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민지의 [버블 패밀리]를 드디어 봤다. '드디어'라고 할 만한 전사(pre-history)가 있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서 상영일정이 있어서 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놓쳤다. 그리고 ebs 다큐페스티벌 대상작으로 수상돼 상영했는데 TV 상영일정과 일정이 맞지 않아 놓쳤다. 온라인상으로 볼 기회가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영화제에 최대한 다 출품하고 돌고 나서 IPTV나 OTT로 가야 하는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토요판'을 챙겨 읽어야겠단 생각에 한겨레에 접속했다가 강유가람 감독의 버블 패밀리 에 대한 글을 읽었다. U+모바일 tv에 영화 월정액에 가입돼 있는 상태임을 최근에 확인하고 ㅡ 그래서 핸드폰으로 볼 수 있는 영화와 IPTV 상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IPTV로 결제하고 봐야 하는데 모바일로는 무료. 모바일에서 시청가능한 영화를 IPTV에 전송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이다. 이걸 몰라 호구딜로 돈을 좀 날렸다 ㅡ 검색해봤더니 갓챠. 잡았다 이 영화...

영화내용은 이미 대충 알고 있었다. 제목이 암시하듯 호황기에 부동산에 투기하며 부를 늘렸던 가족이 IMF 외환위기에 직격타를 맞아 중산층의 대열에서 밀려난 이야기. 여전히 부동산에 집착하고 있는 부모님을 감독이 직접 담아낸 영화라고.

박해천의 '아파트' 3부작 등 아파트와 중산층에 대한 담론에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로 폭발하기 시작한 부동산 투기가 1980년대 3저 호황과 올림픽의 열풍을 타고 이어졌고, 1990년대 일산, 산본, (분당?) 3기 신도시 개발까지 계속되다 1997년에 파산한 이야기. 사실 재벌과 상류층은 오히려 IMF를 기회 삼아 부를 더 축적할 수 있었지만 중산층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고.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몰입해서 봤다. 이는 아마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청년 세대 감독이 애증의 관계인 부모님과 '우리 집'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현실적인 고민이 담겨 있고, 비빌 부동산이라고 없는 동/흙수저로서 집과 땅에 대한 여정을 통해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화해의 서사여서 그랬던 것 같다.

가족들이 묻는 말을 제대로 답해주지 않는 아버지(영화제작 지원비를 갖다 쓰자는 아버지;;), 남편의 사업이 무너진 이후로 15년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오신 어머니, 영화를 찍는 딸. 빚이 있고, 1년-1년 반 뒤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이 허물어질 예정이지만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아니 현실적인 대책을 궁리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여전히 부동산 대박을 꿈꾸고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부동산 버블이 한 가족에게 남긴 상흔과 균열이 무엇인지 바라보게 한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주지 못한, 그래서 자식을 빚쟁이(학자금대출)로 만든 부모에 대한 원망에 대해 말했다.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어 독립했으나 졸업 이후 다시 부모님 집으로 되돌아온 감독에게 아버지는 종잣돈을, 어머니는 감독 명의의 등기문서를 선물한다. 감독은 땅 살 돈이 있었으면 등록금을 내주지 그랬냐며 엄마에게 따지지만 엄마는 땅값이 오르면 몇 배 오를 수 있다고 답변한다.

100만원 짜리 아파트를 샀다 300만원에 팔아본 울산에서의 첫 부동산 경험, 이 원초적 기억 이후 IMF 전까지 발전과 성장의 낙관주의로 일관했던 어머니의 세대적 계층적 감각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빚이 남아 있고,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서 남들도 다 어렵게 살고 있다는 체념과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낙관주의가 묘하게 섞여 있은 어머니의 태도를 보며 내 어머니가 많이 떠올랐다. 먹고 사는 밥벌이의 전장에서 수 십 년 동안 뒹군 베타랑의 능숙하면서도 피곤함이 섞인 에너지 같은 거랄까.

가족들끼리 각자의 경제상황과 사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고, '돈 문제'에 있어 소통과 합심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 계속 이어지는 걸 보며 참 어려운 거구나 싶었다. 가족이라는 거, 인륜적 공동체기도 하지만 뭣보다 경제적 공동체/결사체라는 사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태도가 다르면 많이 어렵구나ㅡ 어렵겠구나 싶었다.

