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시간가역성은 시간의 비실재성을 지지하는 또 다른 논증이다. 만약 자연법칙의 방향이 거꾸로 될 수 있다면, 원리상 과거와 미래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매우 다른 관계를 맺는 것은 세계의 근본적인 속성이 될 수 없다. 미래와 과거의 겉보기 차이는 분명 환상이거나 특수한 초기 조건의 귀결일 것이다.

   엔트로피의 본성에 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거시 세계를 원자 세계와 연결하는 데 누구보다 큰 공헌을 한 루트비히 볼츠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는, 공간에 위와 아래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시간의 두 방향을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과거와 미래 사이에 실제적인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즉 과거와 미래는 정확히 동일한 내용을 가지며 그저 논리적으로 재배열된 것일 뿐이라면, 현재 순간의 실재성 또는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믿을 필요가 없다. 물리법칙의 시간 가역성은 많은 경우 자연에 대한 물리학자의 개념으로부터 시간을 제거한 또 다른 단계라고 여겨진다. (113~114 페이지)

   These reversals are another argument for the unreality of time. If the direction of the laws of nature can be reversed, then there cannot, in principle, be any difference between the past and the future--and the fact that we have very different relationships with the past and the future cannot be a fundamental property of the world. The apparent differences between the future and the past must either be illusions or consequences of special initial conditions.

   Ludwig Boltzmann, who, with his insights into the nature of entropy, did more than anyone else to connect the atomic world with the macro world we experience, once said, "For the universe, the two directions of time are indistinguishable, just as in space there is no up and down." And if there's no real distinction between past and future--if they have exactly the same content, just logically rearranged--then there's no need to believe in the reality of the present moment or the reality of the passage of time. The time-reversibility of the laws of physics is often taken as another step in the removal of time from the physicists' conception of nature. (pp. 52-53)

   ...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지 여부와 같이 관측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질문에 대한 옳은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시적으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없으며 '지금' 실재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동시성의 상대성은 시간이 실재한다는 개념에 대한 커다란 공격이었다. (121 페이지)

   So there's no right answer to questions that observers disagree about, such as whether two events distant from each other happen simultaneously. Thus, there can be nothing objectively real about simultaneity, nothing real about "now." The relativity of simultaneity was a big blow to the notion that time is real. (p.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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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2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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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는 <프라하의 묘지> 2권에서 주인공 시모니니를 내세워 어떻게 20세기 반유대주의의 전거로 작용하는 위작 문서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의 등장 인물 대부분이 실제 역사적 인물이고 그들의 행적 또한 역사에 기반한다고 에코는 '작가 후기'에서 언급하는 바, 이 소설은 가상의 주인공을 이용하여 역사적 사실을 잘 꿰어낸, 그리하여 에코의 음모론에 대한 생각과 반유대주의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잘 버무려낸 어느 정도는 '정치적'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는 지난 번에 읽은 <전날의 섬>이 거의 순전한 지적 유희처럼 느껴진 것과 대비된다.


일기를 이용하여 기억을 밝혀내는 소설의 구성에 '에코는 천재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실제 역사를 따라가는 소설의 진행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이 늘 그러하듯,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늘 주인공이 있는 우연적 필연성으로 인해 마치 <포레스트 검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번역에 대한 언급도 해야겠다. 역자 이세욱은 에코의 역자들에 대한 권고를 참고하여 가능하면 옛스러운 문체를 쓰고자 했다고 책 뒤의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하고 있다. 1910년대 후반, 신문에 연재되던 우리 번안소설까지 참고했다고 하니 그 노고와 자부심을 알 수 있다. 오타가 0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으며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없었고 비교적 잘 읽혔으니 괜찮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목인 '프라하의 묘지'는 주인공인 시모니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는, 유대인 장로들이 모여 세계지배의 음모를 모의한 장소적 필요성 때문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사실 내가 이곳에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은 사족이다. 소설의 실제 사건은 이곳에서 전혀 벌어지지 않고 프랑스 파리, 또는 회상에서는 이탈리아 토리노나 시칠리아에서 벌어진다. 내가 평소에 쓰던 것보다 긴 문장들이 이 리뷰에 많은데, 이 책을 막 읽은 영향인 것 같으며, 이것 역시 사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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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턴 이래로 몇몇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곡선이 운동 그 자체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신비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였다. 곧 사라지는 경험의 연속과 대비되는, 좀 더 심오한 비시간적인 수학적 실재라는 개념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실재를 그것에 대한 표상과 뒤섞고 운동 기록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을 운동 그 자체와 동일시하려는 유혹에 빠짐으로써, 이 과학자들은 우리의 자연 개념에서 시간을 추방하는 일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89 페이지)

