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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익스프레스 - 원자의 존재를 추적하는 위대한 모험 익스프레스 시리즈 3
조진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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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과 함께 원자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여정을 그리고(문자 그대로!) 있다. 멋진 과학사 책이자, 과학이 어떻게 진보하고 만들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살짝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다시 한 번 기립 박수를~!


살짝 아쉬운 점? 방정식 등호 앞 뒤와 단위 앞에 한 칸씩 띄지 않은 것, 온도를 나타내는 문자로 T를 썼다가 t를 쓰는 점, 칠판에 써 있는 식을 대충 그린 것,... ㅎㅎ


책의 마지막 부분 인용:

이 모든 과정을 보면 각자 다른 성향과 믿음을 품었지만 결국 이들[과학자들] 모두의 마음속에 같은 믿음 하나가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우주가 어떤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이다.


'우주에는 인간의 의지나 희망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은 본질적으로 단순할 것이다.'


하지만 우주가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것은 믿음의 문제인 셈이다.


이들 모두가 인정하는 F=ma라는 뉴턴의 식은 F=0이면(즉 외력이 0이면) 운동량이 보존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진리인가? 이조차 진리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원자와 함께했던 고된 여정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어쩌면 원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여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본 것이다. 우리의 가능성을 보는 동시에 한계를 본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참된 실재를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완전히 신뢰할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참된 실재를 보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377~378페이지)

상당히 미묘하고 머리가 아프고 어쩌면 가당치 않은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원자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그것을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과학자들이 원자를 존재하게끔 만들어낸 것인가?


어떤 이들은 절대적으로 옳은 참된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이 감각 가능한 세계를 탐구하는 이유도 궁극의 참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함이며, 도달하기 힘들지라도 그 참된 세계에 끊임없이 다가갈 수는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에 기초한 불굴의 노력이 원자의 발견이라는 찬란한 성과에 닿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자는 원래부터 있었고, 분명하게 발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볼츠만,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은 이에 동의할 것이다.


다른 견해를 가진 과학자도 있다. 푸앵카레는 참된 실재는 알 수도 없고 알 바 아니라며, 인간의 정신이 만든 창조물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뉴턴의 운동법칙 F=ma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할 수 없으며 실재의 우주와 무관한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이 만든 창조물이라고 생각했다. F=ma 같은 법칙들은 일종의 규약인 것이고, 이 규약으로부터 유추한 원자도 본질적으로 우리가 만든 창조물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규약은 인위적이며 쓰임의 영역이 비좁다. 그런데 규약으로서의 법칙은 너무나 유용했기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했다. 법칙은 실재가 아니지만 생산적이라는 주장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37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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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2-1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앙카레 말에 동의하지만, 그의 말도 열린 상태로 놓여야지 그의 말이 참인 것 같습니다. ^^

