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시선 3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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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밥만으론 살 수 없다는 말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다. 

자칭...감수성 충만,로맨티스트인 꽃중년인 우리 남편은 요즘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까 싶었었다. 
남편이 흘리고 다니는 생각과 고민 한자락을 주워 엿보게 됐다 하더라도,
이게 이 시대 중년들의 보편적인 생각과 고민일까 궁금해 어떤 기준을 갖고도 싶었었다. 

이 기준이란 것이 사회적이거나 도덕적이 아닌 적당히 비겁한 이 시대 꽃중년의 그것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그런 의미에서 그의 전작 <왼쪽 가슴 아래께의 통증>정도의 Feel이면 딱이겠다 싶었다. 

시인이 될 순 없으나 시인을 따라 살아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누가 나이가 먹으면 반대 성의 호르몬이 우세해 반대 성화 된다고 하였나?
이 시인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오지랖 넓은 아즘의 마인드를 터득하여 그 마인드를 적절하게 잘 운용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런 그에게 오지랖을 보태며 참견하며 이 시들을 읽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이 분의 열성 팬이나 스토커를 자처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동지>에는 시를 짊어지고 바위를 한번 밀어보러 가주셔야 하고,
'한덩어리의 밥을 찬물에 꺼서 마시고는'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알아내야 한다.
(싸리 꽃은 주로 절 뒤란에 흐드러지게 피는데,신부전에 주효인 싸리꽃과 절의 스님과의 상관 관계까지 알고 있어야 이 시가 깊어질 수가 있겠다.)

<말린 고사리>한뭉치의 무게도 곰살맞게 가늠해야 하고,
<묵집에서>묵을 먹으면서 사랑도 생각해야 한다. 
<허공이 되다>에선 강아지를 내주면서 어미개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문 열고 나가는꽃 보아라>에선 작약꽃밭에서 할머니와 손주 훈수도 두어야 한다.
<겨울 시금치밭>에서 '내 그림자를 포개 나누며 섰'기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불을 끄면>이 좋았는데,경험이 베어난 시는 이래서 읽는 이에게도 울림을 주나보다.
<나의 하관>이나 <변기를 닦다>에선 도덕적인 반성의 기미 씩(?)이나 엿보인다.

                                    

나의 가슴이 요정도로만 떨려서는 아무것도 흔들 수 없지만 저렇게 멀리 있는,저녁빛 받는 연(蓮)잎이라는가 어둠에 박혀오는 별이라는가 하는 건 떨게 할 수 있으니 내려가는 물소리를 붙잡고서 같이 집이나 한 채 짓자고 앉아 있는 밤입니다 떨림 속에 집이 한 채 앉으면 시라고 해야 할지 사원이라 해야 할지 꽃이라 해야 할지 아님 당신이라 해야 할지 여전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나의 가슴이 이렇게 떨리지만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멀고 멀군요 이 떨림이 멈추기 전에 그 속에 집을 한 채 앉히는 일이 내 평생의 일인 줄 누가 알까요 
                                                                - <오막살이 집 한 채 >전문 -

 

불을 끄면 모두 눈을 달고 살아나서 무서웠지 
눈 감았지 

철이 들면서 불을 끄면
다 보이지 않으니 좋다,
웃음이 솟아도
눈물이 불쑥 와도
좋다,
그렇다가도
끝내 다시 불을 켜서
한꺼번에 서른도 마흔도 또 쉰도 먹는 날이 있었지 

불을 끄면
그대로 새벽포구와도 같아져서
미끄러지는 미명들을 받아안고
맥박을 세지
 

                                             - <불을 끄면>전문 -

  성북동에 가면,'쌍다리길'이라고도 불리우는 그의 집이 있고,그의 집 바로 밑에는 '덴뿌라'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붙은,탁자가 단 두 개뿐인 선술집이 있단다.
그 동네 주민도,딴따라도 아니지만...
시대가 하수상하고 어지러워 내가 가진 불이 흔들리고 꺼진다 싶을 때...
조용히 그를 찾아나서야 겠다. 
그가 가진 불이 밝혀져 있다면 방향을 잡는 등대로 여기면 될 것이고,
그의 불도 흔들리고  꺼진다 싶으면...심지를 돋우고 곧추설 수 있을 만큼만 잠시 바람막이로 서 있다가 돌아와야 겠다. 

