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충청 편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이지누 지음 / 알마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겉표지의 문자는 '나 아我'의 고古문자란다.

 

내게 이지누는 '관독일기'가 시작이었다.

친구가 권해줘서 읽게 되었는데, 좋기는 해도 불교에 까막눈인 나로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어디선가, 종교색을 찾아내기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종교색을 지워가며 읽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라는 글귀를 보게 됐고, 그리하여 호기를 부리게 되었다.

1년여에 걸쳐 그의 전작들을 주르륵 따라 읽다보니 어느새 그에게 흠뻑 빠져 들게 되어, 

글이 아름다울 수 있는 까닭은 비단 유려한 문체나 어휘력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세련된 미문이 아니고 투박하더라도 그가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분명한 아취를 풍기는 것 아니겠는가.(18쪽)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기준까지 따라쟁이가 되었음은 물론, 나라면 이 사람의 글을 제일 위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사실 이지누의 글은 개인주의적인 ego가 아닌, '나 아我'를 담고 있다.

예전에는 세상과 타인을 상대로 싸움을 했었고,

그후 한동안은 그러한 허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와 그렇지 않은 내가 날마다 피 흘리는 다툼을 벌이곤 했었단다.

그리하여, 이제는 자기자신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주는 거울 하나를 갖게 됐다는데,

내가 보기에 그건 거울이라기 보다는 햇빛조차도 투과시키는 유리이지 싶다.

객관적이라는 것조차도 시점이 개입하는 것이니,

그마저도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느낌의 투영이나 투과.

 

근데, 그게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된것은 아니고 '지독한 자기 내면과의 싸움의 결과'이다.

우린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동안은 그동안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와 그렇지 않은 내가 날마다 피 흘리는 다툼을 벌이곤 했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만 범인凡人인 우리는 그걸 닮으려 하다가는 피 흘리는 싸움에서 살아나는게 장렬히도 아니고 어이없이 전사해 버릴 수도 있으니 명심해야겠다, 할~!

 

'이지누'를 권해준 친구가 얼마전에 이런 얘기도 함께 해주었다.

독수리는 가장 오래 사는 새로 알려져 70년까지 살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독수리의 평균수명은 40년.

70년을 살기위해서는 40에 이르렀을때 신중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나이쯤 되면 발톱이 안으로 굽어진 채로 굳어지고 휘어진 부리는 가슴쪽으로 구부러지기 때문에 먹이를 잡기 어려워지고, 날개는 약해지고 무거워지며 깃털들은 두꺼워져 나는 것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큰 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40에 독수리는 '더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절벽끝에 둥지를 튼다.

자신의 휘어진 발톱을 부리로 하나씩 뽑아내고, 낡은 날개의 깃털을 뽑아내며, 제 부리를 바위에 찍어 없애며, 새로운 발톱과 깃털과 부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150여일을 보낸다.

이렇게 5개월을 잘 견뎌낸 독수리는 새로운 삶을 얻어 30년을 더 날 수 있단다.

 

이 친구는 지금 나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의미가 다르고 새롭기 때문에,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의 그간의 고통 따위는 'out of 안중'이고,

발톱과 깃털과 부리를 갈고 새로 날아오르는 느낌이라는 얘기도 함께 해 주었다.

ㆍㆍㆍㆍㆍㆍ몸은 잔뜩 웅크렸을지언정 마음만은 환하게 열렸기 때문이다. 얼굴로 들이닥치는 눈에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ㆍㆍㆍㆍㆍㆍ살면서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수차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서로 아무런 말을 나누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물끄러미 그를 만나고 나면 그의 존재보다 나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이제 버릇이 되어버렸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다. 탑이 없었다면, 곧 부처님이 없었다면 내가 눈보라 모진 절터를 이렇듯 헤매고 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에게 급한 것은 부처님이 아니었다. 설사 내가 그에게 급하다고 해도 그는 언제나 시간을 요구했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여여如如하게 있지만 그에게로 가는 동안 나는 언제나 뒤뚱거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뒤뚱거리다가 세상에 미혹되어 사람에게 흔들리기 일쑤였고, 너덧 차례 그렇게 흔들리고 나면 떨어져나가는 것은 불거진 욕심만이 아니었다. 그것과 함께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것들은 뭐라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아픔이었다. 그러나 나만 아프고 마는 것에서 그치면 천만다행이었다. 문득 나 지신을 바라보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까닭 모를 분을 이기지 못해 나도 모르는 어느새 내가 피폐한 가해자가 되어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렇듯 혹독한 날씨 속에서 부처를 만나고 싶었다. 그를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앞세워 모진 눈보라 속을 걸으며 참회하고 나를 일깨우고 싶었던 것이다.(24~26쪽)

