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면서 아침을 먹었다.
오늘의 주 관심사는 스티븐 잡스가 남긴 명언 중 'stay hungry, stay foolish'가 될 뻔 했다.
전 아무개라는 여자가 나왔고, 그 여자가 모처럼 이치에 맞는 얘기를 했는데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아우, 밥맛이야~"
했고, 아들은 바로 받아서
"stay hungry"
라고 대답했다.
아들이 말한 필을 살려 해석해 보자면,
"그럼, 배 고픈채로 살아~"
정도가 될 것 같다. 

스티븐 잡스가 스탠포드대학에서 강의한 'stay hungry, stay foolish'는 '늘 갈망하라, 늘 우직하라'정도 일텐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미니 인터뷰가 있었는데...
공고 학생들이 쓴 시집 <내일도 담임은 울 삘(feel)이다>의 편저자 중 한명인 김상희 선생님이셨다.
손석희는 시의적절하게 몇번째 학교냐고 물었고, 김선생님은 첫번째 학교이고 3년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낭송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처음 B.M.과 함께 낭송한 시는 '울보 담임'이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젖어있는 듯 들렸고, 귀 기울여 듣던 난 어김없이 따라 울었다.
속으로 스물 일곱 여선생님이 'stay foolish' 하기를 살짝 바랐다. 

담임은 울보다.
우리가 쪼금만 잘못해도 운다.
다른 선생님 시간에 떠들어도 운다.
대들다가 울면 우리만 불리해진다.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
  (김동진의 울보 담임


짐을 쌌다
겉옷 한 벌 속옷 한 벌
새벽 두 시 집을 나갔다
해 뜰 때가지 돌아다녔다
아는 형이랑 부산에 갔다
찜질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피시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노래방에서 가서 또 시간을 때웠다
가출도 반복된 일상
학교처럼 지겨워졌다

자, 이제 돈도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최후의 수단이다
 (김부찬의 '가출')

어떤 미사여구를 모아 모아서 쓰여진 시보다도 내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듣기 싫은 목소리를 듣느라 떨어진 밥맛이었는데, 나중엔 감동으로 우느라 stay hungry한채로 보낸 아침이 되고 말았다.
 

어떤 미사여구를 모아 모아서 쓰여진 글보다 더 큰 감동이라고 해서 생각난 책은 <658, 우연히>이다.

너무 괜찮은 책을 만나면 저자의 약력을 꼼꼼히 살피는 버릇이 있다.
당근 저자의 전작을 두루 섭렵하기 위해서 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658, 우연히>는 읽으면서 점점 저자가 맘에 든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책에서 주인공 거니가 마흔 일곱 살로 등장하길래 그 정도로 짐작했었는데,
1942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일흔 살이다.
광고계의 큰 손으로 군림하다가, 볼혹이 넘은 나이에 '진짜 글'이 쓰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고...
그래서 광고계를 과감히 떠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그게 <658, 우연히>이다.
이 책이 2010년에 쓰여진 처녀작이고, 그 후로 한권 더 쓰여졌나 보다.
아, 감질난다.
부디 병들거나 아프지 마라. 
'주제 사라마구'처럼 홀라당 반해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별세, 이러면 너무 허무해지니까 말이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속성과 상반되는 캐릭터 묘사를 하는데, 그게 겉돌지 않고 묘하게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드는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거니의 직업은 훌륭한 전직 경찰이었다.
그는 여전히 쉰 개의 팔굽혀펴기와 쉰 개의 턱걸이, 쉰 개의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른 한편으론 행동을 하기보다는 행동을 생각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되어있다.
참고로 빈스플린이나 프레더릭 포사이스,존 카첸바크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런 사람들은 적어도 '곱하기 10'정도를 우습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 작가가 실제로 이런 것들을 안해 보고 책상에 앉아서 작품을 썼거나,
빈스플린이나 프레더릭 포사이스, 존 카첸바크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철인이라는 얘긴데...
난 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니의 캐릭터와 잘 들어맞는다.

"날씨가 기가 막히네! 이런 날 1분이라도 집 안에 있는 건 죄악이야!"
거니 자신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심미적인 관점에서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거니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의 타고난 성향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집안으로 유인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혼자만의 생각에 파묻혔고, 행동을 하기보다는 행동을 생각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세상 속에서보다는 그 자신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성향은 직업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덕분에 그토록 뛰어날 수 있었다.(54쪽) 


이 책이 매력적이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은 마흔 일곱의 나이라고 생각했을땐, 지나치게 관조적이었는데...
작가의 나이를 알게되니, 노작가의 혜안이 주는 감동이 된다.

형사의 아내로 살면서 매들린이 감수해야 했던 모든 것들을 보상하고 싶었다. 언제나 일에 치여 뒷전이었던 그녀의 삶을 보상하고 싶었다. 그녀는 숲과 산과 초원과 탁 트인 들판을 사랑했고 거니는 그녀에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삶을 선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은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오만이었다. 아니면 자기기만이었다. 이러한 대범한 결단을 통해 그간의 죄책감을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한심한 생각이었다. 사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순진하게 믿었던 것처럼 유연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일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결국에는 언제나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어쩌면 너무도 잘할 수 있는 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잘할 수 있는 일로 본능적으로 돌아와버리곤 했다. 자연을 즐기려고 그토록 노력했건만. 빌어먹을 새들만 해도 그렇다. 거니는 새들을 관찰했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새들을 관찰하면서 분류하는 작업이 일종의 잠복근무가 되어버렸다. 그는 새들의 움직임, 습관, 먹이를 먹는 모습, 날아다닐 때의 특징을 기록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해 새로 움튼 사랑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분석이었고 탐사였다.
 또한 암호의 해독이었다.(65~66쪽)

