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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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나서 애도의 기간을 놓고서도

남녀가, 동서양이, 잃은 대상의 친밀도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는데,

이 책에 나오는 러브스토리를 그냥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전에 위지안의 자전적 이야기 '내가 오늘 살아갈 이유'를 읽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 옆동네 중국의 일이고,

글을 쓴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라서 좀 더 닭살 감성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혼해서 5년을 같이 살던 남편을 잃은 여자가 5개월만에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설정은,

알고보니 남편이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초식남 같은 남자였고,

그녀와 잘 맞지도 않았고,

사랑을 한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든 어쨌든 간에,

우리나라의 정서로...아니 대상을 좁혀 나의 정서로 이해 불가능이다.

 

암튼, 이 책을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스웨덴 작가의 책이라는 것과,

스웨덴이 사회민주주의라는 걸 표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스웨덴이 남녀평등을 제창하고 있는데...

그게 언뜻보기에는 이런 면들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또 한가지 여자가 성을 얘기하는데 있어 더 개방적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여자 주인공의 나이 서른 다섯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결혼한지 5년 됐다고 했으니,

서른에 결혼을 한것이고,

결혼 후 5년동안 아이를 안 가졌다는 것 또한 스웨덴이니까 가능한 설정이 아닐까?

 

여자는 도심 한복판에 사는 걸로 나오는데,

도심 한복판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다녀올 수 있는 무덤, 추모공원이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의 정서나 상황으론 불가능한 것이었다.

 

여자는 그런 무덤가에서 만난 남자에게, 남자의 미소에 대번 정신이 팔린다.

ㆍㆍㆍㆍㆍㆍ나는 그의 환한 미소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모자도 쓰지 않았고 무언가에 긴장하고 있으니 더이상 슬프거나 나이들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덥수룩한 머리마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화는 즐거웠다. 크리스테바나 라캉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난쟁이 요정이나 콘크리트 주조의 여러 단계, 노란색 멧새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그리고 커다란 발톱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가 내 말을 너무 잘 알아들어서 마치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69쪽)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 소녀처럼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순간부터는 기억 속에 구멍이 나버린 듯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66쪽)

 

작가는 시대나 국가 따위를 초월해서, 애닳고 안달하는 연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내손은 전화기를 끊임없이 만지작거렸다. 때로는 전화벨이 울리지 않아서였고, 때로는 전화를 하고 싶어서였다.(112쪽)

이 책은 여자 작가가 썼는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건 남자의 심리라고 할 것까진 없고 연애를 하는,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를 이들이라면 남녀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게 아닐까?

난 그녀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녀를 묶어두고 싶었다. 그녀가 가끔씩만 날 원하는 것 같아 그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었고, 그런 사실은 내게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때로는 그녀에게도 집안일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은가. (134~135쪽)

 

 가끔씩 내가 그녀의 온몸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그녀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까봐 두렵기라도 한 것처럼.ㆍㆍㆍㆍㆍㆍ그녀가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주기만 한다면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157쪽)

이건 뭐, 우리나라의 상황이라면 여자가 내뱉었어야 하는 멘트가 아닌가 말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자신이 없고,

날아가 버릴까봐 두려워 묶어두고 싶고,

상대가 가끔씩만 날 원하는 것 같아 불안하고...

하지만, 그는 그녀에 비해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라...

공동 분담해야 할 가사일조차 동참을 요구할 수 없어하고 그걸로 좌절한다.

 

근데, 난 진짜 사랑이라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면 다가가고,

날아가버릴까 두려워 묶어두는게 아니라, 편히 쉬었다가 훨훨 날아가게 만들어 주고...

상대가 가끔씩만 날 원하는 걸 불안해할게 아니라, 내가 상대를 늘 원하는 걸로 행복해 하고...

내가 상대에게 부족하다는걸, 날 채워가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가능성으로 생각하고 싶다.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내 기준에 맞게, 또는 날 상대의 기준에 맞게...바꾸려고 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외롭다는 이유로 사랑하지도 않는 그 누군가에게 닿으려하고 만지고 하려는 건...

왠지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혼자 사는 사람들이 미용실이나 치과 또는 발 관리사에게 가는 것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신의 몸에 닿는 누군가의 손길이 그립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158쪽)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을 속일 수는 있어도,

다시 말해 상대가 아니라 사랑을 한다는 감정 그 자체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지 싶다.

