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이희재는 우리가 오늘날 사는 세상을 올바로 '번역'하기 위한 전복적 '틀(frame)' 또는 '시각'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조악하게 요약하자면, 세계는 영미 금권주의자들(그의 표현에 따르면 "금벌")이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새겨볼 내용이 많은데, 특히 이들이 어떤 식으로 언어를 장악하고 상업 언론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관점을 세상에 퍼뜨리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베네주엘라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 우리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베네주엘라에 대한 내용은 이렇다. 석유라는 황금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영합주의'(소위 '포퓰리즘') 정책을 펴 국민들에게 돈을 마구 퍼준 결과, 경제는 망가지고 오히려 민생은 나빠졌다. 하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음은 책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베네주엘라는 방대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지만 소수 상류층이 부를 독점하면서 철저히 자기들 위주로 나라를 이끌어갔습니다. 석유를 팔아서 번 돈은 외국인과 소수 부호가 독식했습니다. 대지주들이 독점한 농지는 비효율적으로 방치되었습니다. 식량 자급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나마 생산된 농산물도 가공하기보다는 외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 들면 그렇게 했습니다. 그냥 외국에서 싼값에 식량과 식품을 수입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자국 산업을 일으키고 자국민을 위한다는 발상은 없었습니다. 비백인 원주민과 혼혈은 이등국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절대 다수의 서민은 카라카스 같은 대도시에서 빈민으로 목숨을 겨우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차베스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석유를 팔아 번 돈을 백인 상류층이 독식했지만 차베스는 사회에 투자했습니다. 차베스는 수천 개의 병원을 지었고 의사를 열두 배나 늘렸습니다.... 학교도 많이 지어 문맹률을 뚝 떨어뜨렸습니다. 국민 영양 상태도 좋아졌습니다.... 빈곤율은 1999년 70%였던 것이 20%로 급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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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위해 많은 돈을 쓰면서도 차베스 정권은 나라빚도 크게 줄였습니다. 2003년 국민총생산의 47.5%였던 나라빚이 2008년에는 13.8%로 격감했습니다. 그 뒤 세계 경제불황으로 공공지출을 더 늘리면서 나라빚이 조금 더 늘어났지만 20%를 넘지 않았습니다. 베네수엘라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영국과 미국의 나라빚은 국민총생산의 100%가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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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의 사회주의와 영미 금융 사회주의의 차이점은 차베스는 다수 국민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지만 영미 사회주의는 소수 금융자본이 대를 이어 금권을 세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차베스의 사회주의가 성공하면 영미 금융 사회주의의 존립이 위태로워집니다. 금권자본가들만을 섬기지 않고 다수 국민을 섬기는 사회가 나타나면 더 이상 다수 국민을 쥐어짤 명분이 없어지니까요. 영미 금융 사회주의의 눈치를 살피는 데에는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 진보지 <가디언>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뜬금없이 부패한 전직 베네수엘라 장관의 칼럼을 실으면서 위험한 차베스 사회주의를 까고 헐뜯었지요. (45~5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