blueyonder 2019-02-10 18:56   좋아요 1 | URL
네, 모든 것이 100% 맞거나 100% 틀리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한 건가요? ^^) 인간은 흑백 논리를 좋아하지만, 세상이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흑백 논리에 빠지려는 유혹에 항상 저항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우주비행사란 진정한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 우주 공간에 나가면 인간이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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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논쟁이다 - 과학 vs 과학철학, 경계를 묻다
장대익 / 반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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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좋은 것이다. 대화가 겉돌고 논점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이 집중해서 들어주기만 하면... 관점과 관심사의 차이를 인정해 주기만 하면... 대화 또는 논쟁을 통해 설득 당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들었다. 그래도 상대방의 관점을 알고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기의 주장을 점검할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양자이론은 세계를 완벽하게 기술하는가, 혹은 양자이론은 완벽한가'의 일부. 과학자인 김상욱 교수의 말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양자역학을 이해할 때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고자 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유진 위그너는 심지어 양자역학은 의식을 가진 생명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측정의 주체, 그러니까 인간과의 관련이 야기하는 많은 개념적 문제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이 괴로워했죠. 인간이 관여되면 자연법칙이 주관적이 되거나 유심론 같이 마음이 개입하게 될 여지까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인간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결어긋남 이론이라 불리는 거죠. 이 이론은 정량적 예측을 주기 때문에 실험으로 정확히 검증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결맞음을 잃어가는, 간섭무늬를 잃어가는 시간까지도 모두 계산하고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말에 전자 한두 개로 직접 간섭무늬를 보는 실험들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예측을 실험으로 모두 검증할 수 있었죠. 현재 대개의 물리학자들은 결어긋남 이론을 양자측정에 대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어긋남이 단순히 해석을 보완하는 차원의 이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게 보면 코펜하겐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코펜하겐 해석이 갖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들어있습니다. 새로운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이겠죠. 하지만 정량적인 이론이고 여기에는 인간의 인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인간이 없는 것을 과학자들이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는데,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인간은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잖아요. 과학의 역사는 끊임없이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내 온 역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도 수많은 별의 하나에 불과하고,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 뜬 것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고 등등 말이죠. 사실, 과학자로서 인간이 그 이론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더 불편합니다. (118~119 페이지)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하는 일이 '객관적'이길 바란다. 외계인이 과학을 해도 똑같은 이론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에 인간이라는 종의 인식과 사고체계, 생리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은 '0'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객관적'이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의 '객관적'도 있다. '재현가능한reproducible'의 의미에서이다. 과학이 '객관적'이어야한다고 할 때, 전자가 아니라 후자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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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1-29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네 맞습니다. 과학은 후자 의미로 재현가능한 ‘객관적’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호주관적’이란 개념을 사용한다는 글을 본적 있습니다. ^^

blueyonder 2019-01-30 23:53   좋아요 0 | URL
‘상호주관적‘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1-30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QBism: The Future of Quantum Physics>는 <양자역학의 미래,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제목 자체는 괜찮은데 책 설명이 과장광고의 혐의가 짙다. 앞면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큐비즘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고 쓰여 있다. 책의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00년이나 지속된 양자이론의 역설과 수수께끼를 해결한 큐비즘! 빅데이터가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까지 접수하다!”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본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큐비즘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까? 큐비즘은 양자역학의 의미 해석에 관한 이론-주장-이다. 양자역학 계산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큐비즘이 새로운 기술을 가져다줄까?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을 따지자면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출판계가 어렵다고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내용을 호도해서 책을 사게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실용적 내용은 0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이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처음에 살펴보면서 번역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오역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역본도 오역 논란이 있다고 들었다. 문학작품은 더욱 번역이 어려울지 모르겠다. 스타일도 중요할 것 같고...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적어도 지식을 잘못 전달하거나 이해가 불가능하게 번역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장이 길면 자르고, 심지어는 말을 넣어서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옆에서 훈수만 두는 입장이 가장 쉬울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지적질’이라도 해서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면 안 될까. (잘난척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눈에 띄는 몇 부분을 다음에 적어 놓는다. 불편하신 분은 여기서 그만 읽으시면 좋겠다.)


머리말에 있는 내용이다.

 

Quantum mechanics has colored my view of the world—QBism has transformed it. (원서 6페이지)


여기서 “it”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당연히 “my view of the world”이다. 하지만 번역서는 이렇게 옮겼다:


양자역학은 내 세계관에 물을 들였고, 큐비즘은 그러한 양자역학을 변화시켰다. (번역서 13페이지)


과장광고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번역했는지, 도대체 의도를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런 의도 없이 역자가 그냥 이렇게 이해했는지도...


무지개 색은 로이 G. 비브가 말한 것처럼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무한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색으로 되어 있다. (번역서 18페이지)


로이 G. 비브는 Roy G. Biv이다. red, orange, yellow, green, blue, indigo, violet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실제 있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라고 무지개 색을 외우지만 영어는 머리글자를 따서 이렇게 외우는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The rainbow does not consist of the colors red, orange, yellow, green, blue, indigo, and violet recalled by the mnemonic Roy G. Biv but of infinite, uncountable number of hues. (원서 12~13페이지)


“mnemonic”(기억법)이란 단어가 있는데 왜 이걸 이렇게 번역했을까...