최근에 아빠가 이런 얘기를 했다. 부동산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알았다고.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뉘앙스였다. 과감하게 공격적인 투자(투기)만이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길임을 이제야 알았다고. 나는 거기서 '콘크리트 유토피아' 학자연하는 소리를 운운할 수 없었다. 중국집, 공판장, 버스 기사, 청소일, 현재 아파트관리 일 등 다양한 직종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다단계 같은 곳에 돈을 손실해가며 어쨌든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노력해온 세월이 유구하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노후 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든든한 지원군의 존재를 필요로 할테니까.

8살 때인가 옆집에 사는 '이웃사촌'과 강원도 금강 쪽으로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이웃사촌은 회사에 다니고 계셔서 승용차를 끌고 가 텐트를 치고 숙박했다. 우리 집은 그때 공판장을 하고 있던 때라 트럭을 타고 가서, 트럭 짐칸에 설치된 천막 같은 구조물을 텐트 삼아 숙박했다. 아까 1990년대 유년기의 기억을 회상하며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진하게 겪은 기억이 없다고 적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때 한 번 강하게 겪었던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트럭에서 자는 '가난한' 우리 가족 모습을 남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하면 부끄러웠던 것 같다(그때 나는 7-8살 정도였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텐트에서 자는 게 '정상적'인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뭔가 분하게 부끄러워서 잠을 잘 못 잤던 것 같고, 그런 식으로 투정 몽니를 부렸었는지 아버지는 이웃사촌네 텐트 가서 자라는 말을 하셨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쪽 팔린' 짓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수없이 마음을 추스리고 분을 삭이고(?)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차박의 원조(?) 격이었고, 4인 가족이 자기에 불편한 환경도 아니었고 그때 다녔던 치악산 국립공원이나 금강 같은 여행지 모두 엄청 좋은 추억인데 그땐 마르크스도 베버도 박정희 전두환 아무도 몰랐다.

나는 현재 아파트에 살고 있다. 엄마 집인데 여기로 이사한지 5년 정도 됐다. 그전까지 전세살이를 오래 했었다. 이사를 많이 다니다 할아버지가 고향땅을 팔아 지은 빌라에 들어가서도 꽤 오래 살았다.

기억 하나. 초3 때인가 서프 라는 게임을 했다. 이때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아마 아파트였던 것 같다. 친구는 현질을 해서 캐시를 바르고 있었는데 그게 되게 편리하고 좋다고 느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까지 방문한 친구네 집들은 아파트긴 아파트만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었다. 중학교 이후로 브랜드 아파트를 갈 일이 생겼는데 여긴 뭔가 좀 다르구나 하는 걸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지 수도 많고, 대리석 기둥들도 있고, 약간 게이티드 커뮤니티 같은 성격이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던.

만났던 친구들은 모두 잘 살았다. 강동구의 좋은 아파트, 과천의 좋은 아파트, 구로 쪽에 중소기업. 유년기/청소년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계층화된 경험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주눅들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도 당연하게도 나보다 잘 사는 집안의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다 나랑 비슷한 형편인 친구를 보면 괜히 동질감이 느껴지고 마음이 갔다. 그래도 잘 사는 집안의 고학력 부모님 맡에서 어렸을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얘기를 많이 듣고 조금 시야가 유연해질 수 있었다. 계층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경험, 내 스스로 주눅 들거나 컴플렉스가 사라잡히지 않고 내 자존을 지키며 사람들을 사귈 수 있을지 앞으로의 과제 중 하나인 것 같다.

내 학자금 대출은 몇 십 만원 정도 남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생으로 나온 등록금을 다 지원받았고(한 학기에 300만원 초반대), 2학년부터 부분 장학금을 받아서 100만원 정도 냈던 것 같고, 3학년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다 대학원 와서 2학기 총 1000만원을 지원받았고, 계속 지원만 받을 순 없다는 생각에 학자금 대출 2학기를 받았다. 그러니까 총 1000만원. 조교 장학금과 알바로 열심히 갚아나간 결과 상환을 거의 다 할 수 있었다. 대학 4년 내내 기숙사 4인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고, 대학원도 집에서 통근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주거비에서 지출이 많이 안 나오니까 주객전도 식으로 알바를 미친듯이 하지 않아도, 친구들이랑 밥도 먹을 수 있었고 연애도 할 수 있었다.

