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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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밤을 지샌 묵은 공기가 싱싱한 그것으로 바뀔 딱 그만큼의 시간동안,
나도 창 밖으로 하늘도 바라보고,그물에조차 걸리지 않는다는 바람도 느껴보곤 한다. 
이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일은 내게 살아있기에 숨을 쉬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밖을 자꾸 쳐다보며 딴 생각을 한다고 하여 창문이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 일본에선 후지 락페스티벌이 한창이란다.
거기에서 Rage Against The Machine(RATM)의 '잭 드라 로차'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콜트 콜텍 해고 노동자들을 초청하였고,또 이들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콜트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바로 창문 없는 공장에서,사포에 제 손을 갈아가며 기타를 만들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금 부당해고를 당하고 4년여란 긴 시간동안 외롭고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솔직히 난 '인권'뿐만 아니라,그런 식으로 명명되는 거창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거창한 명명마저 버거운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을 읽는 내내 심기가 불편하였다.
김두식 교수가 '영화보다 쉽게'이 책을 만들었다는 말에 다소 시니컬해지기까지 하다.
법,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기독교 등의 문제를 종횡무진 파헤쳐온 그의 공을 백번 인정한다고 해도,그는 우리나라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소수자다. 
이런 소수자가 인권의 약자는 아니다.
문제를 제시하지도 고민을 하지도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가 과연 인권 문제에 풍덩 담글질 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하지만,그가 우리나라 상위 몇퍼센트의 소수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읽는다면,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의 영화리뷰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별 다섯개를 꽉꽉 채워줄 수도 있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들을 영화나 드라마와 적절하게 연결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쉽고 진솔한 어투(비속어도 불사하는)로 자기의 견해를 차근차근 밝힐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책에서 다뤄지는(청소년인권,성소수자인권,여성과 폭력,장애인 인권,노동자의 차별과 단결,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검열과 표현의 자유,인종차별 문제,제너 싸이드 문제 등) 인권의 갈래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골고루 다양하다.

책은 놀라울 정도로 흡입력있게 읽힌다. 

책의 첫부분에서 잠깐,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를 보며서 청소년 인권을 생각했다는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양동근'만을 쳐다봤던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됐느데,
딸을 예로 얘기하는 걸 보고,'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거구나'수긍할 수 있었다.

양동근이 아니영의 아버지에 뺨을 맞는 장면에서,
이나영이 '진짜 아버지는 따로 있을 거예요.무슨 아버지가 이래?'라고 하는 걸 보고,
그는 이나영에게 분개하는 평범한 이들의 사고방식을 택하는 대신,'지랄총량의 법칙' 을 만들어낸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딸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되고,그러자 딸의 '지랄'도 놀랄만한 속도로 안정을 찾게 된단다.

 "한국사회에서 학벌로 생긴 상처는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좀 더 높은 대학에 가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아무리 올라가봐도 여전히 더 높은 대학,학과,사람들이 있습니다.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그 상처를 솔직히 인정하기만 해도 해법이 보일 수 있습니다.고종석의 말처럼'다른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데 자신이 입은 상처의 기억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이 끝없는 늪지대를 빠져나갈 길도 찾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 저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를 준다면, 먼저 최근 10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만 모두 모아서 보여준 뒤 그 문제점을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개인악한이나 배신자를 손쉽게 묘사하기 위해 엉뚱하게 장애를 끌어들인 <300>의 시선 못지 않게,장애인을 무조건 착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위험합니다.왜냐하면 이 역시 비장애인과 다른 존재로 '비인간화''타자화'하응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는 전적으로 프라이버시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관용하고 말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고 사는 권리들을 동성애자들도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렇게 영화를 가지고 인권을 쉽게 풀어 얘기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인권이라는 게...살아있기에 숨을 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는 세상이 '꼭' 왔으면 좋겠다.
 
처음 저자 '김두식'형님을 놓고 툴툴거렸지만,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얼굴도 그만하면 준수하고,
머리도 좋을 것이고, 
영화와 드라마 등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감성에다,
인간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에, 
재밌고 군더더기 없는 글솜씨까지,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 것인가요?아흑~ㅠ.ㅠ"하느님을 향하여 툴툴거려야 겠다. 

개인적인 견해 한가지.
친절이 과연 옳은 것이기만 할까?번지수를 잘못 찾은,무책임한 친절은 경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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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05 16:58   좋아요 0 | URL
친절이나 인권을 다 떠나서, 저는 너무나 확신을 가진 분들을 보면 무섭습니다. 그래서 가끔 좋은 일 하시는 분들도 무섭습니다.... 하지만, 나무꾼님의 리뷰를 읽으니, 그리고 캡쳐 글을 읽으니 이분은 그럴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책이나 읽고 머라 말해야 하는데... 아하하,,, 저도 무섭네요.
여하간 좋은 리뷰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8-06 10:29   좋아요 0 | URL
그쵸~?^^
사람이고 생각이고 '번지고 스며 물들'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좋습니다.
마음에 열어 놓을 수도 닫아버릴 수도 있는 작은 창문을 하나 가진 사람이요.

후애(厚愛) 2010-08-05 19:46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종종 놀러 올께요~

양철나무꾼 2010-08-06 10:35   좋아요 0 | URL
네,후애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알아서 체력 안배 잘 하시겠지만,
너무 강행군 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구요.
저도 열심히 놀러가겠습니다~^^

yamoo 2010-08-05 20:47   좋아요 0 | URL
김두식 교수의 책들 리뷰가 여기저기 많이 보여 나오는 종종 사서 봐야 겠습니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군요~

양철나무꾼 2010-08-06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분의 먼저 것들을 챙겨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꿈꾸는섬 2010-08-05 20:57   좋아요 0 | URL
이 책 저도 참 궁금한 책이에요. 인권과 관련된 책은 꼭 찾아보고 싶어요.^^
리뷰 참 좋네요. 잘 읽었어요.^^

양철나무꾼 2010-08-06 10:55   좋아요 0 | URL
인권과의 관련을 떠나서도...마음의 평수를 한뼘쯤 늘려줄 수 있는 책이예요.

비로그인 2010-08-06 01:16   좋아요 0 | URL
지랄총량의 법칙에 따르면...전 쓸거 다 썼는데...ㅍㅍㅍ
앞으로도 계속 나오면 어쩐대요?

양철나무꾼 2010-08-06 11:05   좋아요 0 | URL
전 마기님과 상반되는 생각을 했었는데...ㅍㅍㅍ

전에 마고님 '지랄'페이퍼에서도 언급했듯이,제 지랄을 두번^^밖에 사용 못 해서,앞으로 남은 날 동안 얼마나 더 지랄을 사용하고 살아야 하려나 하고요~^^
제가 써 놓고도 진짜 웃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