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그처럼 받아들이기 싫어했던 양자역학의 반실재론적 특성을 어떻게 실재론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스몰린의 제안을 제시한 책이다. 실재론, 반실재론--또는 실재주의, 반실재주의--가 책에서 논의하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영어 단어는 realism, anti-realism이다. 역자는 이 단어를 "현실주의", "반현실주의"로 번역했는데,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여기서의 realism은 철학 용어로서, 관찰자의 외부에 객관적인 실재(reality)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이를 "현실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이상주의"의 반대말의 뜻으로 잘못 전달할 우려가 있다.


일찍이 역자는 <퀀텀스토리>에서 realist를 "실존주의자"로 번역한 적이 있다. "현실주의자"는 "실존주의자"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재론자" 또는 "실재주의자"가 정확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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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몰린Lee Smolin은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로 캐나다 페리미터 연구소Perimeter Institute의 교수이다. 양자중력 이론의 하나인 고리양자중력 이론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현재 입자물리학의 주류인 초끈 이론에 매우 비판적이다. 초끈 이론이 별다른 실험적 예측 결과를 내놓지 못하며 거의 무한 개에 육박하는 우주가 가능하다는 '우주의 풍경' 개념을 제시하자, 과학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 보자는 주장을 하며 초끈 이론과 대척점에 서 있다. 현대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이 맞닥뜨린 문제의 실험적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여러 도발적이며 획기적인 주장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친구인 카를로 로벨리의 책은 이미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됐지만, 최근 스몰린의 책도 번역, 소개되고 있어 반갑다.


가장 먼저 번역되어 소개된 책은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이다.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다음의 2권이다. 원서는 <Time Reborn>이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에 <Einstein's Unfinished Revolution>이 나왔는데, 국내에서는 그 순서가 반대로 2021년, 2022년에 연달아 출간됐다.






























2006년 출간되어 화제가 됐던 <The Trouble with Physics>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다.

















우주의 진화를 다룬 <The Life of the Cosmos>도 번역되지 않았다.
















스몰린은 철학자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Roberto Mangabeira Unger와 시간의 실재성이 우주론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The Singular Universe and the Reality of Time>을 썼는데, 이 책도 번역되지 않았다.
















가장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현대 물리학의 '반역자' 중 하나라고 할 스몰린의 책이 좀 더 국내에 소개되기를 바란다. 특히 <The Trouble with Physics>는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끈 이론과 입자물리학의 현재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과연 번역이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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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욘더님 덕분에 이리 훌륭한 과학책 알게 되네요 캄솨 ^^

blueyonder 2022-10-01 15:35   좋아요 0 | URL
^^ 독서와 함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About Time: Cosmology and Culture at the Twilight of the Big Bang (Paperback)
Adam Frank / Simon & Schuster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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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프랭크Adam Frank는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천체물리학 교수이다. 그는 우주론에 대한 그의 교양 강의에서의 당혹스러움으로 책을 시작한다. 현대의 표준 우주모형인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꼭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빅뱅 이전'이 제대로 탐구되지 않은 영역이지만 현재 맞닥뜨린 여러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제안들로 인해 이제 새로운 우주모형이 나올 가능성을 언급하며 책을 시작한다. 


그가 책에서 의도하는 바는 크게 2가지이다. 첫 번째, 인류의 시간에 대한 개념이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시간 개념에는 당대의 우주론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므로 시간에 대한 문화사와 더불어 과학사가 덧붙여진다. 이 두 역사의 기저에는 당대의 물질적 조건이 공통으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인류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고찰은 저자의 두 번째 의도인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낳는다. '시간'과 '우주'는 인류가 만드는 것이다. 물리학이 밝힌 우주의 모습이 '객관적 진리'라는 여러 물리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저자는 우리의 우주론이 실제 우주의 '일면'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현대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이 당면한 여러 근원적 문제들의 영향이며, 물리학이 이제 어느 정도 한계를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이제 새롭게 제기되는 순환 우주를 포함한 새로운 우주론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간 개념을 제시할 수 있으며, 반대로 우리의 물질적 조건이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우주론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 등 현대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가 새로운 문화와 체계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시대적 필요와 물질적 조건이 우주론과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아 새로운 전망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인상 깊은 것은, 현대 우주론에 의해 우주의 중심에서 우주 주변의 먼지와 같은 존재로 격하된 인류의 존재 의미를 다시 찾자는 저자의 주장이다. '우주'란 인류가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우리 자신을 차가운 우주의 주변부로 격하할 필요 없이, 우주를 관측하고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인간이란 우주에 비하면 크기와 수명과 힘에서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 보잘 것 없는 머리에서 우주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알아냈고 이제 그 신비를 음미할 수 있으니 나름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다.


