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즈의 초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와다 마코토 그림,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2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중해 소설을 쓰고 지치면 오후에는 산책을 하고 찻집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독서를 하고 날이 저물면 윗도리를 걸치고 음악을 들으러 갔다...상쾌한 일요일 아침 커다란 진공관 앰프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리고(그동안 물을 끓여 커피라도 준비하고)천천히 턴테이블에 풀랑크의 피아노곡이나 가곡 LP를 얹는다.이런 게 하나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난 하루키의 이 구절을 '일하지 않은 자여,먹지도 말라'의 연장선 상에서 오해를 했었다.일하지도 않고 저렇게 유유자적 신선놀음이나 즐기는 게 과연'하나의 행복'이기나 할까?
그런데,어느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중해 소설을 쓰고'이 구절이 크게 돌출되어 내게 다가왔다.
아...그는 일을,노동을 하고있구나.노동의 숭고함을 알고 있구나.
때문에 노동을 한 후에 쉬는 것도 삶의 연장선에 놓을 수 있는거구나.
이걸 깨닫고 나서야 하루키가 멋있어졌다.
Chris botti와 Sy smith가 부른 <The look of love>,이 동영상은 볼때마다 멋지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죽음이다,아흑~.
그럼 이런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는 소통이라고 본다.
기꺼이 자기자신이 멍석이 되는 것이다.
Sy smith정도의 보컬이,악기가 메인으로 쓰이는 콘서트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기꺼이 반주가 되었었고,
반대로 Chris botti정도의 훌륭한 트럼펫 주자가 (그것도 자신의 콘서트에서)보컬을 위해 자신은 반주자가 될 수 있었던 배려.
저 동영상에서는 빠졌지만,보고있는 나까지 소통을 경험한다.
내 영혼은 날개가 없이도 날 수가 있다.
(내 경우에 소통이 안될때의 문제점은 불협화음이 아니라,외롭다는 거다.)
삶에 왕도가 없듯 음악에도 그딴 건 없다.
영혼이든 육체든 땀흘려 일을 한 후,휴식을 취하고,꼬박꼬박 밥을 챙겨챙겨먹고 또박또박 살다보면...어느새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먹는 맛난 음식 한점으로 세상은 아름다워 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듣는 음악 한곡도 내겐 같은 수사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