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볼프강 슈테게만.에케하르트 슈테게만 지음, 손성현.김판임 옮김 / 동연출판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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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하르트 슈테게만(Ekkehard W. Stegemann)과 볼프강 슈테게만(Wolfgang Stegemann)의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Urchristliche Sozialgeschichte)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1세기 지중해 세계의 경제와 사회적 맥락을 먼저 살핀다. 다음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여, 로마 지배 체제하에 있는 이스라엘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세부적으로 아우른다. 그들은 유대교에서의 ‘예수 따름 운동’과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 고백 공동체 운동’을 구분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명백한 차별성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내기 위하여 저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생활 영역 구분 및 계층 소속성과 결부된 여성의 삶의 기회를 주로 살핀다. 또한 지중해 세계와 초기 그리스도교 내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상황을 밝힌다. 


저자들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1세기의 사회적 환경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1차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근의 사회학적 연구방법을 도입하여 1세기의 환경을 적절하게 해석하려고 한다. 이들의 연구는 신약성경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매우 유용하다. 단순히 배경지식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넓게는 1세기 지중해 연안의 경제와 사회적 맥락을 안다면, 신약성경의 배경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이스라엘에서의 유대교의 사회사와 예수 따름 운동을 소개하는 2부의 내용도 신약성경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특별히 7장부터 그들은 신약성경의 구체적 본문을 제시하면서, 그 텍스트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이스라엘의 예수 따름 운동을 분석하면서, 세례요한과 예수를 직접적으로 관련 짓는다. 이스라엘에서의 예수 운동을 세례요한의 종말론적 회개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그들은 밝힌다. 그들은 복음서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요한복음 3장과 4장, 누가복음 7장과 마태복음 11장, 마가복음 1장과 마태복음 4장 등 신약성경의 자료를 가감없이 제시한다. 특히 예수 운동을 소개하면서 구약 성경의 문맥까지도 소개하며, 복음서의 일부분이 아닌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신약성경과 당시의 배경을 적절하게 연결짓는다.


또한 메시아적 공동체를 소개하는 8장 이후에서는 복음서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 등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며 적용한다. 더불어 바울 서신 이외에도 그리스도인의 차별이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상황 등을 분석하면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의 서신 등을 활용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신약성경의 사용으로 인해, 신약성경의 배경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사회학적인 분석에 치중하다보니, 성경에서의 본래적 의도와 장치 등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신학자들의 의견도 반영되고 있지만, 해석학적인 오류도 종종 보이고 있다. 특히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서의 바울을 대치시키면서, 사도행전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픽션이라고 정의를 하는 아쉬움도 있다. 자료를 최대한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그들의 본래적 의도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어떠한 목적과 방향, 의도로 그 성경을 기록했는지에 대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또한 1995년에 출판되었기에 최신의 신학적 결과물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들은 충분하게 숙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최신의 성서신학적 결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책의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습득한다면 훌륭한 성경의 동반자가 될 것 같다. 이들의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사회학적 결과물은 신약성경의 배경 이해에 있어 매우 탁월한 보조자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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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합본) 신 :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김용규 지음 / IVP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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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은 이 책과는 상관없이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어떠한 의미이며,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학술적인 책이기도 하지만, 실용서이기도 하다. 신학서적이면서도 신앙서적이다.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는 기독교출판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할 대상자는 기독교인들이 아니다.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읽으면 더욱 좋은 책이다. 왜냐하면 서양사의 '신'에 대해, 특히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양사의 큰 흐름 가운데 뚜렷한 흔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신'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다룬다. 우리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한계 가운데, 인간은 어떻게 신에 대해서 이해해 왔고, 그러한 정의가 가지는 약점은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대한 통전적 접근 하고 있다 책의 부제와 같이 인문학을 통해 신에 대해 말한다문학과 역사철학과학, 예술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거칠게 나누어보자면(이 책의 밑 바탕에 역사와 예술, 문학 등이 전제되어 있다), 1부는 예술과의 대화, 2부는 철학과의 대화, 3부는 과학과의 대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4부와 5부는 신학과 역사, 철학 등이 주를 이룬다. 이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총체적이며열린 태도로 연결된다자연스럽게 두번째 장점으로 이어진다.

