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도망쳤다! 미래의 고전 19
백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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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도망친다는 설정은 꽤 괜찮았다. 뭔가 나쁜 짓을 한 주인을 피해 달아나는 거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움직이는 하울의 성>과 <해리포터>, 심지어는 <반지의 제왕>의 그림자가 마구 넘실댔다. 집에 다리가 쑤욱 나와 걸어다닌다는 설정부터가 <움직이는 하울의 성>을 닮았거니와, 벽에 글씨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집이 이동할 때 붙박이로 서있는 집들 가운데를 통과한다는 따위의 신비한 능력은 <해리포터>에서, 모든 나무들이 어머니 나무에서 갈라져나온다거나 뿌리 하나가 아이들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는 것은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게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 거부감이 드는 건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재민이를 가두고 도망쳐버린 집을 찾기 위한 추격전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아름드리 떡집 아줌마와 같은 부류인 길위의 유목민들의 등장은 신선했고 버림받은 집들이 유령의 집이 되거나, 학교를 졸업할 때 상으로 받은 씨앗이 자라서 자신의 집이 될 나무로 자란다는 이야기, 나무들이 주인을 고른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워졌다. 원호와 앙숙이었던 범수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보는 건 흐뭇하다.

 

 최고가 되기 위해 다른 유목민 집들의 심장에 '욕심' 한 방울을 흘려넣은 왕빛나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집들은 잠시나마 주인들을 배반하고 한 데 뒤엉켜 웅장한 성을 만들었지만 원호의 노력으로 모두들 자신들이 누군지, 주인은 누구인지를 기억해냈다. '욕심'때문에 주인을 버리고 자신을 잃어버린 집들은,  욕심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구, 이름 모를 타인들까지 어려움에 빠뜨리는 인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혹시라도 맑게 빛나는 호박빛 영롱한 심장이 아니라 왕빛나가 주입한 욕심 한 방울이 섞여 검붉게 끈적이는 액체만 가득 담은 심장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킁킁 냄새를 맡아 볼 일이다.

 

 뚱뚱하고 느리고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던 원호가 결국 모든 일을 해결했다. 잘나고 훌륭한 주인공만 등장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으니 새로울 것도 없긴 하지만, 지나치게 드러나는 일 없이 자연스레 처리한 작가의 노고가 빛난다. 원호가 아름드리의 마음을 읽고 집을 다루는 재주가 있는 것처럼 아직 찾지 못했을 뿐 누구에게나 잘 하는 것이 꼭 한 가지는 있기 마련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부탁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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