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난 성적소수자에 관심이 없다.

성적 소수자 뿐만 아니라 어떤 경계나눔 자체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경계를 나누는 순간 그 경계에 갖혀 소수자나 약자가 되어버린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혹 다수자나 강자가 된다손 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건 어쩜 내가 '세상의 경계들을 향하여' 나로부터 비롯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 하는 도발적인 질문을 해대는 마리앙토와네트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김조광수.김도혜 지음 /

 알마 / 2012년 6월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건,

김조광수라는 사람이 그동안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학생운동과 인권운동의 현장의 최전선을 넘나들며 보여준 실행력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목소리라면 왠지 귀기울여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이쪽으로 닫아두려 했던건 어쩜...

이들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것으로 힘을 실어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어긋난 방향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총알받이가 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입지가 여의치 않은 이들이 설 자리를 잃고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조광수라는 사람은 나의 이런 우려를 일갈하듯이...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이 작업을 마치 축제처럼 해내고 있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러면서도 객관적인 인터뷰어 김도혜는 나를 제대로 까발렸다. '이런 것까지 얘기해도 될까?' 나는 가끔씩 주춤거렸지만, 김도혜는 멈추지 않았다. 한 꺼풀 한 꺼풀 벗어야 했고 결국엔 알몸을 보여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과 드러내고 싶은 노출증 사이에서 나는 나락에 빠지기도 하고 희열을 맛보기도 하는 등 감정의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 시작되었고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 책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새롭게 돌아본 '나'는 내세울 건 별로 없고 부끄러운 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부족한 게 있어야 인간미가 있다고들 하지만, 난 부족함에 있어서 평균치를 웃돌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출간하는 것에 동의한 이유는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용기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인터뷰이 김조광수의 들어가는 말 중에서)

 

사실 그를 비롯한 '성적소수자'라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어둡고 우울함이 기본 정서인 사람들이다.

현실의 어두운 부분, 즉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그 부분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더 진지하고 무거워져 버린다.

그런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작업이라는건,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깔려있는 어둡고 우울함을 한쪽으로 접고 가는 작업일텐데,

그는 그걸 밝고 명랑하게 치환시켜 축제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가되,

각자의 살아온 세월을 부정하지 않고 투영시키려고 애를 쓴다.

각자 살아온 세월을 부정하지 않는다는건,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에 발 붙인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현실에 대한 인식없이 꿈만 꾼다면 사상누각이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 기초하여 땅에 발 붙인 꿈만을 우린 희망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거다.

땅에 발 붙이지 않은 꿈은 환타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하여 김조광수가 하려고 한 얘기,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대변하느라 그가 하려고 한 얘기, 를 요약하면 이쯤 되겠다.

 

일반인들이 보고 '역시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로 끝나는게 아니고,

동성애자로 사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는 걸 보고,

그 '행복'을 보고,

'아, 내가 그동안 너무 한쪽에서만 봤구나'라고 발상을 전환토록 유도하는걸 꿈꾸고 있다.

일반의 '선입견의 탈피'와 이반의 '행복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꿈꾼다.

 

옛날에 친구랑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우울근, 근사근 하면서 논 적이 있다.

근육을 수의근, 불수의근으로 나누는데 심장근은 불수의근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대로 심장을 뛰게했다 멈추게 했다 할 수 없는거니까,

사람의 심장은 사람의 맘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의 우울이나 근사함 따위, 감정은

쉽지는 않더라도 조금만 노력하고 연마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랬던 터라, 이 책에서 연애근육이란 단어를 보자 반가웠다.

연애근육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섬세함이 좋고 맘에 들었다.

도혜 정말 못 말리는 김조광수다. 나는 선생님이 나를 친구처럼 대하는 게 기뻐서 내 맘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신은 연애에 관해서는 아무런 장벽도 없고 매우 용감하고 꿈꾸는 사람 같다. 자신을 회상할 때도 연애와 사랑의 주체로서 자아가 아주 확실해 보인다. ㆍㆍㆍㆍㆍㆍ그러니까 연애 쪽으로는 촉수가 아주 발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열아홉 살이나 어린 애인과도 잘 사귀는 거 아닌가? 나에겐 없는 아주 센 연애근육이 당신에겐 있지 싶다.(73쪽)

이 책을 통하여 새롭게 정립하게 된 개념은 '시민결합'이라는 거다.