둘째로, 비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도 객관적으로 읽을  있다모든 자료들이 신중하게 배치되었고구체적이며 실제적이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을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변증으로 하나님을 다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령, 고난의 문제 등)에 적실하게 반응한다. 이 모든 언어는 최대한 대중의 언어로 씌였다. 대중의 언어라 함은 기독교인들만이 쓰는 언어를 최대한 배제했다는 것이다. 열어두고 함께 고민해보자며 손 내밀고 있다.

이 책은 통전적이며 객관적인 동시에, 매우 쉽다다양한 학문적 접근에도 불구하고전이해 없이 읽을  있다물론 철학과 신학과학문학역사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다면 더욱 깊게 읽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전 지식 없이도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백미는 2부다. '하나님은 존재다'에서 서양철학사의 큰 흐름을 간명하게 정리하여 복잡한 사상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철학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다. 3부 '하나님은 창조주다'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과학 이론 등과 접목하여 창조와 진화에 대한 최근의 논의들을 절묘하게 헤쳐나간다. 

이러한 특징들과 더불어 국내 저자의 글이기에 가지는 장점은 매우 크다. 쉽고 간명하게 글을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내용이 많음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비슷한 사유를 할 수 있는 동일한 문화와 언어의 저자의 글은 그 글의 이면의 감정과 배경 등이 떠오르고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 글은 살아 숨쉰다. 역동한다. 그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이 된다. 그가 아파하는 교회의 아픔은 곧 우리의 문제 의식과 맞닿아있다. 

내용으로보면 900여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지만, 충분하게 독파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긴 호흡으로 즐겁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혹시 시간이 없다면,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하여 읽어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가령 서양철학사를 빨리 정리해보려면 2부를, 창조와 진화 논쟁에 관심이 있다면 3부를 읽는 식이다. 하지만 전체의 흐름이 1부부터 5부까지 연결되고 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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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차원
G.로핑크 지음, 정한교 옮김 / 분도출판사 /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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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회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일까?' 이러한 고민과 질문은 많지만 정작 우리가 그리는 교회의 모습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의 모습이라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은 거의 없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일치된 그림이 없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있지만, 신약시대의 교회가 실제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적다. 


튀빙엔 대학 가톨릭 신학부에서 신약성서학 교수로 재직했던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서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탁월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우시길 원하셨던 공동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자신이 곧 하나님나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선포와 사역의 중심에는 '하나님나라'가 있었다. 즉,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자신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하나님나라는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저자는 예수님께서 세우기 원하셨던 공동체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연속상에서 생각해야만한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12제자의 구성의 "예언자적 표징행위"로 파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빛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나라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도리어 어둠으로 쫓겨나게 될 운명에 처해졌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거룩한 남은 자들이나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언제가는 충만한 숫자로 모여 이루어져야하는 종말론적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민을 위한 "구원의 보편적 징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탄생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선취를 맛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 교회에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경험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 모든 차별은 지양된다. 모든 장벽은 무너진다. 하나님의 영은 화합의 영이며, 평화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다. 로핑크는 다른 성서학자들이 많이 주목하지 않았던 한 단어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밝힌다. 이는 "서로"라는 단어이다.  "ἀλλήλων"은 개역개정에서 '서로, 피차, 각각'으로 번역되어지는데, 주로 '서로'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이 단어의 용례를 살피면서, 공동체의 특징을 "서로 함께"를 실천하는 것에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며, 온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을 받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로핑크는 신약성서의 사랑은 보편적 인류애가 아닌, 거의 예외 없이 공동체 내의 형제애를 뜻한다고 말한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은 대조사회 혹은 대척사회로서 존재한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세상과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화되어 그분의 진리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다. 여느 사회의 거짓과 허위와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교회의 거룩함은 세상의 거짓을 폭로한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빛으로 밝히 드러난다.  교회는 스스로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로 인하여 거룩해진다. 용서받은 백성은 죄가 없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 희망이 자라나는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과 차별되어진다. "십자가와 고난의 역사라고는 또 다시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되 또한 그분과 함께 일으켜지기에 거듭 새삼 부활절을 경축할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말한다(244)."


