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7
황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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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줍지 않은 시를 쓸 때가 떠오른다.

자아도취에 빠져 이렇게 멋진 시를 알아주지는 못할 망정 혹평을 해대는 친구들을 참 많이도 미워했었다.

그러니 그들이 해주는 말 하나하나에 가시를 세워 막기만 할 뿐 받아들이지 못한 내 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 이후로 시를 쓰는 손을 놓아버렸으니 손해만 잔뜩 보고 가게 문을 닫은 셈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는 공으로 먹는 게 아닌지, 내 생각도 조금씩 어른스러워진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단점을 보완하려고 노력도 하는 지라 지금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문닫은 시 대신에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동화가 소설이나 시보다 쉽다고 생각한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라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된다.

 

어린이 책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동경하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혼자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과연 어린이를 위한 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어린이 책은 정말 어린이를 위한 것인가.

얼마나 어린이들을 치유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른들의 시각을 제대로 배제했나.

등등의 물음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많이 읽고 공부한 흔적이 역력하다.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지금 이 땅위에서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고 있는 기성작가나

이제 막 문단을 두드리려는 신인 작가들 모두 귀기울여 들어볼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작가의 생각이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읽어내려가는 내내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 소설에는 고민하고 방황하던 등장인물들이 특별한 개연성 없이 화해 무드에 접어들며 마무리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는 작가들의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보인다.(중략)

성급한 깨달음보다는 치열한 고뇌의 몸부림을, 섣부른 현실의 변화보다는 현실의 질곡마저 수용하는 자세를 그려 내는 것이

문학적 진실성에 접근하는 길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소설은 성급하게 해피 엔딩으로 결말짓기보다는

자아와 세계의 부딪침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청소년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33쪽)

 

국내 판타지동화 중에는 환상 세계의 내적 리얼리티를 확보하지 못한 작품이 많아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54쪽)

환상 세계의 형상화에 있어서 현실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통일성이다.

여기서 통일성은 작품의 배경에서부터 정서적인 분위기까지 총체적인 것을 의미한다 ((56쪽)

창작방법론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판타지의 재료가 되는 신화, 전설, 민담의 발굴 등 판타지의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 또한 내면의 문학적 욕구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류에 부응하기 위해 

성급하게 작품을 써내기보다는 환상 세계의 구상에 체계를 다지고 이야기를 궁글리는 숙성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 (67쪽)

 

현실주의 동화의 또 다른 과제는 반복되어 나타나는 익숙한 전개 방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형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동화가 참신함을 구현하지 못할 경우, 자칫 비슷한 갈등 양상에 소재만 변형되는 지루한 변주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1쪽)

 

소설화 경향을 나타내는 몇몇 동화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작중의 어린이가 설정만 어린이일 뿐

어른의 의식 구조와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75쪽) 단순하고 명징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어린이의 내면을

복잡 미묘하고 중층적인 특징을 지닌 성인의 내면으로 그려 내는 것은 리얼리티를 떨어뜨리고 문학적 진실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79쪽)

 

국내 현실주의 동화는 현재 '현실 속 어린이'에는 접근하고 있으나, '어린이 속의 현실'을 구현해 내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 속의 어린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린이 속의 현실'까지 담아낼 수 있을 때 동화의 리얼리티는 높이지고 감동은 커질 것이다 (84쪽)

 

우리나라 동화는 외국 동화에 비해 진지하고 무거운 경향을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의 암울한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으나

진지한 주제 의식에 대한 작가들의 의무감 내지 중압감이 한몫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121쪽)

 

서점에 가보면 아이들이 쭈그려 앉아서 읽고 있는 것은  만화가 90%.

매일매일 좋은 책이라고 만들어내지만 왜 아이들은 동화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가볍게 신경을 건드리는 만화에만 매달리고 있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만화와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동화책과의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볼멘 소리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대로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들은 아이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때에

어른들만 좋아하는 '좋은 책'이 아닌 모두가 좋아하는 '좋은 책'이 될 것으로 나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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