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하나가 어깨가 아프다고 왔었다.

본인이 adhesive capsulitis라고 자가 진단하고 치료받겠다고 온 것을,

Impingement syndrome같으니 정형외과 가서 제대로 검사받고 수술하라고 보냈었다.

그 과정에서 좀 매정하게 보였었고 그게 서운했었나 보다.

이 지인은 수술 후 5일 만에 내게 치료를 받겠다고 나타나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더니 급기야 나에게,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

라고 하며 아프다고 툴툴거린다.

치료를 받겠다는 건지, 아픈걸 위로받겠다는 건지...언젠가 읽었던 '라인업'의 '존 코널리'가 생각났다.

 

 주인공인 사립탐정 찰리 파커는 분노와 복수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가 받는 고통으로 규정되는 인물이다. 그는 직접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게 놔두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덕분에 그는 이기심이나 비탄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가 쫒는 부인과 아이의 살인범에게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중략)...나는 모든 것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남기 위해 애를 쓰는 남자에 대해 쓰고 싶었다. 최악의 악몽이 현실로 실현되면 거기에는 일종의 끔찍한 자유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든 일단 그 정도로 끔찍한 일을 견뎌내면 다시는 어떤 것도 그를 그 정도로 아프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찰리 파커란 이름을 지어준 이유는 그와 같은 이름의 재즈 뮤지션인 찰리 파커의 별명인 버드에서 풍기는 비행, 자유, 영성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에 얽매여 있는 그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 이름을 주고 싶었다.

(라인업, 91쪽에서...)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장르소설 작가들 말고,

'라인업'을 통해서 유독 매력적으로 와닿았던 사람이 켄브루언과 존 코널리였는데...

켄 브루언은 막상 읽으니 '라인업'을 통해서 보여지던것 보다는 '아니올시다' 였고,

존 코널리는 '좀 심하다'고들 해서 여지껏 미루었었는데...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체해부도'식의 적출 묘사였는데, 그동안 단련될만큼 단련되어서 그런가 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겠지만, 그동안 읽은 것 중 심한 것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검은선'과 '한니발'을 들겠다.

하지만, 이 둘은 꼭 읽어 볼만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모든 죽은 것
 존 코널리 지음, 강수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7월

 

 

 

암튼, '모든 죽은 것'은 작가의 필력과 역자의 번역력 모두 훌륭하여 재밌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저 위에 밑줄 그은 '직접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고통받게 놔두려 하지 않는'....

소위,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불리우는 것만으로도 난 하트눈이 되어 황홀해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주인공 찰리 파커를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놓은것과 어느 부분부터인가 그에게 영매 끼를 불어넣어 전지전능하게 만들어 놓아...좀 심심하고 재미없어 질 수도 있겠다.

 

나만 해도 알토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좋아했던 터라...

처음 읽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찰리 파커'도 너무 금방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알토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와 이 책의 주인공 '찰리파커'의 다른 점은 흑인과 백인이라는 것뿐이다.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때부터 색스폰을 불기시작했고, 16살에 네살 위인 여자와 결혼을 한다.

마약, 알콜, 약물 중독에다가 여자관계까지 복잡했던 그는 음악적인 열정만 남달랐다.

그렇게 지난하게 살던 그는 딸마저 잃고 급기야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가, 서른다섯의 나이에 요절한다.

 

이 책의 주인공 '찰리 파커'는 경찰이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경찰 생활을 하던 그는, 아내와 다투고 술을 마시러 나간 사이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게 된다.

알콜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술을 마셔서 아내와 다투게 된건지, 아내와 다투어서 술을 마시게 된 건지...의 전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암튼 그는 술때문이라고 자책을 하고 술을 끊고 경찰을 그만 두고 사립탐정 비슷한 걸로 나선다.

