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 - 파울리, 배타 원리 그리고 진짜 양자역학
이강영 지음 / 계단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기 양자역학에 대해 이처럼 자세한 책을 읽지 못했다. 특히 원자의 선 스펙트럼과 이를 통한 원자 구조 연구에 대한 내용은 정말 상세하다. 저자는 수식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맛보기에 가깝지만, 대중과학서에 수식 쓰기는 금기에 가깝다고 하던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다양한 내용과 등장인물로 인해 초기 양자역학에 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 같지만, 그 외 양자역학에 기여를 한 많은 이들(러더포드, 보어, 조머펠트, 보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디랙 등)과 그 외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프라운호퍼, 슈테른, 게를라흐, 로렌츠, 에른페스트, 호우트스미트, 울렌벡, 크라메르스, 크로니히, 드브로이, 페르미, 보즈 등)까지 상세히 언급된다. 


책 제목이 <스핀>인데, 처음에는 전자의 자전으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러한 이해는 올바르지 않고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면 나올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성질이라는 결론을 얻기까지 물리학자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고 있다.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연구되는지에 대한 좋은 소개로 읽을 수도 있고, 다양한 물리학자들의 삶과 인생 역경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으며, 분광학이 어떻게 원자에 대한 연구에 커다란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양자역학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거기에 스핀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도입됐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저자의 원래 의도였을 텐데, 워낙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보니 매우 다층적인 책이 됐다. 


양자역학에 대해 처음 읽는 이라면 이 책 말고 다른 책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1]. 이 책은 ‘스핀’이라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미 우리가 널리 활용하고 있는, 자연의 핵심적 성질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핀은 물질의 자성磁性을 설명하는 핵심적 개념인데, 이미 우리는 자석-특히, 쓰고 지울 수 있는 자석-을 엄청 많이 쓰고 있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바로 그것이다. 좋은 책을 쓰신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

[1] 얇지만 괜찮은 책은 데이비드 린들리의 <불확정성>이다. 


  1925년 6월 레이든으로 돌아온 울렌벡은 물리학에서 역사가로 방향을 바꿀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위징[원문오타, 하위징아]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고, 레이든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을 가르치던 그의 숙부 코르넬리우스 울렌벡과도 이 문제를 상의했다. 숙부는 문화사를 전공하려면 우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어쨌든 현실적으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으면 받으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울렌벡은 라틴어를 배우러 헤이그에 다니기 시작했고, 에른페스트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에른페스트는 울렌벡의 결심을 받아들여서 울렌벡이 졸업할 수 있도록 연구 주제를 주기 위해, 아직 학생이지만 스펙트럼의 전문가였던 호우트스미트와 함께 일하도록 주선했다. 그래서 울렌벡은 그해 여름 내내 호우트스미트로부터 원자의 스펙트럼에 대해서 배웠다. 

  운명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결말을 준비한다. 울렌벡은 결국 역사가가 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 이유는 그해 가을,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가 무언가를 발견해버렸기 때문이다. (265 페이지)

  로렌츠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울렌벡은 뭔가 문제가 많구나 하고 직감했다. 로렌츠는 여러 가지를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 전자가 실제로 회전을 한다면 전자 표면의 속도는 빛의 속도의 10배에 이르러야 했다. 또한 자기 에너지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로렌츠의 조언을 들은 후 두 사람은 아무래도 이 논문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서 에른페스트에게 가서 논문을 게재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에른페스트는 놀랍게도 그 논문은 벌써 투고했으며 곧 출판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자네들은 젊으니까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좀 해도 괜찮아.” 당사자인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는 어이가 없었겠지만,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것은 에른페스트가 얼마나 훌륭한 선생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편 이 논문에서 에른페스트는 저자의 순서를 알파벳 순으로 하지 않고 울렌벡을 앞에 오게 바꾸었다. 이에 대해서 호우트스미트는 “나는 이미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사람이라 독자가 내 이름만 기억하고 울렌벡의 이름이 무시될까봐 에른페스트가 염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전자의 스핀을 생각해낸 것은 울렌벡이었으니까”라고 말했다. (275~276 페이지)

  그러면 파울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토머스는 이 사건에 대해 호우트스미트에게 “신의 무오류성이 지상의 교구에까지 미치니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농담을 했다. 아무리 파울리가 뛰어난 물리학자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는 것이다. 울렌벡은 프랑스 몽블랑 근처의 1951년 레주셰Les Houches에서 열린 여름학교에서 파울리와 나눈 대화에서, 파울리가 이 문제에 대해 “젊었을 때 내가 어리석었어!”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고 기억했다. 파울리는 크로니히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다. 반드시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1928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ETH에 교수로 부임한 파울리는 크로니히에게 자신의 첫 번째 조수 자리를 제안했다. 그때쯤에는 크로니히도 마음을 어지간히 추슬렀는지 파울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수가 된 크로니히에게 파울리가 처음 한 말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반박을 해 주게”였다고 한다. 파울리는 자기 자신과 같은 파트너를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크로니히도 훗날 이렇게 적고 있다. “첫 만남 이후 파울리와 나의 궤도는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생한 분위기로부터 내가 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보어는 훗날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했다. “크로니히가 어리석었던 것이다.”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지 않은 책임은 그 자신의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종종 이렇게 냉정하다. (289 페이지)

  오늘날 우리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진 훨씬 복잡한 복합입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스핀과 자기 모멘트는 쿼크의 스핀과 자기 모멘트, 그리고 쿼크의 결합 방식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쿼크의 스핀으로부터 양성자의 스핀을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양성자를 구성하는 쿼크들의 스핀을 단순히 더하는 것만으로는 양성자의 스핀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이론물리학의 해결되지 않은 난제 중 하나다. (414 페이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자역학에서 제게 정말 어려운 주제는 스핀인데, 제게 도움될 책일까요?

blueyonder 2019-07-28 23:34   좋아요 1 | URL
‘양자역학 = 상식적 이해 불가‘입니다. ^^ 다만, 스핀을 도입하게 된 과학적, 역사적 배경과 과정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