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툭 나온 구절인데, 문득 마음에 와 닿는다. 때는 1940년대, 동명관을 운영하는 우두머리 기생 숙향이, 떠돌아다니다 찾아온 추평사의 아들 동삼에게 하는 말이다.
"법도 따지는 양반들 별거 아니다. 화신 백화점 옥상에서 돈을 다발로 뿌려봐라. 양반들이라고 뒷짐만 질 것 같니? 아서라, 겉으로는 체신 차리는 사람일수록 실속은 더 차리느니. 내 이날 이때까지 오만 사내를 다 겪어봤지만 양반일수록 더 개차반이더라. 서푼 값어치도 없는 게 양반님네 법도니라. 진짜 사내는 사람을 보지 출신을 따지지 않느니." (123 페이지)
'양반'이란 요즘으로 치자면 사회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겠다. 권력자, 부자, 소위 사회지도층,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중앙부처 공무원, 검사, 의사, 교수, ... 이들의 법도란 무엇인가? 실속을 가리기 위한 명분인 건가?
비슷한 얘기를 최근 직접 들은 적이 있어서 세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인간에게 너무 기대를 하는지도. 물질이 있어야 먹고 사니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누가 봐도 과한 경우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고 김대중 대통령 말씀처럼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