“8장 가장 간단한 파동함수”의 일부분이다:


  예외적 점인 양극에서는 중첩도 없고 위상도 없다.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양자 조화 진동자와 실제 원자의 에너지 준위들이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 셀 수 있는 수로 제한된다. 양극은 실제 세계의 이미지를 고정한다. 이걸 모두 합쳐서 비트로 표현한다. (번역서 84페이지)


잘 이해가 되시는지? 원문은 이렇다:


  The exceptional points, the poles, which are not superpositions and don’t have a phase, reflect the discreteness of quantum mechanics. Just as the energy levels of quantum harmonic oscillators and of real atoms are discrete and countable, rather than continuous, many other measurements, including the sense of an electron’s spin, are restricted to a countable number of values—two for a qubit. The poles anchor the image in the real world. Taken together, they are represented by a bit. (원서 93페이지)


문장이 길면 끊어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렇게 번역하면 어떨지?


  양쪽 극은 예외적 지점이다. 이 지점들은 중첩된 것이 아니며 위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지점들은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양자조화진동자나 실제 원자들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하며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 스핀의 방향을 포함한 많은 측정의 결과는 셀 수 있는 개수로 제한된다. 큐비트의 경우는 이것이 2이다. 이 양쪽 극은 실제 세상의 표상이다. 이 둘을 포괄하여 1개의 비트로 나타낼 수 있다.


“양극”은 전자의 스핀 파동함수를 나타낸 구의 북극과 남극을 말한다. “양극”이라고 붙여 쓰니 “양극, 음극”의 양극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 “양 극” 또는 “양쪽 극”이라고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양자 조화 진동자와 실제 원자의 에너지 준위들이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 셀 수 있는 수로 제한된다.” 원문이 한 문장이라고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너무 길다. 여기서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양극은 실제 세계의 이미지를 고정한다.”라는 문장은 그냥 직역일 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역자가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이렇게 옮겨 놓으면 무성의할 뿐이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될 때, 나의 지식 부족을 탓하곤 했다. 원서와 비교해보면 종종 번역의 잘못됨으로 인해 이해가 어려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수를 붙여서라도 부족한 번역으로 인한 지식의 미전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수하시는 분들은 기왕이면 원서를 읽어서 번역본과 비교하시길... 번역본에서 말이 되더라도 오역한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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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bism: The Future of Quantum Physics (Hardcover)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 / Harvard Univ Pr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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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모델model을 만드는 과정이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드는 모델은 당연히 알려진 현상-실험적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이러한 모델이 새로운 실험적 사실을 예측하고 이것이 맞다고 판명될 경우, 이 모델이 자연을 제대로 기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사실이 반복되면 모델은 ‘법칙law’의 위상을 갖게 된다. 사실 ‘법칙’의 이름을 갖는 모델-이론-은 많지 않다. 물리학에서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대표적 예이다. 만유인력 법칙은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있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원격작용action at a distance으로 처음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뉴턴 자신조차도 ‘터무니없다absurd’고 했다. 결국 중력은 시공간을 통합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통해 제대로 이해되었다(하지만 만유인력 ‘법칙’은 여전히 ‘법칙’으로 불린다). 


과학의 완전히 실용적 측면-과학의 예측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만유인력 법칙을 일반상대성 이론이 대체한 것을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얘기한다[1]. 우주에 탐사선을 보낼 때 간단한 만유인력 법칙을 써서 계산하지 누가 복잡한 일반상대성 이론을 쓰느냐는 것이다. 맞다. 하지만 과학이 자연을 단순히 예측하는 도구를 넘어선,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할 때, 간단하지만 원격작용이라는 문제적 개념이 있던 만유인력 법칙을 일반상대성 이론이 대체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같은 미시세계를 이해하려는 고통스런 노력 속에 탄생한 학문이다. 양자역학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으며 뛰어난 도구적 특성-예측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상식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학문이다. 양자 전기역학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조차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을 정도이다. 


