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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매거진 등 [RETRO] - 0호
등 편집부 / 알라딘 / 2021년 7월
평점 :
알라딘에서 만든 웹 매거진 <등>을 읽었다. 레트로 특집으로 1990년대를 다뤘다고 하니 무슨 얘기가 나올지 대략 예상이 되면서도 들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14F[일사에프]의 1990년대 콘텐츠와 1990년대 (고전?)애니 리뷰를 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디깅하던 나였으니까. 1990년대에 태어났으니 사실 이 시기 자체에 대해서 일상적이고 사소한 기억 정도가 남아 있을 뿐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문화적 경험의 시간대는 아니었다. 자기형성의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은 2000년대에 촘촘하게 배치돼 있지만 1990년대란 기원적 배경에 호기심이 기울었다. 그땐 미처 몰랐으나 나중에 1990년대가 어떤 역사적 시간대였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배우고 나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 기억의 퍼즐들이 있었다.
곽재식 작가, 북스피어 대표님(마포김사장)을 제외하고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었다. 주로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섭외한 것 같은데 편집부의 기획력에 칭찬해주고 싶은 포인트. 세대적으로 보면 밀레니얼 키드와 199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분들로 나눠졌다. 내용적으로 보면 1990년대의 추억을 회상하는 에세이적 성격이 강한 글과 1990년대 대표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문화사적 비평의 성격이 있는 글로 구분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웹 매거진의 탄생이 반가웠다. 대형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웹진이 주로 요일별 연재를 그날그날 따라읽는 재미도 있지만 역시 완성된 '한 권'을 쭉 읽는 독서만이 가져다주는 맛이 있었다.
박형진의 <90년대 방>을 보고 내 방은, 우리 집은 어땠는지 떠올려 보게 된다. 7살 때 눈높이 혹은 구몬을 했었던 내 책상엔 전래동화 전집 같은 게 꽂혀 있었다. 그때 독서가 전혀 취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양' 쌓기의 목적으로 큰맘 먹고 책을 펼쳐 들었으나 재미 없어서 한 권을 겨우겨우 읽었던 것 같다. 이후 이사 가면서 책들은 버려졌고. 대신 TV와 VHS 비디오테이프를 열심히 봤다. 7ㅡ8살 때 학교 다녀와서 티비를 틀면 디지몬 어드벤처(KBS로 기억한다), 포켓몬스터(SBS로 기억한다)가 나오던 황금기였다(10-11살 정도엔 드래곤볼...).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을 다녔었는데 다행히 '만화영화'(애니메이션보다 이런 명칭이 익숙했던 시절) 방영시간과 겹치지 않았던 것 같다. 공테이프에 허준, 용의 눈물, 만화영화 등 온갖 것들을 저장했다. 정작 시간 맞춰서 녹화해놓고 그걸 틀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IPTV와 OTT 플랫폼 등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다시 보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방사수가 정말 중요했다(신문에서 TV 프로그램 방영표가 실리던 시절. 지금은 없겠지?). 부모님의 신혼여행 영상, 나와 동생의 어린이집 재롱장치 등 모두 플라스틱 케이스의 VHS 비디오에 담겨 있었다. 다양한 케이블 채널을 볼 수 있는 '스카이라이프'가 설치된 집들을 조금 부러워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맛벌이를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간단한 요리들을 해서 먹었다. <요리왕 비룡>의 영향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리를 재밌어 했던 것 같다. 그래 봤자 라면, 달걀 후라이 정도만 할 줄 알았지만. 그마저도 짜파게티의 뜨거운 물을 잘 따라내지 못해서, 한 번 삶은 면을 다리 위에 붓는 바람에 '뜨거운 거'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도 큰 편이다. 나는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하는데 일요일 아점으로 아빠가 끓인 푹 퍼진 라면을 조금 싫어했다. 500원 짜리 만한 떡갈비와 후랑크 소시지, 미니돈까스(이건 백원짜리 정도의 크기), 스위트콘에 마요네즈 를 비벼 자주 먹었다. 고기가 땡길 때 가장 간편하고 싸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인스턴트 식품이었다. 이는 나중에 세 근에 만원 짜리 질 낮은 돼지고기로 바뀌었다 - 이즈음 해서 무한리필 고깃집들도 많아졌던 것 같다(나는 이를 거의 즐기지 않았고, 질보다 양이 중요했던 아빠가 애용하셨다).
