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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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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고민하다 리뷰를 쓸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나도 신중한 사람인 걸까? 섬세함과는 별개의 신중하기만 한, 신중함의 자의식이 빚어내는 무게에 짓눌려 아둔하게 움직이고, 신중함의 무의식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자기진단을 다 해놓고 확실한 대안을 찾지 못해 현상을 유지하는, 그런 사람. 


 신중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자신감의 부족과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했을 때에 예감하게 되는 불편함에 대한 불안이 신중함의 핵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신중한 사람은 현재에 신중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도래할 가까운 미래를 걱정하고, 그 미래에 대한 치열한 염려와 계산으로 인해 현재의 자신을 소외시킨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가. 그는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지금'을 놓친 사람이라고. 가능태에 온갖 심혈을 기울인 바람에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어 불가능한 밀도를 앓는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이 소설은 신중한 사람들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계몽소설인가? 이것은 이 소설을 읽는 가장 나쁜 독법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하지 않은 일>을 읽으며 신중함의 부재가 일으킬 수 있는 재앙을 아프게 느낀다. 신형철 평론가는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이 폭력이 아니라는 생각보다 이것이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우리는 예기치 못한 기습에 더 큰 아픔을 호소한다. 무심한 얼굴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의 모서리에 배여 간결하게 흐르는 피. 무심히 고통을 견디는 편이 가장 고통스럽지 않은 고통이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신중한 사람은 이런 고통조차 피하려 들까? 고통에 대한 키치적 태도, 고통과의 인위적 거리두기가 삶은 곧 고통의 연속이라 하는 존재론적 현실을 외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존재와 고통 사이의 거리가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신중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매우 조심스러움'. 조심스러움은 위험이란 부정을 전제한다. 섬세한 사람은 신중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신중한 사람이 섬세한 건 아니다. 신중함은 오히려 섬세하게 불안의 원인은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취하게 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신중한 사람은 어떤 기미를 포착해 위험/고통을 피해갈 수 있을진 몰라도 정답을 골라내진 못한다. 더 나쁜 것을 피할 순 있을지언정 더 좋은 것을 선택하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판단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사물을 대하는 태도, 마음의 운동방향의 문제이다. 낙관주의자에게 신중함은 자신의 감각으로 감지해내지 못하는 위험을 포착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긍정하거나 선택(행동)하지 않고 회의하고 부정하기만 하는 신중함은 결국 재귀를 통해 자기를 복제하게 되고, 이 폐쇄적 닫힌계는 결국 퇴화적 보수가 되면서 구더기 무서워 평생 동안 장 못 담그는 비극적 코미디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소한 고통, 실패가 아닌 <하지 않은 일>에서처럼 '돌이킬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망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은 도망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관점의 전환을 통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지혜의 잠언 같지만 실은 이 초월에는 굉장히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만약 삶을 지탱할 수 없는 만큼의 절망적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에서 그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건 고통이 아닌 자살일 지도 모른다. 도저히 초월/해탈할 수 없는-즐길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도망칠 수 없다는, 그래서 너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즐기라'는 명령을 하는 건 굉장한 폭력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보통 어떤 상황에서 누가 했는지 회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내게 이 말을 많이 했던 건 고등학교 선생님들이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정언적 텔로스로부터 벗어난) '도망'으로 만들어 열패감, 죄의식의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그렇게 그 어떤 부조리도 '현실'이란 생뚱 맞은 개념으로 고정시켜버림으로써 다른 가능성을 사유하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진창에서 구르면서도 웃을 수 있는 해탈정신은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이 해탈의 전제조건인 고통/폭력이 구조적으로 상재하는 상태에서 해탈을 강요하는 건 구조적 부조리를 은페하면서 고통을 강요하는 야만적 폭력일 것이다. 힘이 없는 학생들은 해탈도 풍자도 아닌 자살을 선택한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05/2014090501264.html) 


 <하지 않은 일>을 읽으면서 답답하고 많이 아팠다. 잊고 있었던 타블로 사건. 최근에 독서모임을 위해 다시 읽는 '소송'과 연결되면서 소송적 사건의 짙은 그림자가 나를 드리웠다. 존재론적 고독과 존재론적 소외.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피고. 여기에는 이미 '행위'가 잠재적으로 기입되어 있다. 행위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았다면 행위의 부재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잘못된 의심/믿음이 대중의 광기란 조잡한 접착제에 의해 확신으로 굳어졌을 때 한 개인의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한순간에 '변신'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초고화질 동영상을 찍어 몇 초만에 전 세계로 공유시킬 수 있는 과잉연결 미디어 시대에 '신중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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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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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0. 들어가며 


 최근 yes24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외국작가 투표를 했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위를 차지했다. 자국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많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 이유가 묻자 이 대머리 아저씨는 '한국인의 미래지향성'을 치켜 세웠다. 은혜로운 찬사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개미라는 소설의 탁월함이란 내재적 요인을 제외하고 외재적 요인으로 꼽는 것이 87년 민주화가 이뤄지고, 거대담론, 대문자 정치/사회를 다루는 '무거운' 소설들이 퇴조했는데, 이후 90년대 인기를 끈 외국작품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고 한다(쿤데라를 검색하던 도중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많이 담긴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가 쿤데라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때 우선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1990년대라는 정치 사회적·문화적 변환기(주지하다시피 국외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국내적으로는 정치 투쟁의 장이 소멸되어 갔던)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한국의 문학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였다는 점이다. 즉,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이 두 작가는 당시 문학인들에게 참여 문학(민중·민족 문학)과 깨끗이 결별할 수 있는 훌륭한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하겠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7573 프레시안. 작성자 : 조영일 문학평론가.


