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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평점 :
11월 1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하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방방 뜨는 어조로,
언제나 경쾌한듯 시니컬한 화법을 구사하는 김어준이 아닌 듯 여겨졌다.
인터뷰 내용을 들으면서 그 대상이 '이용마 MBC 해직 기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러고 나니 김어준 님이 되게 인간적으로 여겨졌다.
말기 암 환자라는 이용마 님이 인터뷰에 나온 것도 그러했지만,
죽음을
앞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용마 님이나,
그런 이용마 님을 존중해주며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김어준 님이나 둘 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MBC 정상화'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이용마 님이 'MBC 정상화'를 예감하며 혼자서 펑펑 울었다던 대목에선 나도 덩달아 폭풍오열하고 말았다.
더욱 감동적인건,
"고통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라는 김어준의 인삿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가족 중에도 말기암 환자가 있어서 그
고통을 잘 안다고.
오히려 이런 분들에게 쾌유를 빈다고 말하는 건 고통을 주는 거라고.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시작할땐 어떤 의무감 같은 걸로 시작했지,
이런 종류의 책이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연계 독서와 우리나라 현대사를 공부하자는 목표가 생겼다.
아내 혼자서 남자아이 둘을 키우기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편하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곁에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싶었다. ㆍㆍㆍㆍㆍㆍ더욱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갈등하며 현실과의 타협을 줄기차게 거부해온 나의 선택이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여지도 많을 것이다. 헤겔의 말처럼 욕망의 체계에 불과한 현실 사회에서 교과서적인 정의를 갈구한 것이 과연 바람직했는지 재고할 필요는 충분하다.(5쪽)
몰입을 할 수 있었던건 진정성에 있었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글이 담담한 것이 깔끔하여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웠다.
미사여구를 쓰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읽는 내내 아름다운 문장,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김종구 선배가 칼럼을 쓰겠다고 집까지 찾아왔다.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장악과 파업, 해고 등의 과정에서 발생한 극도의 스트레스가 결국 발병의 원인이 아니겠느냐며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했다.(28쪽)
사실 이 분의 얘기를 접하고 처음엔 암의 원인을 극도의 스트레스와 연결 시키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분이 어떤 영혼과 가치관을 지닌 분인지를 엿볼 수 있었고,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장악과 파업, 해고 등의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소상히 알 수 있었고,
그러고나니 당연한 귀결 같았다.
이용마 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깨닫고 나니,
이땅의 많은 사람들이 이 분에게 어떤 의미로든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고 나니, 더 눈물이 와락거렸는데, 며칠 전 김재철 영장은 기각되었더라~ㅠ.ㅠ
아무래도 두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하다보니 '책을 왜 읽어야 하나'류의 내용도 있었다.
고전을 열심히 읽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보다 책 속으로 더 많이 빠져든 것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유치한 반면, 고전은 훨씬 우아하게 다가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73쪽)
(내가 한두살 어리지만) 아무래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보니 감정이입이 쉬웠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국사, 세계사에 먹통인 이유가 내가 이과 출신이어서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서 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는 자기 나라의 현대사를 안 배운 사람들인 것이다~ㅠ.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겠다.
명색이 정치학과인데, 우리 과에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안 가르쳤다. 고등학교도 대학도 현대사를 안 가르치다니 정말 희한했다.ㆍㆍㆍㆍㆍㆍ4ㆍ19혁명 때는 중학생들도 이승만 정권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 시위에 나갔다. 그들이 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고등학생들은 현실을 잘 모르고 시위할 줄은 더욱 모른다. 2016년 말의 촛불시위에서 일부 학생들의 발언이 주목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실문제보다는 성적 경쟁에 매달려 있다. 학교에서도 현대사를 소홀히 할 뿐이다. 무엇이 두려워서 혀내사를 가르치지 않는가. 이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 세력이 오랫동안 득세를 하면서 남긴 유산이다.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숨기려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조선시대 역사나 중국의 고전들, 헤밍웨이나 톨스토이 같은 근대작가들의 소설만 읽었던 이유도 여기 있었다. 우리의 현대사와 관련된 책들이 거의 없었다. 나는 현대사를 모르고 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과거 속에서만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다 새롭게 접하게 된 현대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91~92쪽)
이런 부분도 좋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볼 수 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지만ㆍㆍㆍ그런데 사실 이 깨달음이 정말 중요하다.
우리는 가끔 나만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은 다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사람마다 분명히 조금씩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 더 많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공통점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주는 화이부동( 和而不同)의 정신이 필요하다.
ㆍㆍㆍㆍㆍㆍ젊었을 때 여행은 이런 삶의 견문을 넓혀주는 효과가 있다. 물론 유적지를 둘러보고 사진 찍는 여행도 그 나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 또한 정말 유익하다. 나의 대학시절 여행은 그런 즐거움을 알게해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98~99쪽)
어떤 직업이든 간에 경제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항상 필요하다. 앞으로는 대통령도 경제에 대한 철학이 분명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대통령이 경제를 모르면 경제 관료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대한민국 경제 관료들은 절대로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그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습성에 따라 경제성장정책을 세운다.(171쪽)
이런 부분은 적절한 지적이지만 자괴감이 들었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무겁고 아프게 다가왔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남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객관성 혹은 중립이라는 말이다. 엄격히 말해 언론의 객관성은 가식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례는 서로 다른 논조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가?
그렇다면 객관성은 아예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객관성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다. 바로 사회적 다수와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ㆍㆍㆍㆍㆍㆍ정치적인 중립이라는 이름하에 이런 요구를 교황에게 전달했다. 그때 교황은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적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언론 그리고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다수를 대표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205~206쪽)
어렸을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어떻게 살아야겠다 보다는 무엇이 되어야겠다, 를 생각하면서 내달려온 것 같다.
이제는 ('고통없이'는 아니고, 고통을 느낀다는 건 살아있음 표상같은 것일테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나이 먹고 늙어가고 싶다.
이용마 님도 그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