교회론에 대한 다양한 책이 있지만, 로핑크의 이 책은 다른 책이 꼭 한번은 참고하는 책이다. 즉, 교회론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부제에서 보여지듯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차원'을 분석한다는 것은 다소 생경한 경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원초적 교회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재 교회가 배우고 닮아야 하는 부분은 계승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이론이나 사상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대안이나 응답일 것이다. "삶의 자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본질적인 부분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지금 현재 이 땅에서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가 많아지길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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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는 삶 -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로완 윌리엄스 지음, 김병준.민경찬 옮김 / 비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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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의 저작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2015년에 6월에 복있는 사람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Being Christian)이 출간되었고, 같은 해에 비아에서 『신뢰하는 삶』(Tokens of Trust)이 출간되었다. 이후 2017년 11월과 12월에 세 권의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복있는 사람에서 『제자가 된다는 것』(Being Disciples), 국제제자훈련원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God with US), 비아에서 『삶을 선택하라』(Choose Life). 그동안 그의 세계적인 명성과 업적에 비해 국내에 그의 저서가 많이 소개되지 않았었다. (현재는 복있는 사람과 비아 출판사를 통해 많은 저서가 소개되었다.) 그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1년간 잉글랜드 출신이 아닌 성공회 주교로는 최초로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어 세계 성공회 공동체를 이끌었다. 2013~2014년에는 기포드 강연을 맡았으며, 많은 저작들이 있다. 지금이라도 그의 책이 국내에 지속적으로 소개되어 감사하다.


그 중에 『신뢰하는 삶』(Tokens of Trust)은 부제인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에서 보여지듯, 기독교 신앙에서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사항들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윌리엄스가 캔터베리 대주교로 활동하던 2005년에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사도신경과 니케아신조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신경/신조 해설서다. 평신도 청중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쉽고 간결하며, 신앙 입문서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쉬운 언어임에도 울림은 깊고, 내용의 깊이나 신학적 완성도는 뛰어나다. 신학자나 목회자가 읽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처음 펼치면 6개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시인이자 화가, 판화가인 데이비드 존스의 그림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글 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신앙의 여정에 대해 더 많이 숙고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얇은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의 대부분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삶, 성령 하나님의 사역, 교회, 성례 등 거의 모든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이 모든 주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주제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보충하며 풍성케해준다. 저자는 이 모든 주제들을 '신뢰'라는 주제로 묶어 내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삼위일체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금요일은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하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보듬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우리의 생각이나 세상의 통념을 뒤흔든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낮아지셨다. 끔찍한 고통 가운데 자기를 내어주셨다. 모든 고난 가운데 자기를 맡기셨다. 예수님은 비로소 모든 것을 완성하셨다. 모든 길을 열어놓으셨다. 하나님과 우리를 만나게 하셨다.


이 책에서 또 하나의 보물은 교회에 대한 강조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그 누구도 고립되지 않으며 누구도 저 홀로 성장하지 않으며 누구도 홀로 고통을 겪게 하지 않는 가운데 평화를 이루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공동체"다. 기독교는 '몸'이 함축하고 있는 혁명적 의미를 이끌어 냈다. "한 몸이라는 관점에서 한 지체의 실패는 모두의 실패"다. 또한 교회는 "예수의 삶에 압도된 사람, 예수에 삶에 '깊이 잠긴'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기존의 명제에 비해 훨씬 풍성하고 아름답다. 실제적이며 구체적이다. 


