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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앞치마 - 타인과 친구가 되는 삶의 레시피17
조선희.최현석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평점 :
어제 난 텔레비전에서 대국민 인기드라마인 '응.팔.'을 시청중이었다.
요즘 두 명이상 모인 곳에서 '응.팔.'을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걸,
국민의 마음을 맞춤하게 읽어내는 대국민 인기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방송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읽어내고는,
첫회부터 쭉 연결하여 재방송중이었다.
장면이 바뀔때마다 같이 울고 웃다보니,
명절 음식이라며 빚은 만두를 한솥단지 끓여먹고도 금방 허전하여 김치를 송송 썰어 넣어 국수를 비비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텔레비전 속에서도 명절은 아니지만 동네 사람 여럿이 모여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손 큰 아줌이 커다란 양푼에 비벼진 뭔가를 대접에 덜어주며 이렇게 한마디 하는데,
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다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게 미국 국수라케데예, 스파게티 함 비벼봤어예~."
텔레비전이라는 공간을 뚫고 20여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거슬러 올라가 제대로 몰입하고 올킬하는 순간이었다.
잘 기획되고 만들어진 책이란 이런 것을 두고 얘기하는게 아닐까 싶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은 모르지만,
처음 주제를 정하고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걸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책에서 얘기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지,를
기획자는 프롤로그에서 '조선희'의 목소리를 빌려 얘기하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의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는 인생과 취향에 대한 책을 내고 싶어했고,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음식이라는 주제에 도달했다.(7쪽)
그런데, 나는 이렇게 잘 기획되고 만들어진 책이 뭔가 아쉽다.
조선희는 그동안 책을 네 권이나 냈다고 하고,
최현석도 그녀의 말대로라면 세상을 트렌디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그들을 버무려 책 한권에 집어넣었다는게 말이다.
조선희도 완벽하고 최현석도 훌륭했다.
둘이 상대를 존중하면서 본인의 특징과 개성도 유감없이 발휘하였지만,
동영상 촬영이 되었어야 할 부분을 움직임이 잘린 '움.짤.'영상으로 촬영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언젠가 프랑스 정찬에서는 점심에 시작한 식사가 저녁에 끝나거나, 최소한 2~3시간동안 식사가 이어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다른 일로 산만하거나 딴청을 부린다던지,
입 한가득 음식을 넣고 '빨리빨리'하며 음식을 재촉한다던지,
핸드폰 속에 상대방의 얼굴이 들어있는 양, 핸드폰만을 쳐다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장시간에 걸쳐 식사를 한다고 해서 내내 음식만 먹는건 아니다.
사이 사이 분위기와 요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수고, 요리의 질을 음미하면서 먹는게 되겠는데,
이런 과정을 통하면 자연스레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해지고 싶으면 밥을 같이 먹으라'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일 것이다.
조선희와 최현석은 분명 프랑스 정찬을 준비했고,
나도 핸드폰을 보거나 딴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주인장이 내가 시간이 없을 것을 염려하여 최단코스로 '쏙쏙~!' 골라준 느낌이랄까?
강의를 듣거나 쿡쇼(cook show)를 보거나 콘서트에 와있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이런 것들도 양방향성이더구만~--;)
책을 읽고 있는 것인데, 해독불가, 내게까지 잘 전해져 오지 않았다.
이 둘은 모두 자신들의 정체성을 '창의성'에 둔다.
조선희의 경우, 작업을 어떤 분위기에서 하는지 모르니 차치하고,
내가 그동안 봐왔던 최현석은 퍼포먼스의 대가인가 싶을 정도로 비주얼에 집중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었는데,
그런 최현석도 창의성을 발휘하기 전 기본 요리실력을 탄탄히 쌓아두는 것은 기본이라고 얘기한다.
보통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스타일이 곧 트렌드이기 때문에,
말로는 자신의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멍석이 제공되어지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거나 주변의 상황들을 분석하는데 인색한 경우가 있는데,
최현석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나는 자주 패한다. 특히 홍석천 씨와의 대결에서는 늘 고배를 맛본다. 석천이 형은 타고난 사업가여서인지 게스트의 취향과 입맛에 맞춰 요리할 줄 안다. 반면 나는 요리사라는 자존심에 퀄리티와 요리 기술 등을 게스트에게 강요한다. 그렇게 몇 번의 패배를 겪으며 좋은 요리의 요건이 무조건 비싼 식재료나 요리 기술 등이 다가 아님을 깨달았다. 음식의 내공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요리란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취향이며 감성적인 부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99쪽)
겸손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그를 있게 만든 것 같다.
쿡방, 먹방 프로그램이 대세이고,
그런 의미에서 최현석 같은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예인의 대열에 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요리사를 본업이라고 생각한단다.
아마도 그가 연예인도 아닌데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것은,
그의 단단한 어깨로 요리사라는 정체성을 붙잡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에 비하면 텔레비전 속의 1988년은 엄청 가난하고 촌스러웠다.
하지만 그때를 그리며 웃고 울고 추억에 젖는 것은 아마도,
그때는 아무리 바빠도 숨이 턱에 걸리도록 바쁘지는 않아서 이웃과 정 한자락은 나눌 수 있었고,
동네 골목에서 고만고만하게 자란 친구들끼리 마음을 열고 소통이란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내게 1988년 그때로 돌아가겠다고 묻는다면 '아니올시다'이다.
지금 2016년, 여기 이곳에서 내 옆의 이 사람들과 새로운 트렌드-꿈과 추억-을 차곡차곡 만들어가면서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