막연하게 독립된 생활을 상상해볼 때가 있다. 월세와 공과금, 세금 이 있는 삶. 눈 뜨기 싫어도 새벽-아침에 일어나지는 삶. 어쩌면 집에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고, 영화를 같이 볼 수도 있는 삶. 수 천 권의 책들 중 고르고 골라 소박하지만 튼실한 미니멀한 서재를 꾸린 삶. 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너무나도 멀어 2년마다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좀 다르겠지만. 혹은 청년임대주택 등도 있으니까...) 이사해야 하는 삶이 좀 막막해지기도 한다. 내게도 마민지 감독처럼 졸업 이후 깜짝독립선물 같은 게 준비돼 있을까. 부모님은 어쨌든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노후를 대비하면서 가능하다면 자식들에게 보탬을 주시려 하는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도움이 돼 드릴 수 있을까.

아빠 혹은 엄마와 언제 한 번 여행을 가보고 싶은데 그런 날이 언제 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꼭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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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2disc)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다카하시 이세이 외 목소리 /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있음)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채널을 돌리다 지브리풍의 애니메이션을 발견하고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 몇 초 사이 이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며칠 전, 똑같은 과정을 거처 <고양이의 보은>을 거의 20년 만에 재관람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극장에 가서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였다. 인간세계에서 고양이 나라로 넘어가는 과정을 아치형의 풀숲을 기어 통과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마 <이웃집 토토로>나 다른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삽입돼 기억이 왜곡된 모양이었다. 처음 왓챠에 가입했을 때,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를 기록해보자는 심정으로 별점을 매겼는데 <고양이의 보은>은 2.5점이었다.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3점으로 수정했다. 빌런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자신감이 없었던 소녀가 고양이 남작과의 모험을 통해 '나다워지는' 과정이 조금 심심하고 평이한 동화처럼 그려졌다고 느꼈다. 매력적인 장점이 부족했던 영화로 느껴졌지만 재회가 반갑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후 <ANIONE> 채널에서 MZ 세대에게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연속해서 방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방영시간 말미에 발견한 것이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어 이 영화를 애정한다고 했던 친구에게 보냈고, 우리는 각자의 최애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꼽아보며 추억토크를 이어갔다. 부모님이 영화관에 데려다주신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친구들과 영화관을 자주 찾는 아이도 아니였던 내게 학교 선생님들은 지브리의 주요 작품들을 십대에 챙겨볼 수 있게 해주신 은인이었다.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를 학교에서 봤다(<가타카>, <말할 수 없는 비밀> 등등). 이십 대 초반에 지브리의 명작들을 몰아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과 어렸을 때 봤던 영화들을 재관람했다. 정말 좋았다. 나는 확실히 이쪽이었다. 디즈니, 픽사 쪽보다.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 불안과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음에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어지고, 잊고 지냈던 고마운 사람들-고마운 일들이 기억나고 그랬다. 성인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와 소설이 건네는 위로와 다른 결의 정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시간이 함께 전해지는 데서 오는 정서적 파장이 있었다.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와 재회해 어색하지 않게 편안한 시간을 잠시 잠깐이나마 보낸 느낌이랄까. 현실이라면 각자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많이 다르게 커버린 현재와 크고 작은 위화감과 어색함을 느꼈을 테지만 나는 달라졌어도 영화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시작한지 20 여분 지난 시점부터 시청을 시작했다. 골동품 가게에 도착해 바론 훔베르트 폰 지킹겐 백작을 만나는 장면 즈음부터(보자마자 <고양이의 보은>의 오마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의 보은>이 <귀를 기울이면>의 스핀오프 격이어서 흥미로웠다). 다행히 영화소개 글을 참고해 영화의 흐름을 수월하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영화는 첫사랑과 자아 형성을 동시에 겪는 사춘기 소녀의 설레는 감정에서부터 서로 감정이 어긋났을 때 마음이 무거워지고 뻐근해지는 경험까지, 진학이 아닌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부터 실제로 꿈에 부딪쳐보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는 경험까지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은 도서카드를 타고