서른 네살로 등장하지만 몸매 관리를 잘해 서른 둘로도 보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는 그는,

눈동자는 청회색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만큼 투명하고, 얼굴은 약간 길쭉하며, 고통스런 기억 탓에 눈매가 깊고 입가에도 주름이 졌다. 수염을 깔끔하게 깎고 머리도 잘 다듬고 좋은 양복에 조명발까지도 도와준다면 꽤 봐줄 만했다. 조명만 괜찮으면 서른두 살이라고 우기도라도 그렇게 큰 비웃음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운전면허증에서 적힌 나이에서 겨우 두 살을 뺐을 뿐이지만, 나이가 들면 사소한 것들이 점점 중요해지는 법이다.(95쪽)

다른 경찰이나 탐정들처럼 터프하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애를 쓰는 한 남자일 뿐이다.

또한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전형화와 더불어, 쉽게 맥이 빠져버린 이유는...너무 금방 범인을 예측할 수 있어서 였다.

38쪽과 60쪽에서 단서가 이미 나타난다. 나만 그 실마리를 찾았나?

범행동기라는 것도 참 어이없다.
미국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나라여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가정의 화목함 따위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줄 알았는데...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내에게는 그렇고 그럴 수 있는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좀 아이러니 컬 했다. 

"ㆍㆍㆍㆍㆍㆍ그는 위험을 즐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인상'을 남기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상.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38쪽)

 

울리치는 광대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광대처럼 굴 수도 있겟지만, 뉴올리언스에서 그를 아는 사람치고 그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ㆍㆍㆍㆍㆍㆍ

 "넥타이 멋진데." 밝은 빨간색에 양과 천사 무늬가 있는 넥타이였다.

 "형이상학적인 넥타이지."울리치가 응수했다. "조지 허버트(1593-1633, 영국의 목사. 형이상학파 시인- 옮긴이) 넥타이라고나 할까."(60쪽)

 

내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본 것은 찰리 파커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렇게 참혹한 방법으로 어이없이, 아내와 딸을 잃고도...그가 살아가는 이유, 

그건 다른 어느 친구들보다 앙헬과 루이스를 더 가깝게 느끼는 이유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쩜 내가 장르소설을 읽는 이유,

내가 요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걸음 다가간다는게 '가까이'가 되기 보다는, 밀어내는 제스츄어가 되기도 하는걸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찰리파커는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앙헬과 루이스가 찰리 파커를 가깝게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 또한 그들과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읽었다거나,

그들과 별다를게 없는, 자기네와 비슷한 부류라는걸 느꼈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대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러니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하고 툴툴거렸던 이의 저변은 둘 중 하나로 해석하는 수밖에 없겠다.

오히려 자신이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한 겁쟁이이거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고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 이미 고통에 잠식 당했거나...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앙헬과 루이스, 이 두사람이 괜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세계에 아무런 환상을 품지 않았다. 그것의 일부였다가 또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는 철학적인 해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킬러였다. 그런 환상을 품을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로 인해 앙헬도 그런 환상을 품을 수 없었다. 이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도 저만치 멀어졌고, 나는 내 힘으로 나 자신을 다시 세우고 새롭게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했다.(125쪽)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라도 한것처럼ㆍㆍㆍ-->이 부분은 보충 설명이 필요하겠다.

비늘이 떨어질려면 어류의 몸이 되어야지, 사람 눈에서 비늘이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므로,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정도로 바뀌어야 하겠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경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눈을 덮고 있던 콩깎지가 벗겨진 것처럼'...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형사시절에도 나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을 다룰 때면 늘 조심했고, 오만하거나 주제넘는 짓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존중하는 것을 존중해줘야 했고, 침묵에서 신호를 읽어야 했다. 그들에겐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고, 폭력을 쓸 때처럼 의사소통의 방식도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었다.(149쪽)

 

모든 건 해석의 대상이며, 모든 건 암호이다. 상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얼핏 보기에 관련이 없는 정보들 속에서 의미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걸 숙지해야 한다. 이 노인네는 그런 암호를 읽어내며 평생을 살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고 여겼다. (152쪽)

 

 "악마라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악마가 뭔지는 나도 몰랐다. 비인간성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이 어떤 식으로든 '경계를 넘어서'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게 악마인 건지, 인간의 특징,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어 있는 어떤 특징을 규정하는 통념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뭔가가 있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171쪽)

 

내가 공감과 소통을 좀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쯤되면 존 코널리 아니, 이 책에선 주인공 찰리 파커의 타인에 대한 '존중'이 예사롭지는 않다.

