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아침을 먹고 어슬렁 어슬렁 목욕탕엘 가려고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총각 하나가 동네가 떠나가도록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또래들처럼 귀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라도 따라 부르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집안사 소소한 일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 하고 이러쿵 저러쿵 내뱉는 것이었다.

혼잣말의 형태를 띠었지만, 누군가 그에게 말걸고 들어줄 귀를 애타게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목욕탕에 가느라 갈길이 바빠서 그만~(,.)

기실은 갈길이 바빠서라는건 핑계이고,

남의 가정사, 집안의 은밀한 일은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에,

타인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부분이 아니어서 였다.

 

 

 

 엿듣는 벽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9월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장르소설 한권을 재미나게 읽었다.

장르소설만을 읽을 때도 있었으니, 그간 적조한 편이었는데,

이런걸 심리 스릴러라고 하는구나 싶게 가슴 속 어딘가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쫀쫀하게 만들어놓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장르소설에 미쳐 장르소설만 읽었을 때도 있으니, 초창기의 것부터 제법 읽은 셈이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흰옷을 입은 여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윌리엄 아이리쉬, 존 딕슨 카, 코넬 울리치 따위...

그 맛을 알고 읽을 땐 재미 있었지만 그전까진 약간 올드하고 고루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어떤 건 장르소설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미를 생각해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것도 있었다.

반면 이 소설은 문체도 그렇고, 글을 서술해나가는 방식도 그렇고, 무엇 하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제목은 '엿듣는 벽'이고 '벽 너머로는 들리지 않는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있다.

표지 그림은 열쇠구멍을 사이에 두고 쥐와 새가 무게감 있게 대립하고 있는데,

'Walls have ears'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까봐 극도로 자제하게 되는데, 생각 거리를 충분히 던져주는 내용이다.

'엿듣는 것'에 '몰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정보가 굴절되고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 부분을 살짝 비껴가는듯 여겨지기도 한다.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라도 수많은 귀와 눈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게 된다.

누군가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테고,

눈에 띌까봐 조용히 자신을 지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을 과장하여 드러낼 수도 있고, 감추고 일부분만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소통 부재를 얘기하고 '외로워, 외로워'하게 된다.

보고 듣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 사이의 격차가 크면 큰만큼 비껴가게 된다.

그것을 말에 적용시키게 되면,

말을 안 하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사람의 자유 의지라고 하지만,

그 말할 자유와 말하지 않을 자유 사이에서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기 힘이 든다.

나만 하더라도 때론 너무 수다스러운 것 같고, 가끔은 말을 지독히 아끼는 것 같다.

때론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하면서 사사로운 느낌이나 감상을 추가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인식하지 못 하는 사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코끼리를 한 눈에 다 넣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거리 두기인데,

그렇게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게 되면 코끼리의 털 같은 세세한 것은 또 간과할 수밖에 없다.

"걔도 여자야. 여자는 인생의 반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몰라. 어떻게 하라고 명령과 안내를 받아야 하지. 난 항상 자네가 좀더 고삐를 당겨야 했다고 생각했네."

"우습네요. 전 고삐를 쥔 쪽이 형님이라고 생각했는데."

길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뜻이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제가 언제 고삐를 쥐어본 적이나 있었나요. 또 전 아내를 말과 같은 부류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말과 여자는 공통점이 많아. 들판에 풀어놓으면 도망가버리지."

"대체 어디서 여자에 관해 그렇게 많이 배우셨죠, 형님?"(87쪽)

소설의 초반부에서 에이미의 남편 루퍼트가 어떤 제스츄어를 취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갖고,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자 마가렛 밀러가 에이미와 남편 루퍼트에게 감정 이입을 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그리고는 있지만,

그를 범인으로 유추하도록 해서 였을까, 하나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창가로 걸어가 두 사람 사이의 시간과 공간을 떨어뜨렸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결과적으로 버턴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버턴의 충성심에 관해선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충성심이 뭐기에? 힘을 받으면 부러지고 열을 받으면 구부러지는 것 아닌가? 거기에 진실이 얼마나 담겨 있나?