아마 90년대 학번까지는 도서카드[독서카드?]에 대한 저마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1990년대부터 대학도서관들이 대출 기록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전산화하게 되면서 도서카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걸로 알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의 정점 중 하나로 도서카드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도서카드를 대체하는 디지털 디바이스나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서점에서 자신이 읽은 책에 '읽었어요'를 표시한 유저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이는 정말 '읽었다'(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하고)는 건조한 사실을 보여줄 뿐이며 '나'의 독서와 '그'의 독서 사이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없다. 저마다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독서경험을 담아내지 못하는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만이 남아 독서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도서카드는 다른 누군가가 '같은 책'을 읽었다/읽고 있다는 사실을 지시함으로써 독서경험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성격을 강화한다. 내가 현재 넘기고 있는 페이지에 그의 손길이 닿았음을 의식/상상하게 되고, 도서카드에 기록된 정보 - 날짜/이름/추가적 신상정보(대학도서관 도서카드의 경우 학번과 학과를 적는 란이 있다)는 구체적인 시공간에 존재하는, 익명이 아닌 고유명으로 지닌 독자의 정체를 그려보게끔 만든다. 내가 읽으려 하는 책에 연속적으로 같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나와 같은 책을 읽은 그의 감상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도서카드는 일종의 편지일 지도 모른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이름만 존재하는 편지. 발신자를 상상해낸 독자는 스스로를 수신자로 탄생시키고 책은 길고 긴 편지가 된다. 연결과 연대를 추동하는 장치로서의 도서카드.

소설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이 표상에 축적된 여성혐오적 시선을 고려하면 용어사용을 망설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서사를 좋아하는 여성독자가 작가가 되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이기에 긍정적으로 문학소녀란 용어를 전유하고자 한다) 시즈쿠는 매번 자신보다 앞서 읽은 세이지를 궁금해하게 된다(영화 후반부 약간의 반전이 밝혀진다). 그리고 동시에 첫사랑의 대상을 갖게 된다. 나보다 멋진 '이상적/환상적 존재'를 좋아하게 되는 짝사랑으로서 첫사랑, 첫사랑으로서 짝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의 씨앗을 품을 수 있는 토양으로 변한 시즈쿠의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을 시작하게 된다.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통칭되는 존재론적/실존적 물음이 봇물 터지듯 내면에서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영혼의 밀도가 달라지면서 시즈쿠는 우울해진다. 혹은 고민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이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조력자를 만나지 못해 힘들어한다.