그리고 과학소설, 그러니까 말하자면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 작품 <개미>가 한반도 남쪽을 강타했다.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플롯과 추리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 흡입력이 뛰어나고, 백과사전식 지식을 겸비하고 있어 소소하게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이후 발표한 작품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오늘날까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베르베르(한 기사에서 열린책들 사옥을 베르베르 덕분에 지을 수 있었다고 할 정도니 말 다 했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미 이후로 창조의 샘이 말랐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나무까지 좋았다, 그래도 파피용까지는 괜찮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베르베르의 신간을 사 모은 덕분에 15권 가량 컬렉션을 갖추고 있으면서 공급이 너무 많아 중고책방에 팔지도 못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읽을 땐 재밌지만 막상 다 읽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중학교 정도에 베르베르를 만나고, 고등학교 땐 실존주의에 빠졌어야 했는데... 이런 표현이 적당할 지 모르겠으나 배부른 푸념이다. 

 

1. 밀란 쿤데라, 그의 리스트와 그가 사랑한 리스트


 밀란 쿤데라. 한국인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짐작이 되지 않지만 한때 작가들 사이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는 게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고(빨간책방에 따르면 김중혁 소설가는 군대에서 이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군대에서 읽었으면 더 쫄깃했을 것 같은 '연애'소설 ^^), 최근 밀란 쿤데라 전집(잠깐 자랑을 하면 이번 민음사 패밀리 세일을 통해 밀란 쿤데라 전집을 장만했다~ 오픈한 지 3시간 정도밖에 안 지난 상태에서 생은 다른 곳에와 소설의 기술이 동나는 바람에 구멍이 조금 뚫려 있긴 하지만 ㅜ)이 출간된 것까지 보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작가, 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바로 그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가도 이 절묘한 제목이 아까웠는지 다른 작품 <불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지금 자네가 쓰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

 "소설 속의 소설이요, 내가 써 본 것 중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가 될 거야. 자네 역시 그 이야기를 읽고 슬퍼할 걸세."

 "그 소설의 제목은 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 그 제목은 이미 써먹지 않았는가."

 "그래, 써먹었지! 하지만 그때 난 제목을 잘못 달았어. 그 제목은 지금 쓰는 소설에 붙여야 했어." 


 이 구절이 말해주는 시사하는 바는 쿤데라의 소설작업이 일정한 문제의식 아래 꾸준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쓴 작품의 제목들을 열거해보면 좀 더 이런 경향이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느림, 농담, 우스운 사랑들, 이별의 왈츠, 정체성, 향수, (소설의 기술), (배신당한 유언들), (커튼), (만남), 무의미의 축제까지. 이 제목들이 밀란 쿤데라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철학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 <생은 다른 곳에>, 연애소설의 냄새가 풍기는 <이별의 왈츠>, <우스운 사랑들>, 정치소설의 냄새를 희미하게 짐작해볼 수 있는 <정체성>, <향수>까지. 

 그리고 우리는 이 체코 출신의 프랑스어권 작가의 개인적 소설사에 대해 아주 상세히 꿰뚫고 있다. 프랑수와 라블레, 세르반테스, 스턴, 레프 톨스토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 만, 하세크,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블로흐, 로베르트 무질, 사무엘 베케트, 비톨트 곰브로비치... 계획 - 체계 - 소설사 3無 독서를 해온 나에겐 꽤 큰 충격이었다. 불멸의 고전부터 현대의 고전, 동시대의 뛰어난 작품들까지... 좋은 작품들을 너무 많고, 읽을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책의 명성을 뒤쫓다 보면 꽁무니만 따라다니다 지칠 수밖에 없다. 쾌락형 독서를 지향하거나 넓이를 추구하는 독서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크게 상관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심각할 수 있는 문제였다. 나만의 소설사 만들기. 이는 자기문제 의식에 천착하지 않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사람은 해내기 힘든 과제이다. 위의 기사에서 조영일 문학평론가가 역설하는 리스트의 중요성도 이와 맥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리스트가 어떻게 구축될 지 잘 모르겠지만 밀란 쿤데라는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2. 쿤데라와 나. 


 밀란 쿤데라 에피소드 1 : 친구의 소개로 참석하게 된 모임에서 매력적인 여성과 귀갓길을 동행한 일이 있다. 지하철 역에서 방향이 달라 헤어지기 직전의 나눈 대화이다.(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상상의 힘을 빌려 재구성한 대화임을 밝혀둔다)


나 :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던지는 질문이 있어요.

여인 : 뭔데요?

나 :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여인 :  왜 그 질문을 하는데요?

나 : 무슨 작가/작품을 좋아하는지 알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잖아요. 

여인 : 그래서 ~~씨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데요?

나 : 사실 이 질문을 생각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는데 답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꼽자면 카프카, 카뮈, 밀란 쿤데라 정도. 

여인 : 한국 작가 중엔 없어요?

나 : 소설은 박민규(이 시점에서 아직 김연수를 다 안 읽은 걸로 기억), 시는 황지우, 김경주 좋아해요. 

여인 : 이 작가들을 좋아하는 ~~씨는 어떤 사람이죠?

나 :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문학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 문학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마지막은 라깡이 한 말 베꼈어요. 혹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어보셨어요? 

여인 : 아뇨. 

나 : 거기서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구절 중에 하나가 있는데 뭔지 아세요? 아, 안 읽어보셨다고 했지.

여인 : 얘기해줘요.

나 : 남자 주인공 집에 여자 주인공이 처음 가는데 거기서 책장에 수많은 책들이 꽂힌 걸 보고 이 남자는 믿어도 되겠다 생각하는 장면이 나와요. 책을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안심한 거죠.

여인 : 책 소장량과 책에 대한 사랑이 비례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 : 음... 비례할 확률이 높다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인 : 그쵸. 확률적으로. 

나 : 책을 사랑하고 마음에는 한 번뿐인 삶에서 한 번밖에 살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여인 : 한 번밖에 살지는 않겠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나 : 사르트르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선택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잖아요. 뭔가를 선택하는 동시에 다른 뭔가를 선택하지 않죠. 한 권의 책을 읽기로 선택하는 순간 그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그 한 권을 제외한 모든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죠.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거죠.

