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of the Universe (Hardcover)
Brian Thomas Swimme / Yale University Press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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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the most spectacular features of the observable universe is the elegance of its expansion. If the rate of expansion had been slower, even slightly slower, even one millionth of a percent slower, the universe would have recollapsed. It would have imploded upon itself, and that would have been the end of the story.
Conversely, if the universe had expanded a little more quickly, even one millionth of one percent more quickly, the universe would have expanded too quickly for structures to form. It would have simply diffused into dust, with no structures to bring forth life.
What we‘ve discovered is that we are living in a universe that is expanding at just that rate necessary for life to emerge.-10쪽

Wonder is the pathway into what it means to be human, to taste the lusciousness of sun-ripened fruit, to endure the bleak agonies of heartbreak, to exult over the magesty of existence...
However insignificant we may feel with respect to the age and size of the universe, we are, even so, beings in whom the universe shivers in wonder at itself.-114쪽

Our human destiny is to become the heart of the universe that embraces the whole of the Earth community. We are just a speck in the universe, but we are beings with the capacity to feel comprehensive compassion in the midst of an ocean of intimacy. That is the direction of our becoming more fully human.-115쪽

Because we know that life is an adventure involving both chaos and order we sometimes want desperately to control things. And whenever our fear grows too strong we become vulnerable to simple promises concerning future. But no one knows what the future holds--all of that is hidden in the darkest night. The future is being created by all of us, and it is a messy and confusing process. What is needed is courage to live in the midst of the ambiguities of this moment without drawing back into fear and a compulsion to control.
Are there gurantees? No, none. But there are reasons for confidence.-117쪽

It is the nature of the universe to move forward between great tensions, between dynamic opposing forces. If the creative energies in the heart of the universe succeeded so brilliantly in the past, we have reason to hope that such creativity will inspire us and guide us into the future.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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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진중권의 철학 에세이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9월
구판절판


프로이트에 따르면, 한때 친숙했으나 억압을 통해 망각된 욕망이 다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낯설어 하면서도 어딘지 친숙하게 느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때 무생물이었으나, 탄생과 더불어 그 사실은 억압되고 망각된다. 하지만 억압되고 망각된다고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 내면에는 여전히 죽음으로 돌아가려는 은밀한 충동이 존재한다. 한때 친숙했으나 이제는 낯설어진 그 충동은 우리에게 섬뜩한 느낌을 준다.-200쪽

이성주의자에게는 다시 찾아온 유미주의가 일종의 퇴행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라캉에 따르면 유아는 거울을 통해 실재계(le re'el)에서 상상계[le symbolique]로 입장하고, 이어서 상징계[le imaginaire]로 이행하면서 성장을 완료한다. 어떤 의미에서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헬레니즘 문명은 이미지로 빚어낸 상상계의 문화였다. 이후 서구 사회는 이미지를 금하는 텍스트의 문화, 즉 헤브라이즘을 수용함으로써 상징계로 진화한다. 하지만 산업이후사회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되돌아가는 퇴행이다.-234쪽

아무리 변증법적 '운동'을 강조한다 해도, 헤겔은 결국 '존재'의 철학자다. 그에게 '생성'이란 '아직 덜 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관점을 뒤집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생성'을 '되다가 만 존재'로 규정할 게 아니라, 외려 '존재'를 '활동하다 멈춘 생성'이라 부르는 거다. 한마디로, 존재를 생성의 우위에 놓는 태도에서 벗어나 생성을 존재보다 더 근원적 사건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철학에서 이는 곧 플라톤주의에서 니체주의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달고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철학들이 한 일이 바로 그 작업이었다. -267쪽

기관 없는 신체는 일종의 존재미학으로 제기된 것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개인은 사회라는 거대한 신체 속에 하나의 기관(직업 혹은 역할)으로 명료하게 분절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자는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자'일 뿐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전통적 좌파나 우파나 차이가 없다....
들뢰즈는 항상 생성의 상태로 존재하라고 요청한다. 즉 이미 분화를 마친 하나의 기관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어떤 기관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잠재성의 상태로 자신을 유지하라는 얘기다.-268쪽