내가 그랬었다.

항상 외롭다, 외롭다...노래를 부르고 다녔지만,

정작 누군가 다가와서 손 내밀면 그 손을 마주 잡아 주기보다는 짐짓 뒤로 물러나 버리곤 하였다.

깍듯하게 예의를 지켜야 할 것 같고,

경계는 밟거나 넘어서면 안되는 줄 알고,

누군가 내 앞에서 든든히 비바람을 가리워주는 존재는 말할 수 없는 신들이나 부모님이 고작이었고,

책이 유일한 위안이고 친구였다.

근데 내가 외롭다, 외롭다...하는 동안 이 세상 어느 누군가는 내가 뿜어내는 쌩한 바람과 마주해야 했을 것이고,

손을 마주잡지 못한 이는 내게서 시린 거절을 읽었을지도 모르고,

내 손끝으로 떨어내는 동작에서 냉정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가해자'라고 하여 일말의 책임도 없다는 말은 비겁하다.

  거기에 더해 그는 앞에서도 말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한다. "저 사람이 마시는 것이 나의 배고픔을 채워줄 수는 없으니, 어찌 스스로 노력하여 마시고 먹지 않겠는가"라고 말이다.

ㆍㆍㆍㆍㆍㆍ부처를 찾아가는 길, 그 길은 누구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길이 아니던가.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고독을 두려워한다면 한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는 길, 그 길에서 내가 구하려는 것은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이다. 전체라는 것은 부분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부분의 집합이 곧 전체이며, 전체는 부분을 평등하게 아우르는 것일 뿐 그 어느 것이 다른 것에 대해 우선하며 상하를 나누는 수직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 속에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니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분별을 넘어 선 전체, 그곳은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인식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禪의 깊숙한 곳일 테니까 말이다.(38쪽)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목은 이색과 환암 스님의 우정을 얘기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이 이토록 부럽고 멋있게 보인 것은, 글을 빚어낸 이지누의 내공이 한몫한다.

일단 이지누 본인이 '나 아我'에 집중을 해서 자신을 낮추고 비워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었을테고,

이지누 본인도 경주언저리에 사는 삼십 년 지기 그런 친구가 있다고 <관독일기>에서 밝히고 있었느니 말이다.

 

근데, 이쯤에서 한가지 궁금한게 생겼다.

남녀간의 우정은 색안경을 끼고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차치하고라도,

남자들의 우정을 일컫는 사자성어는 많은데,

여자들의 우정을 일컫는 사자성어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자들의 우정은 없는 것일까?

  시의 제목을 <환암을 받들어 생각하다>라고 짓는 것은 물론 환암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에도 진정 기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겸양의 모습이리라.ㆍㆍㆍㆍㆍㆍ그런 절간이 청룡사에서 놀다가 목은을 찾아와 환암이 보낸 편지 한 통을 전해주었다. 이에 목은이 기쁜 마음으로 시를 지었으니 제목이 <절간 윤 공이 청룡사에서 노닐다가 돌아와서는 항아리에 순채를 담아 건네주면서 환암의 서신을 또 전해주었다. 이에 너무도 기쁜 나머지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이며,

ㆍㆍㆍㆍㆍㆍ

  목은이 환암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뿐 아니다. 서로가 의당 그랬을 것이지만 서로에게 불쑥 찾아가 곤혹스럽게 하는 일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항상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며 서로의 수행에 몰두하며 조심하는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다고 할 정도다.

