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의 약속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2
박경태 글, 김세현 그림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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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가끔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죽으면 병원에 시신기증을 하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 고장난 데가 많아서 장기야 쓸 데가 없을 테지만 시신을 기증하면

학생들이 공부할 때 도움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좋으냐. 죽으면 썩기밖에 할 게 없는 몸인데 좋은 일 할 수 있어서 그러자고 했다.

너희는 아무 걱정 마라."

기증증서까지 보여주시면서 생각날 때마다 몇 번씩 얘기를 꺼내시는데 사실 들을 때마다 섭섭하고 슬프다.

장기기증이야 나도 하려고 마음 먹은 일이니 괜찮지만 시신기증이라니!

몇 번을 들어도 감당 안 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표제작인 <첫눈 오는 날의 약속>보다 <아이별 천사의 눈물>이 내 눈길을 끈  건 이런 연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병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는 천사가 되어 슬퍼하는 엄마를 보러 매일 성당을 찾고, 마리아님과 이야기를 나눈 뒤

죽기 전에 장기를 나누어준 다른 친구들의 꿈속에 들어가 엄마가 다니는 성당으로 찾아와달라고 한다.

성탄절 날 아침, 그 아이들을 통해 진주를 보게 된 엄마는 아이가 천사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깨닫고 행복해진다.

짧고 간단한 이야기지만  진주를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모두 성당에 모였을 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 모두를 진주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진주 몸을 나눠 가졌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슬퍼하세요.

진주가 엄마 걱정을 많이 해요. 어쩌면 진주는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 보고 있을 지도 몰라요.'(36쪽)

 

조금씩 정리를 하고 있기도 했지만. 찾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비와 바람에 무너지려는 묘를 쓰는 것보다야 마음 속에 묻어두고 영원히 기억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옳은 결정을 하셨다는 걸 인정하자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참이다.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느낌인데 내 경우와 맞물리다보니 어두운 이야기처럼 되어버렸다.

 

다른 책들에 붙어서 들어온 녀석처럼 수줍게 책들 사이에 가려져 있던 놈.

작아서 손에 감기는 맛은 좋지만 잘 나가는 책들에 끼워주는 덤 같은 인상을 가진 책.

그래서 읽는 것도 늦어졌지만 바보 철승이나 첫눈 오는 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사를 때려치우고 달려간 붕어빵 장수 아저씨,

순댓국집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어 이젠 외롭지 않을 할아버지, 모르는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해줄줄 아는 할머니,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섬마을 소년 훈이 등 따뜻한 열 편의 이야기를 만난 행복은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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