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사는 신에 대한 나의 애매한 말은 머지않아 확실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모든 아이가 종교 수업에서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슈텔라의 종교 선생은 매우 친절하고 의욕이 넘치는, 젊은 가톨릭교도였다. 발표할 차례가 되자 슈텔라는 신이 하늘에 사는지는 확실치 않고, 그래서 교황은 혹시라도 신이 안 보일까 봐 염려되어 갈릴레오가 하늘을 관찰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말했다.-22쪽
종교 담당 선생은 곧장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선생은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 가톨릭교회의 실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보기에 그건 아주 복잡한 문제여서 아이들과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선생은 우선 아이들이 순수한 신앙을 갖게 되기를 원했다. 교회가 오랜 역사 속에서 때때로 진리의 편이 아니었다는 점을 아이들은 차차 배우게 될 것이었다.-22쪽
나는 선생에게 전적으로 동의했다. 슈텔라가 시건방진 무신론자가 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절대로 아니었다. 또 하나 인정해야 할 것은,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가 천문학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우주론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점이다. 매우 놀랍게도 말이다.-22쪽
예컨대 오늘날 우리는 우주에 시초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우주는 130억 년 전에 빅뱅에서 시작되었다. 빅뱅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에너지와 빛의 대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에 에너지가 물질로 변환되었고, 그 물질에서 수십억 년에 걸쳐 별들과 행성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창조의 첫 날에 하늘과 땅과 빛이 만들어졌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천문학적 사실들에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창조의 첫 날이 실은 대략 80억에서 90억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23쪽
이어서 약 45억 년 전에 태양 곁에서 먼지와 뜨거운 돌들이 뭉쳐 지구가 생겨났다. 지구는 점차 식었고, 단단한 지각이 형성되었다. 뜨거운 수증기는 비가 되어 내렸고, 움푹한 자리들에 물이 고여 바다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일은 창조의 둘째 날에 일어난 사건들과 일치한다. 신은 이날에 우선 ‘물과 물 사이‘를 가르는 ‘창공‘을 만들어 물을 ‘창공 아래의 물과 창공 위의 물‘로 나눴다. 이 단계는, 초기 지구의 뜨거운 대기가 수증기와 물방울로 가득 차 있었다는 천문학적 사실과 놀랄 만큼 일치한다. 당시에 물은 위와 아래를 가릴 것 없이 도처에 있었다. 그리고 대략 10억 년이 지나서야 하늘과 물이 헤어졌다.-23쪽
곧이어 셋째 날에 신은 ‘뭍‘, 곧 땅과 ‘모인 물‘, 즉 바다를 창조했다. 지질학의 관점에서 보면, 초대륙 판게아와 지구 표면의 나머지 거대한 면적을 뒤덮은 초대양 판탈라사가 생겨났다. 이어서 신은 판게아에 식물이 살게 했다. 이것 역시 동물보다 먼저 식물이 땅을 정복했다는 진화론의 지식과 정확히 일치한다.-24쪽
넷째 날은 특히 경탄을 자아낸다. 이날에서야, 그러니까 식물을 만든 다음에야 신은 별들과 ‘두 큰 빛‘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둘 가운데서 큰 빛으로 낮을 다스리게 하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했다. 이 대목과 관련해서는, 초기 지구의 대기가 식은 뒤에도 상당히 불투명했음을 떠올려야 한다. 당시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와 질소였다. 그 대기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능력을 지닌 식물이 생겨난 뒤에 비로서 어느 정도 투명해졌고, 그제야 해와 달 그리고 행성들과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4쪽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에 신들이 산다고 믿던 시절에 생겨났다. 그 시절에 창세기는 해와 달을(그것들이 초자연적 힘의 상징이라는 당대의 선입견을 부수고) 그 진면목대로 하늘의 빛들이라고 묘사했다. 이 묘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할지 몰라도 3천 년 전에는 가히 혁명이었을 것이다. -24쪽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인류에게 철학적 이정표였지만, 신에게는 힘겨운 한 걸음이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신은 하늘에서 낯선 신들을 몰아냈을 뿐더러 논리에 맞게 자기 자신도 몰아냈다. 창세기는 신이 별들 사이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을 슈텔라에게 언젠가 꼭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종교 담당 선생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지금 당장 말하는 것은 누가 봐도 너무 성급할 듯했다.-24쪽
"그런데 우주는 어째서 캄캄해? 항상 낮이면, 안 되나?" 나는 ... 밤의 어둠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까 곰곰히 생각했다. 쉬운 설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밤하늘이 왜 어두우냐는 질문의 배후에는 천문학의 커다란 수수께끼가 웅크리고 있다. 그 수수께끼를 풀려면 자그마치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알아야 한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주가 무한히 크고 별들로 채워져 있다면, 하늘의 모든 위치에서 별이 보여야 한다. 검은 종이에 흰 점을 무한히 많이 찍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언젠가 종이는 흰 점들로 빈틈없이 뒤덮일 테고 따라서 하얗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한히 많은 별이 있는 우주는 캄캄하지 않고 환해야 한다. 그런데 밤하늘은 환하지 않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주의 크기가 유한하고 별들이 검은 종이와 같은 밤하늘을 빈틈없이 뒤덮을 정도로 많지 않거나, 아니면 우리와 별들 사이에 있는 무언가가 별빛을 삼켜 버린다.-134쪽