여인 : 하지만 전 남자친구를 사랑하면서 부모님을 동시에 사랑하는 데요.

나 : 정말이요? 

여인 : 네, 그럼요. 

나 :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잘 생각해보면 실제로 사랑의 느낌은 한 곳에서 올 것 같은데요. 

여인 : 듣고 보니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나 : 마음의 방이 두개인 사람도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진 못할 거예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 

여인 : 그 시간이 눈 깜짝할 새라면 동시에 사랑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나 : 뭐, 어쨌든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연습한다는 거예요. 실전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남의 인생을 계속 훔쳐보려는 거죠. 

여인 : 오늘 얘기 즐거웠어요. 

나 : 저도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에피소드 2 : 밀란 쿤데라 혹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한 마디들. 

남자 1 : 나는 요즘 소설은 잘 안 읽게 되더라고. 읽을 땐 재밌는데 별로 남는 게 없는 느낌이랄까. 

남자 2 :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는 읽을 만해. 문체가 철학적이야. 

남자 3 :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잘난 척하기 좋은 책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잖아. 


나 : 혹시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봤어?

친구 : nope! 허나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 다 읽은 것 같은 기분. 


에피소드 3 : 애정하는 지인과의 대화(역시 재구성) 


지인 : 저는 연애는 별로인 것 같아요? 

나 : 아니, 왜요???

지인 : 연애하면 좋긴 좋은데,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서 허무해요. 

나 : 그럼 사랑은요? 

지인 : 사랑은 연애랑 좀 다른 것 같아요. 

나 : 어떻게 다른데요? 

지인 : 사랑은... 음...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힘든데 느낌상으로 상대방을 위하고 희생하는 측면이 강한 것 같아요. 

나 : 사랑은 이타적이고, 연애는 이기적이고 이런 건가? 

지인 : 꼭 그렇다고 볼 순 없는데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엔 사랑은 그냥 호르몬 작용 아닌가? 이런 생각도 많이 들고. 

나 : 저도 스무 살 즈음에 그런 생각에 빠져서 허무주의 같은 거에 엄청 시달렸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지인 : 왜요? 

나 : 음... 말로 설명하긴 힘드니까 나중에 거기에 대해 글쓴 거 보내드릴게요. 아 그리고 연애 말인데. 연애가 밥 먹고, 영화 보고, 여관 가고 틀에 박혀서 관습화되면 소모적인 측면이 있긴 한데 그 가벼움 안에서도 진실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의미의 '즐김'으로 연애를 본다면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인 : 연애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전 그냥 지금은 별로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요. 

나 : 그러면 한 번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어보세요. 그 작품이 사랑에 있어 가벼움과 무거움의 문제에 천착한 소설인데...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지인 : 이름은 들어보긴 했는데. 

나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의 하나기도 하고요. 


3. 축제의 서막 : 대문자 정치와 오줌. 


 무의미의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칼리닌그라드의 칼리닌과 요제프 스탈린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 명만 꼽자면 칼리닌이었는데, 그 이유는 차이콥스키, 톨스토이, 푸시킨 등 쟁쟁한 러시아를 빛낸 위인들을 제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갖게 된 기구한 운명 때문이었다.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와 달리 아직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겉보기에 이런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속좁은 방광, 불협화음을 내는 전립선의 U(rine) 코드가 감성을 웃음과 연민을 자아냈다. 비슷한 체험을 한 경험이 있는데 바로 김영하 작가가 극찬한 바르가스 요사의 정치소설 <염소의 축제>에서 나신의 소녀 혹은 여인을 앞에 두고, 도미니카를 지배하고도 자신의 방광/전립선만큼은 지배하지 못한 독재자 트루히요가 떠올랐다. 독재자와 오줌보. 기형도 시인이 '질투는 나의 힘'이라 말했던 것처럼 정치적 지도자에 오른 사람 중에 심한 결핍/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무의미의 축제'를 통해 오줌형 캐릭터의 체계를 정립할 수 있게 됐다. 칼리닌이 아닌 스탈린이 그랬다면 더 의미?가 있었겠지만 대문자 정치의 서사에서 오줌이 등장함으로써 역사/정치적 배경이 소설의 무대에 매끄럽게 안착할 수 있었으리라. 보잘것없는 것 - 핍진성의 사물 - 사랑의 소재 - 소설의 질료.


4. 무의미의 축제 : 배꼽의 시대의 개막 


 알랭은 배꼽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배꼽은 참 묘하다. 신체 기관이 대부분 바깥으로 돌출돼 있는데 배꼽은 참호를 파고 숨은 군인처럼 배 안 쪽에 웅크리고 있다. 완만한 배의 곡선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벙커bunker. 긁으면 때가 나오는  기분이 묘해지는 부위. 섬세하게 쓰다듬으면 또 다른 묘함을 느끼게 하는 부위. 항문과 성기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항문 다음으로, 경우에 따라선 항문보다 더 보기 귀한 신체 부위. 숨어 있는, 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탄생의 징표, 원초적 상처의 흔적, 에로티시즘의 처녀지. 쿤데라는 알랭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허벅지, 가슴, 엉덩이는 여자들마다 다 형태가 달라. 그러니까 이 황금 지점 세 개는 단지 흥분만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고, 그와 동시에 한 여자의 개체성을 나타내 준다고. 사랑하는 여자의 엉덩이를 못 맞힐 수는 없잖아. 수없이 많은 엉덩이 중에서도 자기가 사랑한 엉덩이는 알아볼 것 같아. 그렇지만 배꼽을 가지고 이 여자가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 배꼽은 다 똑같거든.(p13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천 만 분의 1의 차이를 탐색하고자 수없이 여자들과 몸을 섞었던 토마시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한 글에서 철학자 양운덕은 토마시를 '차이의 철학자'라고 설명했다. 차이가 사라진다면, 차이가 부정되면 대체불가능이란 사랑의 근본적 속성도 부정된다. 한동안 재밌게 봤던 <마녀사냥>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성이 보낸 사연이었는데 자신이 외국으로 6개월 정도 체류하고 있는 동안 한국에 남아 있는 남자가 바람을 폈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남자가 자신과 똑 닮은 여성을 사귀었고, 그것 때문에 남자에 대한 분노/배신감이 많이 중화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은 남자가 자신이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자신과 똑 닮은 '아바타'를 통해 자신에 대한 외로움을 달랬으리라 추측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고방식의 기저에는 외모를 자신의 본질적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술복제시대를 넘어 가히 외모복제시대에 진입했고, 점점 더 진입하고 있는 시점에서 외모의 아우라... 지켜지길 바라지만 미래전망이 어두워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만한 것은 여성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의 인격, 내면보다 외모를 중시하고 사랑했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그걸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용인하고 있는 여성의 태도가 내겐 조금 문제적이다. 대체가능과 대체불가능의 영역이 모호하게 섞여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작동하는가, 그리고 완성되는가. 

