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호, 더 인터뷰 - 인터뷰의 재발견
지승호 지음 / 비아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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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무슨 텔레비젼 프로를 보는데,

푸릇푸릇한 젊은 대학생들과 연예인들이 짝을 이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 젊은이의 목소리를 빌었지만 이구동성으로,

'지금 이 길이 내 길인줄 어찌 아느냐?'고 물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금 가는 이 길이 내 길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는 고로, 솔깃하였다.

대답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명확했는데,

'쭈욱 더 밀고 나가보라' 고 하는 대목에서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우리 아들이 무얼 하고 다니는지,

자는 척 눈을 감고 누워 들어보면 학생의 그것은 아니지 싶다.

학생이라면 책이라도 쳐다봐야 할테고,

여친이랑 폰으로 알콩달콩한다면 '좋을때다' 하며 넘어갈텐데,

컴퓨터 모니터랑 연애도 아니고 전투 중이시다.

컴 스피커에서 이상한 굉음과 함께 '소탕되었습니다' 내지는 '적들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간간히 섞여 나오기는 하지만, 다음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보면 전투를 치른 전사의 행색이다.

아들이 지난 밤 '장렬히 전사 당하였든지, 전사시킨 전투는 'League of Legends', 소위 'L.O.L'이라고 불리우는 컴 게임이다.

텔레비젼 속의 젊은이들과 아들을 번갈아가면서 한마디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닫아버리는 것은,

아들의 옆 얼굴에 그 옛날 '포트리스'라는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하여 컴 모니터에 각도기까지 붙여놓았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어서 였다.

부분은 전체를 대표하고 세상은 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지고 변화와 반복을 되풀이한다는 '프랙탈이론'을 여기에도 적용시켜도 좋은 것인가 엉뚱한 고민을 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장래희망은 운동 선수 아니면 연예인 되시겠다.

운동 선수나 연예인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제법 의사표현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이고,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자신의 길인지는 평생 고민하게 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인터뷰의 재발견'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지승호, THE INTERVIEW>라는 책을 읽었다.

'서문'의 '다시 인터뷰를 위하여'에서 후배와 나눴다는 대화 부분을 읽다가 울컥했다.

"그건 뭐, 운명 같은 거 아닐까?"

이 말은 그의 후배가 한 것이라는 데 말이다.

 

좋은 인터뷰어의 조건으로 '인터뷰 대상에 대한 애정과 사안에 대한 깊은 이해' 를 꼽는데,

김규항이 그를 이렇게 얘기했단다.

"ㆍㆍㆍㆍㆍㆍ한국에서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약력이나 훑어보고 찾아가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 삶과 정신에 대해 파악하는 양 구는 일'인 듯 하다. 물론 그건 인터뷰라는 노동을 둘러싼 추레한 환경 때문이다. 지승호는 그런 환경과는 아랑곳없이 인터뷰어의 기본을 지킨다. 그는 인터뷰이가 감탄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또 거듭한다. 아직 그의 노동엔 즉각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개척자적인 인터뷰어인 셈이다."(6쪽)

 

바로 이 부분 ' 인터뷰이가 감탄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또 거듭한다'는 것 때문에,

나도 처음엔 인터뷰이가 넘겨주는 자료만 가지고 가상의 짜집기 인터뷰를 하는,

잘 차려진 상에 수저 한벌만 더 놓는 사람으로 오해했었다.

 

왜냐하면 인터뷰어도 사람이니까,

자기가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으면 소홀한 분야나 취약한 분야가 있기 마련일텐데,

그가 그동안 인터뷰한 사람들을 보면 다방면인데다가 출중하였다.

그러니 좁은 소견으로 넘겨받은 자료를 갈무리하여 정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지,

얼마나 살인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사전 준비를 했을지 짐작하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고 여겼었다.

