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초 세트 - 전2권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정이현 지음 / 톨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영어 제목은 'The foundation Of Love'이다.

내가 영어 제목을 들먹이는 이유는 우리말 제목 '사랑의 기초'라고 했을때, 그 기초가 basic인지 foundation인지 명확하지 않은 감이 있어서이다. 

basic이라고 했을때는 시작, 초급이라는 느낌이라면, foundation이라고 했을때는 일의 바탕이 되는 토대라는 느낌이 강하다.

(나 혼자만의 주관적 느낌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고~--;)

 

두 권으로 이루어진,

각기 다른 설정의,

두 편의 소설을 통하여,

두 명의 작가 - 그들이 보여주려한 것은 '사랑의 기초;The foundation Of Love'의 제각각 다른 형태들(하지만, 어쩜 결국은 하나가 아닐까 싶은 그 어떤 것?)이다.

 

여기서 '기초'는 '시작'이 아니라 '근간'이고 '토대'다.

사실, 정이현이 쓴 <사랑의 기초, 연인들>편에서는 이 '기초'가 '시작'이어도 좋고 '근간'이나 '토대'여도 상관없는 듯 보이기도 했었다.

정이현은 <달콤한 나의 도시>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그 작품에서,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onthroad(온 더 로드)라는 메일 계정을 쓰던 익명의 남자에게 마음 쓰였었다.

이 작품, <사랑의 기초, 연인들>에서도 같은 이유로 준호에게 마음이 쓰였다.

 

이건 어쩜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어서,

또는 두 작품 사이에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아 작가의 가치관이나 개성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이라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민아와 준호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의 과정을 보면서 마음 쓰였었다. 

우리가 사실과 진실을 놓고 함부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되듯이,

이들의 사랑을 놓고도 함부로 가치판단을 하거나 단정 지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건 '달콤한 나의 도시'의 그남자에게 익명 아니 불명이라는 이유 만으로 돌을 던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여기서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살짝 짚어보면,


내가 창밖을 보니 비가 오는것을 보았다.

(이때까지는, 사실이며 진실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니 옥상에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이때는, 비를 보았던것은 사실이며 

           옥상에서 물을 뿌린것은 진실.)

 

그래서 내가 비가 온다고 착각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는, 비를 본것은 거짓이며

           비라고 생각했다는것이 사실이며

           옥상에서 물을 뿌린것이 진실.)

 

이처럼 사실은 과정으로는 명백한것 같으나 결과를 놓고 보니 그것이 아닐수도 있으며,

진실은 항상 명백한 사실이지만 사실은 명백한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

 

그걸  <사랑의 기초, 연인들>의 처음과 끝에서, 미용사의 목소리로 강조하듯 짚어낸다. 

 

"아휴, 좋을때다. 근데 젊은 아가씨들은 잘 모르겠지만 착한 남자가 최고예요. 언뜻 봐서는 별 매력 없더라도 알수록 진국인 남자, 딱 한 여자밖에 모르는 남자. 요즘 아가씨들 겉으론 똑똑한 거 같아도 그 당연한 걸 잘 놓치더라고요."(19쪽)

 

"내가 겪어보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자는 역시 자상하고 다정한 남자가 최고예요. 지 혼자 속으로 진국이면 뭐해. 표현 안 하면 그걸 누가 아나."

 미용사가 언젠가 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웃지도, 찌푸리지도 않았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였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204쪽)

이건 사람이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겠지만,

내겐, 사람이 그러하듯 사랑도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서...함부로 가치판단을 하거나 단정 지으면 안된다는 의미로 돌출되어 다가왔다.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다.

난  <사랑의 기초, 연인들>의 여주인공 민아처럼 "나는 그냥 착한 사람이면 돼"과는 아니어서, 좀 까칠하고 유별나게 고르는 편이다.

한때는 '글쎄,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사람? 부드러운 성격에 나랑 취향이 비슷하면 더 좋겠지. 음악도 좋아하고 서점 가는 것도 좋아하고.(20쪽)'라고 말하는 민아처럼 나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 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빵빵하게 살이 쩌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렇기때문에' 골라내는 OX문제나 사지선다형 문제 처럼  쉽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곤란한 상황에서 기꺼이 너그러워질 수 있는 지 마음의 평수를 시험하는 그런 문제로 바뀐 느낌이다.

연애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탄하며 보내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야금야금 깨달아가는 시간이다.(78쪽)

말은 언제나 흘러넘쳤다. 그들은 말하고 또 말했다. 사랑할 사람을 찾아 헤매었던 유일한 이유가 마치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였다는 듯.(113쪽)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사람인 당사자와 상대방 말고 왜 다른 것들이 요구되는건지,

왜 '그 사람의 세계'라고 표현되는 '배경'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저렇게 얘기가 잘 통하는 이들이,

배경이 구차하거나 누추한게 뭐, 그리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어야 할 일이기까지 하며...

용기를 갖고 고백을 하거나 못한게 헤어짐의 원인까지 되어야 하나 싶지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은지...

다시말해, 나의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문제가 있는지,

어제 어느 인터넷 자료를 보니, 배우자 선택시 가장 고려하는 게 '가정환경'이란다.

 

콩깎지가 씌웠을때 장점으로 보이던 것들이, 사랑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단다.

 

그래서였을까, 이 구절이 더 가슴 아프게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준호의 가슴 속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이 한 톨 피어 올랐다. 이 사람에게라면, 곧 더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을 수 있을지 몰랐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달콤한 케이크 위에 사뿐 올라앉은 체리뿐만 아니라 오븐에서 너무 늦게 꺼낸 식빵의 가장자리처럼 누추한 삶의 모서리까지도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행운아인지도 모른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했다.(117쪽)

 

이들에게 부족한 '사랑의 기초', 다시 말해 '사랑의 근간'은 믿음과 신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런 얘기를 듣게 되었을때, 내가 민아였다면 '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는 건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하는 건 '그 사람이니까' 다시말해, '준호니까' 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하고 믿고 보는거다.