 알랭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이 네 가지 황금 지점은 각각 하나의 에로틱한 메시지를 나타내. 그러면 배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에로틱한 메시지는 뭘까?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한 가지는 분명해. 허벅지나 엉덩이, 가슴하고는 다르게 배꼽은 그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그 여자가 아닌 어떤 것에 대해 말한다는 거야."

"뭐에 대해서?"

"태아."

"태아라, 그렇지." 라몽이 인정했다. 

 그리고 알랭이 말했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p138~139)

 

   이쯤 되면 우리는 소설 뒤표지에 적힌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에서 오지 않는다. 보잘것없는 것, 그것을 향해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사각에 핀 꽃, 그러니까 사랑은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는 문학에 평생을 걸어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아마 몇몇 작품들은 불멸의 고전의 지위를 누릴 테지만 그가 죽으면 그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의 모든 빛들은 죽음의 가정 앞에 빛이 바래고 만다. 하지만 죽음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삶 다음에 죽음이 있고, 삶과 죽음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고, 삶과 죽음이 서로 대립되지 않는 한 쌍이라는 것을, 이 모순을 받아들인다면 삶/죽음은 의미/무의미의 틀에 갇히지 않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서로 떨어져야 했던 알랭과 어머니의 화해처럼. 생은 다른 곳에서 와서 다른 곳으로 가지만 생이 있는 곳은 오직 지금 여기 내 앞이다. 아니 지금 여기의 나 (0,0,0,0)자체에 있다. 다른 곳으로 떠나는 생에게 '잘 놀다 갔다'고 천진한 웃음의 작별인사를 건넸던 천상병 시인처럼 삶/죽음과 화해한 이는 무의미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함께 읽어보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5. 축제가 끝나고 난 뒤 : 배꼽에게 


 배꼽과의 눈맞춤. 최근의 일이다. 지하철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책을 읽고 있던 내 앞에서 한 여인이 옷매무새를 정리하려는 듯 상체를 뒤로 젖혔고 불현듯 배꼽과 눈이 마주쳤다. 여인은 부끄러운 듯 성급하게 배꼽을 가렸고, 나와 배꼽의 해후는 순식간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배꼽은 참 여성적인 신체기관이란 생각이 든다. 바깥으로 공격적으로 돌출되어 있지 않고 안으로 둥글게 무언가를 품고 있는 듯한 배꼽. 사전을 찾아보니 배꼽에 이런 뜻도 있었다. 열매의 꽃받침이 붙었던 자리. 배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배꼽은 어머니-자궁이란 태초의 세계와의 이별/부재를 현시하면서 무엇보다 삶에 대해 말한다. 그러니까 배꼽은 심보선 시인이 '인중을 긁적거리며'에서 그렸던 인중처럼 카오스에서 존재를 출현하게 하는 최초의 사랑의 입맞춤의 자국일 지도 모른다. 그저 있음(Il y a). 배꼽을 보며 존재자 이전의 존재의 세계를 상상해본다. 존재자 없는 존재, 어쩌면 존재 없는 존재. 진화의 단계상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기관화된 신체의 성장을 거치지 않고 태초의 박테리아, 무성생식, 자신을 둘로 나누기 위해, 찢어버리기 위해, 자신을 죽임으로써 더 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때로 돌아가본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 빅뱅... 혹은 빅뱅 이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그녀의 배꼽에 살포시 손가락을 올려놓아보고 싶다. 그렇게 배꼽과 배꼽이 맞닿을 수 없다는 근원적 한계/그리움을 달래보고 싶다.


  



p.s 2002년 즈음 배꼽티가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 12년 만에 배꼽의 시대가 돌아왔다. 배꼽의 특성상 이 시대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꼽이여 거기 오래 남아 있거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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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4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ndevous 2014-09-04 16:15   좋아요 0 | URL
글씨색 바꿨습니다 ~ 알라딘은 다 좋은데 배경이 지 맘대로 바뀌어서 ㅜ

CREBBP 2014-09-0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배송오던 날 휘리릭 읽었는데... 리뷰 쓰려면 다시 읽어야겠어요.
150쪽에 공백 다 제거하고 나면 한 80쪽 정도 되는데, 가격과 글자의 양과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라는 생각이 치켜 올라왔었다는

rendevous 2014-09-05 17:10   좋아요 0 | URL
제가 그래서 무의미의축제 신청 안한 거였어요... 요즘 대형출판사들이 두꺼운 책 잘 안 읽으니까 경장본에 좀 비싸게 파는 출판경향이 있더라고요 인문서가에 꽂힌작가들 문학동네 시리즈도 그렇고 닥터슬립 감정수업 중에 됐어야했는데 신간평가단 분들이 밀란쿤데라 이름만보고 그냥 신청한듯...

