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읽은 책을 탈탈 털면 죽을때까지 讀萬卷書는 가능할 것 같은데, 

行萬里路는 어림도 없지 싶다.

한동안 외국에 머물렀던 적은 있으나 학업을 위해 삶을 살았던 것이니 여행의 개념은 아니었고,

지금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어디 돌아다니기 보다는 한가롭게 머물며 책을 읽는 걸 즐긴다.

나의 이런 행태를 여행이라고 해야할지 쉼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울때 이 책을 만났다.

김연수 님의 마인드는 나의 그것과도 좀 닮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여행이냐 쉼이냐, 를 놓고 편가르는 것은 부질 없으니,

많이 보고 액티브하게 움직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그렇게 여행을 하면 될 것이고,

나처럼 익숙하고 길들여진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쉬는 게 좋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이동 시간이 이처럼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면, 우리는 여행의 목적을 더 잘 알게 되리라. 여행의 목적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는 데 있다는 걸. 그러므로 여행자란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바뀐 풍경은 낯설다. 새롭고 또 신기하다. (255쪽)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이 책을 좀 힘들게 읽었다.

김연수 님이 좋았던 단정한 문장과 격에 맞는 단어의 사용, 맞춤법 따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당히 가벼운 문체, 

PPL마냥 적재적소에 배치된 물건들(그건 때론 맥주일때도, 음식일때도, 음악이나 영화일때도, 통신기기나 런닝 관련용품일때도 있다)도 한몫 단단히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뭐랄까,

일단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글이 쓰였을 당시에는 유행하는 민감한 사안들이었을지 모르지만~--;)

글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아서 감상이랄것도 없었고,

여행기나 기행문이라고 한다면 그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없을 뿐더러 이미지도 없어서,

왠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론리플래닛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글을 추려낸 것이라고 하니 그럴 법도 한데,

이 글들만으론 이걸 여행기나 기행문으로 분류하기보단,

그냥 기분을 따라 써내려간 산문집이라고 해야 겠다.

사진이나 정보가 없는 여행기나 기행문은 날개 없는 비행기나 바퀴 없는 자동차 느낌이니까 말이다.

 

암튼,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기획된 의도를 엿볼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참 들춰봐야 했을 것이다.

 2011년에 보낸 메일에서 허태우 씨는 내게 "작가가 아니라 여행자의 입장에서 가장 순수한 여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적어 보냈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알람브라 궁전을 두 번 갔습니다. 나중에 혼자서 돌아보니 전에 여럿이 볼 때와는 달리 알람브라 궁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들이 살고 사랑하고 증오하다가 죽어간 생활 공간으로 버이더군요. 아마도 혼자이고 외로웠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가장 순수한 여행의 경험은 그렇게 여행지에서 나와 같은 인간을 만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아마도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다시 낯선 사람이 될 테지. 그리고 그 낯선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겠지.

 언젠가,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것. 그게 나의 여행이라는 것.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7쪽)

 

책을 통들어 의미있게 다가왔던 구절이 있었는데,

 캄보디아의 한 스님이 쓴 책을 읽다가 불교의 팔정도를 설명하면서 '바를 정 正'을 흔히 해석하듯이 '올바르게'나 '똑바르게'가 아니라 '능숙하게'로 해석하는 걸 보고 동감했다. 예를 들어, 정견을 '올바르게 보기'라고 옮기면 그러지 못한 사람은 '그릇되게 보는'게 된다. 반면에 이를 '능숙하게 보기'로 옮긴다면, 그러지 못한 이는 '서투르게 본다'는 의미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그릇되게 보는 사람보다는 서투르게 보는 사람이 낫겠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20대란 뭘 해도 능숙하게 할 수 없고, 그래서 어떤 일에도 오래 매달리지 못하는 나이, 즉 서툴러서 쉬 싫증 내는 나이다.(38쪽)

라고 하는 구절이었다.

난 여기서 '능숙하게'를 '익숙하게'로 바꿔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이런 '익숙함'을 깨고 '서투르고 낯섬'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어렸을때 '서투르고 낯섬'이 좋아서 신발을 좌우 바꿔신기도 하고, 옷의 앞뒤를 뒤바꿔 입기도 했었다.