첫 번째 경우에 우주는 무한히 크지 않고 어딘가에서 끝나야 한다. 하지만 우주에 경계가 있을까? 우리가 계속 나아가면, 이를테면 새까만 벽이 나타나서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될까? 우주의 경계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새까만 벽이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곧바로 우리는 ‘그 벽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라고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너머에 무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비록 그 무언가가 빈 공간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경우, 그러니까 우리와 별들 사이에 있는 무언가가 빛을 삼킨다는 것이 더 나은 결론인 듯하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이 이론 역시 문제가 다분하다. 빛을 삼킨다는 것은 빛의 에너지를 포획하여 저장한다는 뜻이다. 우주에서는 아무것도 사라질 수 없다. 에너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와 별들 사이에 있는 어두컴컴한 물질 구름(암흑 물질 구름)은 별빛의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 구름은 아주 천천히 데워져야 하고 결국 언젠가는 미약하게나마 빛을 내기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그 구름은 별들만큼 환하게 빛나야 한다.-135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별들 사이에 차갑고 어두컴컴한 물질 구름들이 있다면(실제로 있다.) 우리는 우주가 아직 덜 늙어서 그 구름들이 빛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우주에 있는 차가운 물질은 우리 우주가 무한히 늙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우주는 과거 어느 때에 발생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밤하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주가 무한히 크고 오래되었다는 생각과 밤의 어둠이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이 같은 논변은 ‘올베르스의 역설‘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사에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브레멘의 의사 겸 천문학자 하인리히 올베르스Heinrich Olbers가 1826년 처음으로 이 논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우주론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했고 결국 옳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가 무한히 크고 늙지 않았음을 안다. 우리는 우주에 시작이 있음을 안다. 우주는 130여 억 년 전에 빅뱅이라는 거대한 에너지 섬광으로부터 발생했다.-136쪽
"... 우리 안의 나는 보이지 않는 반면, 별들이 빛나는 하늘은 우리 위에 너무나 분명하고 거대하게 있지. 정말 누가 봐도 둘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아. 하지만 그런데도 칸트는 나와 별들이 빛나는 하늘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아챘어.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은 자기가 거대한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느끼게 되지. 그러면서 이렇게 묻게 돼. 무엇을 위해 이 모든 것이 있을까? 혹시 나를 탄생시키려고?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일까? 그리고 모든 질문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질문, 혹은 가장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란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가 존재할까? 따지고 보면 우주 전체는, 제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의 머릿속에만 있거든.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는 것들, 그러니까 그림들과 소리들과 냄새들은 알고 보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비로소 발생하거든. 느낌과 생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얽혀 있기 때문에, 사물들을 분리하고 또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우리 천문학자들은 범위를 좁혀서 별과 우주만 이해해 보기로 했단다. 아마 현명한 선택일 거야. 우주는 비록 ...-148쪽
... 거대하지만 우리 안의 나에 비하면 그래도 전체적으로 굽어볼 만한 대상이거든." "아빠, 이거 알아?" 슈텔라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철학자들은 말만 요란하지, 실은 멍청한 것 같아." "글쎄...... 어째서?" "당연하잖아. 세상이 없으면, 우리도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겠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우리가 없어도, 세상은 있어. 보라고, 내 말이 맞잖아. 철학자들은 멍청이야."-149쪽