봄밤 2014-09-14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스크롤 내리면서 다 읽었어요. 흰색 바탕에 흰색 글자라니!
하지만 고생, 충분히 값져요.

rendevous 2014-09-15 13:41   좋아요 0 | URL
이 스킨이 지맘대로 바뀌네요 ㅜㅜ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2014-09-2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ndevous 2014-09-21 22:37   좋아요 0 | URL
저번에 스킨이 검은 색으로 자동으로 바뀌었는데 제가 바꾸는 법을 몰라서요 ㅜㅜ 읽는 입장에선 불편하긴 할 것 같은데 뭔가 한 겹의 비밀외투를 두르고 있는 느낌이 연출되는 것 같기도 해서 오묘하네요 ^^ 쿤데라 전집 읽기 도전하다가 멈춘 상태인데 아껴서 읽으려고요 ㅎㅎ 어떻게 보면 한없이 가벼워보이는데(작가란 무엇인가 쿤데라 인터뷰 부분을 보니 이 가벼움이 그의 소설론에 의해 철저히 의도된 결과물이란 걸 보고 예전에 휘리릭 넘겼던 걸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ㅎㅎ)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생각할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ㅎㅎ
 
제주 캠핑 여행 - 아이와 함께 떠나는 새로운 제주 여행법
이지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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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경쟁심.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에 나오는 표현이다.

시위 한 번 나가보지 않은 내가 민주화 운동으로 국가 유공자증까지 받은(동생 황광우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황지우 시인의 발 끝에도 못 미칠 테지만 내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는 데 이만한 표현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아니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좋은 사람이 도덕 교과서에서 말하는 선한 사람인지, 타인에게 이로운 사람인지 불분명했으나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타인에게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군요.' '~는 참 사람이 좋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 이런 말을 듣고도 표정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적정 수준의 수줍음을 느끼고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좋은 사람보다 '좋음' 그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 좋음의 화신. 

  

 돌아보니 나는 생각보다 윤리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의식이 강한 만큼 잘 지키진 못한다. 이 윤리 의식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아버지'에 가까운데 내 경우 아버지가 정말 산처럼 커다랬던 것이다. 그렇다고 칸트 같은 도덕주의자는 아닌데 무엇이 윤리적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회의적 윤리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행동은 존재sein가 아닌 당위sollen의 목소리에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충동에 충실하고, 자유롭게 사고/행동하는 예술가형 인간에 대해서도 예술가의 그 '좋음'- 칸트가 천재라고 말한 인간 유형으로서의 장점에 매료되어 예술가를 닮고자 했다. 하고 싶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면에서 '하고 싶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해야 한다에 파묻힌 삶. <삶이라는 직업>. '아버지'를 죽이라는 데 정말 죽여도 되는 걸까? 그게 옳은 걸까? 망설이다가 은근슬쩍, 어물쩍 넘어가버린 모양새. 좋음과 옳음의 세계. 이 감옥으로부터 나를 구출해내는 것이 내 과제였다. 


 제주 캠핑 여행에 대해 리뷰를 쓰는 데 왠 뜬금없는 자기고백이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주. 바로 이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뽑힌 남쪽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제주에 딱 한 번 가본 적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솔직히 말하면 거기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풍경을 보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숙소에서 잠들기 전 진실게임 비슷한 사춘기 소년들의 고백 시간에 흥을 돋구기 위해 평소 나답지 않은 소설을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써냈다는 것, 희미하게 기억나는 건 20대 후반의 아름다운 외모의 음악을 가르치셨던 담임 선생님이 두 남학생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내게서 멀어지는 모습-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했던 레파토리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애증이 있던 관계여서 그랬는지 그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은 그때 당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학생을 멀리서 바라보는 내 모습. 황병승 시인이 선언의 천재라면 난 관조의 수재 정도는 됐을 것이다.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사춘기 소년의 감정구조라는 게 어떤 성절의 것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사춘기 소년에게 관조란 불가능한 능력에 가깝다. 어려서 (미리) 늙어버렸다는 시인들을 보면 또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추상과 형이상학의 세계와 친했던 나도 '소녀' 앞에선 감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감정 대신 감각을 발명하는 법을 일찍 깨쳤더라면 그때부터 시나 소설을 끄적였겠지...). 어쨌든 나는 멀리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 습관이다. 


 그 이후로 제주도를 찾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찾게 된 건 작년 봄 즈음이었던 것 같다(제주도에 간 것은 아니다). 강정 해군기지 찬반 논란. 친구의 블로그에 인혁당 사건 같은 어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보도연맹 사건 같은 어휘들을 접하게 됐다. 나는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류에 대해 나름의 논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에 대해선 잘 모른다. 활발하게 논의가 되던 시기에서 한 발짝 뒤로 눌러나 있던 것도 컸지만 한꺼번에 모든 문제들을 감당하기에 버거웠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대신 용산참사 같은 경우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등을 이용해 공부했고-그나마 이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밀양 송전탑의 경우 1달 정도 함께 했던 '나눔 문화'라는 단체를 통해 많이 배웠고, 강정의 경우 3권의 책, 1편의 논문, 이런저런 기사, 칼럼, 강정 docu jam,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만난 미라클 여행기 등을 통해 가장 넓고 깊게 공부했다. 강정 해군기지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한 공부였는데 마음과 감정이 앞서서 글 수준이 아주 개판이 되었다. 현장에 직접 가보지 않고 자료만 가지고 쓰는 글의 한계도 있었을 테고, 강정을 여전히 사회의 문제로 다뤘을 뿐 내 문제로 다루지 못한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존재sein가 아닌 당위sollen... 