밖에서 허기를 채우는 곳은 단연 문방구였다. 100원짜리 '불량식품'의 세계가 정말 무궁무진했다. 아폴로, 페인트 사탕(맥주 맛이 참 맛있었는데...), 쫀드기(난로에 구워먹어야 제맛), 옥수수 과자 등도 맛있었지만 만두(고향만두 비주얼), 닭강정(치킨너겟 비주얼) 등 냉동식품도 조리해서 팔았다. 500원 어치 사먹으면 은근 배가 찼다. 동전 넣고 게임해서 코인을 따면 불량식품을 사먹기도 했다. 고학년이 되니 하교길에 문방구 앞에서 100원만 구걸하거나 삥 뜯는 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서 500원 짜리 병아리도 팔고, 토끼도 팔고 했던 시절... 그 시절 추억의 문방구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스코코아 였다. 문방구를 운영하시는 할아버지께서 숙지산의 약숫물을 받아오셔서 만들었던 아이스코코아가 정말 여름의 더위를 달래주는 최고의 간식이었다(일요일 아침이면 약수터에 물 받으러 온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슬러시도 좋았지만 코코아가 정말 맛있었다. 문방구 앞에서 미니카 경주, 딱지 치기 등을 하며 재밌게 놀았다 참.
1990년대 하면 자주 소환되는 경양식집과 패밀리 레스토랑에 대한 기억이 없어 이를 회상하는 추억담들을 보다 보면 살짝 허전해지기도 한다. 경양식집, 패밀리 레스토랑, 카페, '캔모아', 파르페 등 디저트와 분위기 있는 식당은 우리 가족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 거의 느끼지 못했지만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식문화 경험과 나 사이에 간극이 어느 정도 존재했다. 베스킨라빈스, 피자헛 뷔페(치킨윙이 그렇게 맛있었다고...)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부모님 혹은 친구들과 이곳을 자주 드나드는 이들과 나 사이 경계선을 어렴풋이 감지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위화감이랄까 상대적 박탈감을 돌출되거나 돌올하는 순간들이 드물었다. 그래서 '빌거'나 '휴거' 같은 혐오발언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충격이 좀 강했다. 1990년대 이후 점증적으로 심화된 불평등이 여기까지 와 있구나. 갑질과 가난 혐오라는 형태로.
아버지께서 우리 집안은 가난한 편이니까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는 의식을 주입해서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는 당위는 좀 강한 편이었지만(그 영향으로 '가성비'를 따지는 습성이 발달해서 거기서 좀 벗어나는 데 고충을 겪었다) 가난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수치스러웠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서민'층에 속해 있었던 것 같고(대학도 내가 전액장학금 받기 전까지 등록금, 기숙사비, 용돈 지원받은 걸 보면 사실 풍족하진 않았어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잘 산 것 같다...). 대신 욕심이나 욕망에 있어 타협하고 양보하고 포기하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긴 하다. 근데 또 그게 한 같은 걸로 남았으면 성인이 된 이후에 경제활동을 해서 결핍을 채우려고 했을 것 같은데 그런 축소화된 욕망에 적응한 건지, 별다른 타격이 없어 그랬는지 몰라도 ...
1년 넘게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사회와 역사과목을 가르쳤는데 Z 세대 아이들에게 가장 눈에 띠는 계층적 경험차이의 잣대는 해외여행이 아닌가 싶었다. 한 번 여행과 관련된 주제로 얘기를 꺼냈 적이 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학원이 번화가에 있는 대형학원이 아니었고 빌라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 위치한 허름한 곳이어서 아이들의 가정형편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 해외여행 경험이 아직 없는 친구도 있었는데 나 때문에 마음의 생채기가 나지 않았을지 미안했었다.
1990년대 후반에 우리 집은 큰고모네 와 함께 '공판장' 장사를 하고 있어 IMF의 여파에서 비껴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공판장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장사를 접기 전까지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다. 검은색 힙색 같은 주머니에서 현금다발을 꺼내 수입정산을 하는 저녁이 있던 시절. 주말에 자주 '페리카나 치킨'을 이용하는 바람에 내가 (아직까지) 유일하게 비만이었던 시절. 초등학생 버스요금이 아마 300원이었을 거다. 질소포장된 봉지과자는 500원. 그러니까 1000원만 있어도 꽤 여러 가지 조합의 군것질이 가능했다. 그때 김밥이 한 줄에 천원이었는데 김가네 김밥이 2500원인가 해서 굉장히 비싸다고 느껴졌다. 김가네 유부초밥 맛있었는데(딱 한 번 먹어본...).
음악도 무난무난하게 들었고, 책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고, 게임도 많이 안 했고, 만화도 잘 안본 터라 문화적 회고담으로 풀 만한 썰이 별로 없다 사실. 그나마 한다면 역시 애니메이션일 것 같다. 투니버스의 황금기를 함께 했던, 동생과 <다다다> 같은 애니를 N번씩 같이 봤던 시간들. 전에 (아마) '크리티칼'이란 문화비평 웹진에서 어느 분이 '디지몬'을 꽤 본격적으로 비평한 글을 읽고 반갑고 기뻤는데 나도 그런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사실 고등학생 때 참여했던 독서감상문말하기대회에서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에 대한 글 서두에 디지몬 얘기를 써먹은 적이 한 번 있긴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나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가서 본 적은 거의 없지만 TV는 열심히 봤던 나니까. 애증의 사물 TV 에 대한 애증 섞인 글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