그걸 이 책의 뒷 날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인터뷰이를 자신의 프레임에 끼워 맞추지 않는다. 다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여과 없이 독자에게 전달하고 스스로의 존재는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지승호가 걸어온 방식이다. 여기에 진정한 장인 정신과 인터뷰이를 향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둑보적 인터뷰어라고 해서 말하기의 달인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물어봐 주고, 독자가 정말 궁금한 점을 짚어주어, 인터뷰어의 속내와 진정성을 끌어내는 대화의 센스는 단언컨대 지승호가 최고다.

 

난 한 작가나 분야에 필이 꽂히면 전작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한동안 강신주에게 필이 꽂혀서가 아니라, (ㅋ~.)

그의 노장사상에 빠져서 홀릭했던 적이 있다.

그때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라는 강신주와 지승호의 인터뷰 집을 읽으면서

그의 인터뷰라는 것이 '잘 차려진 상에 수저 한벌 놓는' 행위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인터뷰 집을 전부 찾아 읽게 되었다.

 

관점을 바꾸고 바라보니 많은 것들이 다시 보이는데,

그의 인터뷰어로서의 자질과 입지는 '인터뷰이가 감탄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또 거듭한'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언젠가 공중파 방송에서 방현주 아나운서가 지승호 선생님의 인터뷰집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준비되고 검증된 인터뷰어인 것만은 틀림없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그가 입장 바꿔 인터뷰이가  되어보는 것도 재미있고 여러모로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읽어야 할까?

방현주 아나운서처럼 인터뷰 공부를 하는 사람이 아니거나,

인터뷰이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일까?

 

강준만(전북대 교수) 강풀(만화가) 김난도(서울대교수) 박순찬(만화가) 오지은(가수) 이상호(기자) 한희정(가수)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들은 다들 자신의 분야에서 입지를 굳힌 유명인들이라는 공통점과,

지승호가 인터뷰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을 발견해 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들은 이상호 기자와의 인터뷰를 제외하곤,

지면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발표된 것들이라고 해서...쉽게 읽힐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의 '이상호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읽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올라,

흐르는 눈물을 참고 마음을 다잡길 여러번 며칠이 흘러버렸다.

 ㆍㆍㆍㆍㆍㆍ지금은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정확한 본질을 못 보고 있지만, 저는 단언컨대 이 고통이 이른바 세월호 체제를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과 자본의 갈등에서 상처 받아온 인간이 침몰한 거예요. 자본이 구조되고, 인간이 수장된 사건인데,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인간의 편을 들지 않은 사건입니다. 국가가 인간의 편을 들지 않은 사건인 거죠. 정정하자면, 자본과 인간이 동승한 배가 자본의 탐욕 때문에 침몰했는데, 국가는 자본을 구조했어요. 이게 사건의 본질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건을 마주하여 진실이 드러나야만 우리 사회는 인간 존중이라고 하는 시대적 가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310~311쪽)

이 리뷰의 처음에서 자신의 길을 언급한 것은 그래서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들은 다양한 자기만의 분야를 가지고 있다.

그 인터뷰이들을 나름 대가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이 책을 읽게 될 이들의 몫으로 남겨 두겠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인터뷰어인 지승호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재밌게,

최대한 즐겁게 하고 있고,

강준만 같은 경우는 그걸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그걸 각자 자기 방식이나 그들만의 전문 용어로 얘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강준만은 체념을 가장하지만, 애정의 반대말이 독설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걸 아는지라 가슴이 무너질 따름이다.

ㆍㆍㆍㆍㆍㆍ이번에도 『싸가지 없는 진보』 를 내고 놀란 것이, 책을 안 읽고 얘기하더라구요. 처음에는 기가 막혀 했다가, ' 정말 사람들이 뻔뻔해졌구나'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그게 하나의 새로운 모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상한 거죠. 속도가 생명인 시대에. 그때그때 느끼는 감을 토로하는 것이 하나의 생활양시그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버린 시대에 SNS 자체를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 것이죠. 책을 읽고서 코멘터리해야 된다는 것이 나의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ㆍㆍㆍㆍㆍㆍ그런데 이런저런 코멘트를 보고서 '아, 이 사람은 안 읽었어'하고 느껴지면 '책에서 다 설명했는데, 왜 이러실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읽었는데도 그랬다고 하면 그건 악의적인 것이고요. 그걸 이번에 많이 느꼈어요. 뭔가 확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 예전에 지면을 통해서 논쟁할 때는 글이 매체에 게재된 지 한두달이 지나서 반론하기도 하고ㆍㆍㆍ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았죠. 지금은 SNS 몇자로 배설을 해버리는 건데요. 언론들이 인터넷을 통해 속보 경쟁을 하다보니 깊이 있는 기사가 안 나오고, 가십경쟁을 하니까 진지한 언론들도 없어지고, 진지한 토론들도 없어진 것 같습니다.(18쪽)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인터뷰이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내로라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재밌게, 즐겁게 한다는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을 두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메르스 괴담'이나 '메르스 대전'이라고 해서 유언비어가 우리나라에서만 크게 대두되는 것은,