 

하지만, 작가는 민아와 준호에게 아직까지 그런 믿음과 신뢰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그것을, 인연이나 운명으로 몰아가려 하지도 않는다.

그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게,

준호가 어렸을때, 준호 담임선생님의 딸이 점심시간마다 엄마와 점심을 먹으러 오면서,

준호는 민아와 같은 공간에서 '따로'이면서 '같이' 점심을 먹는다.

하지만, 그건 전지적 작가만 알뿐이지, 준호도 민아도 모른다.

그의 담임은 삼십대 후반으로 평소에 늘 기운 없는 눈빛과 웃음기 없는 표정을 하고 다니는 여자였다. 누구를 특히 차별하는 법 없이 반 애들에게 골고루 무심했기 때문에 그는 선생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혹시 내가 자기 반 학생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가끔 의심스럽기는 했지만.(50쪽)

 

그에 비하면,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한 남자>편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에 성공한 부부인 벤과 엘로이즈를 중심으로,

그들의 가정생활, 자녀양육, 사랑과 섹스 등에 관한 고민을 그린 작품이다.

이때의 '기초'는 '시작'이 아니라, 사랑을 이루는 '근간'이나 '토대'정도가 되어야 된다.

 

그는 서양작가답게,

그리고 그동안 철학서인지 소설인지 불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책을 쓰던 사람답게,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의 시도를 하고...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철학적 교훈을 주려한다.

솔직히 고백컨데, 난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쓴 <메이팅마인드>(=연애)라는 책을 읽지 못했다면 겉으론 쿨하게 이해하는 척하면서...속으론 툴툴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표리부동하게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듯~!

 

우리는 섣불리 말하지 못했던 결혼의 일상성과 그 허상을 날카롭게 탐구하는 걸 지켜볼 의사가 있으며,

인간 각자는 떼어놓고 봤을때 불완전한 존재라는걸 인정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연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만이 결혼한 부부로 잘 사는 길이라는 그의 충고도 귀담아 듣겠다.

(여기서도 사랑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도 사랑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글로 쓸 수 있다는 '알랭드 보통'의 글쓰기 경험 상, 그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인 듯 느껴져 살짝 꺼림칙하긴 하지만, 뭐~--;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권리긴 하지만, 인류 대다수에게, 특히 우리가 사랑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라면 가급적 그런 끔찍한 특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충고가 늘 따라 붙는다.(71쪽)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이긴 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내 자신에게 편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 그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랑받고자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오래'라는 기간이 중요할 것 같은데...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그 정도 노력도 못하냐고?

뭐, 그럼...할 말 없는 거고~--;

 

암튼, 정이현에 비하여 알랭 드 보통이 특별히 좋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랑의 기초-한 남자>편이 내겐 더 개연성 있게 다가왔다.

그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닌,

모든 사랑의 근간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바램인데,

알랭 드 보통이 그려낸 소설 속의 그들은 어떤 겉모습을 보이더라도,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듯 느껴져서이다.

 

때론 내 자신이지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왜 그러는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남의 마음이니까 내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그러니, '뭐 그럴만한...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생각하기 쉬운 일인데,

왜 인색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오늘부터, 지금부터...라도 넉넉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되겠다.

 

Pink Martini는 그걸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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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04 10:39   좋아요 0 | URL
아침 기분이 환기 되는 음악이네요.
정이현은 젊은데도 참 많은 생각이 오고가는 글을 써요.
정이현이 젊은게 아니라 내가 늙었나 싶네요 문득

양철나무꾼 2012-06-04 11:16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좋은 소식 축하드려요.
뭐, 드시고 싶은거 없어요? 헤에~^______^

더 기분이 전환되는 음악, 필요하심 말씀만 하세요.
재깍 대령할게요, ㅋ~.

하늘바람 2012-06-04 12:51   좋아요 0 | URL
저 음악듣고 싶을 때 양철나무꾼님 서재와서 들었어요
좋은 음악이 넘 많아서요

2012-06-04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6-04 20:35   좋아요 0 | URL
사랑에도 연습이...이점 저는 약하게 동의하는 편,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하므로...^^)
사랑에도 노력이...이건 매우 동감...^^

첫사랑의 실패는 경험이 부족한 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개인 적인 생각이랍니다.
깨달음은 경험에서 나올 수 있는 부분이기도하고
잘 생각해보면 가능한 부분이기도하고..

신뢰, 믿음, 이걸 얻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적극 동감이구요. 물론 그 노력의 일관성이 더 중요...일시적 신뢰는 쩜...^^

많은 생각의 기회를 주는 페이퍼~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2-06-04 21:13   좋아요 0 | URL
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그 정도 노력도 못하냐고?

뭐, 그럼...할 말 없는 거고~--;


에서 빵터졌어요.. ㅋㅋ
첫 음악은 .. 흥겹네요..
오늘 같은 월요일 밤 듣기 참 좋아요.. 양철나무꾼님..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왜 그러는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남의 마음이니까 내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그러니, '뭐 그럴만한...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생각하기 쉬운 일인데,

왜 인색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네..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더 따져들고 싶고 그래져요..
사랑하는데 넌 왜이래.. ㅠㅠ
암튼 저도 그렇습니다..


blanca 2012-06-05 09:30   좋아요 0 | URL
이 책이 궁금했었는데 나무꾼님 리뷰가 좋아요. <냉정과 열정> 방식이랑은 다르게 그냥 아예 서로 다른 이야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