양자역학의 어려움은 20세기 초 미시세계를 연구하다가 발견된 기묘한 현상으로부터 기인한다. 입자라고 생각했던 전자가 파동성을 띄어야 설명이 되는 현상이 발견됐던 것이다. 입자는 알갱이, 즉 한 곳에 모여 있다. 하지만 파동은 모든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입자가 파동성을 나타낸다는 것은 마치 ‘날씨가 덥고 춥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덥다’와 ‘춥다’는 개념은 서로 반대 의미이다. 비슷하게, 우리가 거시적 세상을 통해 얻은 입자와 파동의 개념은 도저히 양립이 안 된다. 하지만 미시세계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양립 불가능한 개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양자역학은 ‘상식적’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양자역학에도 만유인력 법칙의 원격작용과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파동함수의 붕괴collapse이다. 양자역학이 파동성을 띄는 입자를 기술하기 위해 쓰는 것이 파동함수이다. 이 파동함수는 문제-물리계-에 따라 방정식을 풀어 계산할 수 있다[2]. 문제는 우리가 ‘측정’할 때, 공간에 퍼져 있는 파동함수가 특정한 상태로 붕괴한다는 데 있다[3]. 책에 있는 예를 들면, 전자총에서 나온 전자가 스크린의 어느 점으로 갈지 우리는 파동함수를 계산할 수 있다. 파동함수는 스크린의 각 점에서 우리가 전자를 발견할 확률만을 말해준다. 우리가 스크린에 찍힌 전자를 보는 순간 측정이 일어난다. 이 순간 파동함수는 전자가 찍힌 한 점을 나타내는 상태로 ‘붕괴’한다. 파동처럼 퍼져 있던 것이 한 점-상태-로 줄어든 것이다. 왜 파동함수가 붕괴하는지, 붕괴하는 과정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요리 ‘레시피recipe’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측정시 파동함수가 특정한 상태로 붕괴하며 파동함수는 확률을 나타냄-이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이다[4]. 


아인슈타인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이 해석에 걸려 넘어졌다. 아인슈타인은 평생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상대성 이론의 그 위대한 아인슈타인이,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새롭게 태어난 양자역학에 반대하는 연구를 하며 곁방의 늙은이-비주류-로 지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해석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이 새롭고 기발한 도구를 떠오르는 문제에 적용하여 계산만을 열심히 했다. 이런 태도를 우스갯소리로 ‘입 다물고 계산Shut up and calculate’주의라고 부른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에 반기를 들었던 이가 슈뢰딩거이다. 그가 표준 해석의 기묘함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불리는 사고실험이다. 상자에 양자역학으로 기술할 수 있는 방사성 원자를 넣는다. 방사성 원자는 시간이 지나면 붕괴할 가능성(‘확률’)이 점점 커지는데, 원자가 붕괴하면 독극물을 방출하는 장치를 함께 넣는다. 그리곤 고양이를 이 상자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양자역학에서는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러 상태가 중첩superposition-파동의 성질이다-된 상태로 존재한다. 원자는 측정 전에, 붕괴하지 않은 상태와 붕괴한 상태의 중첩으로 존재한다. 원자의 붕괴 여부가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하므로, 우리가 뚜껑을 열어 살펴보기 전에는 고양이도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의 중첩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해야 할 것이다. 가만,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이 무슨 헛소리... 이것이 슈뢰딩거의 의도이다.