어른들이 그걸 틀렸다고 바로 잡으라고 해서 바로잡아 입고 신고는 했지만,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은 물론,

지금도 가끔 일탈을 꿈꾼다.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저녁을 먹고나서 리슬링을 마시노라면, 노을에 비낀 대성당 첨탑 위 하늘로 새가 선회하는 것이 보였다. 최면술사가 눈앞에서 흔드는 추처럼 선회하는 새들을 바라보노라니 점점 취기가 올라왔다.

 괜찮아, 다 괜찮아, 혼자 리슬링 1병을 마셔도 다 괜찮아."

새들은 내게 속삭였다. 그러면 그런가 싶어서 또 1잔 마시면, 속삭임은 더 커졌다.

 "인생은 모두 너의 것이고, 그게 외로움이라도 마찬가지야. 네 것인 한에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우리라면 그걸 즐길 거야."(57쪽)

 

난 자주 외롭다고 툴툴거리지만,

가끔은 오롯이 외로움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좋은 것은 타인을 신경쓰지않고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건물 하나가 통째로 문구점이니, 거기에서 내가 살 물건은 그 건물 전체였다고나 할까. 모든 게 다 사고 싶어서 하나도 못 사는 결정장애자가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면, 그럼 무엇을 살 것인가? 그건 마치 인생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모든 삶을 살 수 없다면, 그럼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래서 나는 연필을 사기로 했다. 연필은 내가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큰 변화를 이끄는 도구이기 때문이다.(67쪽)

이런 글이 있는 꼭지의 제목은 '모든 삶을 다 살 수 없으니 나는 연필을 사겠다'이다.

10억원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차리겠다는 제주도 협재의 문구점 '필시'는 생긴다면 꼭 가겠다.

가서 시 한 편을 지어 팔아 연필 한자루와 맞바꾸는게 꿈이다, ㅋ~.

 

크리스 보티의 보스턴 공연 실황 앨범은 나도 애정한다. 난 그 중에서 Sy Smith를 제일 좋아한다.

그동안은 look of love였는데,

이런 동영상이 있길래 업어왔다.

 

표지 그림은 산뜻하고 이뻤지만 안에 나오는 많은 그림은 글쎄올시다 였었다.

백번 양보하여 일러스트레이터만의 큰 뜻이 있다고 해도,

133쪽의 이 그림은 이유를 모르겠다.

여행의 서툼이나 낯섬 등을 표현하려 했을까?

 

혼자 떠난 여행에서 혼자가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일 테고, 또 어쩌면 그런 이유로 혼자 떠난 것일 텐데, 막상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불안해지는 건 왜일까? 혹시 인류가 멸망해서 나 혼자 살아남은 게 아닐까? 지금 나는 꿈속에 갇힌게 아닐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 착각을 교정하자면 역시 다른 인간의 존재가 필요하다. 굳이 말을 나누거나 친해질 필요도 없다. 그저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근처에 존재한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되나. (199쪽)

 

이건 비단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난 살면서 종종 느끼는 감정이다.

어울리는 번잡함이 싫어 혼자를 택했지만, 혼자는 또 싫다.

말을 안 하고 어울리지는 않더라도,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경험한다.

 

난 좀 힘들게 읽었지만,

여행 잡지의 한꼭지다...생각한다면 달리 읽혔을 것도 같다.

준비 중이시라는 소설을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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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27 14:54   좋아요 1 | URL
그림은 쫌 ㅋㅋ

양철나무꾼 2018-08-27 15:51   좋아요 1 | URL
저 혼자 만의 생각이 아니었군요.
짧은 댓글이 큰 위안이 됩니다, 감사~^^

비로그인 2018-08-27 14:54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작가고, 읽고 싶은 책인데, 이런 평을 보니.... 역시 읽고 확인해야겠어요 ㅎㅎㅎ
양철나무꾼님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을 수 있겠네요~~

양철나무꾼 2018-08-27 15:55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하는 작가이고 읽고싶은 책이었는데,
제가 상상하던 색깔이랑은 달랐어요.
이 책의 광고 방향을 제가 지레짐작한 것일 수도 있구요.
찬찬히 작품소개나 다른 분들의 리뷰도 보시고,
원하는 작품인지 확인하세요.
아니다, 직접 읽으시고 확인하시는 것도~^^

2018-08-27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8-27 16:02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이 몹시 고팠습니다.
아니, 그림 한점이라도 말예요.
그런데, 책에 등장하는 그림이라고는 저런 그림 뿐이고,
대략난감이었습니다.
급기야 저 그림에 색을 입히면 좀 나아질까?
아님 추상화 기법을 살려볼까?
혼자서 엉뚱한 생각들을 좀 했습니다.

