만 출판사들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방정식은 형식적이고 근엄하다. 복잡해 보이기도 하고, 방정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방정식에 폭격을 당하면 흥미를 잃기도 한다. (11~12 페이지)


  방정식의 힘은 수학이라는 인간 정신의 집합적 창조와 물리적 외부 세계 사이의, 철학적으로 쉽지 않은 교신에 바탕을 둔다. 방정식은 바깥 세계에 있는 심오한 패턴들을 나타낸 모형이다. 방정식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방정식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읽는 법을 배우면, 우리 주변 세계의 중요한 특성들을 깨달을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다른 방식들로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호보다 언어를 선호한다. 언어 역시 우리에게 주위 세계를 통제할 힘을 준다. 그렇지만 과학과 기술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언어는 애매하면서도 제한적인 면이 있어서 현실의 심오한 양상들과 소통할 수 있는 효과적 경로를 제공하지 못한다. 언어는 인간적인 가정들로 너무 많이 채색되어 있다. 언어만 가지고는 근본적인 통찰을 얻을 수 없다. (14~15 페이지)


  The power of equations lies in the philosophically difficult correspondence between mathematics, a collective creation of human minds, and an external physical reality. Equations model deep patterns in the outside world. By learning to value equations, and to read the stories they tell, we can uncover vital features of the world around us. In principle, there might be other ways to achieve the same result. Many people prefer words to symbols; language, too, gives us power over our surroundings. But the verdict of science and technology is that words are too imprecise, and too limited, to provide an effective route to the deeper aspects of reality. They are too coloured by human-level assumptions. Words alone can't provide the essential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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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2-2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인용문에 나오는 ˝교신˝의 원문 단어는 ˝correspondence˝이다. ˝교신˝이 아니라 ˝대응˝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기억할 만한 또 다른 영화. 두 명배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영화를 보며 크리스찬 베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잘 쓰여진 각본에 멋진 연기와 연출. 아무 생각 없이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간다. 나도 무엇인가에 저렇게 미쳐서 살고 싶다는 생각. 누군가는 옆에서 희생해야겠지...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의 바탕이 되었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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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9-12-2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너무 좋았어요!! 크리스찬 베일의 역할이 참 좋았구요. 이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읽어보니 좋더군요. 맷 데이먼이 크리스찬 베일하고 꼭 이 영화를 찍고 싶었다더군요. 지금도 기억나는 영상이 몇 개 있는데 생각만해도 가슴이 따뜻해져요.

blueyonder 2019-12-23 21:05   좋아요 0 | URL
‘배트맨‘의 크리스찬 베일만 알았었는데, 이렇게 멋진 배우인지 몰랐어요. 찾아보니 예전에 <Empire of the Sun>에서 아역 배우로도 나왔더군요. 맷 데이먼은 원래부터 좋아했는데, 이번에 크리스찬 베일의 엄청난 팬이 됐습니다!

즐거운 성탄 보내시길~~

2019-12-23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4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월 31일 개봉 예정인 영화 <미드웨이>. <인디펜던스 데이>의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에 에드 스크라인, 루크 에반스, 우디 해럴슨, 맨디 무어 등이 나온다. 에머리히 감독이 평소 만들고 싶어했던 인생 프로젝트라던데, 태평양 전쟁의 시작인 진주만 기습, 둘리틀 공습, 그리고 미드웨이 해전을 138분의 러닝타임에 욱여넣느라 무리했다는 얘기도 있다. 평론가들의 평은 그저 그렇지만 관객들 평은 괜찮은 것 같다. CG가 엄청 많을 것 같은데, 작은 화면으로 보면 유치해 보이지만 큰 화면으로 보면 의외로 볼만할지 모르겠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로는 2001년 작 <진주만>이 있다(마이클 베이 감독, 벤 애플렉, 조쉬 하트넷, 케이트 베킨세일 등 출연). 이 영화는 진주만 기습 이전의 얘기인 영국 전투에서 진주만 기습을 거쳐 둘리틀 공습에서 끝이 난다. 전투 부분의 고증이 정확하지 않아 전쟁 영화로는 별로라고 생각한다.


진주만 기습은 여러모로 볼 때 일본의 전략적, 전술적 실패였다는 평을 받는다. 일본 해군은 진주만에서 미국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키고 전쟁을 시작하고자 했지만, 미국 해군의 항모는 그림자도 못 본 채 전함만 파괴하고 진주만 기습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6개월 후 미드웨이에서 그 항모들에 의해 일본 해군 항모부대가 궤멸적 타격을 입는다. 사실 미국 해군이 일본 해군을 미드웨이에서 물리치는 얘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측면이 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의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기발한 대책(기책)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성향에 대해서는 <시사인>의 굽시니스트 만화가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기습을 위해 미국에게 선전포고 문서를 건네고 30분 후에 공습이 시작되도록 계획했다는 일본. 결국 선전포고 문서는 공습 개시 1시간 후에 건네졌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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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독일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미드웨이 해전이 그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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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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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도올 스타일이 잘 안 맞는다고 느꼈는데, 끝까지 읽고 난 지금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 용어를 잘 모르니 좀 어렵기도 했다. 용어와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면 읽는 재미도 있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초심자가 읽어도 괜찮을 것 같고, 많이 접해본 사람은 조금은 색다른 시각을 만날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책은 도올이 반야심경을 만나게 된 계기-그의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서 조선 불교 및 선사들 이야기, 초기 불교 역사를 거쳐 책의 절반이 지나서야 본론인 반야심경 이야기에 들어간다. 도올만큼 재가 많은 사람이 흔치는 않으리라. 또한 그만큼 일반 대중들과 소통을 갈구하는 지식인도 많지 않으리라. 이 책은 그의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로서, "반야"는 "지혜", "바라밀다paramita"는 "극치, 완성"을 뜻한다(187 페이지). 반야심경에는 우리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구절도 나오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의 구절도 나온다. 반야심경의 제일 마지막인 이 문구의 산스크리트어 원래 발음은 "가떼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로서 뜻은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라고 한다(238 페이지). 이 부분에 대해 도올은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이 주문은 종교적 주술로서 해석되면 곤란합니다. 여기 숨은 주어는 당연히 관세음보살입니다. 건너간 자,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자는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이 누구입니까? 나는 이 텍스트의 첫머리에서 이 <심경>을 읽고 있는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이 <심경>은 궁극적으로 내가 나에게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관세음보살이 누구입니까? "나"가 누구입니까? 이 나는 바로 보살혁명, 새로운 반야혁명의 주체세력입니다. 보리 사바하!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라는 뜻은 보살혁명의 주체세력들에게 바치는 헌사eulogy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주문을 외우면서 바로 여러분들의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보살혁명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야"의 궁극적 의미이겠지요. (238페이지)


"보살"은 "보리살타Bodhisattva"의 준말로서 "보리"는 지혜, 깨달음, "살타"는 본질, 실체, 마음 등의 뜻을 갖는다. 결국 보리살타는 "깨달음을 지향하는 사람", "그 본질이 깨달음인 사람"을 의미한다(162 페이지). 여기서 "혁명"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출가한 비구 중심의 소승 불교에서 벗어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대승 불교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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