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이 지구 상에서 초기 우주의 상황을 실험하고자 사용하는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 이 LHC에 대한 수치들이 책에 나와 옮겨 놓는다. 저자는 이 실험장치를 "인류가 건설한 가장 거대하며 가장 복잡한 기계(the largest and most complex machine that humandkind has ever built)"라고 말한다. LHC는 보통 '유럽입자물리연구소'로 번역되는 CERN의 시설이다. 


먼저 크기.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걸쳐 있는 터널에 설치된 이 원형 입자가속기는 둘레가 27 km이다. 가속기 주변에 있는 1,600개 이상의 초전도 자석이 양성자들을 가속시킨다. 초전도 자석이 만드는 자기장의 세기는 지구 자기장의 100,000배 이상이다. 초전도 자석은 절대온도 1.9도(1.9 K)에서 작동한다. 이 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거의 100톤의 액체 헬륨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1.9 K는 우주 공간의 온도인 2.7 K보다 더 낮다. 


가속기 내에서 양성자들은 빛의 속력의 99.999999퍼센트까지 가속된다. 이 속력에서 양성자들은 27 km의 가속기 둘레를 1초에 11,000번 돈다. 양성자는 혼자 도는 것이 아니고 1천억 개 이상 무리 지어 돈다. 가속기 둘레의 4곳에는 이렇게 가속된 양성자들이 정면충돌하는 검출기 시설이 있다. 양성자-양성자 정면 충돌이 한 번 일어날 때에는 13,000 기가전자볼트(GeV)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검출기 중의 하나는 ATLAS라고 불리는데, 이 장치의 길이는 46미터이고 무게는 7,000톤이다. 아주 작은 비율로 양성자-양성자 충돌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검출기 안에서는 1초에 약 7억 번의 비율로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숫자들은 사실 인간에게는 감이 잘 안 온다. 그냥 엄청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입자가속기(또는 충돌기)들은 요새 영화에 종종 등장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에도 나왔고(CERN이 주무대였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도 나온다. 


<Wikipedia에서 가져온 ATLAS 설치 당시 찍은 사진. 아래 쪽에 있는 사람을 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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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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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에 대한 글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이 듦과, 나이가 듦에도 나이 들지 않는 마음에 대한 책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나이 든 누구나 느낀다. 지난 날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게 느낀다. 그럼에도 마음은 늙지 않아서 거울을 보면 아직도 거울 속의 내가 낯설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든 나를 조금씩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나이 든 나를 받아들임에도 문득 나이를 잊도록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육체적 갈망인 모양이다. 작가는 그러한 모습을, 젊음의 싱그러움과 그것을 사랑하는 노작가의 갈망을, 시인 이적요를 통해 보여준다. 시인 이적요는 결국 죽음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고자 하지만, 난 안다. 죽음은 아무 것도 완성하지 않는다. 죽음은 과정일 뿐이다. 나의 젊음은 자식에게로 이어진다. 우리는 자식으로 이어지는 젊음을 통해, 내가 죽어도 이어지는 생명을 본다. 그러므로, 난 주장한다. 사랑이 내리 사랑이듯, 삶은 내리 삶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동물성(또는 생명성)을 잊는다. 우리는 생명의 사슬을 잇는 한 역할을 맡고 있다. 생명은 이어지고 우주는 돌아간다. 그저 그뿐이다. 


굳이 사족을 덧붙이자면, 세대는 단절될 수밖에 없다.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난 같은 세대가 왠지 정겹다. 같은 운명공동체니까. 스러지는 인생에서, 같이 나이 드는 서러움을 얘기하고, 또는 나이 듦으로써 반대로 얻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갖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듯 싶다. 문학작품 감상을 적다가 너무 교훈으로 흘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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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수 있는 건 없고 읽고 싶은 책들이 눈에 띄어 모아 놓는다. 













먼저 <버추얼 히스토리>. 만약 역사가 다르게 전개됐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여러 역사학자들이 논의하는 책이다(600페이지). 이름하여 '가상 역사'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여러 우연 또는 필연이 겹쳐 전개됐던 역사가 만약 그 핵심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당시에 작용하던 '역사적 힘'을 살펴보는 연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일까를 인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464페이지).















<마지스테리아>. 과학과 종교가 얽히며 펼쳐낸 역사에 관한 책이다(720페이지). 서구에서 과학은 종교적 열망에서 태어났고('신의 비밀을 밝히다'), 종교와 갈등하다가, 이제는 종교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과학과 종교는 갈등한다. 특히 기독교에서 그렇다.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독일인의 전쟁 1939-1945>. 파국으로 끝났던 2차대전을 수행했던 독일인들에 관한 책이다(976페이지). 부제가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이다. 끔찍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름이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찬란한 5월이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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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생 네 권’을 적어본다. 당장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중학생 때 이 책을 읽고 수학에 자신이 없음에도 이과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 내 인생을 결정한 책이 맞다. 
















실제 읽은 책은 위의 책이 아니고 당시 학원사에서 나온 서광운 역의 책이었다. 광대한 우주와 그 속의 먼지 같은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코스모스>가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는 평이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는 순서대로 읽지 말고 중간 아무 데나 펴서 마음 가는 대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읽었다. 


두 번째부터는 나름 고민해서 내게 깨우침을 준 책들 위주로 골랐다. 


먼저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이다. 다시 칼 세이건. 내가 가지고 있던 인간중심적 편견을 깨뜨렸다. 

















