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비룡소 클래식 21
루머 고든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조안나 자미에슨.캐롤 바커 그림 / 비룡소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제대로 된 인형을 갖고 놀아 본 기억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인형보다는 나무 칼을 가지고 남자 아이들과 한 판 싸움을 벌이거나

낮은 담에서 뛰어내리는 담력훈련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관절이 구부러지거나 구부러지지 않거나

눈을 깜박이거나 그렇지않거나  다 같은 종류의 인형일 뿐 어느 것 하나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그 당시 인형 옷 갈아입히기에 푹 빠져 인형과 옷이 인쇄된 하얀 도화지

(앞면은 화려한 칼라로 인쇄되었고 뒷 부분은 갱지처럼 누런 도화지)를  정신없이 사나르던

동생들 덕분에 인형이라는 걸 쳐다보게 되었다.

 인형에 걸 수 있도록 어깨 부분과 허리에 뒤로 꺾어 넣을 수 있는 시접 부분이 그려진

공주님 옷들과 신발, 왕관, 모자, 가방들.

처음에는 서툰 가위질에 잘려나간 시접 부분만을 붙여주다가 차츰

몇 번 가지고 놀다보면 구겨지고 찢어지는 동생들 인형을 위해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잔뜩 부풀린 치마에 레이스로 한껏 치장을 하고

내 옷에는 한 번도 달아보지 않은 리본과 구슬 장식을 잔뜩 달고, 반짝이는 보석도 그려넣어주고

화려한 색을 칠해주었다.

그러다보니 그 옷에 어울리는 금발머리 인형도 몇 명 그려주었는데

그리기 솜씨가 그닥 나쁘지 않았던지 동네 아이들의 주문도 이어져서

우리집은 때아닌 화실이 되곤 했다.

 그렇게 인형은 그런 정도로만 내 어린 시절을 침투했기 때문에

<인형의 집>에 나오는 아주 귀한 인형들과 오래된 인형들, 도자기로 된 인형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인형의 집들이 모두 어느 낯선 이국의 풍경을 보듯 신기했지만

내게 딱 달라붙지는 않았다.

장난꾸러기 어린 인형 애플을 위해 촛불에 몸을 던진 버디를 보면서

발레리나를 위해 자기 몸을 던진 다리 하나인 주석병정을 떠올렸을 뿐

그저 이런 소재로 동화를 만들었음에 감탄을 했다.

그러나 뒷편에 있는 <부엌의 성모님>은 작품 자체에 반했다.

성모님이니 성화니 하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종교적인 색이 짙은 작품은 결코 아니며

그레고리의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동화였다.

 남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아홉 살 그레고리가

우크라이나에서 온 가정부 마르타 아줌마를 위해 성화를 만들면서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에서 탈출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전해준다.

 굳이 나누자면 <인형의 집>은 여자 아이들에게,

<부엌의 성모님>은 남자아이들에게 읽히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