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름다운 거짓말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4
리사 엉거 지음, 이영아 옮김 / 비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소위, 작업의 고수라는 지인(知人)과 화창한 봄날을 이러고 앉아 시간을 죽이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사람을 선택하는기준'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나는 '홀로 고고함'을 들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지인; 얼굴도 왠만큼 생겨줘야 하잖아.
느끼하면 안되고...
나; 고개만 끄덕끄덕
지인; 어느 정도 얘기가 통할 정도의 지적 능력도 갖추어야 하고...
나; 그럼 나도 어느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긴데...
내가 지적 능력이 '어느정도'에 이르지 못했으니...패스
나; 서로 끌리기만 하면...책에서 보면 one night stand 같은 것도 있고 하니...
앞의 두개는 무시될 수 있지 않을까?
지인; one night stand 그거, 다음날 되면 기분이 더럽다.
이 책은 작가 '리사 엉거'의 섬세함이랄까, 세상을 또는 사람을 보는 방식이 참 맘에 들어 시작하게 되었지만,
작품의 설정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작업의 고수도 나름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는데...
작가는 나와 동갑으로 동시대를 살고 있는데, 사는 곳이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잘 생겼다거나 성적 매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선택한다는 설정이 말이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는데,
작가 자신의 가치관이 그렇지 않더라도 '무릇 글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라면,
내용이 복잡하게 얽힌 머리를 쓰게하는 지적스릴러보단 쉽고 재밌게 가자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덕분에 나도 그동안 읽은 '살인의 역사'나 '윈터 앤 나이트'랑 비슷한 분위기여서...
처음 읽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끝을 예측할 수 있었으나, 작가의 필력에 빠져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글의 시작에서 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스릴러'적인 요소는 많이 감소한다고 할 수 있지만,
얘기를 버무려서 포장해 내는 솜씨가 그런 부분을 메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잠시 이 소설의 장르를 '스릴러'가 아닌 '로맨스'물로 분류하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클라이맥스가 되는 갈등이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하다.
내가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정황하게 얘기한 이유는, 이책을 읽으면서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거짓말이란 선의의,긍정적인 거짓'말'이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는 거다.
말이 아니어도, 진실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많은 것들...
예를 들어, 마음, 눈빛, 손짓, 미소 같은 것들...우리가 교감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이야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명제'가 참(true)이냐 거짓(false)이냐를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니...제목만을 갖고도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도 여주인공 '리들리 존스'가 얼굴이나 성적 매력만을 가지고 남자를 선택한게 다소 마음에 걸렸는지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그리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둘 사이의 침묵은 편안했다.'
'...말따윈 값싸고 구차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만나자 마자 교감하며 '이심전심'이 될 수 있었을까?
'보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죠. 난 그를 봤어요. 그 슬픔을 봤다고요.'
'그는 내 입술에 자기입술을 포개고 오래도록 부드럽게 입을 맞추어, 내속을 밝게 비춰주었다.'
이렇게 섬세하게, 상대방의 마음 깊숙히를 읽어내는 것은...첫눈에 반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살아있고, 건강했으며, 서로에게 속해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것마저 못 누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는 부분들로 미루어,언젠가 이 둘이 진정한 의미에서 교감을 느끼게 될거라는 걸 짐작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기 시작하면, 그의 육체적 특징 따윈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의 기운 안에 머물고, 그의 살 냄새를 알기 시작한다. 껍데기가 아닌 그 사람의 본질만 보인다. 그래서 아름다움과는 사랑에 빠질 수 없다. 그것을 갈망하고, 그것에 혹해 소유하고 싶어진다. 눈과 몸으로 사랑할 순 있어도 마음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내적 자아와 진정으로 연결되면, 모든 육체적 결점은 사라지고 무의미해진다.'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첫눈에 반한 상대와 교감을 이야기한다는 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이 부분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카르마'랑 관련하여,
'...나는 균형을, 카르마를 믿기 때문이다. 모든 선에는 악이 있고, 모든 정의에는 부정이 있기 마련이다.'
라고 얘기한다.
모든 것을 '카르마'로 돌리다니, 참 아이러니컬 하다 싶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카르마란 균형이 아니라, 잉과응보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나 공간적 순차에 따라 원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균형이라면, 그래서 공존하는 거라면, 선악이나 도덕적 잣대는 필요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살면되는 거고,
그러면, 어느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카드 읽어주는 사람 따윈 필요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난 카드를 읽어주기만 하는거야.사람들은 자기를 이끌어주고 자기 문제를 들어주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암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일들로 심각하고 외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과 몸을 맞추기만 하면 외로움이 해소될 줄 알지만,
외로움은 실상 마음에 관한 문제라서 쉽진 않지만, 마음을 맞추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이...이 봄, 내가 혼자 고고한 척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