컨트리 로드

이 길 따라 계속 걸어가면

우리 마을 보일 것 같아

저기 마을 컨트리 로드

나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보자 다짐했었지

너무 슬퍼도 울지는 말고

멋지게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컨트리 로드

이 길 따라 계속 걸어 나가면

우리 마을 보일 것 같아

저기 멀리 컨트리 로드

잠시 지쳐 쉬어갈 때면

어김없이 우리 마을 생각이 나

그럴 때면 저 언덕길 보고

정신 차려 다시 나아가야지

컨트리 로드

이 길 따라 계속 걸어 나가면

우리 마을 보일 것 같아

저기 멀리 컨트리 로드

아무리 힘들고 주저앉고 싶어도

눈물은 절대로 흘리지 않을래

다 떨쳐낼 시간이야 무거워진 내 마음도

날 붙잡는 추억들도

컨트리 로드

이 길 따라 우리 마을 갈 수 있대도

무턱대도 가진 않을래

저 먼 곳에 컨트리 로드

컨트리 로드

내일부터 다시 힘내보는 거야

그리운 맘 꾹 눌러 담고

잘 있거라

컨트리 로드

https://www.youtube.com/watch?v=Ps2mA-Poxm8&t=13s

시즈쿠는 절친 유코와 남사친을 이어주려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사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무심했던 건 자신이었다며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골동품 가게를 찾게 되고, 거기서 고양이 바론에 이어 세이지를 만나게 된다. 골동품 상점 아래층의 공간에서 자신이 번역한 가사의 <컨트리 로드>를 세이지와 함께 공연한 시즈쿠는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한다. 바이올린 장인이 되고 싶다는 확고한 꿈이 있는 세이지, 자신보다 한 걸음씩 앞서가는 세이지를 좋아하려면 그에게 어울리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코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자격이 필요한 것인지 반문하지만 난 시즈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꿈을 찾아 실현해가는 입장을 공유하여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파트너, 시즈쿠가 바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가 이런 방식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는 위로는 꿈을 찾아 분투하는 시즈쿠의 여정을 곁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고 도와주는 조력자들의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고입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시험성적이 곤두박질친 자녀를 다짜고짜 혼낸다거나 '지금이 아니라도 괜찮다' '나중에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회유를 가장해 강요하는 식이 아니라 시즈쿠의 선택이 가져올 어려움의 크기와 성격을 알려주고, 한 번 해보라고 지켜봐주시는 아버지(도서관 사서 아버지가 평소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노력하는 시즈쿠의 모습을 지켜봐왔기 때문에 이 비현실적인 캐릭터에 개연성이 부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즈쿠에게 첫 독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암석에 둘러싸인 원석처럼 시즈쿠의 재능을 유심하고 꼼꼼하게 관찰하고 응원해준 세이지의 할아버지, '나다운 나'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과 '더 나은 나'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고 '글을 잘 쓴다'고 상대방의 장점을 응원하고 격려해준 '남친' 세이지. 자신의 길을 찾아 걸어나가는 과정이 암중모색에 가까울 때가 많아 고되고 무엇보다 외로울 수 있는데 오히려 시즈쿠는 이 길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깊게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와 동료,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달 동안 '따로 또 같이' 행했던 도전의 경과와 소회를 나누고, 세이지는 시즈쿠에게 너를 좋아한다고,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고백한다. 시즈쿠는 승낙한다 !!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재벌 혹은 상층계급의 남성과의 결혼으로 끝나는 전통적인 한드의 신데렐라적 결말에 지극히 냉소적이던 나였는데 세이지와 시즈쿠의 청춘.설렘.순수한 사랑의 언약에 마음이 모찌처럼 말랑말랑해져 버렸다... 영화 말미에 세이지가 너를 태우고 언덕길을 오르고 싶다고 낑낑거리며 말하지만 시즈쿠는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자전거에서 내려 홀로 언덕길을 오르는 장면이 있다. '컨트리 로드'를 부르며 씩씩하고 명랑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시즈쿠가 아니었더라면 <귀를 기울이면>의 매력이 반감되었을 거라 예상될 정도로 시즈쿠의 에너지는 자신의 길이 맞는지 방황하며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또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의심하며 위축되어 있는 이들에게 진솔한 응원과 위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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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매거진 등 [RETRO] - 0호
등 편집부 / 알라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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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만든 웹 매거진 <등>을 읽었다. 레트로 특집으로 1990년대를 다뤘다고 하니 무슨 얘기가 나올지 대략 예상이 되면서도 들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14F[일사에프]의 1990년대 콘텐츠와 1990년대 (고전?)애니 리뷰를 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디깅하던 나였으니까. 1990년대에 태어났으니 사실 이 시기 자체에 대해서 일상적이고 사소한 기억 정도가 남아 있을 뿐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문화적 경험의 시간대는 아니었다. 자기형성의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은 2000년대에 촘촘하게 배치돼 있지만 1990년대란 기원적 배경에 호기심이 기울었다. 그땐 미처 몰랐으나 나중에 1990년대가 어떤 역사적 시간대였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배우고 나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 기억의 퍼즐들이 있었다.

곽재식 작가, 북스피어 대표님(마포김사장)을 제외하고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었다. 주로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섭외한 것 같은데 편집부의 기획력에 칭찬해주고 싶은 포인트. 세대적으로 보면 밀레니얼 키드와 199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분들로 나눠졌다. 내용적으로 보면 1990년대의 추억을 회상하는 에세이적 성격이 강한 글과 1990년대 대표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문화사적 비평의 성격이 있는 글로 구분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웹 매거진의 탄생이 반가웠다. 대형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웹진이 주로 요일별 연재를 그날그날 따라읽는 재미도 있지만 역시 완성된 '한 권'을 쭉 읽는 독서만이 가져다주는 맛이 있었다.

