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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평점 :
그녀는 책머리에서 '세상이 한 권의 거대한 책이라면 사람은 또 한 권의 작은 책이다.'라고 했지만,
내가 그 말의 의미를 헤아려 수긍을 할 깜냥은 아니어주시고,
'글은 그 사람을 반영한다'정도에서 타협을 보아야 할 것 같다.
한번도 실물로 본 적이 없는 그녀이지만, 글들이 야무지고 정갈하다.
책 뒤 '해설'의 박양근 님의 말대로, 열정과 냉정이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실은 이 책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글들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랬다.
실물을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넷 상에선 엄청 친한 척 설레발을 치고 호들갑을 떨던 그녀를 향하여,
실체가 없는 대상을 향하여 명확하지 않은 일종의 부러움과 질투, 시샘 따위의 감정을 느꼈다.
책을 주문하고 내 손에 도착할 때까지 문득 문득 고개를 들었던 감정은,
책을 받아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감히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직시한 순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이쯤에서 다시 박양근 님의 '해설' 중 한대목을 인용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녀의 글은 '자기 성취의 탑이 아니라 달란트를 나누는 기쁨'이기 때문에 반짝거리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부러움을 느끼고, 질투와 시샘으로 몸부림을 쳐도 그것은 나의 사정일뿐,
경지에 다다른게 아니라 경지에 넘어선 글들을 쓰는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 보자면 이쯤이 되겠다.
애증의 기억과 생각의 결을 갈무리하며 흔들릴 때마다 낭독 녹음 해 둔「무비 스님의 신심명 강의」를 들었다. 구하지 않으니 행복이라는 말도 없고 내치지 않으니 불행이라는 말도 없다는 일침을 얻었다. (4쪽)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적재적소에 적절한 글들을 배치하여 글에 군더더기가 없다.
이 말은 감정의 과잉이 없다는 말로 바꿀 수가 있겠는데,
이게 박양근 님이 말씀하신대로 냉정과 열정이 공존하는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세상과 동떨어진 글을 쓴다는 얘기가 아니다.
삶의 중심부를 통과하며 열정적으로 살았지만,
글을 쓸때는 마냥 감성으로만 치닫지 않도록 기억과 생각을 갈무리하고,
그것들을 묵혀 숙성시킨,
말하자면 관조적인 깨달음이 배어나는 글들이다.
온몸으로 겪고 통과한 깨달음이니 울림이 클 수밖에 없고,
그런 울림이니, 읽는 이로하여금 감동을 줄 수밖에 없다.
책 속의 글들은 처음 보는 것도 있고,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것도 있었다.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것들이지만 새롭게 읽히는 거슬도 있었다.
글이 야무지고 정갈해서 그런지, 책으로 만들어진 품- 예를 들면 책의 형식이나 배열, 앉음새 또한 단정하다.
책 표지의 앵두 그림도 좋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녀의 글들 못지 않게 좋았던 사진들을 이 곳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칼라인쇄를 사용하는게 부담스러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흑백사진처럼 단색의 삽화를 넣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녀의 알라딘 서재에서 느꼈던 것은,
책 뒷표지의 홍억선 님의 말씀처럼 문학 주변의 다양한 장르들과의 접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이라는 제한성 때문에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좋은 작품들을 잘 읽었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