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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 어쩐지 의기양양 도대체 씨의 띄엄띄엄 인생 기술
도대체 지음 / 예담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며칠 전이었다.
조카와 소라과자를 까먹으며 소소한 삶의 행복함에 대해서 심도있게 대화를 나누었다.
소라과자의 속성 상 한개의 소라에는 한개의 깨가 일반적인 것이고,
많아도 두개를 넘지 않는데,
세개를 넘어서면 대박,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깨가 세개 이상 대여섯개가 박힐려면 코팅된 설탕시럽이 좀 고여있어야 하는데,
깨가 대여섯개여서 고소함을 더하는데다가,
설탕시럽까지 넉넉하니 달콤하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조카에게 행복한 삶이란 소라과자에 깨가 많이 박힌것이란 얘기다.
그런 조카에게 알라딘서재의 대문 프로필을 바꿔볼 요량으로 이모를 그려보라고 했더니 스윽 슥 얼렁뚱땅 그려낸다.
이게 뭐냐고 눈을 흘겼더니,
무릇 그림은 행복한 마음을 담아서 행복함이 배어나게 그려야 한다고 눙을 친다.
너무 잽싸게 그려내 행복함을 담아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ㅋ~.)
그림 속의 나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것이 행복해 보이긴 한다.
그리고 이 책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를 만났다.
이 책의 글과 그림들이 조카의 삶과 그림과 닮았다.
조금만 일찍 만났어도 조카에게 무한칭찬을 해줄 수 있었을텐데 싶어 조금 아쉽지만, 뭐~--;
이 책은 넷 상에 떠돌던 '행복한 고구마'의 작가가 낸 책이라고 하여 읽게 되었다.
소소하고 재밌다.
웃음을 머금게 되지만,
어떤 건 어이가 없어서 쓴 웃음을 짓게도 된다.
내가 조카와 소라과자를 나눠먹으며 그림을 보고 느꼈던 그런 감정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아니 개념을 확장시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을 소신있게 적고 있다.
소신은 때론 고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관계에 집중하기보다는, 보대낌 속에서의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는게 멋졌다.
예전엔 나도 사회생활을 한다는 명목 하에 어쩔 수 없이,(핑계는~--;)
내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연연했었다.
그러다보니 늘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였고,
매사 안달루시아처럼 전전긍긍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자신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내 자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자 라고 마음 먹으니까 편안해졌다.
관심종자, '관종'이 아니구선 타인의 삶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관종'도 실상 자신이 관심받길 원하는 만큼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뭐, 그건 그 사람 마음이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56쪽)
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따위에 신경쓰다보면 정작 상대방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다.
정작 상대방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내 장점은 뭐고 단점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따위와도 상관없이 '아무거나'를 외치고 있는 내 자신을 목도하는건 좀 씁쓸한 일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도,
삶이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제야 깨달았는데,
일찍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깨달음과 희망을 안겨주는 도대체 님이 대견하고 멋지다.
책을 읽으면서 무한위로와 힐링이 되는 건 덤이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고 재치있는 내용들이었는데,
삶이여
비루함을 견디는 하루를 보내며 '짐승들은 이런 한탄을 하지 않으리라. 그저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살아낼 뿐이리라' 마음을 달래던 중. <TV동물농장> 재방송을 무심코 보는데, 하이애나들이 돼지 살점 하나 얻으려고 일인자에게 아양을 떠는 광경이 나왔다. 삶이여ㆍㆍㆍ.(175쪽)
이런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감정을 갖고 아양을 떨기도 하고 한탄을 하기도 한다니 왠지 아이러니컬하다.
알라딘 서재에는 유독 바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술가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한때는 내 자신이 타인을 찌르는 바늘이 될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바늘에 찔릴까봐, 아플까봐 두려워하는 오버스러운 감수성을 지녔었는데,
무뎌지기로 마음 먹으니 좀 나아졌다.
도대체 님의 말대로이다.
바늘에 찔리면 '그때',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지도 모르지만, 삶을 잃어버리니까 말이다.
내가 너무 현실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삶이 소외되고 배제된 예술은 사상누각이다.
바늘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내가 바늘에 찔려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바늘은 왜 하필 거기 있었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면 예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예술가들에겐 미안하지만 예술가는 망한 것이다.(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