 오멸 감독 덕분에 알게 된 4.3 사건과 강정으로 제주도는 내게 관광지보다 피의 역사를 간직한 섬에 가까워졌다. 물론 아름다운 이미지가 완전히 증발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고등학생 즈음 SBS 다큐멘터리에서 제주도를 자전거로 혼자 여행하는 여대생을 본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마 나는 그때 무의식적으로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토리니 섬과 제주도는 그렇게 내 무의식 속에서 동급이 되었다. 아니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여대생의 존재가 제주도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왠지 제주도로 여행가게 되면 그녀 혹은 그녀 같은 매력쟁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맞다. 바람이 많은 섬이라 그런지 이야기만 들어도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것이다. 그 판타지의 감각을 최대한 활성화시켜 <제주 캠핑 여행>을 '예습'했다. 


 역시나였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을 즐기면서 한 장 한 장 읽을 수 있었다. 캠핑은 경제적으로 부담되고, 같이 갈 사람도 없기 때문에 실질적 도움은 지금 당장 되기 힘들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정보도 제공돼서 제주도 상상여행에 핍진성을 더할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자연환경, 멋진 볼거리... 같이 갈 사람만 있다면 공사판을 뛰어서라도 자금을 마련하리! 


 제주여행에서 좋았던 점은 미술을 공부한 저자가 감각적인 스케치로 사진을 대신했다는 점(이 장점은 제주도 캠핑 여행 놀이 부분에서 극대화된다), 볼거리-먹거리 등 여행서가 갖춰야 할 기본사항을 충실히 갖췄다는 점, 여행다닐 때 들고 가기 좋은 크기/무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표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아, 제주. 그런데 최근 제주를 다녀온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투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오멸 감독의 <지슬>의 부제가 끝나지 않는 세월2였는데 제주도의 피의 역사, 고난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뭔가를 하고 싶은데 실상 광화문 세월호 시위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도덕적 경쟁심. 이걸 극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난 성자/순교자가 될 그릇은 아니다. 대신 내 나름대로 고민하고, 사유하고, 대화하면서 길을 찾을 것이다. 그 누구/무엇을 위한 경쟁심이 아닌 나를 위한 도덕적 경쟁심으로 방향을 바꾼다면 충분히 좋은 재료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투사/순교자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진보를 위해선 의식 있는 시민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한 명의 투사/순교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여러 명이 나눠서 진다면 한 명이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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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바나나 2014-09-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조금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지라.
책에 관해선 사진이 아닌 감각적인 스케치라고 하니 관심이 가네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각적'이라는 거^^
칼비노 전집의 관한 정보는 감사합니다.
근데 그때까지 사고 싶은 욕구, 읽고 싶은 욕구를 자제할 수 있을지^^

rendevous 2014-09-03 23:33   좋아요 0 | URL
사실 전집 류는 한 권, 한 권 모아가는 재미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말이죠 ^^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한 권 한 권 모으다간... 가계 경제가 흔들릴 지도 모르지마 이탈로 칼비노 전집 정도라면 용돈 아껴서 한 권씩 모아도, 혹은 지름신 강림으로 한꺼번에 장만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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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내 몫의 표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





1.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천명관


'프랭크와 나'로 등단해 이듬해 '고래'라는 메가소설로 한국문단을 휩쓸었다는 전설의 소유자 천명관을 읽은 건 작년 여름이었다. 재작년에 유쾌한 하녀 마리사 연극을 대학로에서 봤기 때문에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천명관이란 텍스트를 읽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겠지만 꼬질꼬질한 종이를 한 장씩 넘겨가면서, 손 끝에 전달되는 종이의 질감- 이전에 그 책을 서로 다른 흥분과 감정으로 넘겼을 독자들의 지문과 시간성이 축적된 지도-과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소리, 리듬을 느끼면서 읽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아니라 이 고래가 첫 경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비문학,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변사'에 가까운 입담을 느껴보지 않고 천명관을 읽었다고 말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 될 것이기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최근에 본 소설/소설집 제목 중에 최고인 듯하다 ^^ 

(박민규 소설가의 신작도 하루빨리 신간추천리스트에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ㅜㅜ) 
















2. 필립 로스 -유령퇴장 


미국의 목가로 그의 필력을 맛볼 수 있었다.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 필립 로스. 


 













3. 토마스 베른하르트 - 옛 거장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로 만나본 적 있는 베른하르트. 다양한 작가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 작가의 세계로 더 깊게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고 있는 요즘.. 베른하르트... 황병승 시인이 애정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좋아하고 싶어진 작가 ㅎㅎ 














4. 안나 제거스 - 통과비자



반파시즘 망명문학. 꽤 만만치 않은 독서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읽어보고 싶은 작품. 루마니아 출신의 동독 작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 등을 읽었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풍부한 콘텍스트와 함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창비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작가 중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아서 반갑다 ^^ 
















5. 필립 로스 -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 로스 독파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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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2014-09-0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씀이 아주 결연합니다. ㅎㅎ독파해봅시다....후후
옛 거장들, 고민하다가 넣지 않았는데 흐흠 읽고보니 궁금하네요.
되도록 다양한 작가의 것을 읽자 싶어서요. 흐이짜, 칠면조 응원합니다!

rendevous 2014-09-01 18:04   좋아요 0 | URL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에 밀란 쿤데라 글에서 본 '자기만의 소설사'란 표현을 보고 저도 몇몇 작가를 독파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작가로는 박상륭, 최수철, 정영문/ 외국 작가로는 밀란 쿤데라, 필립 로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보르헤스... 한 작가 전집을 소장하고, 독파하면 약간 부동산 사놓은 것 같은?!(실제로 그러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지만요 ㅎㅎ) 기분이 약간 들더라고요 ㅎㅎ 신형철 평론가가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밀란 쿤데라 전집' 출간을 놓고 (무의미의 축제 신간이 나오긴 했지만) 도망갈 수 없는 상대를 정복하는 쾌감에 대해 얘기했는데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어요 ㅎㅎ 문자 그대로 산을 오르고 정상을 찍는 - 정복이란 표현은 오만이지만 -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봄밤 2014-09-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부분 기억납니다ㅎㅎ왠지모를 공감에 대해서도 공감해요ㅎ맞아요 전작주의는 당연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동산이라니, 깨알같습니다ㅎ 넓게 읽는 것에 대해서는 다만 신간평가단의 활동에 한정한 말씀으로 살펴주시기를요ㅎㅁㅎ!
말씀해주신 국내외 작가들 담아갑니다. 참 저번에 페루애님 서재에서 어깨너머로 추천 들었던 예외들(맞는가요)샀어요! 밀도 높은 문장이라 무척 기대됩니다