전신(telegraph)이 어떻게 전지구적으로 동시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는지, 미국의 철도 보급이 어떻게 지역별로 시간대를 정하도록 촉진하는지 등 여러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책이 좀 추상적이고 모호한 점이 있어서 별 하나를 뺄까 했지만 이처럼 흥미로운 내용은 별 다섯을 주게 한다.


   Time after time, we have never been anything other than collaborators with the universe. Always and again we have been the co-creators of a time and a cosmos that exist together with us. That is what makes our story anything but insignificant and makes our universes anything but meaningless. We have always been weaving the fabric of our experience into a culturally shared time and, in the process, have become ever more intimate with a universe that has always invited our participation. With each step we gain a deeper sense of the awe and beauty that suffuse the universe's essential mystery. If we can trace our steps from the past and see our way clearly into the future, then certainly there is time enough for that great effort to continue with renewed clarity and purpose. (p.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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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번역서는 2015년 출간된 <시간 연대기>이다. 원서는 2011년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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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introduction of mechanical clocks shifted the organization of the European day and eventually provided a new metaphor for the heavensprecise, cosmic clockwork set in motion by God’s hand. Centuries later, the introduction of steam power set the industrial revolution’s new machine age in motion and drove the rhythms of its workers’ punch-clock lives. The science of thermodynamics, emerging from those steam-powered machines, advanced a new understanding of time and transformation in terms of energy, entropy and evolution. Thermodynamics yielded its own metaphors and conceptual tools that reshaped cosmological thinking. Then, just before the dawn of the twentieth century, trains and telegraph wires created new experiences of simultaneity across vast distances.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used its own new vision of simultaneity as a pivot point for merging space and time into space-time. Once a fully relativistic account of space-time and its flexible geometry was available, cosmology was given its first complete language. Always and again, transformation in cosmic and human time surged back and forth, each one supporting the other in metaphorical and material realms.

   By the last decades of the twentieth century, silicon technology dominated our material engagement with the world. Machines make possible by silicon microcircuitscomputers, personal digital assistants, cell phones and GPS deviceswere accelerating the immediate and very personal movement through daily life. These silicon “machines” moved at speeds so fast their cadence was far more native to atoms than to humans. By building culture timed to their clock cycles, our own time and experience were compressed in ways both thrilling and exhausting. In both our working and personal lives we were expected to do more because these machines would make it possible...

   At the same time, the scientific capacities unleashed in the computer age pushed our cosmic narrative of the Big Bang to its limits. Computer simulations, massive data-gathering projects and space-based telescope platforms revealed new challenges to any cosmology that would begin with a beginning. In closing years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pace of life, time and cosmic evolution all were set in a permanent state of acceleration. (pp. 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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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rief Eternity : The Philosophy of Longevity (Hardcover)
파스칼 브뤼크네르 / Polity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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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어가는 방법'에 대한 레시피라기보다는 '늙어감'에 대한 일반적 감상과 의미에 대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난 사실 전자라는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것은 늙어감에 대한 슬픔이다. 이건 아무리 어떤 철학적 의미를 붙여도 어쩔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어감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나이 50이 되지 않은 이들은 이 책을 읽지 말기를 바란다고 썼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내게도 올 노년을 생각하며, 지금의 노년들을 이해하길 바란다면, 그리고 지금의 삶을 좀 더 충실히 살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젊음이 괜히 젊음인가? 그렇게 삶에 신중하다면 아마 젊음이 아닐 것이고, 아마 누가 뭐래도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노년에 대한 답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날마다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호기심을 잃지 않고 세상을 계속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베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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