ㆍㆍㆍㆍㆍㆍ

루퍼트는 창문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사람보다는 그림자에 대고 거짓말하는 편이 더 쉬우니까.(164쪽)

이런 구절도 그렇다.

문장만 놓고 봤을땐 그럴 듯 하지만,

한개의 창문이 있고 두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에 비춰진 둘의 모습을 루퍼트만 보는 것이 아니라, 비서인 버턴 양도 같이 보는 것인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게 가능할까?

거짓말을 하는게 더 쉽다는 당위는 저렇게 사람 형상을 한 그림자가 아니라,

눈과 귀와 입이 없는 까만 실루엣의 그림자래야 하지 않았을까?

둘이 같은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라 할 지라도,

각자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제각각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라 하면 할 말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암튼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면,

남의 가정사를 잘 알 것 같다는, 또는 나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개입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확고히 할 수가 있다.

 

 

 

 독서만담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아니 읽기 시작했다.

책을 '쩜' 읽다보니, 가끔 출판사와도 궁합이란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중 한곳이 '북바이북'인것 같다.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하고, 이런 종류의 독서관련 서적에 목말라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저자가 이곳 저곳에 연재했던 서평을 엮은 것인가 본데,

딸이나 아내와 연관된 가족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라는데,

글이 꽁트보다도 잼나다.

 

가족 에피소드가 대부분인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아내와 딸에게 놀림감이 되고 아내와의 냉전에서 패배만 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생각해봤는데 사안별로 진즉에 읽었다면 좋았겠다 싶은 책이 늘 있었다. 사람은 다양한 이유로 힘들지만 다행히도 그 다양한 이유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책을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이 책을 쓴 동기다.(8쪽)

 

 

나이가 들면서 눈과 귀가 비껴가는걸 온몸으로 느낀다.

아무리 좋은 책도 단숨에 읽기는 힘들고,

아무리 좋은 음악이어도 귀를 혹사시킬 정도는 아니다.

때로는 내가 아주 좋아했던 음악들이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간만에 내가 미쳐서 리핑까지 해갖고 다니는 곡.

Marian Hill의 Down

어디 CF에서 쓰인것 같은데 뭔진 모르겠고,

누가 불렀는지 따윈 관심에도 없고, 누가 만들었는지 완전 좋다.

 [수입] Marian Hill - Act One [2LP]
 메리안 힐 (Marian Hill) 노래 /

 Republic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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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2-06 16: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제 책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2-06 18:13   좋아요 2 | URL
오홋~^^
‘독서만담‘의 저자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꾸벅~(--)
잼나게 읽고 있습니다~^^

yureka01 2017-02-06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 블로그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엿보아 달라고 글을 올리는 거 같아서요.

하기야 마음 속에 있는 거 다 내뱉을 수도..
그렇다고 전혀 안 뱉을 수도 없기도 하겠지요....


양철나무꾼 2017-02-06 18:18   좋아요 2 | URL
저는 엿보아도 상관 없지만, 엿보아달라고, 는 아닌것 같습니다~^^
가끔 넷상이라는걸 빙자하여,
필요 이상으로 용감무쌍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말예요~^^


서니데이 2017-02-06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분은 다른 사람이랑 전화한 건 아닐까요. 이어폰이나 블루투스로 통화하는 것 처음 보았을 때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요즘은 속이 답답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예요.
벽에 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디선가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끔은 모르는 척 하면서 듣는 걸지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02-06 18:24   좋아요 3 | URL
아~, 전에 님이랑 그런 블루투스 관계로 댓글 나눴던 것 같아요~^^

저 총각은 말예요.
섬어를 남발해서 병원 진료를 요하는 수준이었어요.
저는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사람들의 수다를 피해 빈 이어폰을 꽂기도 해요, ㅋ~.
오늘은 덜 춥네요, 따뜻하고 맛난 저녁드세요.

2017-02-06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02-06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잡식성책장님이 독서만담 저자시군욤~
신기신기~*

양철나무꾼 2017-02-08 12:57   좋아요 3 | URL
저도 신기신기해요~^^
알라딘 서재가 아무래도 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출판 관계자나 편집자, 저자, 역자...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