세 번째는 <우발과 패턴>이다. 내가 읽을 때는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로 출간됐었다. 수학을 이용해 자연을 기술하는 것에 대한 깨우침을 내게 줬다. 
















마지막 네 번째로는 감탄하며 읽은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이다. 상자 속의 물리를 통해 얻어낸 물리 법칙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통찰을 줬다. 
















책이란 인류 정신의 보고이다. 책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주변에 내 인생의 멘토가 없더라도 책 속에서 멘토를 찾아 그의 생각을 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요즘에는 책 대신 짧은 영상이 정보 전달 매체로 이미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존성과 긴 호흡으로 인해 책은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당신이 바로 책의 수호자이다. 


‘인생 네 권’을 고르며 다시 한 번 느낀 것. 나는 어쩔 수 없는 이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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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4-24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이과 욘더님…. (귀하다)!!! 우발과 패턴… 저도 읽을 수 있을까요?????;;;;;;

서곡 2024-04-24 17:40   좋아요 2 | URL
님은 드래곤라자를 읽으셨지 않습니까요

공쟝쟝 2024-04-24 17:41   좋아요 2 | URL
퇴마록이랑 해리포터도… (문과랑 상관 없음)

blueyonder 2024-04-24 19:29   좋아요 1 | URL
공쟝쟝 님, (귀하다)!!!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우발과 패턴>은 제목이 너무 무섭게 바뀌었는데, 사실 제목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책 자체는 임계 현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데 그 이유가 지진이 바로 임계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예가 나옵니다. 역사적 예도 있습니다. ^^

공쟝쟝 2024-04-24 19:36   좋아요 1 | URL
제가 아는 알라디너중 이과는 수하님 한 분ㅋㅋㅋ 저는 김상욱님으로 물리학 입문 ㅋㅋㅋ!! 카를로 로벨리 처럼 쌩 초보 문과도 읽을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blueyonder 2024-04-24 19:39   좋아요 1 | URL
참, 다친 다리 빨리 쾌유하시기 바랍니다~

blueyonder 2024-04-24 19:58   좋아요 1 | URL
저도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읽으며 그 재기에 감탄했습니다. 로벨리의 책은 글이 아름답지만 사실 내용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발과 패턴>은 일단 예들이 우리 주변의 것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주변 도서관에 있으면 한 번 빌려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공쟝쟝 2024-04-24 20:23   좋아요 1 | URL
귀한 문이과 통합 인재 블루 욘더님, 감사합니다! 분발해서 조금이라도 그 세계를 이해하는 참된 독서가가 되도록🙄

서곡 2024-04-24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이과의 위엄 ㄷㄷㄷ 막줄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blueyonder 2024-04-24 19:30   좋아요 1 | URL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이과이지만 책 좋아하는 것은 문과 성향이지 않나 싶습니다. ^^

페넬로페 2024-04-24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과생의 탁월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그 독서의 세계가 부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코스모스는 읽었어요^^

blueyonder 2024-04-24 19:50   좋아요 3 | URL
<코스모스>를 읽으셨다니 반갑습니다. ^^ 저도 앞으로 문학을 많이 읽고 싶습니다.

새파랑 2024-04-24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전 이과 책 네권이네요 ~! 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겠네요~!!

blueyonder 2024-04-24 20:45   좋아요 2 | URL
저는 다른 분들 인생네권을 보면서 문학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단발머리 2024-04-25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 보고 안심하는 저는 누구인가요? 다른 책들도 도전해보고 싶은데 어려워 보이네요.
어렵지 않다고요? 압수수색 들어옵니다 ㅋㅋㅋㅋㅋㅋ 조심해 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ueyonder 2024-04-25 10:46   좋아요 2 | URL
<코스모스> 보고 안심하셨다니 단발머리 님과 동질감을 느낍니다~ <시간의 물리학>은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다른 책들은 읽어볼 만하다고 말씀드리려다가... 압색이 무서워서 취소 ㅎㅎㅎ 제게는 단발머리 님 읽으시는 책들이 어려워 보입니다 ^^;;

페크pek0501 2024-04-28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높은 수준의 책들이라 저는 읽을 용기가 나지 않네요. 훌륭하십니다. 저도 나중엔 도전해서 훌륭해지고 싶군요 ^^

blueyonder 2024-04-28 14:11   좋아요 1 | URL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그냥 성향에 따른 ‘다름‘일 뿐입니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코스모스>부터 읽어보시길 추천 드려요. 위에도 적었다시피, 순서대로 읽지 마시고 관심 가는 아무 데나 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4-04-29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과시군요
제가 보기엔 선택하신 책들이 문학적 취향도 있다고 생각되요.
특히 코스모스는 제게는 더욱 그랬습니다.^^

blueyonder 2024-04-29 10:11   좋아요 1 | URL
네 <코스모스>가 문학적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 우주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그럼에도, 그러니까, 그만큼 더 소중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According to Einstein's equations, a universe with a high density of matter will not only be positively curved, but will also ultimately contract, bringing all points in space closer together as time progresses. On the other hand, a lower density universe will have a negatively curved geometry and will expand forever. (pp. 28-29)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따르면 물질 밀도가 높은 우주는 양(+)으로 휘어질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수축한다.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간 내의 모든 점들이 가까워진다. 반면 물질 밀도가 낮은 우주는 음(-)으로 휘어지며, 영원히 팽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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