공감할 수 없으면 그게 바로 악이고, 악마인 셈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러자 위에 통증이 느껴졌다.(191쪽)

이런 사실적인 문장도 겪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내 얼굴의 표정을 읽고 어떤 낌새를 차린 것 같았다. 확실치는 않았고, 알아야 하거나 말하고 싶은 것 이상의 뭔가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는 눈치를 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췄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멀고 험한 길을 걷다가 서로 위로를 건네는 두 명의 여행자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꼈다.(253쪽)

'따로 또 같이'나, '제대로 된 공감' 따위의 말이 무색하게...

그저 잠시 말을 멈추고, 걸음을 멈추고, 서로에게 일부러 위로를 건네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때문에 살면서 비슷한 고통을 겪거나,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는게 쉬운 일도 아니지만...
만나고 스치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어떤 위로 같은,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끼기도 하는가 보다.

내 손을 잡아주는 그녀의 손길에서, 묘하게 머뭇거리는 그 동작에서 전문가의 이해를 넘어서는 뭔가가 느껴졌다. 내 희망사항이었을까? 나는 그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첫 걸음, 다시 세상 속에 들어와 자리매김하려는 어설픈 첫 시도였다. 이틀동안 무수한 일을 겪은 다음이라, 잠시나마 뭔가 긍정적인 것을 만지고 싶었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선한 것들을 깨워 일으키고 싶었다.(325쪽)

 

 그녀는 말을 멈췄고, 나는 이 얘기가 지금껏 속으로만 되뇌어졌다는 걸 알았다. 이건 입밖으로 꺼내서 사람들과 주고받을 얘기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는 그런 얘기였다. 가끔은 자신만의 고통이 필요했다. 자신만의 것이라고 부를 아픔이 필요했다.ㆍㆍㆍㆍㆍㆍ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러고 있어요."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가끔은 근접하기도 해요. 그리고 가끔, 운이 좋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죠.가끔은."

(438쪽)

존 코널리의,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섬세함과 세심함이 좋았다.

 

345쪽 중간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등장한다.

58, 59쪽에선 마지막 봤을때보다 몸이 불었고, 접힌 목덜미 사이로 땀이 줄줄 흐르는 거구의 사내라고 했었는데...

아내와 딸을 잃은 지 넉달 후라는 설정이 나왔으니까 아무리 길어야 넉달만에 보는 친구이니,

마지막 봤을때보다 몸이 불었고 땀이 줄줄 흐르는 걸로 봐서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체구의 남자로 여겨진다.

이때 황갈색 양복이라고 표현되던 것이 345쪽에선 황갈색 정장으로 바뀌어 있다.

일반적으로 양복과 정장의 혼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단벌신사로 표현되고 있어서 단어가 하나로 통일되면 좋을 것 같고,

양복은 남자가 입는 옷이고, 정장은 여자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넉달만에 보고 요번 일로는 뜨문뜨문 전화통화를 하다가 본 것일 것이다.
이번 사건이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진 것이 아니니까,

밑의 '처음 만났을때 이후로'는 '지난 번 만났을때 이후로' 정도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난건 친구 사이이니 최소한 몇 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할 수도 있을테고,

몇 년이면 얼굴 살이 빠지거나 찐게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울리치를 58, 59쪽에선 황갈색 양복을 입은 거구의 사내라고 표현했는데,

345쪽에선 '젊었을 때는 예뻤고, ㆍㆍㆍㆍㆍㆍ서른 살의 여자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앞뒤로 번역이 너무 좋아 번역 상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고, 뭔가 착오가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이 부분 때문에 몰입도가 떨어지고...화~악 깨는 건 있다.