ㆍㆍㆍㆍㆍㆍ
 이렇듯 목은이 환암에게 보내거나 그를 생각하며 쓴 시들은 대개 진한 그리움이 묻어 있으며, 한 줄 문장들이 모두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주눅이 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근신일 뿐이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이야말로 佛과 儒를 가리지 않는 큰 사람의 모습을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96~299쪽)

 

 그때 깨달았다. 사랑이 깊으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 무엇을 한들 그가 드러나기보다 나 스스로가 드러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일 뿐 결코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이 글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환암스님과 목은의 우정은 마음속에 침잠해 있는 것일 뿐 결코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목은은 환암의 겉모습에 대해 한 줄도 쓰지 않으면서 오히려 화상 찬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은 목은이 환암을 생각하거나 환암이 목은을 생각하는 마음이 발효되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자연스러운 글쓰기였던 셈이다.(315쪽)

나는 내공이 부족해서, 이지누처럼 스스로를 맑게 비추는 거울일수는 없고,

나 자신을 보는 듯 닮은 친구를 갖게 된 것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그 친구를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서로를 거울 삼아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거라 믿기에 더 고맙다.

배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친구 또한 마찬가지란다.

친구가 많으면 '나 아我'를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니, 몇 명으로 족하단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 개인주의적인 ego와 '나 아我'를 구분해 내지 못하지만,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싶다.

 

분위기를 바꾸어,

내가 종교에 까막눈이어서 종교색을 지워가며 읽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이 글을 쓴 이지누의 내공이 출중하다 보니 감명받는 구절이 있었다.

그 부분은 다름 아닌,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서인데...

이제껏 노자를 편저자를 바꾸어 가며 수십번 읽은 내가 보기에도 멋지고 근사한 해석이다.

좀 길지만 두고 두고 음미하고 싶어,옮겨본다.

시간이 있으면 두고두고 필사하며 외고 싶은 문장이고 작가이다.

 

그러니 판전이라는 글씨를 쓸 무렵 완당은 불가에 귀의한 불자였다. 그런데 그가 쓴 글씨를 두고 현세의 선비들이 교졸巧拙의 미학을 논한다. 위에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교졸은 <노자>에서 말하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이다. 그런데 이 졸拙이 문제다. 졸은 교巧를 이루거나 이미 넘어선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이 동양미학 일반이다. 그렇게 내로라하는 미학자들이 판전 글씨를 두고 앞다퉈 교졸을 말하고 또 그 글씨체를 무구동진체無垢童眞體라고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봐도 그것은 교졸로 설명될 수 잇는 글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적 입장, 곧 유교나 도교의 입장이 아니라 불교적 시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판전 글씨는 한 인간이 베풀어놓은 연화장세계이자 지극한 인간의 마음으로 이러낸 화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ㆍㆍㆍㆍㆍㆍ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완당은 그 어떤 때보다 맑고 청정한 마음으로 판전이라는 글씨를 쓰지 않앗을까. 그 무렵의 완당은 이미 경계를 넘어선 곳에 있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 깨달음을 이룬 많은 스님들  중 천진무구하지 않은 스님들이 있던가. 경계를 넘어선 스님 모두 어린 동자승과 같은 천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모습은 화엄을 이룬 모습들이었다. 완당이라고 달랐을까. 그의 필법은 한 순간도 게을리하지 않고 평생 갈고 닦은 것이 아닌가. 곧 깨달음을 이룬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글씨로 정각을 이룬 경지에서 구족계를 받고 마지막 붓을 들어 획을 그었으니 그 글씨의 완성이 곧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판전이라는 글씨를 통해 문자반야文字般若를 이루었다. 그 순간 그가 다다른 곳은 말로써 다할 수 없는 화엄, 그 환희로운 곳이었지 않을까. 그는 글씨를 쓰면서 글자, 그 속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글씨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은 편액의 겉모습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그 글씨를 논하려면 그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 편액 너머를 봐야 한다. 보라, 그 작은 편액의 무변광대한 넓이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말이다. 그것을 어찌 글과 말로 다할 수 있단 말인가. (346~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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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3-02-17 23:32   좋아요 0 | URL
70년을 살기위해서는 40에 이르렀을때 신중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 저 이 말이 콕 와서 박혔어요.