우리가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사물의 이름을 배운다면, [소설 <향수>의] 그루누이는 후각을 통해 사물의 이름을 배운다. 카멜레온이 자신의 몸 색깔을 주위환경과 완전히 동화하듯이, 나무의 냄새를 맡는 동안에 그루누이는 스스로 나무인형이 된다. 스스로 나무가 되어버림으로써 그는 '나무'라는 낱말의 진정한 의미를, 그 현상학적 충만함 속에서 신체로 배운다. '그루누이의 피노키오-되기.' 이 존재론적 닮기를 '미메시스'라 부른다. 미메시스는 문명화의 과정 속에서 인간이 예민한 후각과 더불어 잃어버려야 했던 가장 중요한 원시적 능력이다.-276쪽

영화 역시 시각과 청각의 예술이다. 하지만 영화도 종종 공감각[synesthesia]을 사용한다. 물론 4D 영화라는 이름으로 좌석을 흔들거나 객석에 연기를 분사하는 유치한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령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를 향한 채찍질, 특히 <블랙 호크 다운>은 거의 '쇼크'에 가까운 강렬한 촉각적 효과를 주지 않던가. 이 '시청각의 촉각-되기'도 감각들 사이의 미메시스라 할 수 있다. 영화로 후각의 효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향수>를 영화화한 작품에서는 유감스럽게 냄새가 나지 않았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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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3-05-07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충동'을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도입한 '비존재의 기억'... 내가 무생물이었을 때가 어떻게 기억에 남나?? 설마 원자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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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유시민을 항상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인생의 선생님으로 돌아온 그를 볼 때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합니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한 번 읽어보세요. 인생을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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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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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죽고 싶어질지 모른다. 바위를 굴려 언덕 꼭대기까지 올리고, 그 바위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리는 행위의 무한 반복, 이것은 시시포스가 신들을 골탕 먹였다고 받은 형벌이었다. 죽을 수 없다면 삶은 형벌이 될 것이다. 너무나 간절하게 영생을 원한 나머지 그것을 구하는 일에 몰두하느라 유한한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환희와 행복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는 영생을 원하지 않는다. 단 한 번만,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고 싶을 뿐이다.-46쪽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날이 밝으면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선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무엇엔가 가슴 설레어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이 쉬이 밝지 않음을 한탄한다.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영원한 사랑과 충성을 서약한다. 죽음을 원해서가 아니다. 의미 있는 삶을 원해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47쪽

그런데도 때로 그것을 잊는다. 오늘의 삶을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한으로 채운다. 가진 돈이 많은데도 더 많은 돈을 얻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탕진한다. 이미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내일로 미루어둔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운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에야 비로소, 자신이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았음을 허무하게 깨닫는다. 그러나 한 번 살아버린 인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놓쳐버린 삶의 환희는 되찾을 수 없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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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0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ueyonder 2013-03-16 13:55   좋아요 0 | URL
이제야 댓글을 봤네요. 방문 감사해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불확정성 - 양자물리학 혁명의 연대기
데이비드 린들리 지음, 박배식 옮김 / 시스테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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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물리학은 우주가 생겨난 어떤 까닭을 달리 말해줄 수 없다. 이전 사건이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은 왜 우주가 생겼는지를 말할 수 없다. 확률의 문제로 자연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양자역학이 단지 물리 세계의 불완전한 모습을 제공할 뿐이라고 비판한 아인슈타인은 옳았다. 그러나 어쩌면 불완전성은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필요하다고 믿은 보어가 더 옳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어가 좋아하는 역설에 직면했다. 우리의 우주가 생겨나게 된 것은 오로지 초기의 설명할 수 없는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의 작용을 통해서다. 그로부터 사건들의 연쇄적 촉발로 우리가 무대에 등장했고, 우리가 존재하도록 이끈 태초의 힘이 무엇이었을까 지금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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