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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사람은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부러워하는 속성이 있다.
지금의 삶을 '창살 없는 감옥' 같다고 툴툴거리지만, 그렇다고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가 다스려주고 보살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귀찮고, 모험은 두렵다.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이 지루하지만,
이젠 지루하지만 별일 없는 삶이 축복이라는 것도 안다.
자신이 갇힌 곳이 꼭 감옥이 아니라서 그렇지,
갇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파서 갇힌 사람들도 있고,
일에 갇힌 사람들도 있고,
섬이나 산골 오지에 살아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유폐시키듯 자기 스스로를 가둔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감옥 아닌 감옥이 있지만,
자기가 갇힌 감옥이 살만한 곳이냐 그렇지 않은 곳이냐, 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감히 어림잡아 보자면,
감옥의 쾌적성이 아니라,
홀로 갇혔느냐 주변에 소통하고 왕래할 사람이 있느냐, 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은 러시아 혁명의 시절, 혁명에 동조하는 시를 써서 목숨은 부지하지만,
거처하던 호텔에 평생 갇혀있어야 하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거처도 스위트룸에서 하인용 다락방으로 옮겼지만, 그에게 호텔이 꼭 감옥인 것만은 아니다.
호텔에 갇히는 '종신 연금형'이 두려웠다면,
잘 지내던 프랑스에서 일부러 러시아로 되돌아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가 갇힌 메트로폴 호텔은 일류호텔인가 보다.
외교 행사의 주요 무대인 동시에 새로운 손님이 왕래하며 날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로스토프 백작은 그곳에서 유명 여배우와 몰래 사귀기도 하고,
공산당 간부의 비밀 개인 교사를 하기도 하고,
니나라는 꼬마 숙녀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곳 호텔 직원들과 친분을 쌓으며 나중에는 자신도 웨이터 주임으로 일하게 된다.
곳곳에 이런 구절이 나오는 걸로 미루어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정도가 되겠지만,
내가 신뢰하는 '이박사' 님의 짧고 굵은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100자평이 훨씬 와닿았다.
나는 장르소설에 관해서만은 이박사 님의 선택을 100퍼센트 신뢰하는 편인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 역시 좋았다.
724쪽에 이르는 두꺼운 하드커버의 책인데, 다른 출판사였으면 두권으로 분철하는 호기를 부렸을 법도 하다.
현대문학 때땡큐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다.
훅 터뜨리는 한방은 없다.
최후의 반전이라 불리울만한 것도 없다.
다른 장르 소설을 보게 되면 스파이가 등장하고,
피튀기는 폭력이 난무하고 죽고 죽이고 하는데,
그런 잔인한 장면 없이도 재밌고 감동을 준다.
책의 곳곳에 고전 명작들이 내용과 조화를 이루며 등장을 하는데,
음악이나 영화 또한 그러하다.
'카사블랑카'가 보여주는 복선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러시아 고위급의 회담 장면이야 자료로 남아있는게 있을테니 상상할 수 있다고 치고,
식사 예절 따위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이런게 신사의 자격 내지는 본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재밌는 장면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이발소에서 자리 예약 문제로 누군가와 다투다가 콧수염을 잘리우고는 거울을 쳐다보며 이런 말을 한다.
백작은 거울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처럼 자신의 모습을 눈여겨 살핀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오랫동안 백작은 신사란 불신감을 가지고 거울을 보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거울은 자기 발견의 도구이기보다는 자기기만의 도구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65쪽)
이런 구절도 재미있었다.
사무원이거나 회계원일 것 같은 이 사람은, 조합의 사무직 근로자일 게 틀림없는 이 사람은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나자 '돕는다'는 단어만큼이나 미지근하고 틀에 박힌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시적 간결함은 한 단어로 충분할 때 둘로 나누어 쓰는 것을 피할 것을 요구합니다."
"저건 뭔 소리야?"
"뭐라고 한 거야?"
ㆍㆍㆍㆍㆍㆍ
"시적 간결함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종의 수컷들은 그 혼자로도 충분했을텐데도 짝을 부여받았잖아요."
우레와 같은 박수!
'돕는다'를 '가능케 하고 확실히 한다'로 대체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은 만장일치의 박수와 대다수가 발을 구르는 소리로 채탣되었다. 발코니에 있는 동안 백작은 정치적 담론이 언제나 따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113쪽)
또 한가지 아무리 뛰어난 학식이나 지식을 자랑한다고 해도 경험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이 책은 얘기하고 있다.