   Some physicists since Newton have embraced the mystic's view that the mathematical curve is "more real" than the motion itself. The great attraction of the concept of a deeper, mathematical reality is that it is timeless, in contrast to a fleeting succession of experiences. By succumbing to the temptation to conflate the representation with the reality and identify the graph of the records of the motion with the motion itself, these scientists have taken a big step towards the expulsion of time from our conception of nature. (p. 34)

   그 어떤 수학적 대상도 우주의 역사를 완전히 나타낼 수 없는 단순한 이유가 있다. 우주는 우주에 대한 수학적 표상이 가질 수 없는 속성 하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항상 특정한 시간 속에 있고, 특정한 현재의 순간 속에 있다. 그 어떤 수학적 대상도 이와 같은 개별성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한번 구성된 수학적 대상은 비시간적이기 때문이다. (91 페이지)

   There's a simple reason that no mathematical object will ever provide a complete representation of the history of the universe, which is that the universe has one property no mathematical representation of it can have. Here in the real world, it is always some time, some present moment. No mathematical object can have this particularity, because once constructed, mathematical objects are timeless. (pp.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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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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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얘기하자면, 프랑스 파리에 일종의 망명을 온 시모니니란 이탈리아인이 정보기관의 '끄나풀'로 일하며 음모를 꾸미고 음모를 팔아먹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난 시모니니는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에 대해 회상하는 일기를 쓰며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 일기를 통해 그의 과거가 밝혀지는데, 에코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당시 시대상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나온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근대인 19세기 중반이며, 통일 전쟁을 겪는 이탈리아, 혁명 이후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한 프랑스에 대한 얘기가 주요 기반이다.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음모론인데, 음모론이 어떤 이유로 생겨나 퍼져나가는지에 대한 에코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책 속 몇 구절:

   내[시모니니] 생각을 부연하자면 이러하다. 뒤마의 이야기에서 천둥산이며 라인 강 좌안이며 그 시대와 관련된 것들은 빼버리고, 음모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오는 대목을 취한다. 그들은 각 나라에 촉수를 뻗고 있는 비밀 집단의 대표들이다. 그들이 모이는 곳은 적당히 어둡기만 하다면 숲 속의 빈터도 좋고 동굴이나 고성이나 공동묘지나 지하 납골당이라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연설을 하는 것이다. 음모와 세계 정복의 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연설....... 내가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는 비밀에 싸인 어떤 원수의 음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유대인들이 그런 음모를 꾸미는 원수였고, 예수회 신부들에게는 프리메이슨이, 가리발디파인 아버지에게는 예수회가, 유럽의 절반쯤 되는 나라들의 군주들에게는 카르보나리가, 마치니파인 내 동학들에게는 사제들의 조종을 받는 국왕이, 세상 절반의 경찰들에게는 바이에른의 일루미나티가 그런 적들이었다. 어떤 음모 때문에 자기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상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누가 알겠는가. 뒤마는 하나의 서식을 만들어 낸 셈이다.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서식을 작성하며, 자기 나름의 음모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 인간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열망한다. 불행한 사람, 운명의 여신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갈망도 크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열망하는가? 돈을 열망하고, 누구나 그 유혹에 빠지기 쉬운 권력(남에게 명령을 내리고 남을 모욕하는 쾌감)을 열망하며, 자기가 겪은 부당한 일(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부당한 일을 겪게 마련이다)에 대한 복수를 열망한다. 뒤마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우리에게 초인적인 권력을 줄 수 있을 만큼 막대한 부를 획득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원수들 하나하나에게 어떤 식으로 앙갚음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왜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는가(그렇게 엄청난 행운은 고사하고 그저 소박한 바람이라도 이룰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왜 나는 그마저도 얻지 못하는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도 내리는 복이 왜 나한테는 오지 않는가? 사람이 불행한 것은 그 자신이 무능한 탓일 수도 있으련만, 아무도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을 불행하게 만든 죄인을 찾으내려고 한다. 뒤마는 욕구 불만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그들의 실패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천둥산 꼭대기에서 열린 모임에서 어떤 무리가 그대의 몰락을 계획했다는 식으로....... (144~146 페이지) 