rendevous 2014-09-01 18:19   좋아요 0 | URL
앗 예외들 보단 얼굴 없는 노래 를 추천했었는데 ㅜ 예외들 분량에 비해 가격이 좀 비싸거든요 ㅜ 이상 관심 있으시면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도 추천드립니다 ^^ 맞아요~ 신간평가단은 아무래도 다양한 맛을 보기에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ㅎㅎ 다만 제가 무분별한 책 구매로 인해... 책 쇼핑을 끊어서 ㅜㅜ 시립도서관 도서신청란에 자주 들낙날락거리고 있습니다 ㅎㅎ(그런데 예산이 모자라서 적당히 신청하라는 압박이... 미술/사진/그래픽노블은 신청도 잘 안 받아주고요 ㅜ)

봄밤 2014-09-0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얼굴 없는 노래였군요! 아아 그러나 저는 창비 세일로 샀습니다 과연 이만원은 조금 비싼 감도 있습니다ㅜ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제목이 정말 끝내주네요. 이상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책 구매는 언제나 무분별해지는 곳 같아요ㅠ얼마나 많이 신청하시면 그런 압박이 오나요ㅋㅋ으항 그나저나 그 도서관은 윤스리님으로 복되겄습니다아@ㅁ@

rendevous 2014-09-01 18:31   좋아요 0 | URL
인문까페 창비 이용하셨나요? 가고 싶었지만 ㅜㅜ 여기서 약간 고급(?) 정보 공유해드리면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의 경우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1년에 한 번씩 이장파티를 엽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로 연기됐다가 무산되는 분위기인데 원래 봄 즈음에 하거든요. 저는 여기서 반값으로 세계문학전집 두 번 샀어요 ㅎㅎ 뭐 요즘은... 출간된 지 몇 년만 지나면 4~50%로 금방 떨어지니 자랑할 것도 안 되지만요 ㅜ 그리고 민음사 창고세일에서 '민음사 북클럽' 회원 자격으로 70% 할인 받았습니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 전집, 현대 사상의 모험 시리즈 장만하고,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등등 충동구매하는 바람에 빈털털이된 것이었던 것입니다 ㅜ

봄밤 2014-09-01 19:14   좋아요 0 | URL
으앗!!..윤스리님 저는 이 할인판매 만큼에서 '우리'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런 고급정보를 이렇게 오픈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디서 어떻게 박스를 끌며 만났을지 모르겠네요. ㅋㅋ으힝 현대 사상의 모험 시리즈 저 또한 장만했습니다 ㅎㅎ하지만 전집은 끝내 구하지 않았다는! 가슴을 쓸어내릴 소식 전합니다. 소설에 대한 욕심이 없는지, 그것을 채우기엔 책장이 없던 모양인지 저는 주로 시집을 샀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문동에선 전집을 두 번이나 사셨다니, 그렇다면 꼼마에는 수시로 오시겠군요! '우리', 모르는 사이에 몇번은 만났겠습니다.

rendevous 2014-09-01 19:19   좋아요 0 | URL
꼼마는 르 끌레지오 옹 보러 갈 때 딱 한 번 갔어요 ㅎㅎ 시집은 문지 시집 빠돌이라 ㅜㅜ 홍대 와우북 할 때 왕창 사놓고 요로코롬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

문득 마주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낭독 행사나 재밌는 일 생기면 정보 공유하자구요~~ 저는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 열심히 다니려고요 ㅎㅎ

봄밤 2014-09-0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그렇군요+_+ 정보공유 좋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라니!! 정말 축제같은 기분이 들어요. 홍대 와우북, 기다려집니다. ㅎㅎ이번에 가면 시집을 사고, 윤스리님도 불현듯 뵈었으면, 해요. 시집 추천 그 무렵에 여쭐게요!

비의딸 2014-09-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하게도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에 꽂히네요. 천명관과 필립 로스 응원합니다. 로스의 책은 '유령 퇴장'보다는 '굿바이 콜럼버스'로 간택되길.. '유령 퇴장'은 이미 질러버렸거든요!
이렇거나 저렇거나 개인적으로 나는 하루키 책을 읽기에는 가을날이 너무 아까운데...

rendevous 2014-09-02 13:45   좋아요 0 | URL
저는 무의미의 축제 두 권입니다 ㅜ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굿바이 콜럼버스가 처녀작이니(근데 굿바이네요...) 굿바이에 저도 한 표~ (굿바이 레닌 이란 영화도 문득 생각납니다 ㅎㅎ)

CREBBP 2014-09-0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요. 봄밤님도 여기서 뵙는군요. 차남들의 세계사 대신 뭘 추천할까 순례왔는데. 전작주의라는 말을 들으니 이왕 세권이나 읽은 필립로스로 골라서 깊게 들어가볼까 생각중이네요.

rendevous 2014-09-04 16:19   좋아요 0 | URL
필립 로스는 문학동네에서 계속 출판 - 아마도 정영목 번역가가 도맡아서 할 것 같아서 도전하시면 남는 장사?일 것 같아요 ^^ 저는 최근에 시집 많이 읽어서 그런지 호흡이 짧아져서 2권 짜리 소설 읽기가 예전보다 힘들어졌습니다 ㅜ 그런데 역설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에 도전하고픈 마음도 불현듯 생기고 있어요~ ㅎㅎ
 
하룻밤에 읽는 불교 - 개정판, 2천5백년 불교사와 불교사상을 한눈에 그림으로 읽는다 하룻밤 시리즈
소운 스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하룻밤에 읽는 불교. 

