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리다 - 화가들이 사랑한 '나의 어머니'
줄리엣 헤슬우드 지음, 최애리 옮김 / 아트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어머니를 그리는 것은 나를 그리는 일이다. 아버지를 그리기보다 어머니를 그리는 화가가 많은 것이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대할 시간이 적어서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마음 속으로 어머니와 연결되었던 탯줄이, 세상에 나와 잘라진 그 탯줄이 마음 속으로는 계속 연결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샤갈이나 피카소, 마네나 고갱, 고흐 같은 잘 알려진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많은 화가들이 그린 어머니를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그들이 그린 어머니를 보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얼굴 속에 혹은 들고 있는 바느질 감이나 입고 있는 옷, 배경으로 놓인 꽃에서 삶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운구 행렬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위해 눈물을 흘린 이는 아무도 없었다.

 폴 세잔에 대해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남긴 회고담 중 일부이다.

 

<폴 세잔, 피아노 치는 소녀- 탄호이저 서곡>

  여동생 마리는 피아노를 치고 어머니는 그 뒤에서 음악을 들으며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이 그림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그림 중에서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머니의 자세 때문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뒤로 물러앉아 큰 소리 내는 법 없이 아이들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쏟아붓는 우리 어머니들과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세잔이 사랑한 어머니도 그런 모습이었으리라.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랑을 주는 그런 어머니. 세잔이 화가로 성공할 것을 믿어주고 결혼하기 전 여자와 사는 것도 비밀에 부쳐주며 끝까지 세잔을 도와주었던 어머니 엘리자베트. 그랬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순간에도 세잔은 그림을 그리러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을 어머니가 훨씬 더 좋아하실 거라고 믿으면서.

'늙어 주름 자글자글해서 보기 싫다. 찍지 마라.' 70이 넘으신 엄마는 요즘 들어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신다. 옛날보다 조금 더 살이 붙으셨지만 걷고 요가하고 등산하시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 엄마는 또래의 다른 분들과 견주어 볼 때 훨씬 젊은 외모를 갖고 계신데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여태까지는 싫어하시는 일이니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앞으로는 몰래라도 자주 찍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화가들이니 그림을 잘 그린 탓도 있겠지만  세월이 그대로 느껴지는 경우의 초상화가 훨씬 마음에 든 탓이다.

  예쁘고 건강한 모델이 아니면 어떠랴. 날 낳고 기르고 사랑해주시는 어머니인 것을. 비록 나이 드시면서 성격이 약간 괴팍하게 변하시긴 했지만 좋은 엄마이고 좋은 할머니인 것은 변함이 없다. 사진을 몇 장 찍어서 걸어 둔 다음에, 실력은 그닥 출중하지 않지만 언젠가 한 번은 꼭 그려봐야겠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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