그리고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음모론을 이용한다. 우리 주변에 무슨 음모론이 지금도 횡횡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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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Reborn> 국역본을 조금씩 읽고 있다.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스몰린의 주장을 다시금 곱씹어보고 싶어서다. 읽으면서, 저자의 실제 의도에서 조금씩 어긋나게 번역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이어서 원문을 찾아봤다. 


먼저 자연의 단순성에 대한 부분이다. 뉴튼은 그의 운동법칙에 만유인력 법칙을 더해 지구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을 설명해버렸다. 즉, '천상계와 지상계를 통일해 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다음처럼 말하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처럼 단순한 수학적 관계가 자연의 보편적인 현상을 포착한다는 사실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놀라운 귀결이었다.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 사실상 고대인은 운동의 원인에 그처럼 단순하고 보편적인 수학을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72~73 페이지)


여기서 내가 의아했던 부분은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이다. 왜 자연은 단순하면 안 되나? 우리가 자연에 대해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나? 원문을 찾아보고 저자의 원래 의도와의 차이를 알게 됐다. 다음은 위의 부분에 대한 원문:


"The astounding consequence for our conception of nature is that such a simple mathematical relation captures a universal phenomenon in nature. Nature did not have to be so amazingly simple--and, indeed, the ancients had never contemplated such a simple and universal application of mathematics to the causes of motion." (p. 23)


원문을 보면 첫 번째 문장부터 오역의 혐의가 있다. 저자가 원래 의미하는 바를 직역하면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가져온 놀라운 귀결은 그렇게 간단한 수학적 관계가 자연의 보편적 현상을 포착한다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역자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라고, 마치 우리가 자연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번역했지만, 저자는 그렇게 의도한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문장의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의 원문은 "Nature did not have to be so amazingly simple"이다. 이 의미는 "자연은 그렇게 놀라울 정도로 단순할 필요가 없었다"이다. 역자는 자연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야 한다는 개념을 마치 우리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번역했지만, '단순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꼭 단순할 필요는 없다'이다. 굳이 단순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단순하다고 판명되니 놀라운 것이다. 


그 다음 애매한 곳은 운동의 기술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다. 


"힘이 어떻게 운동을 일으키는지 물으려면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73 페이지)


위 문장을 보면,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야만 한다"가 힘이 어떻게 운동을 야기시키는지를 묻기 위한 전제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제가 맞나? 다음은 원문이다:


"To ask how a force causes motion, you have to think of a moving object tracing a curve in space." (p. 23) 


저자가 의미하는 바는 번역과는 살짝 다르다. 초점이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운동'을 생각하려면 그냥 '운동하는 물체'를 상정해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즉, "힘이 어떻게 운동을 일으키는지 물으려면" 공간에서 '어떤'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물체'를 생각해야 한다, 는 뜻이다. 


곧 연휴이고, 시간이 좀 생겨서 (안 올려도 좋을) 글을 주절주절 올리게 됐다. 이러다 다시 바빠지면 한 달에 한 번 글 올리기도 힘들어질 듯 싶다.


모두 명절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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