 

하룻밤에 못 읽었다 ^^ 

 

끝.

 

^ ^ 

 

 

 

 

 

 

 

 

 

 

 

 

 

 

 

 

 

 

 

 

 

 

 

 

 

 

 

음...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청년출가학교 얘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맞아. 청년출가학교. 거기서 시작된 인연이었어. 

내게 불교란 뭐였지? 고려 시대 국교? 동국대 백일장인가 만해 백일장 때 틀어주던 오세암의 세계(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궁예????!!!! 대머리? 염주? 사리? 악기가 된 뼈(정약용 선생이 복숭아뼈였나? 거기 구멍이 세 번 날 정도로 열심히 정진했다는 에피소드를 읽고 스님을 연상했다) 불 속 결가부좌? 시 속 철학적 뿌리? ... 

생각해보니 불교와 나의 개인적인 접촉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 불국사를 간 걸 제외하곤 거의 전무할 정도로 절은 '옛날의 유산'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불자도 아니었고, 주변 얘들도 불자가 아니었다. 내겐 너무 먼 불교. 

그런데 청년출가학교에 별 고민 없이 지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존적인 고민도 고민이고, 참여해주신 선생님들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불교의 '수행'하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내게 기독교는 노래 부르고 기도하는 이미지라면, 불교는 절하고 염불 외우는 이미지. 

 

극빈. 무아에 이르기 위해 고행하는 구도자. 무성욕 혹은 절대적 절제.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자연인. 

   

이런 끌림들이 있었다. 지속가능한 마조히즘? 하루하루 - 삶을 수행으로 가져간다면 공부/휴식의 분리를 좀 더 부드럽게 완화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 예상은 적중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 들고, 깨끗한 공기 마시며 말끔한 정신 상태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기, 밥 먹는 것 - 걷는 것 - 작은 것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생활하기,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시간, 정말 좋았다. 

스케줄을 짜고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잘 못하는 나에게 어느 정도 꽉 짜인 스케줄은 오히려 다른 것에 신경쓰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정말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불교에 너무 무지했다는 점, 그로 인해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스님들께 여쭙지 못했다는 점과 스님들이 해주시는 불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하룻밤에 읽는 불교. 

 

불교라는 거대한 세계에 들어가는 데 글을 읽지 않도록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책으로, 지도를 그려보고, 영토를 더듬어볼 수 있는 책으로 괜찮을 것 같아 서평단에 신청했고, 운 좋게 인연이 닿았다. 

 

요약-정리된 부분을 보면서 고등학교 때 풀던 문제집이 생각났다. 그만큼 일목요연하게 요약이 잘 돼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불교입문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 입문서를 표방하고 나온 콘셉트에 충실한 책이었고, 처음 불교용어를 접하는 나에겐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책이기도 했다. 

 

p26

 

<우파니샤드>의 어원적 의미는 '가까이 앉다'로, 스승에서 제자로 구전되어온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베다> 문헌의 가장 끝부분에 실려 있기에 베단타라고도 일컫는다.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16세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편찬되었다. 

 <우파니샤드>에 나타나는 철학적 특색은 범아일여, 즉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과 개인에 내재한 아트만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브라만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있게 하는 근원적 실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이를 추구했다. 그리고 현상계와 신들의 의지처가 되는 근본 원인인 브라만 개념을 고안해냈다. 

 브라만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 안에 내재되어 있으며, 현상들의 차별적인 모습은 브라만 안에서 하나의 원리로 귀결된다. 그리고 아트만은 개인의 영적 존재로 다른 물질들과 구분되는 본질적인 어떤 것이며, 인식의 주체이자 윤리적 주체로서 육체가 죽어서 사라진다고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신봉자들은 브라만을 개인의 영적 존재인 아트만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개인의 내면적 탐색이 극치에 이르면 아트만을 발견하게 되고, 바로 그것이 유일의 실재인 브라만과 동일하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범아일여적 사고는 우주의 본질을 내적 자아성찰을 통해 추구하게 만들었다. 개인은 대우주를 반영한 ㅅ우주이므로 우주의 본질을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출가학교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 단어들. 

사성제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해탈의 방법을 고, 집, 멸, 도 네 단계로 설명하는 가르침. 첫째, 존재하는 그 자체가 모두 고통의 연속이다. 둘째, 고통의 근원은 집착이다. 셋째, 고통의 소멸을 열반이다. 넷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이어 열반에 이르는 수행을 다시 여덟 가지로 말했으니, 이것이 팔정도, 즉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주의, 올바른 선정이다. 

 

진은영 시인이 쓴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에서 본 적 있는 나가르주나 용수의 <공> 사상. 

p58

 

나가르주나의 가장 큰 업적은 <반야경>에서 말한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고, 항상 변한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 나가르주나는 <중론>에서 공성(사물의 본성 또는 실체)이 바로 석존이 발견한 연기임을 밝히고 있다. 연기란 현상계의 사물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상호의존적으로 공존하면서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으로, 모든 현상계의 물질의 실제 모습을 밝힌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나마 불교의 주요 개념들을 익힐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나라마다 불교가 어떤 변천사를 겪었는지 대략적인 역사적 흐름을 잡을 수 있어서 앞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거란 걸 예감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청년출가학교에 강의해주신 분으로 광고인 박웅현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때 본인은 <하룻밤에 읽는 ~~> 이런 제목이 달린 책을 싫어한다고 ^^ 하룻밤에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내용을 하룻밤에 읽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에 대한 비판적인 광고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독자 입장에서 그 책이 하룻밤에 읽는~ 이든, 두 글자로 읽는 ~~든 책 내용만 알차다면 상관없다. 대신 한 가지 드는 아쉬움이 있다면 본격적인 전문서적과 초보자들을 위한 입문책 중간에 위치할 만한 책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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