또 여덟 번째 행성인 해왕성 너머에는 또 다른 천체들의 구역이 있다. 우리 천문학자들은 그 천체들의 정체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밀한 측정 방법들을 동원하여 그 구역에서 태양 주위를 도는 천체 수천 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천체들 중에서 적어도 하나는 명왕성보다 더 크다. 명왕성은 60년 동안 모든 교과서에서 아홉 번째 행성으로 소개되었던 천체로 역시 그 해왕성 너머의 구역에서 태양 주위를 돈다. 마지막으로 더 멀리 태양계의 가장자리에는 얼음 조각들과 돌 조각들로 이루어진 ‘오르트구름‘이라는 껍질이 있다. 이따금씩 그 껍질에서 이탈하여 태양에 접근하는 개별 천체는 우리의 눈에 혜성으로 관찰된다.-157쪽
그렇다면 행성이란 무엇일까? 국제천문연맹이 내린 매우 전문적인 듯한 정의는 이러하다. 행성이란 별 주위의 궤도에 있으며 모양이 둥글고 자기 궤도 주변의 다른 천체들을 깨끗이 청소했으며 그 자신이 별은 아닌 천체다. 명왕성은 이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에, 국제천문연맹은 2006년 8월에 명왕성을 행성들의 목록에서 삭제했다.-157쪽
요컨대 명왕성을 행성으로 간주하지 않고 새로운 등급인 난쟁이행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난쟁이행성이 됨으로써 명왕성은 엄밀히 말해서 오히려 격상되었다. 태양계 변방의 보잘것없는 행성에 불과했던 명왕성이 자기 근처에 있는 모든 난쟁이행성을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오늘날 명왕성 근처에 있는 모든 난쟁이행성은 명왕성체(영어로 Plutoid)라고 불린다.-159쪽
우리의 시간 분할 방식은 흔히 이야기되듯이 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낮 시간을 열두 부분으로 나눈 것은 아마도 10과 달리 12가 천문학적 의미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달은 1년 동안 지구를 대략 12번 돈다. 게다가 12는 또 다른 장점을 지녔다. 12는 2, 3, 4, 6으로 나누어 떨어진다. 다시 말해 10은(1과 자기 자신을 제외한) 인수가 2와 5 두 개 뿐인 반면, 12는 네 개나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분수 계산에 능숙하지 않았으므로, 12가 인수를 많이 지닌 것은 유용한 장점이었다. 예컨대 낮 시간을 12부분으로 나누면, 낮의 절반뿐 아니라 1/3과 1/4도 간단히 표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193쪽
더 나아가 역시 천문학적인 이유에서 사용되었으며 12와 아주 잘 어울리는 또 다른 숫자 체계가 있었다. 1년은 365일이기 때문에, 일찍이 수메르인들은 원을 360조각으로 구분했다. 그렇게 한 바퀴 회전을 360도 회전으로 정의하면, 태양은 별들 사이로 하루에 대략 1도씩 이동한다. 또 360은 인수가 대단히 많다. 2, 3, 4, 5, 6, 8, 9, 10, 12, 15, 18, 20, 24, 30, 36, 40, 45, 60, 72, 90, 120 그리고 180이 360의 인수다. 그러므로 360을 기초로 삼아서 각도를 따지면, 분수가 등장하는 일이 드물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360의 1/12은 한 달의 날 수와 대략 같다.-194쪽
"지구는 확실이 끝이 없어. 우리가 지구 위에서 여행을 하면 수평선이 우리와 함께 움직여서, 우리는 영원히 수평선에 도달하지 못하지. 수평선은 항상 우리에게서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고, 어디를 가나 지구는 평평한 원반처럼 보여. 우리가 계속해서 곧장 나아가면 언젠가 갑자기 우리가 출발한 자리로 돌아오게 되지. 참 신기한 일이지만, 지구의 모양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단지 우리가 지구를 한 바퀴 돈 것뿐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우주도 지구와 똑같을 가능성이 있어. 우리가 계속 날아가도 영원히 수평선에 도달하지 못하고, 우리가 어디에 가든 우주가 똑같은 모습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만일 그렇다면 계속해서 곧장 날아간 우리는 갑자기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겠지. 그건 참 신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지구에서와 마찬가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야. 만약에 우리가 그런 일을 경험한다면, 우리는 우주의 모양에 대해서 무언가 알게 될 거야..."-210쪽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1500년도 더 전에, 시간에 대한 생각을 제시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명료한 축에 드는 생각이었다. 창조의 순간에 신은 모든 사물을 포함한 우주를 무로부터 창조했다고 그는 썼다. 그러나 시간은 변화가 있는 곳에만 존재하므로, 창조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변화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라고 꽃피고 익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조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생각했다. 시간은 세계에 대하여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240쪽
... 더 나아가 우리가 블랙홀에서 시계를 볼 수 있다면, 시계가 멈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시간은 블랙홀에서 끝난다. 이 말은 블랙홀은 검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시간이 끝날 수 있을까? 우리의 의식은 오로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시간 없이,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우리가 여전히 존재할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신은 존재를 남김없이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 인간은 존재를 순차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다. 바로 이 특징이 우리의 불완전성을 대표한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장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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