숲노래 2013-02-18 06:27   좋아요 0 | URL
사자성어는 '남자 권력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은 중국말이니, 여기에 '가시내 사이 우정'을 가리키는 낱말은 안 생길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사자성어, 곧 한문을 쓰던 사내들은 가시내를 몽땅 '집안일'에 붙들어 매었으니, 가시내들이 집밖으로 나돌며 이웃하고 우정을 나누기란 어려웠겠지요.

그래도 굳이 '네 글자'를 바라신다면, 한겨레는 '이웃사랑'이라는 말을 썼어요. 이웃사랑은, 집 바깥을 떠돌던 사내 아닌, 집안에서 집안일을 하던 가시내들이 이웃집을 아끼고 돌보는 따스한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니, 이런 말로 조금은 생각을 가다듬을 수도 있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사자성어 아닌 한국말은 예부터 '남녀 가르기'가 없어요. 길동무, 소꿉동무, 어깨동무, 놀이동무, 씨동무, 해동무, 별동무, 달동무...... 이런 낱말들은 모두 '서로 나누는 깊은 마음'을 나타내요. 또, 네 글자짜리 한국말을 살펴보면 '너나들이' 같은 낱말이 있어요.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라는 책에도 썼는데, 한국사람 누구나 스스로 조금만 생각을 기울이면, 스스로 아름다운 말과 슬기로운 글과 맑은 마음과 고운 사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2013-02-18 0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2-18 06:47   좋아요 0 | URL
손을 맡잡지 못한 이는 내게서 시린 거절을 읽었을지도 모르고,
내 손끝으로 떨어내는 동작에서 냉정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가해자'라고 하여 일말의 책임도 없다는 말은 비겁하다.

- 어쩜, 이런 구절들은 저도 쓰고 싶은 얘기지만 떠오르지 않는데, 역시 내공 깊은 양철님^^*

하늘바람 2013-02-18 10:00   좋아요 0 | URL
이지누
저도 님따라 읽어봐야겠어요
님따라 공부할 책들이 서점을 만들겠어요
읽다보면 참 제가 님을 많이 닮은 듯한데
왜케 게으른지는~
서로 아무말 나누지 않아도 좋았다.
그런 벗과 함께 나무 그림자 비추는 연못이나 강가에 한참 아주 한참 앉아 있다 오고 싶네요

2013-02-18 15:34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말씀대로 양철님 권하는 책마다 다 읽고 싶네요.^^ 독수리 이야기 정말 인상적이에요! / 옛사람들 우정은 진짜 깊어서 부럽더군요. 전에 읽은 <삶을 바꾼 만남>에서도 느꼈지만..

글샘 2013-02-18 17:11   좋아요 0 | URL
판전 글씨는 한 인간이 베풀어놓은 연화장세계이자 지극한 인간의 마음으로 이러낸 화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네요...
글씨를 글씨로만 봐서, 대교약졸이라며, 졸스럽다고 비웃거나 주관적으로 평가할 게 아니라,
그 세상을 살았던 사람 눈으로 물끄러미 들어다봐야 보이는 경지가 있을 수 있겠네요.

그 글을 부처님의 경지로 보는 눈과, 아무리 봐도 졸한데... 대교가 쓴 글자니 뭐라고 흉보지도 못하는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르겠죠.^^
이지누의 글은... 서정적이면서도 생각이 깊은 구절이 참 많더군요. ^^ 잘 읽고 갑니다~

알케 2013-02-20 19:11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 나무꾼님...종종 들러 포스트 잘 읽고 있습니다.
저야 애옥살림에 속진잡사에 휘둘려가며 여전히 황망하게 살고 있습니다. ㅎ

저도 근래 이지누를 소개 받아 그의 폐사지 답사 연작 세 권을 내처 읽었습니다.
이 양반 '서권기 문자향 書卷氣 文字香'이 대단하더군요.
근래 읽은 책들 중에서 글맛으로는 으뜸. 게다가 본업인 사진도 좋고...
So unfair..ㅎㅎ

2013-02-21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