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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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대번에 읽고 싶어졌다. 물리 현상의 의미를 기막히게 잘 짚어내는 김상욱 교수의 글이니까. '진동'과 '공명'보다 '떨림'과 '울림'은 훨씬 더 문학적이고 인간적이다. 차례 역시 기막히다. 우주와 우주의 구성요소, 세계의 '해석', 힘과, 힘이 연결하는 '관계', 그리고 '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읽는 법'에 대하여라니... 


다음은 프롤로그의 글이다.


  나는 이 책에서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보는 물리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말해주려고 한다. 사실 물리는 차갑다. 물리는 지구가 돈다는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이보다 경험에 어긋나는 사실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구는 돌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주의 본질을 보려면 인간의 모든 상식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물리는 처음부터 인간을 배제한다. 

  이 책은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해보려고 했다. 나는 물리학자다. 아무리 이런 노력을 했어도 한계는 뚜렷하다. 그래도 진심은 전해지리라 믿는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설렘이 다른 이들에게 떨림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울림은 독자의 몫이다. (7페이지)


책은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김상욱의 물리공부'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쓴 것이 아니며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이 주이므로, 책 전체가 완전히 정합적이거나 자세한 기술적 논의가 있지는 않다. 멋진 차례를 갖게 된 것은 김상욱 교수도 프롤로그에서 인정하듯 편집자의 공일까. 


책의 주요 대상은 아마도 물리를 어려워했지만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과 전공자들이나 물리 책을 많이 읽은 이들에게 새로운 내용이 많지는 않다. 프롤로그에 언급돼 있듯 기초적 물리 개념에 그의 감상--그의 '떨림'--과 생각이 추가된 것인데, 그의 예전 책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읽은 내겐 그 신선함이 좀 떨어졌다. 이과 전공생--물론 졸업한 지 한참 된 이--에게 이 책을 보여주었더니 '모든 글이 서문같다'는 감상평이 돌아왔다. 자세한 논의는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세상은 운동이다'라는 장의 일부분이다. '운동은 위치의 문제'라는 소제목 다음에 좌표를 쓰기 위한 '기준점'에 대해 얘기한다.


... 해운대는 부산역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11킬로미터, 북쪽으로 4.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다. 광안리를 기준으로 하면 동쪽으로 2킬로미터가 된다. 기준점은 아무 곳이나 잡아도 될 거 같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태양이 돈다는 천동설은 내가 기준점이 되는 기술이다. 하지만 기준점이 움직이고 있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런 경우 누가 운동의 기준점이 되어야 할까?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온다.


  운동법칙


  이제 운동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그렇다면 운동을 기술하는 법칙이 있을까? ... (231~232페이지)


이 책의 스타일 하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수상대성 이론 얘기를 슬며시 꺼내고 아무런 설명 없이 넘어간다. 전공자는 안다. 무슨 얘기인지. 하지만 비전공자는 모른다. 얘기를 꺼내면 설명해 주던지, 아니면 아예 얘기를 꺼내지 말든지. 신랄하게 얘기하면, 나는 알지만 이 얘기는 너무 어려우니 더 이상 안 할께,의 태도이다. 정확성을 위해서 특수상대성 이론을 언급해야 했다면 각주로 처리하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감도는 이런 분위기가 내겐 좀 불편했다.


책 내용의 몇 부분을 다음에 기록해 놓는다.


  하나의 입자는 시작도 끝도 없는 절대시간 위를 움직인다. 여기에는 시간의 방향도 없다. 수많은 입자가 모이면 비로소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새로운 현상들이 창발創發한다. 인간 역시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새로운 실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고민하는 실체다. (117페이지)

  전하가 있으면 그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장이 펼쳐진다. 중력도 마찬가지다.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에는 중력장이 펼쳐진다. 전기장을 흔들면 전자기파가 생기듯, 중력장을 흔들면 중력파가 발생한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 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172페이지)

  오늘날 물리학자의 [세상] 이해방식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텅 빈 공간이다. 빈 공간 안에서 물체가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물체와 움직임, 두 가지다. 태양, 자동차, 스마트폰, 인간과 같은 모든 것이 물체에 해당하며 이들은 아주 작은 원자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다. 원자를 '레고'블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그러면 세상 모든 것은 빈 공간에 놓인 레고블록의 조립물이라는 말이다. 이런 관점은 당연하지 않다. 물체가 존재하고 운동하는 배경이 되는 빈 공간, 그러니까 '진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때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반대했다. (230페이지)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증거가 쌓여가자 결국 물질과 파동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파동은 물질이 운동하는 방식의 하나가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결국 양자장론이라는 분야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서는 파동으로부터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질의 궁극을 탐구하던 현대물리학은 세상이 (상상도 할 수 없이 작은) 끈으로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초끈이론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작은 끈의 진동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물질들이 만들어진다. 당신이 기타로 '도'를 치면 코끼리가 나오고, '미'를 치면 호랑이가 나온다는 말이다. 결국 세상은 현의 진동이었던 거다.

  우주는 초끈이라는 현의 오케스트라다. 그 진동이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은 다시 진동하여 소리를 만든다. 힌두교에서는 신을 부를 때, 옴aum이라는 단진동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렇게 소리의 진동은 다시 신으로, 우주로 돌아간다. 결국 우주는 떨림이다. (242~243페이지)


읽어보니 오타가 3군데 정도 있다. 오기 또는 더 좋은 표현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222페이지: "가장 최근 에너지의 목록에 추가된 것은 '암흑물질'이다.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는 가속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가상의 존재다." 여기서 '암흑물질'은 '암흑에너지'로 바뀌어야 한다.

- 231페이지: "운동은 공간의 선, 즉 도형이 되고, 이 도형은 숫자로 표현된다. 숫자는 수식으로 다룰 수 있으니 운동을 수학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 이 때문에 중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우리는 '함수'라는 것을 배운다. 함수는 수식과 도형을 연결해주는 장치다." 여기서 '함수'를 '방정식'으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과 비슷한 의도이지만 약간 다른 책이 마쓰바라 다카히코의 <물리학은 처음인데요>이다. 내 '개인적' 취향으론 <물리학은 처음인데요>가 더 좋은 것 같다.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마쓰바라 다카히코의 '건조함'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에서 좋았던 것 한 가지만 고르라면 맥스웰 방정식에 대한 부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현대 문명의 모습을 결정한 수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174페이지).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책은 많지만 패러데이나 맥스웰에 대해 논의하는 대중 과학책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 그에 대한 논의와 의의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맥스웰에 대한 김상욱 교수의 평: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알아도 맥스웰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뉴턴은 물리학의 토대를 세우고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뒤집었다. 맥스웰은 현대 문명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184페이지)


1903년 대서양 너머 무선통신에 성공한 마르코니는 이 업적으로 190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고 한다(180페이지). 몰랐던, 하지만 신선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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