 

매들린은 데이브가 한번 잠이 들면 아침까지 눈을 뜨지 않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고 했다. 그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든다고. 그는 도무지 맘 편히 쉴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좋은 남자이고 착한 사람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죄책감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와 불완전함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고. 눈부신 직업적 성공조차도 몇 가지 사소한 실수로 그의 마음속에서 빛을 잃는다고.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고 항상 무자비할 정도로 문제를 파헤친다고. 한 가지가 끝나면 또 한 가지를 파헤친다고. 마치 언덕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그는 인생을 맞추어야 할 퍼즐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그러나 인생의 모든 것이 퍼즐일 수는 없다고. 마침내 매들린은 상담 치료사가 아닌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른 방식으로 포용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거라고. 이 세상은 퍼즐이 아닌 신비로 보아야 한다고. 해독하는 대신 그저 사랑해야 하는 게 있다고.(130~131쪽)

 

...매들린이 그가 달라지기를 원했다는 것, 어쩌면 정말 달라질 거라고 믿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아무리 그녀를 아낀다 해도, 아무리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해도, 아무리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해도 어떻게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이성은 특성 분야에서만 기가 막히게 잘 움직였고 그는 삶에서 가장 큰 만족감들을 그러한 지적인 능력을 활용하는 데서 얻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인 두뇌와 모순을 짚어내는 특출한 안테나를 지녔다. 그러한 재능 덕분에 뛰어난 형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 재능은 일종의 완충 장치를 제공했고 덕분에 두려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211쪽) 

 

...거니는 매들린이 자신의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도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영혼이라는 말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도,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는 바위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언덕들과 계곡이 펼쳐진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팔짱을 끼었다. 
 거니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본 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마치 눈 덮인 풍경 전체가 그녀의 얼굴에 반사되고 그녀의 얼굴의 광채가 눈 덮인 풍경에 반사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후 그들은 집으로 향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돌아오는 길에 그가 물었다.
"아무 생각 안 했어. 생각하는 건 방해되거든." 

 

...도시에서 월넛 크로싱으로 이사할 때 매들린은 몇 시간 동안 작별인사를 했다. 이웃들뿐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집과 그들이 남겨두고 가는 것들, 심지어는 화초들에게까지. 그 모든 것이 거니의 신경에 거슬렸다. 거니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매들린을 비난하면서 생명이 없는 것들에게 말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무의미한 일이며, 그래 봐야 떠나기가 더 힘들어질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이상이었다. 매들린의 행동은 그의 마음속에 건드려지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건드렸다. 그런데 매들린이 다시 그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 무엇과도 이별하려 하지 않는,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야. 당신은 절대 그것들을 놓아주지 않으니까. 떠나보내려면 그것들을 보아야 하잖아. 대니를 떠나보내려면 대니의 삶을 보아야 하잖아. 하지만 당신은 그걸 원치 않아. 당신이 원하는 건......도대체 뭐야? 죽는 건가?"(485~486쪽)  

 

매들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서 그는 보았다. 보았고 깨달았고 또 느꼈다. 매들린의 감정이 어떤 경로로 그에게 닿았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포용과 사랑의 혼합물이었다. 포용, 사랑, 그리고 다시 한번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안도감이었다.
태연하면서도 그의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매들린이 아침식사를 하겠느냐고 물었다.(583쪽)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이 작가에게도 통용시키고 싶은데...
그러기에 이 노작가는 광고계에서 이미 눈부신 성공을 거두어 '큰손'으로 군림했었고,
원하던 '진짜 글'로도 이미 전세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부디 병들거나 아프지 마라,,,하고 염원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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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07 19:05   좋아요 0 | URL
항상 양철나무꾼님과는 통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ㅋ 저도 그 시집 샀거든요. 내일 배달이 옵니다. 본래 시를 잘 읽지 않으나 공고생들이 쓴 시들이 너무나도 마음을 울려 안 살 수가 없더군요. 지금은 운전하다가 잠시 쉬면서 스마트폰으로 댓글을 남깁니다. 잘 지내시죠? 집에 가서 컴퓨터로 무지하게 긴 댓글 남길거에요. ㅋㅋ

잘잘라 2011-10-07 20:13   좋아요 0 | URL
페이퍼 읽으며 저녁 먹어요. 쫄면 먹어요. 이 집에선 처음인데 맛이 꽤 좋아요. 가끔 먹으러 와야겠어요. 열 번 먹으면 열 한 번 째는 공짜라네요. ^^ 오천원인데 그러지 말고 그냥 사천오백원 하면 좋겠구만~ 싶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맛있는 쫄면이라 또 오긴 올거예요. 제가 열 번 오기 전에 망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네요. 우직하게 맛도 유지하면서요.

하늘바람 2011-10-08 09:30   좋아요 0 | URL
토욜아침 님 페이퍼 읽어요
그냥 요즘은 긴긴 댓글은 잘 못달고 마음으로 갈망하고 감동하네요.
가을인데
이렇게 가네요
시간이 님

BRINY 2011-10-08 09:46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시집 살까해요. 27살에 첫 부임지에서 3년째면, 25살에 공고에서 첫 교직을 시작했겠네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게다가 학생들 앞에서 눈물 보이면 안된다고 정신교육 시키려드는 낡은 교사들도 있었겠죠...

노이에자이트 2011-10-08 15:42   좋아요 0 | URL
스티브 잡스를 스티븐 잡스로 알고 계신 분이 많군요.

꿈꾸는섬 2011-10-10 16:24   좋아요 0 | URL
658, 우연히...궁금해지네요.^^

2011-10-14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