그녀는 스포츠 경기를 알리는 음악만 나오면 짜증 섞인 신음을 내며 꽃무늬 가방에서 그 망할 시집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항상 들고 다니는 그 가방 속에는 언제나 두세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ㆍㆍㆍㆍㆍㆍ

 함께 영화를 빌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견 일치가 안 돼 언제나 두 편을 빌려야 했다. 내가 보는 동안 데시레는 꽃무늬 가방을 찾으러 갔고, 그녀가 보는 동안 난 잠을 잤다.

 우리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난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매일 한 가지씩 견디면서 지내는 법을 배우면 되니까.(166쪽)

나는 어쩜 이 책의 처음부터 이들의 sad ending을 예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쩜 이들은,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나의 가치관과는 달라 happy ending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서로 습관이나 취미가 약간 다르면 비껴 갈 수 있지만,

자꾸만 어긋나서 공통부분이 적어지다보면...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존재가 된다.

같은 액체라는 동질감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겉도는 존재라는 이질감이 극대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한가지씩 견뎌 내는 것'이 쌓여, 어느날 툭 터져버리면 그땐 감당할 수조차 없어질텐데...

그래도 계속 노란 상자 안의 '이들'처럼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시간을 1분 1분 잘게 나누어 쓴 알약처럼 삼킨다. 내 앞에 남아있는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우리는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자신의 지옥을 만든다. 그래서 지중해 사람들에겐 식을 줄 모르는 열기가, 북유럽 사람들에겐 얼음 같은 추위와 적막이 지옥이다.

 난 내가 저지른 잘못들과 놓쳐버린 모든 기회를 영화 속 장면들처럼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만의 지옥을 만들어냈다.(276쪽 )

   

 한시간이라는 시간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1 분이 존재했다. 그리고 내 삶에서 그 1분 1분은 너무나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었다.(279쪽)

우린 사랑을 잃었다거나 어긋났을 때, 더디고 느릿느릿한 1분에 대해서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간 순간, 1분 1초가 소중하기 때문에 내 곁의 사람들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할 때가 있다.

어쩜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지금 이순간(herenow)이듯,

지금 이순간을 함께 하는 이가 가장 소중한 건지도 모르겠다.

 

 ㆍㆍㆍㆍㆍㆍ황새를 본 적이 있지만, 믿지는 않는다는.

 난 '사랑'을 해본 적은 있지만, 믿지는 않는다.

 

이 책의 끝부분엔 이런 자조섞인 독백이 등장한다.

난 이 구절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내일이나 나중 따윈 믿지않더라도, 오늘을 가열차게 살고 있는 '나'이니까...

지금 이순간(herenow), 지금 이순간을 함께 하는 이의 소중함 따위는 믿고 살고 싶다.

그게 작은 희망이고, 소박한 행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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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7-16 19:14   좋아요 1 | URL
아, 이 책. 서로의 차이 때문에 갈등하는 부분에서 잠시 쉬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신경 안 쓰고 읽었는데, 그러고 보니 '스웨덴'이라는 점도 꽤 주목할 만한 점이네요.
우리의 여주인공이 남자의 환한 미소를 보고 불끈 솟아오를 때 참 벅차던데 ㅎㅎ
끝까지 읽어보고 리뷰를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아이리시스 2012-07-17 00:56   좋아요 1 | URL
저는 안 읽었으니까 리뷰가 엄청 재밌었어요.

뭘 더 주고 싶은데 더 줄 게 없거나 뭘 줘야 할지 모르겠을 때 가슴으로부터 '사랑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상황의 '사랑해요'가 진짜 사랑한다는 의미인지, 사랑한다고 많이 말하는 게 더 많이 사랑하는 건지, 이런 생각이 왜 들었을까요?

여튼, 사랑은 그냥 해야 해요. 뭘 자꾸 말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 오랜만에 안녕^^

차트랑 2012-07-17 11:39   좋아요 1 | URL
난제는 수학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 어렵다던 '푸엥카레의 추측'도 100여년 만에 풀어냈다고 하니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리만가설'보다 더 어려운....
어쩌면 인류 역사상 '영원한 난제=사랑'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에는 접근해 갈 해당 공식이 없어 그런건 아닐런지...

2012-07-18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2-07-18 16:38   좋아요 1 | URL
'상대를 내 기준에 맞게, 또는 날 상대의 기준에 맞게...바꾸려고 들지 않는 것'
머리로는 이 말씀에 동의하지만, 가슴으로는 도통 이렇게 되지 않더라구요.
한번 무언가(혹은 누군가에)에 빠지면 뜨겁게 열중하는 편이라서요.
사랑의 정의야 사람에 따라 수없이 달라지겠지만,
제 기준에서 사랑은 앞에 뭐라 수식어가 붙든 상관없이 '착각'인 것 같아요.
요즘 그 '착각'에 대해 고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