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로티를 보았다.

좀 진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걸 감안하고서도 참 좋았다.

이제훈(장호 역)은 자기의 맞춤 배역이라고 할 정도로,건달과 천재 성악가 역할을,

한석규 역시 음악 선생님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냈다.

개인적으로 조진웅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웃음을 줄거라고 기대했었는데,

그와는 달리, 이제훈(장호 역)을 거둬 주는 건달로 분해 화려한 액션과 멋진 대사 몇마디 날려 주신다.

역시나 교장선생님 오달수가 크고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보니 '감동'을 의도적으로 전달하려 해서 좀 진부하지나 않을까 싶었는데,

나름 감동을 받았고, 나중엔 눈물과 콧물을 섞어가며 '엉엉'울기까지 한 것이 제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영화였다.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면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조진웅이 자신은 꿈이 없어서 가장 불쌍하다고 하는 장면과,

이제훈이 한석규를 향하여,

"언젠가는 사흘동안 말을 안한 적도 있습니다. 누가 말을 걸어줘야 지껄이지요." 하는 장면,

한석규가 건달 두목을 찾아가서,

"장호 보내주십시오. 손목아지는 피아노라도 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안되고, 발목아지라도 끊으십시오."하는 장면에서 흘린 눈물을 합하면 손수건 하나는 적시고도 남겠다.

 

난, 친구나 동료도 그렇고, 스승도 그렇고, 한참 나이 어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내가 그들로부터 무엇 하나라도 배울게 있는 사람이 좋다.

그렇다고 입장 바꾸어서,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만큼의 실력과 내공을 쌓았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올시다'이다.

예전에 지방 대학에서 한학기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물론 자질을 놓고 봤을 때도 많이 부족해서 강의를 듣는 입장에서도 내가 못마땅했었겠지만,

무엇보다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어 놓고 나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한시간 떠들고 나면 허기가 져 음식을 주워 삼키듯 부족한 밑천을 보충할 요량으로 책이고 자료를 들입다 팠다. 

 

음악 선생님 상진(한석규)은 제자를 위하여 건달 두목을 찾아가서 발목아지를 내놓는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진부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인터넷을 찾아 실상을 읽으면서는,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싶어, 뒤늦게 목이 메었다.

 

나에게 힘들고 불가능하게 보인다고, 세상 모두가 나 같으란 법은 없다.

새학년 새학기가 되어 다 새롭겠지만,

대입을 준비하는 인문계 고등학생은 새로움에,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한 학교에서 얼마 전에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이 나오자,

시험을 망친 한 학생이 좌절하여 선생님을 찾아가서는 철퍼덕 넘어져 눈물바람을 하였단다.

선생님은 울고 있는 학생에게,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있는 날, 니가 와줘서 다행이다, 고맙다."

하며 달랬단다.

 

어쩜, 요즘 울 아들의 장래를 놓고 고민 중이어서 이 영화가 남달랐는지도 모르겠다.

울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동안 무엇 하나 특별하게 빼어나게 잘하지는 못할지라도, 두루뭉술하게 잘하며 큰 말썽없이 지내왔다.

그리하여 자율고라는 곳을 단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는 이유 때문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주변 아이들이 다 자기만큼은 공부를 하더란다.

게다가 아들은 그 엄마의 오지랖을 닮았는지,

이것저것 두루두루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과 호기심도 많았다.

중3 무렵엔 맛을 탁월하게 구별해내서 그게 '맛 감별' 쪽으로 반짝하더니,

지금은 나이 또래의 '악동뮤지션'을 보고, 그애들처럼 기타 치고 작곡을 하고 싶으시단다.

문제는 자기 아들에 대해서 가장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봤을때,

그런 콩깎지가 씐 엄마의 눈으로 봤을 때도, 아들이 기타치고 작곡을 해서 대학을 갈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것들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데, 외동이어서 경쟁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녀석은...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그 상황이 싫으시단다.

 

적어도 밥은 굶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의 성화에도,

밥 몇끼 굶는게 낫지, 평생 하고 싶은 걸 못하고 불행하게 사는게 낫겠냐며...

한없이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에효~--;

 

 

 파파로티 O.S.T.
 한석규 외 노래, 강요셉 테너 /

 열린음악 / 2013년 3월

 

 파파로티
 유영아 원작, 김현정 소설 /

 탐 / 2013년 3월

 

그리고 오늘 유시민의 '어떻게 살것인가'를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정치인 유시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너무 가볍게 시류에 움직이는, 말과 행동이 다른 그가 보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정치색을 최대한 배격한 그의 글은 너무 괜찮다.

