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작가에 필이 꽂히면 그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는 것은 물론, 그가 좋다고 한 책도 일단 사들이고 보는 경향이 있다.
'서효인+박혜진'님의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의 서효인 님이 그랬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느낌이랄까.
처음 헐렁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골라 잘 차려진 소박한 한끼 밥상을 선물받는 느낌이었다.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서효인.박혜진 지음 / 난다 /
2018년 12
사실 난 다른 사람이 쓴 독서일기나 서평집 따위 보는 것을 즐기지만,
그 독서일기나 서평집을 통해서 내가 읽거나 또는 읽지 않을 책들을 골라내는 건 쉽지 않다.
하긴 나만 하더라도 별로인 책을 향하여 '별로'라는 평을 남기는 건 웬만해선 조심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 책을 만드는데 공들인 사람들과 베어 넘겨진 나무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암튼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의 박혜진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거다.
속으로 백만번의 땡큐를 날려드리고, ㅋ~.
그 책 재미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신뢰하는 독서가가 곁에 있어서 좋은 건 훌륭한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보지 않아도 될 책을 걸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효인 선배가 ***을 읽고 가볍게 한마디했다. "이 책은 안 봐도 될 듯."(235쪽)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바로 이 책 때문이다.
전지현 님의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전지현 지음, 순두부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2월
웹서핑을 하다가 필이 꽂히면 책을 들이는 편인데 책의 상세 정보 따위를 살피는 일은 거의 없다.
책 소개를 보고 일단 재밌을 것 같아서 들였는데,
실물을 받아보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가 12000원짜리 책인데, 책의 크기도 작고 얇다( 176쪽 짜리).
책 제목 아래 부제를 보면 '여덟 해 동안 만난 일곱 의사와의 좌충우돌 현재진행형 우울증 치료기'라고 되어 있는데,
내용을 보면 8년의 세월을 과감하게 생략하여 뜨문뜨문이고,
일곱 의사라는 것도 한의사와 내과의사, 지금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에 이르기까지 버라이어티하기도 하다.
뭐랄까, 난 좀 자세하고 깊이있는 무엇인가를 원했었나 보다.
좀 자세히 읽다보니, 초창기엔 이분한테 맞는 의사를 만나지 못해서 설렁설렁한 느낌이 들었던 거고,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밀도도 있고 안정적인 책이 된다.
그렇게 만난 세 번째 의사는 학원 친구 같았다.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동질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오히려 적당한 물리적 거리감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는 그런 친구.
이 의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춰 진료를 했다. 그러면서 우울증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당뇨나 고혈압을 생각해보세요. 평생 약을 먹는다는게 이상한가요? 약을 먹어도 치료되지 않는다며 병원을 거부하나요? 아니면 병을 숨기나요? 오래 먹어도 괜찮다는게 입증된 약들이에요. 비타민 드신다고 생각하세요. 몸에 좋다는 건 다들 고민 없이 잘 챙겨들 먹잖아요."(81쪽)
148쪽 밑에서 셋째 줄의,
애긴데-->얘긴데
이쯤에서 고백해 보자면,
내 서재의 이름인 'insure safety distance'는 내가 이곳에서 적당히 물리적 거리감을 느낀다는 의미로 지었다.
거기서 내가 편안함과 위안을 느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익명성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라딘 서재 이곳이 좋은 것은,
책으로 '연결'되었다는 소속감이 좋은 것이고,
힘들어할때 수선 부리지 않고 조용히 의지가 되어주시고 손 내밀어 잡아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럼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대기 중인 책은 김정선 님의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이다.
해답을 찾을 순 없어도 위로가 되어줄 수는 있겠지.
아참참, 우리 아들과 이름이 한 끗 차이인 이정록 님이 수필집을 내셨나 보다.
난 이정록 님의 경우 시보단 수필을 애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번 책엔 내가 왕애정하는 시인 어머님의 그림이 등장하나 보다.
어젠가는 상품 준비중이더니,
오늘은 나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나 보다.
이제 받아서 재밌게 읽을 일만 남았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8년 10월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