박형진의 <90년대 방>을 보고 내 방은, 우리 집은 어땠는지 떠올려 보게 된다. 7살 때 눈높이 혹은 구몬을 했었던 내 책상엔 전래동화 전집 같은 게 꽂혀 있었다. 그때 독서가 전혀 취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양' 쌓기의 목적으로 큰맘 먹고 책을 펼쳐 들었으나 재미 없어서 한 권을 겨우겨우 읽었던 것 같다. 이후 이사 가면서 책들은 버려졌고. 대신 TV와 VHS 비디오테이프를 열심히 봤다. 7ㅡ8살 때 학교 다녀와서 티비를 틀면 디지몬 어드벤처(KBS로 기억한다), 포켓몬스터(SBS로 기억한다)가 나오던 황금기였다(10-11살 정도엔 드래곤볼...).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을 다녔었는데 다행히 '만화영화'(애니메이션보다 이런 명칭이 익숙했던 시절) 방영시간과 겹치지 않았던 것 같다. 공테이프에 허준, 용의 눈물, 만화영화 등 온갖 것들을 저장했다. 정작 시간 맞춰서 녹화해놓고 그걸 틀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IPTV와 OTT 플랫폼 등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다시 보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방사수가 정말 중요했다(신문에서 TV 프로그램 방영표가 실리던 시절. 지금은 없겠지?). 부모님의 신혼여행 영상, 나와 동생의 어린이집 재롱장치 등 모두 플라스틱 케이스의 VHS 비디오에 담겨 있었다. 다양한 케이블 채널을 볼 수 있는 '스카이라이프'가 설치된 집들을 조금 부러워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맛벌이를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간단한 요리들을 해서 먹었다. <요리왕 비룡>의 영향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리를 재밌어 했던 것 같다. 그래 봤자 라면, 달걀 후라이 정도만 할 줄 알았지만. 그마저도 짜파게티의 뜨거운 물을 잘 따라내지 못해서, 한 번 삶은 면을 다리 위에 붓는 바람에 '뜨거운 거'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도 큰 편이다. 나는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하는데 일요일 아점으로 아빠가 끓인 푹 퍼진 라면을 조금 싫어했다. 500원 짜리 만한 떡갈비와 후랑크 소시지, 미니돈까스(이건 백원짜리 정도의 크기), 스위트콘에 마요네즈 를 비벼 자주 먹었다. 고기가 땡길 때 가장 간편하고 싸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인스턴트 식품이었다. 이는 나중에 세 근에 만원 짜리 질 낮은 돼지고기로 바뀌었다 - 이즈음 해서 무한리필 고깃집들도 많아졌던 것 같다(나는 이를 거의 즐기지 않았고, 질보다 양이 중요했던 아빠가 애용하셨다).

밖에서 허기를 채우는 곳은 단연 문방구였다. 100원짜리 '불량식품'의 세계가 정말 무궁무진했다. 아폴로, 페인트 사탕(맥주 맛이 참 맛있었는데...), 쫀드기(난로에 구워먹어야 제맛), 옥수수 과자 등도 맛있었지만 만두(고향만두 비주얼), 닭강정(치킨너겟 비주얼) 등 냉동식품도 조리해서 팔았다. 500원 어치 사먹으면 은근 배가 찼다. 동전 넣고 게임해서 코인을 따면 불량식품을 사먹기도 했다. 고학년이 되니 하교길에 문방구 앞에서 100원만 구걸하거나 삥 뜯는 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서 500원 짜리 병아리도 팔고, 토끼도 팔고 했던 시절... 그 시절 추억의 문방구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스코코아 였다. 문방구를 운영하시는 할아버지께서 숙지산의 약숫물을 받아오셔서 만들었던 아이스코코아가 정말 여름의 더위를 달래주는 최고의 간식이었다(일요일 아침이면 약수터에 물 받으러 온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슬러시도 좋았지만 코코아가 정말 맛있었다. 문방구 앞에서 미니카 경주, 딱지 치기 등을 하며 재밌게 놀았다 참.