꽃할배 시리즈를 가끔 보는데,
아무리 좋은 풍경이고 장소여도 버거워 하는 걸 보고 좀 우울해졌었습니다.
저도 머지않아 저렇게 나이먹을텐데 싶어서 말예요.

여행자란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라잖아요.
님은 충분히 누리실 수 있을 거예요~^^

책읽는나무 2018-08-27 20:37   좋아요 1 | URL
앗!!
저도 일요일에 읽었어요.
어쩜 똑같은 시간에 읽었던 것 아녔을까요?^^
여행 산문집이라 그런지,여느 여행서보다는 조금 신중하게? 읽느라 진도가 좀 더디긴 했습니다.
나무꾼님이 인용하신 대목들에 저도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었어요.
그래서 전 이 책 별 다섯 개를 줬어요.
오늘 낮에 꽃할배 재방송을 보면서 이 책에서 본 지명이 있었던가?하고 눈이 똥그래질만큼 쳐다 보면서,여행은 혼자 가는게 옳을까?저렇게 친구끼리 가는게 옳을까?뭐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주로 우리 가족끼리만 몇 번 다녀봐서 혼자 여행하거나,친구랑 다니는건 상상이 잘 안가네요.

참,
저도 한 두어 번 삽화 그림을 보고서 뭐지?갸웃했었어요ㅋㅋ
약력을 보니 개인전도 많이 했던데~~순간 내가 너무 예술을 모르는건가?헷갈렸었다는~~
아마도 글을 읽을때 집중 잘하라고 부러 단순하게 그림을 그렸나 보다!!뭐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책표지 그림의 색감은 단순하면서도 따뜻하여 여행자의 설레임도 살짝 엿보일 정도더니만~~저도 저 그림에서 딱 정지!!!
뭐지??
했었네요ㅋㅋ


양철나무꾼 2018-08-28 14:12   좋아요 0 | URL
하핫, 이렇게 반가울 수가~^^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느낌을 나눌 수 있는게,
알라딘 서재의 무한매력인것 같습니다.
전 일요일엔 안 읽고 토욜에 2/3 정도 읽고,
어제 오전에 나머지를 읽었어요.
전 아들이 어렸을때는 체험학습 과제용으로다가 여행을 좀 다녔었고,
남편 친구들 모임에서 예전엔 캠핑도 다니고 했는데,
말도 많고 이젠 다들 나이가 들어 불편함은 감수하려들지 않아서,
가족끼리의 여행만 다니게 돼요.

님은 저자 약력까지 찾아보셨군요.
그림에 대한 님의 해석도 그럴듯한걸요.

그나저나,
프로필 사진이 바뀌셨네요.
자세히 보러 들러야겠어요~^^

북극곰 2018-08-28 09:08   좋아요 1 | URL
저는 이상하게 김연수 님 소설이 잘 읽어지지가 않더라고요. 몇번 시도하다가 성공을 못했네요. 김영하도 그래요 사실. 그 두명이 괜히, 이상하게 늘 헷갈렸는데 김영하 소설도 못 읽어봤다는요.ㅎㅎ

저는 붙여주신 음악이나 듣고 갈게요. 히~~

양철나무꾼 2018-08-28 14:18   좋아요 0 | URL
저는 김연수 님이랑 김중혁 님을 헷갈려 하는데요~--;
하긴 김영하님도 ‘읽다, 보다, 말하다‘만 각인되어 있어서 그리 특이점을 떠올리진 못하네요~--;

헤헷~^^
사이 스미스는 저 곡도 좋지만,
The look of love가 죽음이죠.
이 곡은 전에 포스팅했던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