*시민결합 :

ㆍ 동성 또는 이성 커플이 법원에 동거계약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사회보장,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에서 결혼에서와  같은 권리를 갖는 제도.(189쪽)

ㆍ전통적인 결혼제도를 동성간에도 허용해야 한다는 '동성 결혼 합법화'가 하나고, 나머지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행하고 있는 '시민결합'의 제도화이다. 시민결합은 성별, 애정관계 여부를 가리지 않고, 동거하는 두 사람의 연대를 인정해 결혼에 준하는 사회보장적, 법적 권리를 주는 대안적인 결합 제도다.(193쪽)

ㆍ이에 따라 남편 husband과 아내 wife라는 이성애를 전제로 하는 용어를 없애고 배우자 spouse와 동반자 partner라는 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194쪽)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걸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성적소수자의 사랑이라고 하여 특별한 것이 아닐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저렇게 잣대를 들이대고 경계를 나누어 그들의 사랑을 분류해 낼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사랑이 있는데...

다르다는게 결코 틀린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성적소수자라고 가정했을 때,

사랑은 당사자 간의 문제이니까, 둘이 좋으면 그걸로 된거다.

'성적소수자' 라는 사회적 편견에 주눅이 들어 어둡고 힘들기만한 사랑을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그 사람도 알고 그걸 받아들여준다면...

그것으로 된거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리라.

 

왜냐하면 세상에는 어긋난 사랑도 많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얘기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멀리 있어,

두고두고 그리워만 하는 사랑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들을 좀 편안하고 이쁜 시각에서 그려낸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라는 만화도 있고,

핏빛 그리움으로 질펀하게 풀어낸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책도 있다.

 

 

 

 

 

 

 

 

 

 

 

 

 

개인적으로 '애니 프루'를 엄청 좋아하는 지라, '브로크백마운틴'이 더 훅~하고 다가오는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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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8-11 00:55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읽지 못했는데 두결한장은 잼나게 봤어요. 그러고보니, 김조광수 영화를 본 게 좀 있긴 하네요.
그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르긴 하지만 영화로 말하고 있는 듯해요.
나무꾼님, 전 며칠 전 참 사랑스러운 일본영화 '하와이언 레시피'를 봤는데요,
거기서 '동성애'를 해석하는 말이 '사랑엔 국경이 없다'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물론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그 말을 푸는데, 좋은 해석이라고 노인이 청년에게 말해요.

숲노래 2012-08-11 04:51   좋아요 0 | URL
동성애를 다룬 만화는 아주아주 많아요.
한국에서도 드물게 있었고 요즈음에는 꽤 많이 나오는데,
'송채성'이라는 분이 그린 만화는 모두 '동성애'가 주제랍니다.
이제는 절판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찾아보실 수 있으면 한번 찾아보셔요.
한국만화 가운데 작품성과 줄거리와 엮음새 모두 아주 탄탄한
참 괜찮은 만화책이랍니다.
<셸 위 댄스>나 <미스터 레인보우>나 <취중진담> 같은 만화들은
여러 번 보아도 물리지 않고 좋았어요.

일본만화에는 동성애가 대단히 많은데
<방랑 소년> 같은 만화책은 초등학생 눈높이로도
동성애와 성정체성을 알아듣도록 그린 작품이기도 해요.

마녀고양이 2012-08-11 08:18   좋아요 0 | URL
내가 아는 사람한테 누가 상담받으러 와서,
처음에는 그런 말을 안 하다가 몇회기 지나서 실은 저는 '호모예요' 라고 했대.
그 순간 듣던 상담자가 입이 딱 벌어져서 다물지를 못한거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담자가 먼저 웃더래.
솔직하게 반응해줘서 차라리 고맙다고 하면서. 그리고 그 상담자는 지도 교수님께 된통 혼나고... ^^

다르다, 그걸 인정한다는 것은 참 어려워.... 모든 일에서.

하늘바람 2012-08-11 10:02   좋아요 0 | URL
와 다 긴긴 댓글 주소만 받아놓고못보내고 있네요 그냥 잊고 계시면 갈거예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