1990년대 하면 자주 소환되는 경양식집과 패밀리 레스토랑에 대한 기억이 없어 이를 회상하는 추억담들을 보다 보면 살짝 허전해지기도 한다. 경양식집, 패밀리 레스토랑, 카페, '캔모아', 파르페 등 디저트와 분위기 있는 식당은 우리 가족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 거의 느끼지 못했지만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식문화 경험과 나 사이에 간극이 어느 정도 존재했다. 베스킨라빈스, 피자헛 뷔페(치킨윙이 그렇게 맛있었다고...)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부모님 혹은 친구들과 이곳을 자주 드나드는 이들과 나 사이 경계선을 어렴풋이 감지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위화감이랄까 상대적 박탈감을 돌출되거나 돌올하는 순간들이 드물었다. 그래서 '빌거'나 '휴거' 같은 혐오발언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충격이 좀 강했다. 1990년대 이후 점증적으로 심화된 불평등이 여기까지 와 있구나. 갑질과 가난 혐오라는 형태로.

아버지께서 우리 집안은 가난한 편이니까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는 의식을 주입해서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는 당위는 좀 강한 편이었지만(그 영향으로 '가성비'를 따지는 습성이 발달해서 거기서 좀 벗어나는 데 고충을 겪었다) 가난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수치스러웠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서민'층에 속해 있었던 것 같고(대학도 내가 전액장학금 받기 전까지 등록금, 기숙사비, 용돈 지원받은 걸 보면 사실 풍족하진 않았어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잘 산 것 같다...). 대신 욕심이나 욕망에 있어 타협하고 양보하고 포기하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긴 하다. 근데 또 그게 한 같은 걸로 남았으면 성인이 된 이후에 경제활동을 해서 결핍을 채우려고 했을 것 같은데 그런 축소화된 욕망에 적응한 건지, 별다른 타격이 없어 그랬는지 몰라도 ...

1년 넘게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사회와 역사과목을 가르쳤는데 Z 세대 아이들에게 가장 눈에 띠는 계층적 경험차이의 잣대는 해외여행이 아닌가 싶었다. 한 번 여행과 관련된 주제로 얘기를 꺼냈 적이 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학원이 번화가에 있는 대형학원이 아니었고 빌라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 위치한 허름한 곳이어서 아이들의 가정형편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 해외여행 경험이 아직 없는 친구도 있었는데 나 때문에 마음의 생채기가 나지 않았을지 미안했었다.

1990년대 후반에 우리 집은 큰고모네 와 함께 '공판장' 장사를 하고 있어 IMF의 여파에서 비껴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공판장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장사를 접기 전까지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다. 검은색 힙색 같은 주머니에서 현금다발을 꺼내 수입정산을 하는 저녁이 있던 시절. 주말에 자주 '페리카나 치킨'을 이용하는 바람에 내가 (아직까지) 유일하게 비만이었던 시절. 초등학생 버스요금이 아마 300원이었을 거다. 질소포장된 봉지과자는 500원. 그러니까 1000원만 있어도 꽤 여러 가지 조합의 군것질이 가능했다. 그때 김밥이 한 줄에 천원이었는데 김가네 김밥이 2500원인가 해서 굉장히 비싸다고 느껴졌다. 김가네 유부초밥 맛있었는데(딱 한 번 먹어본...).

음악도 무난무난하게 들었고, 책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고, 게임도 많이 안 했고, 만화도 잘 안본 터라 문화적 회고담으로 풀 만한 썰이 별로 없다 사실. 그나마 한다면 역시 애니메이션일 것 같다. 투니버스의 황금기를 함께 했던, 동생과 <다다다> 같은 애니를 N번씩 같이 봤던 시간들. 전에 (아마) '크리티칼'이란 문화비평 웹진에서 어느 분이 '디지몬'을 꽤 본격적으로 비평한 글을 읽고 반갑고 기뻤는데 나도 그런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사실 고등학생 때 참여했던 독서감상문말하기대회에서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에 대한 글 서두에 디지몬 얘기를 써먹은 적이 한 번 있긴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나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가서 본 적은 거의 없지만 TV는 열심히 봤던 나니까. 애증의 사물 TV 에 대한 애증 섞인 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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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지기 전에
박혜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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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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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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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편집부 레터에서 소식 접할 때부터 기대하고 있던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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