백작은 고개를 저으면서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되새겨보았다. 웨이터에게는 이런 일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였다. 적합한 와인을 추천하는 것 하나로 웨이터는 젊은이를 편하게도 해주고, 지극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게도 해주고, 나아가 연애 진도가 나가게 도와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심함이 부족하거나 감각이 부족한 탓에 비숍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고객을 곤경에 몰아넣기까지 했다.(159쪽)
책의 곳곳에서 단어가 가진 상반되는 뉘앙스를 살려내는데, 그것도 재밌고 좋았다.
"모두와 극소수의 차이는 숫자의 차이일 뿐이예요."(150쪽)
자신이 백작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아주 많다는 것을 시사하려는 의도였다.(339쪽)
"아이들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우린 잊어야 하는 거로군요."(509쪽)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서커스 단원이었던 안드레이가 친구들 앞에서 저글링 하는 장면이었다.
더 멋지게 표현하자면, 오렌지들은 앞으로 밀어내는 동시에 우주 공간 속으로 튕겨나가지는 못하도록 붙잡는 중력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행성들처럼 움직였다. 행성들 앞에 서 있는 안드레이는 그것들을 궤도에서 살짝 잡아당겼다가 다시 놓아줌으로써 행성들이 자연스럽게 정해진 경로를 따라 돌도록 만드는 듯했다.
ㆍㆍㆍㆍㆍㆍ
거리의 마술사에게 마음을 사로잡힌 소년 같은 표정의 에밀은 군중 틈에서 소줍게 빠져 나와 자신의 식칼을 내밀었다. 15년 가까이 다른 누구의 손이 닿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던 칼이었다. 안드레이는 의식을 치르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허리를 굽혀 식칼을 받아 들었다. 그가 네개의 칼을 돌리기 시작하자 에밀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사신이 신뢰하는 칼이 공간 속을 가볍게 미끄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시간, 이 우주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355~356쪽)
이 부분을 읽는데 알 수없는 감동으로 한동안 울컥하였다.
많은 좋은 책들이 나오는데,
그 중 '잭런던'의 'The call of the wild'를 '야성의 외침'(409쪽)으로 번역해 놓았다.
창피한 일이지만 난 아직 읽어보기 전이라 이 부분을 '부름'이라고 번역해야 할지 '외침'이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알라딘에 찾아보니 번역된 책의 제목으로 '야성의 부름'쪽이 많았다.
'부름'과 '외침'은 아무래도 내용이 정반대인데 어느 쪽 제목이 그럴 듯 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잭 런던'을 읽어보아야 겠다.
완전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백작과 대령의 대화였다.
"제대로 장소를 찾으셨군요. 예전부터 예의 바른 사람들은 이런 술집에 모여 들곤 했답니다. 마음이 서로 통하는 영혼들과 한자리에 모여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서 말입니다."
"또는 낯선 사람들과?"
대령이 손가락 하나를 공중에 세웠다.
"낯선 사람보다 더 마음이 통하는 영혼은 없지요. 그러니 서론은 생략하기로 합시다.ㆍㆍㆍㆍㆍㆍ(476쪽)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나 이런 데로 망명하게 된 줄 알았는데,
마지막 부분에 니즈니노브고로드 주가 언급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웠다.
그러고보면, 호텔에 평생 갇혀있어야 하는 '종신 연금형'은 백작이 자의적으로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백작이 원하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간에 머물 수 있고, 갇혀 있을 수 있으며, 떠나고 싶을때 떠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이를 먹으면서 백작의 멋진 옷들은 낡고 해어지지만,
그걸 잘 손질해서 입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고 노회찬 님을 언급해서만은 아니고,
노회찬 님이야말로 이 책에 등장하는 로스토프 마냥 진정한 신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소탈했고,
첼로를 연주하실 정도로 음악을 즐기셨으며
서민들의 언어와 행동을 구사하실 줄 알았으며,
엄숙하기만 한 정치판에 유머를 곁들일 줄 알았던 그야말로 진정한 신사가 아니었을까.
돌아가시면 잊혀질 줄 알았는데 날마다 선명해지는 것이 빈자리가 너무 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영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