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 - 답답하고 어수선한 마음 달래주는 점의 위로
이지형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쌍문동 아줌마 3인방이 아이들이 고3에 오르자 점을 보러가는 장면이 나온다.

점쟁이는 쌍문동 아줌마 3인방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책임지지 않을 선에서 두루뭉술 희망적으로 얘기한다.

그 중 누군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묻자 '그걸 내가 알려줘야해?'라고 호통치며 임기응변으로 넘어간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까지가 점쟁이의 몫이고, 삶을 살아가는건 자신의 몫이다.

그게 점의 위력이 아닐까 싶다.

 

전에 읽었던 '강호인문학'은 덜하지만, 이 책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는 제목을 완전 잘못 뽑았다~--;

제목만 봐서는 '점집'이나 찾아 다니는 책 같이 느껴지는데, 그런 책은 아니다.

삶에게 속은, 그래서 삶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다독일 수 있는 것은 세련된 심리 상담과 철학이 아니라, 그들의 삶만큼이나 변두리로 내몰린 삼류의 값싼 말들이다.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고통을 안다. 소외를 치료하는 것은 소외된 의식뿐이다.(7쪽)

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사주명리'와 '역학'간판을 내건 점집이나 역술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했고,

그런 곳에서 사용하는 이상하고 요상한 사주 명리와 역학 용어들 때문에 당황스러워해본 경험이 있어,

스스로 이런 것들을 공부를 했고, 그 과정에서 지인들의 사주를 봐주다보니 이런 책을 내게 되었다.

 

한사람의 운명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100명 아니 적어도 1000명의 운명에 대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삶에 대해 말하면서, 그 정도의 경험이 없다면 명리가 아니라 사기나 가벼운 말속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길거리에 또 젊은이들 자주 찾는 극장과 카페까지 사주와 타로 하는 분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물론 거리의 명리 연구가들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그럴 듯하네!'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현재 위치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상담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주와 타로의 교본을 읊는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점 본다는 것, 소신을 가지고 남의 운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나와 남 모두에게 솔직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정말 어려운 작업이 점 봐주는 일이다.(37쪽)

 

그러면서 가짜 점쟁이 구별법에 대해서 얘기한다.

자신이 과거 만났던 사람을 예로 들면서 눈빛이 흔들렸기 때문에 틀림없이 가짜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가짜 점쟁이여서 자기가 하는 말들에 확신이 없어서 눈빛이 흔들렸을 수도 있지만,

단지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한 아마추어일수도 있지 않나 싶다.

자신이 점치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서일수도 있지만,

입문하여 수행한지 얼마 안되어 또는 내성적이어서 사람을 대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이모두를 차치하고,

가짜여도 희망적이고 선의의 결과를 낳는다면,

위약효과마냥 우리에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긍정적인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주 미미하더라도 간과할 수는 없지 않겠나?

 

2015년 10월에 나온 강호인문학을 먼저 읽고 그보다 4년전에 나온 이 책을 나중에 읽어서 다행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이 책이 '과도기'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여물지 않아서 어설픈 느낌이랄까?

 

이제는 다른 사람의 점을 봐주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사주공부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것을 봐주다보니,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지에 이르면, 극에 다다르면 오히려 쉬워진다는걸, '강호인문학'과 비교하니 알겠다.

 

이 책 같은 경우, 한쪽 분량으로 단락을 나눈, 잡문수준의 글이고,

어려운 내용도 없는데 산만한 느낌이 드는 반면,

'강호인문학'은 같은 수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더 쉽고 머리에 쏙 들어오도록 설명하고 있다.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적으로 바라보면 4년여의 업적이라고 하기엔 어찌됐건 괄목상대할 일이다.

 

암튼, 이 책은 사주, 풍수, 주역까지를 뭉뚱그려 점의 영역에 집어넣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점의 긍정적인 효과가 아닐까 싶다.

이 세상에 나혼자만 힘들게 사는 건 아니라는 것,

한꺼풀 벗겨내고 나면 다들 그렇게 지지고 볶고 그러면서 사는게 사람의 일이라고 담담히 읊조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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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 리뷰를 보고...
    from 흔적의 서재 2016-01-06 15:29 
    이지형의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란 책이 있다.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응용한 제목이라 생각된다. 80년대를 풍미(風靡: 바람에 초목이 쓰러진다는 뜻으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사조 따위가 널리 사회에 퍼짐을 이르는 말. 바람 풍, 쓰러질 미)했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가 양귀자 작가의 ‘비가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를 패러디한 것임을 감안하면 이지형은 비가 오는 날은 무엇을 할
 
 
yureka01 2016-01-05 13:06   좋아요 1 | URL
저도 매일 점찍고 싶더라구요..^^..
사진으로 된 점~~~

sslmo 2016-01-05 14:12   좋아요 2 | URL
점은 보는거고 사진은 찍는거예요~ㅅ!
사진만큼 삶을 잘 반영하는것도 없죠. 그래서 님의 그것이 그렇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나 봐요~^^

서니데이 2016-01-05 15:00   좋아요 1 | URL
여러 방식의 역학이 있겠지만 자세한 것까지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큰 그림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것을 참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긴 해요.
저는 실제로는 점이나 사주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고 본 적이 없어서 가끔 궁금해요. 그분들은 어떻게 말하는지요.
앞으로 좀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있으면 될 거야, 같은 말을 듣고 오는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잘 지낼지도 몰라요. 가끔은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sslmo 2016-01-06 18:27   좋아요 1 | URL
점집을 찾고 한동안 잘 지내는 기간이 약 6개월이래요, 일종의 중독이죠~^^
그렇게 따지면 중독 아닌게 없는 거긴 하지만요.

전 실은 점이랑 사주, 주역에 대해서 견해를 달리 하는데 그것까지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이 정도로 정리하죠~^^
오늘 소한이라는데 생각보다 덜 추워요.
잔뜩 대비하고 있어서 그런가~(,.)

cyrus 2016-01-05 17:18   좋아요 2 | URL
유하의 시집 제목을 패러디한 것 같군요. 선거철이 다가오면 종편 방송에서 특정 정치인들의 운명을 예견하는 무속인들이 출연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가짜 같아요.

sslmo 2016-01-06 18:29   좋아요 1 | URL
전 전에 이영돈 PD가 종편에서 무속인 특집하는 것까지 다 봐주셨잖아요.
그때 쫌 그랬어요.
바로 얼마 후 요거트 사건으로 어론에 회자되더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