아니 그는 지식소매상이라고 표현하지만, 난충분히 마음에서 우러나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그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지음 / 아포리아 /

 2013년 3월

 

 

 

결론을 말하자면,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10쪽)

  ㆍㆍㆍㆍㆍㆍ어떻게 살 것인가? 크라잉넛은 자기네 생각을 이야기했다. '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 거 부딪쳐!' 훌륭한 대답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좋아하는 펑크록 음악을 들고 세상과 부딪쳐 나름 성공했다.인생에서 성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산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포기하고 산다면, 그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23쪽)

ㆍㆍㆍㆍㆍㆍ그러나 크라잉넛 멤버들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을 물질이나 지위, 사회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 어떤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두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설계했다. 그리고 그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밀고나갔다. 주눅 들지 않고 세상과 부딪쳤다. 인생이 성공했으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들은 좋아하는 놀이를 직업으로 삼았다. 이것만으로도 '절반'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인생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일과 놀이가 인생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사랑과 연대solidarity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크라잉넛 멤버들이 이 나머지 '절반'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절반' 성공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크라잉넛의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크게 빚졌다고 생각한다. 그 빚을 갚고 싶다. 그래서 그들도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인생의 나머지 절반도 소신대로 하기를 기대한다.(27~28쪽)

이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그는 힐링에 관해서 강신주와 같은 의견을 펼친다.

그리고, 이렇게 돌려서 얘기한다.

그런데 이 얘기가 그가 하는 말들이어서 설득력이 있고 아름답다.

미사여구보다 아름다운 말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의 소신이 담긴 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살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ㆍㆍㆍ.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떠나는 것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

그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들여다 보기라도 한 듯 이렇게 담담하게 적고 있다.

'지금' 바로 '여기'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꿈'을 얘기하는 것이고,

이것들이야 말로, 가장 소박하면서도 소신이 담긴, 설렘과 황홀과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빠르고 쉬운 방법이 아닐까?

 

그러면서, 카뮈의 스승 '루이 제르맹'을 언급한다.

그러고 보면, 유시민 그도 지식소매상 어쩌고 하지만, 선생님(즉, 교사가) 얼마나 위대한 직업인지 알고 있는 듯하며,

이제 그가 그러한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그가 여지껏 해오던 정치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조차 없는 멋지고 위대한 직업일 것임에 틀림이 없고,

그라면 훌륭한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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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3-25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저도 유시민 읽어볼래요, 라고 쓰고 양철나무꾼님 안녕, 오랜만, 이라고 인사도 하고.
보고싶었어요. 진짜진짜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글은 잘 읽고 있었고요. 댓글 없어서 서운했어요? 안서운했어요?

숲노래 2013-03-26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하루 마음껏 누리셔요.
저는 지난 한 주 서울 인천 떠돌며 강의하고 뭐 하느라
시골마을 봄꽃을 '한 주치 놓쳤'더니
아주아주 서운하더라고요.
참말 봄에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시골에서만 지내야지 싶어요.

아이와 함께 봄꽃 봄나무 즐기러
느긋하게 마실해 보셔요.
서로서로 마음에 걱정 아닌 즐거움을 놓아 보셔요.

북극곰 2013-03-2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파로티, 저도 진부할거라 생각했는데, 절친도 보고나서 한없이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영화 보러 갈 형편은 안 돼서 전 천천히 봐야겠어요.
유시민이 이젠 글쟁이로만 살아갈거라는데, 왠지 짠하고 씁쓸하고... 복잡하더라고요.
독자로서는 반길 일이지만.

그나저나 나무꾼님~ 저도 간만에 댓글 달아요.
봄이 되니 좋네요!

하늘바람 2013-03-2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카뮈 질문에 대한 답 어디 적어 놓아야겠어요 멋지네요 님따라쟁이 픈!

알케 2013-03-2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이번 책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무엇보다 '훈장질'안해서 좋아요.저는 일주일 째 점심시간에만 읽습니다.
파바로티는 (제가 영화관에서 본 마지막 영화가 '아바타'이니 한 3년을 영화관에 안갔네요.)언제나 볼 수 있을지 ㅎㅎ
우리 아들놈의 장래 희망은 한국야구위원회 (KBO)기록원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