처음 만났을때 이후로 그가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살도 많이 빠졌고,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광대뼈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문득 몸이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얘기를 하고 싶으면 울리치가 먼저 말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을 먹는 그를 보는데 제니 오바흐의 시체 옆에서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젊었을 때는 예뻤고, 규칙적인 운동과 신중한 식이요법으로 몸매를 유지했으며,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데도 상당히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던 서른 살의 여자였다.(345쪽)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어야 타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오지랖 넓게 채워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욕심내어서도 안 된다.

잔에 찬 다음은 넘치게 마련이다.

두개 다 갖고 싶다고 양손에 쥐고 있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지듯이 말이다.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 라고 묻는 이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으면 손 떨고 수긍하는 법도 배워야 하리라.

같이 나누고 공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고,

잔혹하고 고통스러워서 내 소중한 사람은 공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일도 생길 수 있으리라.

 

색스포니스트 찰리파커는 음악에 대한 넘치는사랑으로, 음을 잘게 나누고 쪼개는 비밥을 창시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어찌되었건 정통에선 변형이다.

음을 그대로 지켜 연주하는 고전이나 정통은 너무 소박하고 수수하다고 하여 밀려날지도 모르겠다.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전이나 정통의 입장에서 보면 음을 조금이라도 왜곡 또는 변형시킨 경우,

찰리 파커의, 음악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고 하여 눈감아 버리기엔, 가슴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수식이 화려한 넘치는 사랑과 공감을 할 것이냐,

소박하고 수수한 사랑과 공감을 할 것이냐, 하는 취향에 관한 문제일뿐...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이해되어지고 사랑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슬프거나 처연하지는 않다.

 

이제, 존 코널리의 '무언의 속삭임'으로 달려 볼까나?

 

 

 

 

 

 

 무언의 속삭임
 존 코널리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12월

 

 

 

 

 

 

 

 

 

 

 

 

 

페이퍼의 내용이랑 전혀 상관없는 이 곡이 듣고 싶은 걸 보니, 망령 또는 드라큘라의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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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2-1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러자 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픔과 공감이 듬뿍 묻어나는 스타일이군요.
이 글도 그렇구요.

gimssim 2012-02-15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요. 그래서 어딘가 투정부리고 상대는 그것을 받아주어야한다고 생각하죠.
왜? 나는 아프니가.
그러나 몸이 아픈 것만큼 철저하게 개별적인 게 어디 있을까요?
마치 죽음이 그러한 것처럼.

알케 2012-02-1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널리 문장은 묵직하게 '가오'를 잡다가 툭 던지는 유머가..ㅋㅋ "장의사를 고소하기 위해 무덤을 박차고 나온 시체처럼"이란 형용사절에서 빵 터져서 ㅎ 또 루이스와 앙헬커플의 로코식 대사치기도 재밌고..근데 근래 나온 3권 <무언의 속삭임>은 쫌...기대이하였어요..

마녀고양이 2012-02-1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실이 그리 슬프거나 처연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 한다는 사실이...

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잠시, 난 왜 그게 그리 안 되는지 몰라.
글이 쥐어짜면 물기 떨어지겠다,,, 좀 쉬어야 할텐데, 걱정하는 중~ ㅠ

2012-02-15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2-1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에 양철나무꾼님이 힘들 게 읽었다는 게 그런 거였군요! 그러면 나는 그것만 모아서..( '')
저는 뭔가 자극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2-02-1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위험을 즐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인상'을 남기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상.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38쪽)

- 저도 댓글을 쓸 때 뭔가 인상을 남기고 싶어져요.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