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goland: Making Sense of the Quantum Revolution (Hardcover) -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영문판
카를로 로벨리 / Riverhead Books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양자역학의 관계적relational 해석을 제안하는 로벨리의 신간이다. 양자역학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기묘한 특성 때문에 이론의 의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어 왔는데, 로벨리는 이 책에서 보어-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을 더욱 확장한다. 이 세상은 ‘물질’과 물질의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개별의 ‘속성’을 갖는 물질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계(물리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상호작용’)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질은 관계의 기점으로 작용하는 ‘마디node’일 뿐이다. 이로써 우주의 중심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기존의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관찰자’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관찰—실험—에 의해 파동함수는 붕괴하고 물체가 특정한 성질을 띠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로벨리는 관찰자가 아니라 무엇이든—또 다른 입자이든, 고양이든—상호작용을 하는 순간 파동함수가 붕괴한다고 말한다. 왜 인간만이 파동함수를 붕괴시키는가? 이것도 일종의 인간중심주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상호작용 하기 전의 또 다른 입자—또는 관찰자—에게 파동함수는 여전히 중첩되어 있다. 실재란 여러 층위로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그의 접근법은 극단적 반실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그가 일급 물리학자라고 생각됐다. 이 책에서, 그는 철학자처럼 느껴진다.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책, 좀 더 자세히 설명한 책, 그리고 시간에 대한 책에 이어 무슨 할 얘기가 더 있을까 싶었는데, 조금 더 할 얘기가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이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친구인 스몰린은 <Einstein’s Unfinished Revolution>에서 양자역학의 실재론적 해석을 끝까지 밀고 나갔는데, 로벨리는 반실재론적 해석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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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인 헬골란트Helgoland는 하이젠베르크가 그의 양자역학("행렬역학")을 착안했다는 북해의 작은 섬 이름이다.


... I want a theory of physics that accounts for the structure of the universe, that clarifies what it is to be an observer in the universe, not a theory that makes the universe depend on me observing it. (p. 69)

  ... there is nothing special in the “observations” introduced by Heisenberg: any interaction between two physical objects can be seen as an observation. We must be able to treat any object as an “observer” when we consider the manifestation of other objects to it. Quantum theory describes the manifestations of objects to one another. (p. 77)

... reality is this web of interactions. Instead of seeing the physical world as a collection of objects with definite properties, quantum theory invites us to see the physical world as a net of relations. Objects are its nodes. (p.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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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6-14 13: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리학의 실체 ‘관계’를 사회학이나 불교의 인간 ‘관계’ 등으로 비약하여 해석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현대 물리학책을 읽으면 자꾸 그러고 싶어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ㅎㅎ

blueyonder 2021-06-14 13:36   좋아요 3 | URL
제가 언급 안 했지만, 실제 이 책에서도 2세기 경 인도의 승려-철학자인 나가르주나(龍樹) 얘기가 나옵니다. 그의 철학과 관계적 양자역학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실체‘라는 것이, 불교나 양자역학이나 사실은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지요. 양자역학과 불교와의 공통점은 늘 흥미롭습니다. ^^

blueyonder 2021-06-14 13:44   좋아요 3 | URL
또 하나, ‘관계‘란 과정이자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양자역학이, 서구의 철학 전통에서 벗어나 동양적 사유에서 더 공통점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6-14 15:39   좋아요 3 | URL
참, 용수 승려는 참 대단한 분 같습니다.
겨우 2세기에 근현대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대단한’ 발견이라고 한 것들을 거의 이미 다 언급했던 분위기입니다.

blueyonder 2021-06-14 16:0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그 옛날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