문제는 파동함수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5]. 우리는 전자의 파동함수, 원자의 파동함수를 얘기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파동함수가 마치 관측자와는 상관없는, 전자나 원자의 성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개념적인 혼동이다. 파동함수는 관측자 없이는 정의되지 않는다. 파동함수는 관측자와 관측대상이 상호작용-측정-을 해서 얻는 결과를 기술하는 함수이다. 근대과학은 관측자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객관적’ 과학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오류-좋게 얘기하면 근사-일 뿐이다. 관측자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완벽히 객관적 과학은 없다. 특히 미시세계에서는 관측자 없이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지식은 없다. 양자역학은 그것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베이지안 확률의 개념을 도입해서 이해하는 큐비즘QBism(quantum Bayesianism)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확률이란 개인의 믿음personal belief일 뿐이라는 것이다. ‘개인’을 처음부터 앞세운다. 큐비즘에서 파동함수는 내가 어떤 상태를 얻으리라는 믿음을 나타낼 뿐이다. 파동함수가 어디에 있냐고? 내 마음 속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측정했을 때 일어나는 파동함수의 ‘붕괴’는 단순히 내가 측정을 통해 얻는 정보를 가지고 나의 믿음을 업데이트한 것일 뿐이다. 붕괴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고 주관적 사실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동시에 살아있고 죽어있다는 중첩 상태는 객관적 상태가 아니다. 그냥, 내가 고양이의 상태를 모르는 것뿐이다. 어떤가, 주관적 양자물리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셨는지?


은퇴한 양자물리학자라는 저자는 짧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왜 본인이 큐비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플랑크,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파인만, 베이즈 등등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이들의 일화는 하나도 안 나온다. 그런 면에서 <E=mc2>의 스타일과는 판이하다. 무미건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본질로 바로 가는 스타일이 과학자와 저널리스트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에 나온, 기억하고픈 몇 가지 캐치프레이즈는 이거다:

"The map is not the territory." - Alfred Korzybski (philosopher)

"Unperformed experiments have no results." - Asher Peres (theoretical physic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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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적 예로 과학철학자인 장하석 교수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2] 이 방정식이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3] 이 특정한 상태를 고유상태eigenstate라고 부른다. 

[4]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한 이들이 주장했다. 이 주장을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5] 파동함수는 복소수로 표현된다. 복소수는 실수부real part와 허수부imaginary part를 갖는다. 이 숫자는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량을 나타내지 않는다. 허수는 실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수이다. 파동함수를 제곱하여 실수를 만들었을 때에야 파동함수는 실제 세상과 연결된다. 이 파동함수의 제곱이 바로 확률을 나타낸다.


The interpretation of the wavefunction in terms of probabillity is the real game changer that quantum mechanics imposes upon physics. (p. 59)

Newton’s venerable old theory was reduced to the status of an approximation; a very useful approximation to be sure but a concept without fundamental significance. Physicists use it in the same way they approximate solids, liquids, and gases as a continuous materials even though they know that matter is really composed of atoms.

The collapse of the quantum wavefunction, which covers arbitrarily large distances in an instant, is also an action at a distance, and it is just as incomprehensible as Newtonian gravity. But by proving its worth as convincingly as Newton’s law did, the collapse of the wavefunction has also made its way into scientific orthodoxy. The great majority of physicists accept quantum mechanics as proven factsuperposition, probabilities, wavefunction collapse, and all. “That’s how nature behaves!” they say to themselves and get on with their calculations and observations. Only a small, though growing, number of them take seriously the philosophical conundrums implied by the standard formalism and try to resolve them. One of the principle goals of those intrepid souls is to become more explicit in step two of the quantum recipe, the wave function collapse, which takes them in an inexplicable leap from probability to certainty (pp. 71-72)

...Planck’s mechanical model of glowing matter led to wave/particle duality and its resolution by the wavefunction. A purely mathematical wavefunction and its interpretation in terms of probability replaced Bohr’s mechanical model of hydrogen. In each case a mechanical, visualizable description turned out to be inadequate, and a mathematical, abstract explanation replaced it.

