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 얘기다.
한동안 책 얘기가 나의 화두가 될 것 같다.
그동안도 책을 열심히 들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책에 치여 책탑을 쌓느니,
책으로 테트리스를 하는 꿈을 꾸니 할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유난히 책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은 책을 읽는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되어,
책을 읽는 속도와 책을 들이는 속도가 나름 균형이 이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전이 땡기고(당기고),
('당기다'가 옳은 맞춤법인줄은 아는데, 이상하게 '땡기다'라고 해야 맘이 편안하다, ㅋ~.)
책 읽는 방법도 바뀌고 하니,
독서 속도가 마냥 더뎌진다.
스스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이렇게 고전에 관심을 보이나 의아해했는데,
다 나이를 먹기 때문인가 보다, ㅋ~.
ㆍㆍㆍㆍㆍㆍ배움은 노소가 다르다. 젊어서는 정력이 남아도니 모름지기 읽지 않은 책이 없어야 하고, 그 의미를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이가 들게 되면 주력할 것을 가려야 한다. 한 가지 책을 읽다가 뒤에 공부하기가 어렵겠다 싶거든 다시 읽어 깨달아 이해해야 한다. 침잠하고 따져 살펴 지극한 곳까지 마저 살펴야만 한다.
- 양응수, 「독서법」
ㆍㆍㆍㆍㆍㆍ
젊어서는 확산하는 독서가, 나이 들어서는 수렴하는 독서가 필요하다. 젊어서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하면 안목이 좁아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나이 들어 계속 벌이기만 하면 망망대해에서 돌아갈 곳을 잃는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에 맞게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년 이후의 독서는 집중처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화두를 들고 찬찬히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맞다. 여기저기 기웃대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깊이 보는 것이 맞다.
('오직 독서뿐'107~108쪽)
그동안의 책 읽기는 다독이었다.
그만그만한 책들을 폭 넓게 많이 읽기만 했었다.
곰곰 생각을 해야하거나, 성찰을 요구하는 책읽기는 일부러 피해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책만이 유일한 친구라고 외쳐댔으면서도,
책에서 무언가를 얻거나 느끼게 되기보다는, 그냥 킬링타임용이었다.
(물론 책에서 무언가를 얻거나 느꼈고,
그리하여 내 삶을 변화시켜 왔겠지만...인식하지 못했었다.)
난 친구의 조건으로 다른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걸 꼽는다.
적어도, 나보다는 똑똑하고 지식이 풍부하여...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친구의 조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독서, 다시말해 책에 있어서는 아무런 기준도 없이 두루뭉술이었다.
언젠가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를 했고,
그런 독서 중에 얼마전에 읽은 고전작품에서 우연히 물리가 트이는걸 경험하게 되고 보니,
책을 고르는 취향이 점점 고전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정독을 하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이권우'에선 그걸 이렇게 얘기한다.
책을 읽으려면 꼼꼼하게 읽고 비교하며 읽고 비판적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그리 읽어 왔다고 자부하고, 그리 읽어야 한다고 떠벌리기도 한다.('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14쪽)
암튼, 책을 읽으면 뿌듯하고 만족스럽기 보다는,
말할 수 없는 갈증과 열망으로 어쩌지 못하겠는 날의 연속이다.
에를 들어, '오직 독서뿐'을 읽다보면,
책에 언급된 아홉명의 원전을 주먹구구식으로라도 읽고 싶고,
이권우의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을 읽다보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그가 읽었다는 책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는, 읽은 책에서 씨실과 날실이 풀어 엮어내는 그물처럼 연관서적을 언급해주고 있는데, 그 양이 자못 방대하다.
게다가 그가 언급한 책 중의 한권은, 그는 잘 모르고 언급했을수도 있는데...
강신주가 펴낸 '철학VS철학'과 책의 배열이나 편성법이 비슷하다.
강신주를 들추고, 강신주의 '철학VS철학'에 언급된 철학자들로 관심이 뻗어나간다.
문제는, 이렇게 언급된 책들 중 내가 안 읽은 책들은...
절판이나 품절이 될까봐서 부랴부랴 구입한다는 것이다.
요며칠,
책에 치여 책탑을 쌓느니,
책으로 테트리스를 하는 꿈을 꾸니,
하면서도 어제는 황현산을, 오늘은 이탁오를 넘보고 앉아있다.
나의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친구는 이렇게 조언을 한다.
책을 말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맘도 참 이쁜 마음이야.
근데, 애착은 좋은데,
강신주를 애정하고,
그런 건 좋은 건데,
집착이 되는 건,
좀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어야 좋을 것 같애.
쉽진 않겠지만,
힘들고 속상할 걸 '감수' 하는 감수성 훈련을 해야할 거 같애.
다 본 책 중에서 불필요한 책은 과감히 방출하기도 하고,
기증하기도 하고 말야.
ㅇㅇ이 맘이 이해가 되면서도,
차츰 나아질 거라 생각하면서도,
책에 대해서 넘 애정이 넘치는 ㅇㅇ이를 보면서,
책탑의 라푼첼을 구하고 싶은 맘에 ㅋ~
그런데,
난 말이쥐~~~~~,
감수성 훈련은 전혀 되어주시지 않고 있고,
차츰 나아질지도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이익의 글이나 옮겨적으며 '자기합리화'를 하기에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고전'읽기나 정독을 포기할 수 없고,
독서 속도를 향상시키는 것 뿐인데,
얼마전까지 내 알라딘서재의 타이틀이 'where is my mind'였듯이,
일단 구방심求放心을 하고 볼 일이겠다.
예전 진열 선생이 기억력이 없어 고생했다. 하루는 『맹자』를 읽는데,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방심을 구하는 것뿐이다"라고 한 것을 보고 문득 깨달아 말했다. "내 마음을 일찍이 거두어들이지 못했으니, 무슨 수로 책을 기억하겠는가?" 마침내 문을 닫아걸고 고요히 앉아 1백여 일 동안 책을 읽지 않고 흩어진 마음을 수습하였다. 그러고 나서 책을 읽자 마침내 한 번 보면 빠뜨림이 없었다. - 양응수, 「독서법」
진열은 송나라 때 학자다. 머리가 나빠 읽고 돌아서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자책만 하다가 『맹자』의 한 구절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부의 요령은 '구방심求放心'에 있다는 그 말. 방심은 마음을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놓아두는 것이다. 이 방심의 상태에서 마음을 먼저 건져 내야 한다. 한 줄 보고 이 생각 하고, 한 장 보고 저 생각 하면 백날 읽어도 안 읽은 것과 같다. 열심히 할수록 성정만 나빠진다.ㆍㆍㆍㆍㆍㆍ
(오직독서뿐, "84쪽)
근데, 실은 난 구방심求放心도 중요하지만,
책에서 읽은 것을 책 안의 지식으로만 놓아두지 않고...
실생활의 경험으로 적용시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보다 더 좋은 암기법이나 이해법, 즉 감상법은 없다는게...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며 독서를 통하여 내가 터득하고 깨달은 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