정부가 인간을 편들지 않으니까,

국민들이 정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다보니까,

우왕좌왕해서 걸린 과부하가 아닐까 싶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라고 읊었던 이는 서산대사였던가?

이 책은 내게 그런 의미의 책이다.

 

*고칠 곳 - 290쪽(예우X, 예후 O)

 

*오지은과 한희정 편에서 계속 '신' 이란 말이 나오는데, 처음에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한희정 소개 글을 보니 홍대 신(Scene)이라고 한다.

 영어사전에서 찾으니, '신조어로 젊은 사람이 인기 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라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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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6-05 00:21   좋아요 0 | URL
저는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란 책을 읽고 지승호저자를 알게 되었어요 책에보면 서민님이 질문에 답하시면서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라는 말이 자주 나오더라구요 참 꼼꼼 하신분이구나 싶었습니다.

북플에서 이웃님들 리뷰 자주 읽다보니 몇몇분의 리뷰는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왜냐면 그 리뷰를 읽고나면 꼭 북카트에 책이 실리구...밥상은 단촐해지고... 얼마후엔 그 책을 읽게된다는 ㅋㅂㅋ,, 요 책도 조만간 읽고있을거 같아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5-06-08 09:37   좋아요 0 | URL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수필 문구가 생각나는 예쁜 댓글이네요~^^

전 해피북 님 서재에 가면 책만으로 부족해,
이런 저런 요리 페이퍼에 제대로 허기가 진다는~ㅠ.ㅠ
책임지셔요~ㅅ!

아무개 2015-06-05 08:55   좋아요 0 | URL
아..카트때문에 각도계를 모니터에 붙이셨다구요?
양철나무꾼님이요? 아하하하하하 ^^:::::::::::::


김규항, 서민 두분 인터뷰한 책을 읽었는데
아 정말 이분(지승호)준비성 엄청나시구나라는 생각 했었어요.
인터뷰라는게 그냥 묻고 답하는게 아니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5-06-08 09:54   좋아요 0 | URL
김규항 님 까칠(?)하시기로 유명하시죠?
전 김규항 님의 이런 까칠함이 멋져보이는 거지만요, ㅋ~.

언젠가 김규항 님의 대학 직속선배(이 분도 반듯하고 까칠하기로 유명한 책 하시는 여 사장님)께
어떠냐고 물었더니,
˝나, 걔 너무 까칠하고 반듯해서 부담스러워.˝ 이러셨대요.

그런 김규항 님이 허투루 말씀하셨을리 없죠~^^

북극곰 2015-06-05 09:40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읽다보니 괜히 울컥해요.

양철나무꾼 2015-06-08 10:07   좋아요 0 | URL
울컥하시게 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이상호 님의 인터뷰 부분을 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이빙 벨`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봣으면 좋겠구요.
보면 눈물 나고 맘 아프다고 해서,
눈 질끈 감아버리는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고,
그건 결국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올테니까 말이죠~ㅠ.ㅠ

2015-06-05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8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madology 2015-06-05 15:40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포트리스는 각도기를 붙이면 더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군요.)

양철나무꾼 2015-06-08 10:15   좋아요 0 | URL
이리하여 포트리스와 각도기의 상관관계를 모르시는 님은 한참 영거하신걸로 사료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