Abstraction is a sign of maturity... In physics, maturity implies pulling away from tangible mechanical models toward mathematical abstraction (Latin abstrahere, to pull away from). Thing are concretethoughts are abstract. But abstraction should not be confused with complexity. A concept may be abstract, but it doesn’t have to be complicated. (pp. 80-81)

The invention of the spin wavefunction, a purely abstract, purely quantum mechanical construct with no analog in our everyday world, represented one of the most revolutionary events in the early history of quantum mechanics. It implied that every electron has two hidden states; a kind of bipolar personality that only reveals itself when its magnetic field, or its rotational motion, is observed. Otherwise, the twofold character of the electron remains concealed in an alien dimension unrelated to the space we live in. (p. 88)

Attention pivoted from the territory to the map as the gaze of the physicists shifted away from the real worldwhich undoubtedly exists out thereto its representation. Separating the thing from its mathematical description was a significant but largely unheralded break quantum mechanics made from its classical pa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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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ner Heisenberg, who invented quantum mechanincs with his matrix treatment of the harmonic oscillator, insisted that “the conception of objective reality...has thus evaporated into the...transparent clarity of mathematics that represents no longer the behavior of particles but rather our knowledge of this behavior.” Physics, he believed, is not about this tree or that electron, as Newtonian science had assumed, but about what happens in our minds as a result of observations and experiements concerning the tree and the electron. (pp. 149-150)

If a layman and a QBist happened upon a closed box containing Schrodinger’s cat, the layman would confidently declare: “From past experience I know that the cat is either dead or alive.” He would be talking about the cat at that moment. The QBist would be more cautious and say: “I don’t know anything about the cat at the moment. But according to my knowledge of quantum mechanics, I believe that if I opened the box right now, the chances are fifty-fifty that I would find it alive.” Thus, neither the layman nor the QBist would claim that the cat is both dead and alive, but the QBist would be talking about her own beliefs about a future experience, not about the current state of the cat. (pp. 154-155)

If, on the other hand, you give up realism (as the QBists do), locality can be saved. In that case the electrons interact initially in one locality to produce an entangled trio described by a quantum wavefunction that incorporates the GHZ rule. Since it is not real, the wavefunction does not claim to describe a real state of affairs the way all the little arrows above purport to do. Instead, the wavefunction is a cunning mathematical construct made of qubits that correctly predicts the outcomes of the GHZ experiment, in both its preparation and measurement phases. 

The GHZ experiment provides a splendid illustration of the maxim “Unperformed experiments have no results.” (pp. 167-168)

According to QBism, probability 1 and 0 assignments are personal beliefs of agents, not statements about the real world. [여기서 1과 0은 근사가 아닌 완벽한 1과 0을 말한다.] This startling conclusion brings those assignments into line with all other probabilities. There is not, contrary to the EPR definition of reality, a qualitative jump between a probability close to 1 and a probability equal to 1, no quantum leap across a boundary from uncertainty to certainty, no shifty split to overcome, and no sudden transition from opinion to fact. The degree of my belief that an apple will fall when I let go of it is numerically much greater than the degree of my belief that it will rain this afternoon, but the two judgements, though quantitatively light-years apart, are qualitatively the same. (pp. 183)

Quantum mechanics, according to QBism, is not a description of the world but a technique for comprehending it. Our future experiences can only be described in terms of probabilities. They might be classical or quantum probabilities, depending on circumstances, but they are all Bayesian probabilities. An electron, for example, may be thought of as a quantum system with a spreading wave function in one experiment, but under different circumstances its motion may be likened to that of a golf ball. Conversely, Wigner would think of this friend as a classical object until, in the context of a quantum experiment, he would be compelled to construct a wavefunction that entangles his friend with an electron. (p.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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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19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워 보이는 책이네요. 그래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다면 한 번 보고 싶긴 해요. 책 제목이 미술 용어라서, 제목에 낚인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책 제목만 보고 미술에 관한 책인 줄 알았어요. ^^;;

blueyonder 2019-01-19 08:40   좋아요 1 | URL
<양자역학의 미래,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같이 살펴보고 있는데 번역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blueyonder 2019-01-19 09:02   좋아요 0 | URL
미술과 물리의 큐비즘 모두 개인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리의 큐비즘도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줄여 쓰는 것 같습니다. 책 표지도 마치 현대미술-큐비즘-에 관한 미술책처럼 보입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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