교회의 풍성함은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성찬례를 통해 가능하다. "빵과 포도주라는 물리적인 표지를 통해, 신앙과 신뢰 안에서 그것을 먹고 마시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자신 안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인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찬례를 강조했는데, 이후에 종교개혁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많은 개신교회는 성찬례의 풍성함을 잃어버린듯 하여 안타까움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말씀과 전례의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핵심적이며 기본적인 진리를 알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읽고 기독교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길 원한다. 또한 명료하고 쉽게 진리를 전달하고자하는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윌리엄스의 책을 통해 더욱 깊고 아름다운 언어로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을 전달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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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 / IVP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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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은 갈수록 사사화(privatization)되고 있다. 이는 사회학자 피터버거(Peter Berger)가 『종교와 사회』(The Sacred Canopy: Elements of a Sociological Theory of Religion)에서 사사화를 현대 사회의 흐름 가운데 하나로 지적한 바와 같다. 기독교 신앙이 갈수록 개인주의적으로 변함에 따라서, 기독교는 공적 영역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더욱 분리주의적으로 반응한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인 사랑과 용서, 평화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협소한 사회적 이슈(동성애나 낙태 등)에 크게 목소리를 낸다. 기독교가 기여해야 하는 더 많은 영역이 있음에도(사실상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이 보일 때가 많다.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신들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서만 신앙을 도구화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광장에 선 기독교』의 1부에서 볼프는 ‘왜 인간은 개인의 신앙에만 집중하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그는 하나의 종교가 공공 생활에 침투하는 전체주의적인 입장과 모든 종교를 공공 생활에서 배제하는 세속적인 입장 모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볼프는 기독교가 ‘예언자적 종교’가 되어야하는데, 그러한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그는 ‘기능 장애’라고 말한다. 그는 신앙이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인 현실을 형성하는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볼프에게 귀한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예언자적 종교에 '상승'과 '회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승'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메시지를 받는 수용적 사건이다. 반면 '회귀'는 신적 메시지가 세상 가운데로 선포되는 것이다. 문제는 '상승'과 '회귀'가 심각한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지점도 된다는 것이다. 볼프는 ‘회귀’의 기능장애로 해야 할 것은 하지 않는 ‘나태’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는 ‘강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떠한 현상이든 그 상태를 정확한 용어로 ‘명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볼프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범하고 있는 죄의 모습을 분명하게 이름 붙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여겨왔던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행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힘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극히 일부의 모습인 정의로운 하나님의 이미지만을 받아들인다. 정작 십자가에 달린 예수, 겸손한 예수, 섬김의 예수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통찰을 얻게 되었다. 인간은 거룩하여져야하고 하나님을 닮아야하지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 하나가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힘으로 지배하며 강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따르고 싶고 쉬운 방식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회현상은 복잡다단하다. 그 가운데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양식도 매우 다양하다.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해야 하는 과제는 시대의 흐름에 비판없이 대처하여 전적으로 문화를 수용하거나, 분리주의적으로 대처하여 사회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이 해야 할 행동은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사회에서 지혜롭게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또한 그 가운데서 우리의 중심에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있어야 함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도, 공적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적절한 참여를 모색하고 함께 대화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프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대안을 제시하고 참여할지에 대한 통찰을 적실하게 주고 있다.


2부에서 볼프는 본격적으로 ‘왜 우리가 공적신앙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야 할지 힘겨움을 느낀다. 그들은 나름의 대안으로 세상과 분리되어 세상 문화를 적대시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는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택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적당히 세상의 문화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대체로 자유로운 신앙관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문화에 별다른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공적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어떠한 방법과 모습으로 참여를 할 것인가는 최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탄핵정국과 촛불혁명 가운데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대안을 실제로 보여준 대한민국의 최근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다수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면서 정작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했던 몇몇 지도자들의 그릇된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공적 참여에 대한 성경적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방법을 제시해야 할까? 볼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도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문화 가운데서, 그 문화를 조금씩 변혁시키는 것이다.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가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에서 제시하는 다섯 가지 유형도 결국 시대의 흐름 가운데 어떻게 적절하게 문화에 대응할지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대안은 고정되고 불변하는 대답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응답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프는 다원주의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대답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 이전에 신학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게 된다. 즉 시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과 치열하게 배우고 알아가려고 하는 자세를 엿보게 된다.


볼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면서도, 종교와의 대화에 열린 태도일 것이다. 그는 신앙인들이 다른 종교의 경전에 대하여 ‘해석학적 호의’를 베풀고 서로 선물을 교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간 대화의 방식은 배타적인 태도를 버리고, 상호 이해하며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볼프는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주의를 제안하면서, 공적 영역에서 세속적인 문화가 아닌 각 종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각 종교는 진리의 문제에 대해 일단 유보하고, 사랑과 관용을 통해 공적영역에서의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수록 한국사회에서도 종교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볼프를 통해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하며,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내적으로 진리에 발붙이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외적으로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경의 마음으로 대화와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공적 영역에서 세속적인 문화와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를 타파하고, 연합과 상호 이해와 사랑함이 더욱 인정받고 강조되는 세상으로 변혁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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