'뺨에 서쪽을 빛내'는 일뿐만 아니라,
날이 어두워지고 다시 '날이 새는데도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그만 다 지고 나올 수가 없'다면...
그의 시집을 헛 읽은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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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9-13 12:38   좋아요 0 | URL
전 시를 읽지 않은지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어요,,ㅠㅠ
팍팍하게 사는 나날입니다, 그려. 훌쩍
<불을 끄면>은 마지막 단락이 쿡 다가오네요.

sslmo 2010-09-13 22:28   좋아요 0 | URL
전,시는 좀 읽는 데 다른 쪽으로 편식이 심해요~
고전이나 사상서를 멀리해요.
본디없는 경향이 있어요~^^

장석남의 시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어느 한 대목이 쿡 다가와요~^^

2010-09-13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3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14 01:30   좋아요 0 | URL
어제 이 글 읽고는 추천만 드리고 댓글을 드리기가 시간이 좀 모호했어요.. 양철나무꾼님. ~~ 고전 사상사 안읽으시는 듯 싶어도 또 뵈면 그렇지도 않으시잖아요 ㅎㅎ

성북동은 가을이나 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요.. 꼭 한번 가을엔 다녀오시면 좋으실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


글 속에서
"<말린 고사리>한뭉치의 무게도 곰살맞게 가늠해야 하고,
<허공이 되다>에선 강아지를 내주면서 어미개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겨울 시금치밭>에서 '내 그림자를 포개 나누며 섰'기도 해야 한다."

저는 이 부분들이 참 좋네요.. 강아지를 내주면서 어미개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심정은.. ㅠㅠ 이 시집은 조만간 읽어보아야겠어요.. ~~

sslmo 2010-09-14 01:42   좋아요 0 | URL
하,하,하~
바로 조 위 점점점 님 댓글에,고전사상서는 안 읽게 된다고 댓글을 달았는데,겸연쩍은 걸요.

제 가을은 좀 분주해요.
어러다 저러다 보면 후딱인게죠.추석도 챙겨야 하고...

아,그러고 보니 장석남 이분의 시가 성북동의 가을을 닮은 듯도~~~^^

lo초우ve 2010-09-14 08:42   좋아요 0 | URL
이 글 보니.. 굉장히 정감이 가네요 ^^
내년봄에는 작은 텃밭하나 꾸밀 생각이거든요 ^^
거기에 상추도 , 고추도, 시금치도 심어봐야징 ^^

sslmo 2010-09-15 00:08   좋아요 0 | URL
참~조 위의 박칼린의 그 합창대회가 거제도에서 진행되지 않았나요?
님도 텔레비젼을 잘 안 보시는구낭~^^

저도 요즘 상추를 키워볼까 심각하게 고려 중이예요.
글쎄,상추값이 한 10배는 뛴 것 같아요~

yamoo 2010-09-14 23:02   좋아요 0 | URL
전, 고전이나 사상서는 많이 읽는 데 다른 쪽으로는 편식이 심해요~
특히 시를 멀리해요...--;;
본디없는 경향이 있어요~^^;; 헤헤~

sslmo 2010-09-15 00:09   좋아요 0 | URL
전 이제 편식하지 않으려구요,불끈~^^

lo초우ve 2010-09-15 13:21   좋아요 0 | URL
거제도에서 박칼린 합창 대회가 있어요?
남자의자격 팀 나오는건가요?
언제 하는데요?
ㅡ,.ㅡ;;
갈 시간이 되어도.. 못갈거에요
왜냐하면 박칼린 관심 없거든요.. ㅡ,.ㅡ;;
차라리 찬진이람 몰라도. ^^;
아님..캐슬이라든지.. 유익종이라든지..ㅋ

sslmo 2010-09-15 17:07   좋아요 0 | URL
찬진은 누구예요?캐슬은 또 누구구여?
유익종은 알아요~^^

전 먼데이키즈요~
그리고 요즘 그 누구냐,밥만 잘 먹더라,그 친구들 하고요.

실은 저도 텔레비젼을 잘 안봐서 이 이상은 잘~ㅠ.ㅠ

꿈꾸는섬 2010-09-16 16:10   좋아요 0 | URL
아, 이 시집을 사야지 하고는 여태 미뤄두었었네요. 여기서 보니까 참 좋네요.^^

sslmo 2010-09-16 17:47   좋아요 0 | URL
꿈섬님 하면 시집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죠.
이 시집 읽으면서 꿈섬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한번쯤 궁금했습니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