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7
강숙인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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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옛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겠으나 작가의 말대로 이건 또 다른 형태의 이본이라

이미 운영의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해도 맛이 다른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선녀처럼 아리땁고 시도 잘 지었던 궁녀 운영과 그에 꼭 맞게 시문에 능하고 훤칠한 김진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살던 수성궁. 우거진 풀만 가득한 그곳에 가난한 선비 유영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자고

혼자 술병을 차고 찾아온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시중 들 하인도 없이 나타난 그를 보는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한적한 후원을 찾아 혼자 술을 홀짝이다 잠이 들었는데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한 그곳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선남선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운영과 김진사였던 것.

기쁜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 그들을 졸라 운영이 이야기를 하고 김진사가 기록하는 글을 따라

우리도 모두 안평대군이 머물던 수성궁으로 날아간다.

빼어난 궁녀 10명 중에서도 으뜸이었던 운영은 수성궁에서 손님으로 왔던 김진사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운영을 사랑하는 안평대군은 그녀가 지은 시 속에 남자를 향한 그리움을 발견하고 의심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한때의 불장난쯤으로 여겼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결국 도망치로 작정을 했지만 운영이 가진 재물을 빼돌려

가로챈 김진사 하인 특의 흉계로 모든 게 드러나고 만다. 노발대발한 대군은 궁녀들에게 모두 죄를 묻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탈이 미칠까 두려워한 운영의 자결과 식음을 전폐하고 운영을 뒤따라 간 김진사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슬픈 운명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유영은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러웠지만 남겨진 한 권을 책을 들고 그곳을 떠난다.

이렇게 해서 <운영전>은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한문소설인 <운영전>은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작품이지만 소설 안에 지어진 시들이 빼어난 것으로 미루어 학식이 높은 사대부가

지었을 거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운영이나 다른 궁녀가 지은 시들은 물론이고 김진사가 지은 시들도 많이 소개를 해주고 있는데

운영이 님을 그리워하는 사랑시도 가슴을 울리지만 김진사가 처음 대군에게 지어 올린 시도 아름답다.

 

연기 흩어진 금빛 못에 이슬 기운 차디차고

푸른 한르 물결인 양 맑은데 밤은 어이 이리도 길까.

미풍은 뜻이 있어 주렴을 걷고

흰 달은 정이 많아 작은방에 들어오네.

뜰에 그늘지니 소나무 그림자 드리우고

잔 속의 술이 일렁이니 국화 향기 머물렀네.

완공이 비록 젊어도 술은 잘 마시니

괴상하다 하지 마오, 술로 취하고 또 미치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를 읽는 도중에 시를 만나다보면 유영이 지금 술을 마시면서 운영과 김진사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나도 따라 함께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도 화자가 운영인지라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말투 때문이지 싶다.

작가가 바란 것처럼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그리 어려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작품을 시험에 나오는 것처럼 발기발기 찢어서 분석하려고만 하지 말고 작품이 가지는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학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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